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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중국은 ‘코로나 전쟁’에서 승리했나 / 박민희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16. 02:28

[아침햇발] 중국은 ‘코로나 전쟁’에서 승리했나 / 박민희

등록 :2020-04-14 15:52수정 :2020-04-15 02:39

 

박민희 논설위원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76일간의 삼엄한 봉쇄가 해제된 뒤 12일 시민들이 마스크를 낀 채 산책을 하고 있다. 우한/신화 연합뉴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폭로한 미국과 유럽 문명의 혼란에 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짧게는 냉전 종식 이후 30년의 미국 일극체제, 길게 보면 19세기부터 계속된 서구 지배체제가 종착역으로 향하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미국의 지도력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대통령의 무책임, 공공성이 실종된 의료체계, 미국의 군사력을 상징하는 항공모함에서 확진자가 속출하는 상황은 상징적이다. 상황이 악화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유럽발 입국 금지였고, 그다음은 중국과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비난이었다. 미국은 동맹을 휴지 조각 취급했고, 위기 극복을 이끄는 지도자 역할도 내던졌다.

 

그렇다면 ‘중국의 시대’가 오고 있을까.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한 중국은 진원지 우한의 봉쇄를 끝내고 승리의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방역에서 경제로 초점을 옮겼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경제 시찰 등을 통해 경제 재가동을 강조하고, 지방정부들은 ‘인민이 돈을 쓰라’는 신호를 보내느라 바쁘다.

 

하지만 중국이 승리를 뽐내기엔 너무 이르다. 우방국 러시아에서 유입되는 환자가 느는 등 2차 감염 확산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중국 당국이 ‘감염력이 낮다’며 집계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별도로 관리하기 시작한 무증상 감염자로 인한 재확산 가능성이나 지방정부들이 경제 회복에 방해가 될까봐 확진자 수를 은폐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계속된다. 바탕에는 중국 정부의 통계에 대한 신뢰성 논란이 있다. 코로나19 진단도, 치료도 못 받고 숨져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불안과 불확실성은 경제 살리기의 발목을 잡는다. 중국 당국은 5G 분야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해 성장률을 높이려 한다. 국유기업 등 대규모 공장의 생산도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 유럽의 위기가 얼마나 길어질지가 변수다. 두달 넘게 전국이 ‘올스톱’ 하면서 많은 기업이 파산 위기에 몰렸고 외출이나 외식을 꺼리는 이들이 많아 중소기업과 서비스업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약 2억명의 노동자가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해 ‘마찰적 실업’ 상태라는 분석도 나왔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800만명의 청년들도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경제 성장을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 지표로 내세워온 중국 지도부에겐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당국의 초기 대응 실패로 큰 고통을 겪은 민심도 살얼음판 같다. 76일의 봉쇄를 견디며 가족들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숨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봉쇄 해제 이후에도 차별을 당하고 있는 우한과 후베이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 상처는 쉽게 지울 수 없다.

 

국제적으로는 미국이 휘청거리며 생긴 지정학의 공백 속으로 중국이 진군하는 듯 보인다. 중국은 120여개 나라에 마스크와 진단키트를 지원 또는 판매하고 의료진을 파견하며 ‘중국 공헌론’의 서사를 만들려 한다. 한편,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코로나19가 미국 군인들에 의해 전파됐을 수 있다’는 음모론을 꺼냈고, <신화통신>은 ‘당당하게 말한다. 세계는 중국에 감사해야 한다’는 글을 실어 중국의 희생이 세계를 구했다고 주장했다. ‘중국 책임론’을 지우려는 선전전이었지만 적반하장이라는 반발을 불렀다. 중국은 미국의 혼란과 대비되는 지도력을 보일 수 있었던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 ‘마스크 대란’을 겪으며, 중국에 생산기지를 집중시킨 부작용을 절감한 미국, 유럽 등이 글로벌 공급망의 대수술에 나서 중국으로부터의 공장 철수를 가속화한다면 더 큰 도전이 닥칠 것이다.

 

권위주의에 의한 효율을 과시한 ‘중국 모델’에 대한 우려 속에서 ‘한국 모델’이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한국 보수 정치세력과 언론의 근거 없는 비난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한국이 민주적 방법과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경제를 희생시키지 않고 효과적 대응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리더가 사라진 ‘G 제로’ 시대에 한국은 강대국 모델을 따르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스스로 지도를 만들며 나아가야 할 출발점에 서 있다. ‘코로나 혁명’이 세계를 재설정하면서 중요한 과제들이 다가오고 있다. 경제와 일자리 위기, 세계화의 퇴조와 글로벌 공급망 재조정에 한발 앞서 대비하고, 공정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향해 깊게 고민하고 준비할 시간이다. 오늘 투표소에서 누구와 함께 그 과제를 풀어갈 수 있을지 질문을 던져야겠다.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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