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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거는 한겨레] 재판 보도 바꿔보자 / 이봉현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5. 6. 04:07

[말 거는 한겨레] 재판 보도 바꿔보자 / 이봉현

등록 :2020-05-05 17:26수정 :2020-05-06 02:38

 

이봉현 ㅣ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언론학 박사)

 

한겨레가 재판 과정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독자의 지적이 계속 들어온다. 입시비리·사모펀드 관련 의혹을 받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씨 재판 보도에 대한 불만이다. 지난달 3일 시민편집인실에 전화를 건 독자는 “재판이 진행되면서 조국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와는 다른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며 왜 한겨레에 재판 관련 기사가 부족하냐고 항의했다. 비판적인 독자들은 언론이 검찰 신문 위주로 보도하고, 변호인의 반대 신문에서 나온 내용은 외면한다고 말한다. 다른 언론이 그렇다고 한겨레도 따라 하냐고 질책한다.이들은 변호인 쪽 신문 내용도 전하는 1인 유튜브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에 난 기사를 열심히 챙겨 읽는 것 같다. 이런 기사를 읽어보면 법정 공방의 전말은 검찰의 공소장처럼 단순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검찰이 무리하게 꿰맞추기 수사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 때도 있다. 물론 조국 전 장관을 지지하는 팬심이 넘쳐 유리한 것만 주목하는 대목도 있다.지난 3월30일 열린 재판을 다룬 한겨레 기사에도 비판 댓글이 여럿 달렸다. 이날 재판에는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 전 총장은 검찰 신문에서 조 전 장관 쪽이 딸의 표창장 발급을 정경심 교수에게 위임했다고 보도자료를 내달라고 부탁해 불쾌했다고 증언했다. 한겨레는 이 발언을 온라인 뉴스화 했다. ‘조국·유시민·김두관 “표창장 위임 보도자료 써 달라 요청…불쾌했다”’가 제목이었다. 기사는 낮 12시30분 무렵부터 저녁 6시께까지 떠 있었는데 그사이 “검찰 측 증인의 일방적 주장만을 기사화하면 안 되지요. 기자의 본분을 잊은 처사입니다” 같은 댓글이 달렸다.여기까지였다면 ‘편파적’이란 지적을 계속 받았을 것이다. 오후 늦게 변호인 반대 신문이 시작되면서 기사의 내용과 제목이 크게 바뀐다. 최 전 총장이 조국 전 장관의 민정수석 취임을 축하한다며 양복을 선물하려 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밤 10시 무렵 최종적으로 수정된 신문과 온라인 기사는 ‘정경심 “최성해, 조국 민정수석에게 양복 선물 시도” 최성해 “기억 안 난다”’로 제목이 바뀌었다. 재판의 앞뒤로 균형을 맞춘 셈이지만, 어느 한 시점에 기사를 읽은 독자는 공정하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수사보다 재판 보도에 소홀한 것은 한국 언론의 약점이다. 여기에 편파성 시비까지 더해졌다. 한겨레도 이런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정 중인 ‘한겨레 범죄수사 및 재판 취재보도 시행세칙’은 “수사 때보다 재판 과정에서 사건의 전모가 규명될 가능성이 큰 만큼, 재판 과정과 결과를 적극적으로 취재 보도한다”고 밝히고 있다.문제는 ‘어떻게’이다. 사실 검찰 수사 중심의 법조 보도는 기자나 언론사의 편견 탓도 있지만, 재판 진행과 뉴스 제작의 프로세스 때문이기도 하다. 재판이 열리면 아침에 시작해 중요한 사건의 경우 밤늦도록 진행된다. 기자들은 보통 오전 9시 언저리에 그날 쓸 기사의 윤곽을 보고하고, 오후 5시 언저리에 일단 마감한다. 재판에 들어가도 도중에 자리를 떠서 기사를 써야 하는데, 들은 것이 검찰 신문뿐일 때는 공소장 내용에 부합하는 증언 위주로 기사가 나오게 된다. 물론 나중에 변호인 신문에서 나온 얘기도 중요하면 반영하지만 기사의 틀을 흔들기 쉽지 않아 뒤쪽에 붙일 때가 많다. 취재보도의 관행이 ‘왜곡’(bias) 을 낳는 예이다.관행은 바꾸기 어렵지만 영원하지도 않다. 최근 한겨레는 관련 부서를 중심으로 재판 보도를 어떻게 달리할지 고민하고 있다. 대개의 방향은 재판을 끝까지 보자는 것이다. 속보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당일이 안 되면 이튿날, 또는 주말에 몰아서라도 종합적인 정리를 해주자는 것이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부족한 취재인력을 온종일 법정에 투입해야 한다. 지루하기까지 한 공방을 독자가 즐겨 읽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도 시도해야 달라진다. 8일부터는 조국 전 장관 재판이 시작된다.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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