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 목사 성경칼럼 (Facebook)

신명기 4:41-49 “고의인가 실수인가”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17. 07:56

신명기 4:41-49 “고의인가 실수인가”


4:42
이는 과거에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 곳으로 도피하게 하기 위함이며 그 중 한 성읍으로 도피한 자가 그의 생명을 보전하게 하기 위함이라

1.
누구나 실수합니다. 누구나 잘못을 범합니다. 문제는 왜 범했는지 그 동기입니다. 결과는 같지만 그 동기는 정반대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2.
예컨대 살인했습니다. 사람을 죽이면 사형입니다. 남의 목숨은 제 목숨으로만 갚을 수 있습니다. 대다수가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까닭입니다.

3.
그러나 만약 나무를 패다 도끼 자루에서 도끼 날이 빠져 날아가 행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실수로 인한 살인입니다.

4.
살인이라는 결과는 면책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도끼를 휘두른 사람에게는 전혀 고의가 없습니다. 홧김에 사람을 찌른 경우와는 다릅니다.

5.
모세는 고의성이 없는 살인자를 위해 도피성을 지정합니다. 각 지파 별로 한 성읍을 도피성으로 삼습니다. 피의자는 이곳으로 피하면 삽니다.

6.
일단 요단 동편에 세 지파를 위해 세 성읍을 도피성으로 할당한 것은 요단 서편 점령 이후 또 다른 도피성이 지정될 것임을 예고한 것입니다.

7.
사법적 절차를 거쳐 보호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번거롭게 하느냐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것이 현실입니다.

8.
실수한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버려두면 그는 죽음을 당한 자의 가족이나 친족에 의한 살인을 면하기가 어렵습니다.

9.
도피성제도는 사법적 정의 안에 생명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공의와 사랑이 함께 가고 있다는 따뜻한 느낌을 받습니다.

10.
예수님은 이 땅에 도피성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를 씻어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을 부릅니다.

11.
그분 안에 용서와 안식과 자유가 있습니다. 그분이 사랑이고 빛이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한없이 실수하는 인간을 끝없이 용서합니다.

12.
공의를 포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의 삯을 모두 다 치르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사랑과 공의가 만나는 곳입니다. 사랑이 없는 공의는 세상을 피투성이로 만듭니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더불어 살기 어려운 세상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