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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나와 세계 사이의 투명한 막” [김금희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5. 2. 06:10

“소설은 나와 세계 사이의 투명한 막”

등록 :2020-05-01 06:00수정 :2020-05-01 12:32

 

김금희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예약판매 포함 발간 첫주 1만3천부 ‘훌쩍’
“작가란 건강하지 않은 직업일지도”

“이상문학상 거부는 나를 구하고자
윤이형 활동중단은 슬프고 충격적
자기윤리 찾는 이 그린 장편 집필중”

사랑 밖의 모든 말들김금희 지음/문학동네·1만3500원

 

“산문집을 묶으면서 다시 보니까 이 책이, 글을 쓰고자 하는 꿈을 가졌던 사람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과 마침내 글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얘기더라구요. 제가 강연 같은 데 가면 그런 질문 꼭 받거든요. ‘저희 애가 글을 쓰고 싶어 하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그런 궁금증이 있는 분들이 이 책을 보면 작가란 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조금 아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 김금희가 등단 11년 만에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내놓았다. 장편 <경애의 마음>과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 등을 통해 문단의 평가와 독자의 사랑을 함께 받아 온 그의 새 책은 예약판매를 포함해 발간 첫 주에 이미 1만3천여부가 팔렸다. 29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그의 소속사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금희는 “책의 내용을 공개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책 나왔으니 사 주세요’ 하는 것 같아 예약판매를 하기가 조금 미안했다”고 말했다.

등단 11년 만에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낸 소설가 김금희. “소설을 쓸 때에는 고려해야 할 지점들이 너무 많아서 나를 괴롭히며 쓰는데, 산문은 그냥 차근차근 나의 얘기를 하면 되니까 나를 덜 괴롭히게 된다”고 말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등단 뒤 오랫동안 쓴 원고가 모여서 내긴 했는데, 막상 책으로 내려니까 너무 긴장되더라구요. 소설을 통해서만 저를 만났던 이들이 내 일상과 직접적인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혹시 소설에서 얻었던 느낌과 감정을 잃어버렸다는 식의 반응은 없을까 걱정이 되었던 거죠. 막상 책을 내고 독자들 얘기를 들어 보니 그렇지는 않은 듯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책에는 엄마와 아빠, 조카 등 가족들, 40년 가까이 살았던 도시 인천과 아버지의 고향이자 자신의 출생지인 부산, 반려견과 고양이, 영화와 여행, 독자와의 만남과 낭독회 같은 작가 활동, 밴드 활동과 술자리 같은 일상이 두루 담겼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진행 중일 때 쓴 최근의 글에서 그는 “무엇보다 카페 작업을 못하게 돼서 문제”라고 밝혔는데, 29일 인터뷰에서는 “지난주부터 다시 집 근처 카페에 나가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방학이면 오래된 아파트에 틀어박혀 귤을 까먹으며 책을 읽고 글을 썼던 작가는 사랑하는 조카가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 오자 ‘안 돼, 작가가 되면 안 돼’라며 “다분히 자기 투사적인 반대를” 한다. 왜 그랬을까.

 

“힘드니까요. 작가는 글을 쓸 때만 작가가 아니고 일상을 살 때에도 작가여야 하거든요. 좀 예민하고, 여러 번 생각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어요. 건강하지 않은 직업인 거죠. 굳이 장려하고 싶진 않은 거예요. 일과 자기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 싶었던 거죠.”

 

책에는 “소설은 내게 나 자신과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가냘프고 투명한 ‘막’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했다”는 인상적인 문장이 나온다. 작가 김금희의 소설관을 담았다 할 이 문장에 관해 부연설명을 부탁했다.

등단 11년 만에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낸 소설가 김금희.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소설의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사건들은 사실 허상에 가까운 것들이고, 제가 쓰지만 제 의도에서 벗어나곤 하는 경험이 많거든요. 소설과 나 사이에는 다른 어떤 세계가 있어서 나는 그냥 그것을 소설로 옮긴 것에 불과하고, 그렇게 옮겨 놓은 것 또한 허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소설이라는 것이 현실에 완전히 일대일 대응하는 것이 아니고 작가에게도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그게 완전히 폐쇄된 게 아니라 세상을 담아 내고 작가인 저를 또한 담아 낸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에서 ‘투명한 ’이라고 적었어요.”

 

적어도 지금 시점까지 2020년 한국 문학의 가장 큰 사건은 이상문학상 사태라 해야 할 것이다. 1977년 제정된 뒤 처음으로 시상을 거르고 지난해 수상자인 윤이형 작가의 ‘활동 중단’으로까지 귀결된 이 사태는 부당한 계약 조항에 항의해 우수상 수상 거부 뜻을 밝힌 김금희의 에스엔에스 글에서부터 촉발되었다. 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문학사상의 사과와 계약 조항 정비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지만, 여진이 만만치 않았다.

 

“처음 트윗 글을 쓸 때에는 이걸 이슈화 시켜서 해결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어요. 다만 계약 조항에 이의를 제기하느라 출판사 분과 통화를 하는 동안 제가 매우 긴장했고, 통화가 끝난 뒤에는 제가 하는 문학이라는 작업에 대한 환멸감까지 몰려왔어요. 이 일에 대한 문제 제기를 더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작가 생활 하는 데 무릎이 꺾이는 듯한 느낌이겠다, 뭐라도 해야 내가 나를 구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에서 트윗 글을 올렸던 거예요.”

 

그는 “개인적으로는 무척 힘들었다. 경험하지 못한 정도의 연락을 받고, (문학사상 쪽의 주장에 대해) 매체를 통해 반박을 해야 해서 잠도 거의 못 자고 당연히 작업도 못 했다”며 “그렇지만 윤이형 작가님의 활동 중단 선언은 너무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었다. 내가 한 문제 제기가 이상문학상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게 한 작가를 잃을 만큼이었나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문학상 사태가 터진 뒤 2~3주가 지나도록 한국작가회의가 그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지 않는 걸 보고 그 조직을 탈퇴했다”며 “작가들이 자기 의견을 낼 창구로서 조직이 분명 필요한데, 작가회의가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조직을 만드는 게 꺼려지기도 하고 조직 자체에 대한 작가들의 거부감도 있어서 쉽지 않아 보인다”고도 했다.

소설가 김금희.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는 지금 <경애의 마음> 이후 2년여 만인 올 가을 탈고를 목표로 두 번째 장편을 쓰고 있다.“제주에서 잠시 유년을 보냈던 사람이 제주에서 나와 살다가 유년 시절 만났던 이들과 재회하면서 지금 자기가 놓여 있는 지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는 내용이에요. 일종의 자기 윤리를 찾아가는 주인공한테 제가 아직은 빠져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두 번째 장편도 그렇게 자기 윤리를 찾기 위해 유년과 마주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