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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내부자들>과 채널A 사건 / 유선희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13. 06:36

[한겨레 프리즘] <내부자들>과 채널A 사건 / 유선희

등록 :2020-04-12 16:26수정 :2020-04-13 02:09

 

유선희 ㅣ 문화팀장

 

영화 <내부자들>(2015)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의수를 착용한 채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안상구(이병헌)가 유력 대선후보의 비자금 내용을 폭로한다. 그러자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그의 전력을 문제 삼는다. 조직폭력배 출신이자 긴 범죄 이력을 가진 안상구를 “희대의 사기꾼” “청부 살인과 성폭행을 일삼은 파렴치한”으로 몰아간다. 이런 보도로 인해 안상구가 제시한 증거의 신빙성은 떨어지고, 비자금 사건은 물타기 된다.최근 개봉한 지 몇 년 지난 영화 <내부자들>을 다시 봤다. 개봉 당시부터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의 리얼리티를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지난달 31일 <문화방송>(MBC)은 <채널에이(A)>의 ‘검-언 유착’과 ‘취재윤리 위반’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를 했다. 채널에이 기자가 취재원(이철 전 VIK 대표)에게 유력 검사장과의 친분을 들먹이며 접근해 가족에 대한 수사를 빌미로 여권 인사의 약점을 폭로하라고 협박했다는 내용이다. 취재원을 겁박한 녹취록이 공개되고, 제보자가 직접 언론에 나와 인터뷰를 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법무부는 검찰에 감찰을 지시했고, 시민단체는 채널에이를 검찰에 고발했다.그러자 보수언론은 일제히 ‘제보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을 땐 메신저를 공격하라.’ 제기된 의혹을 물타기 하려 할 때마다 꺼내들던 수법이 또다시 등장한 것이다.‘친여 브로커 “윤석열 부숴봅시다”…9일 뒤 MBC 검·언 유착 보도’(<조선일보> 4월3일), ‘사기 전과자가 윤석열 의혹 띄우면 친여 매체들이 뭇매’(<조선일보> 4월4일), ‘이철 대리인 지씨는 전과자-언론 연결 브로커’(<문화일보> 4월3일), ‘채널A·검찰 유착’ 제보자는 친여 인사…야권 “제2 김대업이냐”(<중앙일보> 4월6일) 등의 기사를 통해 제보자 지씨의 과거를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그가 횡령·사기죄 등으로 복역했고, 평소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난해왔으며, 친여 매체에 출연해 현 정권을 옹호했다는 등의 주장이다.화룡점정은 채널에이 자매지인 <동아일보>가 찍었다. ‘사기 등 전과 5범 지씨, 이철 대리인이라며 기자에 접근’(4월10일) 기사를 통해 사기꾼인 지씨가 의도적으로 접근해 녹음을 하고 이를 여권에 제보했다고 반격에 나섰다. 채널에이 대표가 9일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 출석해 “취재윤리 위반은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인 바로 다음날의 일이다.자기 진영에 불리할 때마다 ‘제보자의 동기’를 따지며 물타기를 하는 보수언론의 행태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고 증언한 윤지오의 순수성을, 기무사 계엄문건을 공개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의 성 정체성을, 삼성 엑스파일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에 대한 사감을 비난하는 등 보수언론은 주요 사건마다 늘 ‘프레임’을 전환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이러한 프레임엔 ‘의혹을 제기하는 자는 티 없이 깨끗해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과연 그런가? 제보자의 동기가 무엇이든 전력이 어떻든, 언론은 제보 내용을 치열하게 취재해 팩트만 가려 보도하면 된다. 그것이 언론의 의무이자 책임이다.방통위에 출석한 채널에이 대표는 이미 “인터뷰 욕심으로 검찰 수사를 확대할 기사 제보 등을 하면 유리하게 해주겠다며 윤리강령을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고 실토했다. 제보자의 과거나 정치성향과 관계없이 이것이 팩트다. 이제 기자와 검찰 관계자 사이의 통화 녹음만 확인하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언론의 남은 의무는 윤 총장의 최측근이라고 알려진 녹음파일 속 인물의 실체를 취재해 검-언 유착 의혹의 진위를 밝히는 것뿐이다.<내부자들>에선 한 몸처럼 끈적하게 엉겨 공생하며 악취를 풍기는 검-언 유착이 밀도 있게 그려진다. 향후 드러날 이 사건의 전말이 부디 영화와 같지 않기만을 바란다.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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