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종교의 위기를 앞당겼다
등록 :2020-05-07 18:12수정 :2020-05-07 21:19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으로 미사가 중단된 명동대성당. 일요일인 지난 3월1일의 모습이다. 김혜윤 기자
‘코로나 사태라는 중차대한 시국에 종교가 한 역할이 없다.’, ‘겨우 ‘신천지’를 혐오를 부추기기에 급급했다.’, ‘코로나는 종교의 위상 격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종교가 위계를 내려놓고, 낮아지지않으면 종교의 미래는 없다.’
가톨릭 평신도연구기관인 우리신학연구소가 격월간으로 발간하는 <가톨릭평론>이 5,6월호에 ‘코로나 이후, 종교의 길을 묻다’란 주제로 마련한 좌담회에서 나온 발언들은 종교도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크게 변화될 것이란 점이다. 지난 4월1일 모인 이 좌담회엔 <가톨릭평론> 박문수 편집위원장과 불교계의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 개신교의 이상철 한백교회 목사 겸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이 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함께 했다.먼저 이들은 사회적거리두기에 동참해 예배와 미사, 법회를 중단한 이후 종교기관의 경제적 압박이 심각함을 설명했다.
“신도들은 조용히 지내지만 종단에선 경제적 어려움이 생기고 있다. 작은 말사나 학교 등 기관에서는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다. 이미 사찰 직원인 종무원, 학교 등 기관의 청소노동자, 임시직 등을 내보내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유승무 교수)“
성당미사가 멈추면서 직원 월급을 주기조차 어려워져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다. 만약 이것이 뉴노멀(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기준)이 되면 굉장히 두려운 상황이다. 성당은 크게 지어놓고 유지비도 많이 들어가는데, 이걸 어떻게 관리할지 사제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박문수 위원장)“
사실 피치 못하게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가 크다. 아마 개신교회의 70~80%는 세 들어 있을거다. 주위 동료 목사들을 보면 경제적 어려움이 심각하다.”(이상철 목사)
지난 4월1일 <가톨릭평론> 좌담회.
또 상당기간 정규적인 예배,미사,법회에 참석하지않으면서, 그동안의 참석 관행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종교계의 우려의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성당에 가지 않아도 신자들끼리 서로 연락하던지 소모임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교회에서 일체의 모임을 하지 말라고 하니까 신자들은 그에 너무나 잘 따르면서 벌써 한 달 넘게 아무런 모임이 없다. 매일 미사를 드리고 지역에서 본당 활동과 모임으로 일상을 보내던 신자들이 많았는데, 원래 자기 영성이 있던 분들은 이 사태가 끝나면 금세 회복하겠지만 습관이나 관행처럼 참여하던 분들에게는 느슨해질 여지가 있다. 그동안 주일미사를 빠지면 대죄로 여겼지만. 지금은 벌써 두 달째 미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지내고 보면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론 마음이 중요하지 몸으로 참여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기도 하는 것 같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어떤 상황에서도 혼자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널리 알려 기존처럼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을 고집하는 방식이 변화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제대로 고민하지 않으면, 천주교는 급격하게 쇠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문수 위원장)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길어지면 신도들이 절에 오는 습관이나 관행이 없어질 수 있어 이걸 어떻게 동기부여해야 할지 스님들은 걱정이 큰데, 한편에서는 그냥 습관적으로나 맹목적으로 기도하는 관행이 바뀌면서 나름대로 목적의식을 갖고 동기부여가 달라지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유승무 교수)
“목사님 중에는 신자들이 매주 예배를 출석하는 관행이 깨질 거 같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예배를 중단한 교회에서는 신도들이 반발도 있다. 일례로 장충동 경동교회는 모범적으로 2월 말부터 예배를 중단했는데, 한국전쟁 때도 예배를 거르지 않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예배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것에 대해 일부 원로 교인들이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개신교회는 이전의 교회와 분명히 달라질 거 같다. 지난 2월말 개신교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1%가 주일예배 중단에 찬성했다.”(이상철 목사)
