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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칼럼] 코로나19가 드러낸 시장의 그늘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16. 01:37

[하종강 칼럼] 코로나19가 드러낸 시장의 그늘

등록 :2020-04-14 18:16수정 :2020-04-15 02:38

 

경제적 이윤 추구가 모든 인륜과 도덕적 가치 위에 군림하며 그동안 저비용 고효율을 진리처럼 여겨왔으나 ‘고비용’ 경영을 준비하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부응하는 바람직한 자세다.

하종강 ㅣ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대면 수업 개강은 늦춰졌지만 투표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투표를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했지만 투표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해 일찌감치 사전투표를 하러 갔다. 투표소 입구에서 봉사자들이 체온 측정을 하고 손소독제로 손을 씻게 하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배부해 착용하도록 했다.

 

신분 확인을 하던 사람이 살짝 웃더니 조그맣게 말한다. “공무원노조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 수고가 많으시네요”, “늘 그렇죠, 뭐….” 짧은 대화였지만 긴 이야기를 나눈 것만큼 묵직한 공감대가 오갔다. 더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가 척박한 우리 사회에서 온갖 질시와 탄압을 견디고 있다는 뜻이다.

 

투표를 마치고 돌아오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방에 홍보물이 하나 올라온다. 투표소에서 배부될 일회용 비닐장갑 분량이 63빌딩 7개 높이나 된다고 하니, 개인이 장갑을 지참해서 자원도 절약하고 환경보호도 하자는 내용이다. 투표하기 전에 봤으면 좋았을걸 싶었다. 잠시 뒤 다른 글이 하나 또 올라온다. 장갑을 지참하고 갔더니 외부 인입 물질이라 그 위에 굳이 일회용 장갑을 다시 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자원절약과 환경보호도 중요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감염 방지가 최우선이어서 그 말이 맞는다 싶기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다. 고글 등 보호구로 인한 상처에 반창고를 붙인 간호사들 얼굴 사진에 감동하고, 음압병실에 한번 들어가면 교대할 때까지 나올 수 없어 의료진이 기저귀를 착용하고 일한다는 기사를 읽고 존경심마저 느껴졌지만 언론사 기자들이 밀착 취재하느라고 간호사들의 인권을 침해한 경우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노동자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 오랜 세월 매진해왔다고 자부하는 인간이 그러한 짐작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신자들이 치유를 기원하며 선물한 산소호흡기를 낯선 젊은 환자에게 양보하고 병마와 싸우다 숨진 70대 노신부가 존경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며칠 뒤, 훌륭한 성품의 신부가 숨을 거둔 것은 맞지만 기증받은 산소호흡기는 아예 없었고 신부의 관이 거리를 지날 때 주민들이 창가에 나와 찬사를 쏟아냈다는 미담은 사실이 아니라는 기사를 보고는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것처럼 허전했다. 언론이 미담을 만들어낸 이유는 현대사회 언론의 기능 역시 시장에 맡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느라고 교수들이 진땀을 빼고 있다. 노트북 컴퓨터 내장 카메라 성능이 시원치 않아서 집에 굴러다니던 컴퓨터용 외장 카메라를 사용하니 한결 나아졌다. 좀 더 나은 것을 찾느라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지금 사용하고 있는 외장 카메라 최저가격이 무려 48만원대이다. ‘이렇게 비싸고 좋은 것이었나?’ 싶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한달 전만 해도 가격이 5만원대였다. 아, ‘시장’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전국의 교사와 교수들이 온라인 강의를 하느라고 수요가 폭증하니 같은 제품의 가격이 한달 만에 열배로 뛴 것이다.평소 무상의료를 자랑해온 유럽이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현상을 두고 보건의료를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하고 영리병원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혀 타당하지 않은 주장이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장점이 물론 있겠지만 지금까지 한국이 코로나19 사태에 잘 대처해온 이면에는 스스로 “갈아 넣는다”고 표현할 만큼 공무원을 포함한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엄청난 초과노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거나 지역사회 감염을 통해 집단 면역을 획득하는 것 둘 중 하나라는데, 두가지 모두 1년 이상 걸리고 집단 면역 획득까지는 인구의 2%, 곧 100만명 이상이 사망할 것이라고 한다. 그 긴 기간 동안 지금과 같은 초과노동으로 버틸 수는 없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쓰러지면 시민들이 쓰러지고 사회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노동자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코로나19 이후 경제 위기에서 가장 빠르게 반등하며 회복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제적 이윤 추구가 모든 인륜과 도덕적 가치 위에 군림하며 그동안 저비용 고효율을 진리처럼 여겨왔으나 ‘고비용’ 경영을 준비하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부응하는 바람직한 자세다. 노동자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는 것은 현재나 미래를 위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슈코로나19 세계 대유행

연재하종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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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37030.html#csidx0828d2715863641827347dd705b71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