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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의 문학으로] 회복기의 노래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25. 03:42

[최재봉의 문학으로] 회복기의 노래

등록 :2020-04-23 18:24수정 :2020-04-24 13:35

 

최재봉 ㅣ 책지성팀 선임기자

 

19일까지로 예정했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새달 5일까지로 보름여 늦춰졌다. 그러나 그 강도는 완화됐다.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수는 지난 18일 두 달여 만에 처음 한 자릿수로 떨어진 이래 줄곧 10명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아직 완전히 안심하긴 이르지만, 적어도 국내에서는 이 신종 감염병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 전체를 사람에 견준다면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병에 걸렸다가 치료를 마치고 건강을 되찾는 회복기의 환자와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격렬한 고통의 다음에는 선명한 빛깔들이 일어서서 나부끼듯이/ 오랜 주검 위에서 더없는 생명과 빛은 넘쳐 오르지./ (…) / 저것 봐. 열린 페이지마다 춤추는 구절들을./ 익사의 내 눈이 별로 박히어 빛을 퉁기는 것을./ 모든 허물어진 관련 위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질서를.”(송기원, ‘회복기의 노래’ 부분)

 

송기원의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 ‘회복기의 노래’는 지금 읽기에 맞춤해 보인다. 오랜 병마에 시달리던 화자가 마침내 고비를 넘기고 죽음에서 삶 쪽으로 넘어오는 순간 느끼는 생명의 신비와 부활의 기쁨을 감각적 이미지의 연쇄로 풀어낸 작품이다. 인용한 대목에서는 고통과 빛깔, 주검과 생명, 파괴와 질서가 대비되면서 회복기 환자 특유의 낙관과 기대를 단호하게 ‘선언’한다.

 

소설가 한강도 같은 ‘회복기의 노래’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그의 유일한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에 실린 작품이다.“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한강, ‘회복기의 노래’ 전문)

 

송기원의 시가 화려하고 감각적이라면 한강의 ‘회복기의 노래’는 단아하고 사색적이다. 시를 마무리하는 낱말 “가만히”는 이 시 전체의 기조를 말해 준다. 시의 화자에게 회복은 의지나 주장이라기보다는 질문의 형태를 띤다. 그에게는 병에 걸린 것도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그 자신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더 힘 있는 누군가의 소관이다. 그 누군가를 절대자 또는 섭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일에 관한 그의 질문에 그 누군가는 빛으로써 답을 대신한다. 송기원의 시에 나왔던 빛이 여기서 다시 나온다. 두 시 모두에서 빛은 생명의 축복과 부활의 약속을 상징한다. 그 빛이 얼굴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동안 화자는 ‘가만히’ 누워 기다린다. 얼핏 수동적이고 무기력해 보이는 이 행위는 사실은 단단한 믿음과 의욕을 내포하고 있다.“

 

도시 전체가 밖으로 쏟아져 나와서, 고통의 시간은 종말을 고했지만 망각의 시간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고 있는 그 벅찬 순간을 축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광장마다 모여서 춤을 추고 있었다. 지체 없이 교통량은 현저하게 증가되어 수가 늘어난 자동차들은 사람들이 밀려든 거리거리를 간신히 통과하고 있었다. 시내의 모든 종들이 오후 내내 힘껏 울렸다.”(김화영 옮김)

 

카뮈의 소설 <페스트> 말미에서 페스트에서 ‘회복’된 오랑시와 주민들의 모습은 축제와 해방의 기운을 한껏 내뿜는다. 코로나19가 드리운 불안과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 버리면서 우리 역시 춤과 노래로 되찾은 일상을 구가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카뮈가 여기에서 고통과 망각을 대비시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통의 종식은 물론 기뻐할 만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을 잊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역시 이 소설 말미에서 페스트에 지지 않고 살아남은 한 노인은 의사 리외에게 이렇게 말한다. “페스트가 대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그뿐이죠.

 

”페스트나 코로나19 같은 대규모 감염병 역시 길게 보면 인생의 일부다. 아니, 어쩌면 인생 자체가 페스트라는 것이 노인과 카뮈의 생각이다. 지금은 우선 코로나19에 스러진 동료 인간들의 죽음 앞에 고개를 숙일 시간이다. 영국 시인 존 던의 가르침대로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만의 섬이 아니”며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축소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식 뒤에는 그보다 길고 조심스러운 복식 기간이 필요하다. 회복기의 환자로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는 무엇보다 자연과 세계 앞의 겸손 그리고 지난 삶의 방식에 대한 반성이 아니겠는가.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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