2달만에 예배가 재개된 4월26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종근 기자
좌담자들은 코로나사태가 종교계의 방향이 크게 전환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언론이나 시민들이 보통 생각하듯 개신교가 굉장히 무지하고 막무가내라는 이미지와 달리,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이들이 더 많다. 코로나 사태를 겪은 후 근본주의를 완전히 벗어나 포괄주의로 접어들지 않을까 예상한다. 작년에 한 조사에서 ‘개신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응답한 이들이 49% 였는데, 이는 1982년 조사에서 91%가 ‘개신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응답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전반적으로 한국 개신교인들이 포괄주의적 신앙 태도가 늘었는데, 아마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더 늘어나면서 한국 개신교가 새로운 차원으로 나가는 계기가 되지않을까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고 있다.”(이상철 목사)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불교도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종교가 한 역할이 없고, 내 삶에 왜 종교가 필요하냐는 정서도 팽배하면서 종교의 위상이 상당히 격하되리라 생각한다. 그로 인해 교세도 약화되고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게 우리가 건강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번잡한 의례나 맹목적인 기도에 대해 성찰이 생길 수도 있고, 종교 지도자들도 겸손해지는 변화가 생기리라고 기대한다.”(유승무 교수)
“종교의 민낯이 드러났다. 평소 천주교가 공적 역할이나 시민의식이 높은 편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데, 이번 사태에는 거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세월호 참사 때 생존자 아이들을 위해 트라우마를 줄이게 도와주는 심리지원단을 파견했는데,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가 갔지 종교인은 없었다. 이번에도 의사와 간호사가 필요했지, 종교인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걸 보면 종교가 과연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사람들이 질문하게 될거 같다. 이제부터라도 실천적 고민이 있어야한다. 신자들의 좋은 열망과 의지를 잘 모아낼 수 있는 긍정적인 메시지와 방향을 제시할 새롭게 구상하는 시기가 되어야하겠다.”(박문수 위원장)
두달만에 법회가 재개된 지난 4월23일 조계사 초하루법회 모습. 사진 백소아 기자
좌담자들은 ‘신천지 현상’에 대해 혐오감을 부추기기만 한데 대해 비판하고, “신천지는 전혀 다른 종교가 아니라 그동안 기성종교들이 약자들을 소홀히 대해서 빚어진 쌍생아”라고 지적하며, 종교가 변화해야할 시점으로 포스트코로나에 주목해야할 지점을 이렇게 보았다.
“그동안 하느님은 모든 곳에 계신다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성당 안에만 계신다고 느끼고 살았다. 이번에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서 혼자서 신앙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경험을 통해, 세상 안에서 하느님 없이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체득해야 할 필요성을 더 절감했을거다. 저는 그동안 신앙과 세속의 삶을 분리하지 않는 조화로운 신앙생활로 이끄는 과정으로 개인의 영성수련 등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이번 코로나로 사태를 겪으면서 이 문제를 풀어갈 계기를 추동했다고 생각한다.”(박문수 위원장)
“이번 코로나 사태나 최근 발생하는 전염병이 던지는 생태적 질문, 기후위기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어야겠다. 중세 때 페스트의 창궐 이후에 유럽 예술에서 ‘죽음의 무도’가 많이 등장하고, 도그마적인 구조가 붕괴하며 이성적인 시대를 앞당겼다. 이번 코로나 사태도 21세기 세계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종교가 이것에 대해 무엇을 말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가졌던 권력, 불평등, 위계적 제도를 내려놓으라는 메시지로 들어야할 거 같다.”(이상철 목사)
“사회가 개인화나 가족 중심에 매몰되어 자기 세계에 갇히면 공공세계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약해질 수 있다. 이럴 때 국가나 기업의 역할보다는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동안 부족했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더욱 실천적으로 접근해야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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