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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의 문학으로] 거리의 미학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5. 22. 07:11

[최재봉의 문학으로] 거리의 미학

등록 :2020-05-21 18:19수정 :2020-05-22 02:38

 

최재봉 ㅣ 책지성팀 선임기자

 

코로나가 불러올 변화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언택트’(비대면 접촉) 문화의 정착을 꼽는 이들이 많다. 악수와 포옹, 볼뽀뽀처럼 친밀감을 표현하는 접촉은 위험한 행위로 간주해 금기시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덕분에 많은 업무 역시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를 만지는 ‘인간적’ 관계를 향한 미련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모여 살아야 하는 사회적 동물인 까닭이다.물리적 거리두기가 생각보다 오래 이어지면서 가까운 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과 불만이 쌓여 간다. 가족이나 연인은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따금씩 어울리고 서로 부대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 광활한 시공간에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며 슬픔과 기쁨을 공유할 ‘동지’가 있다는 믿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을 근거로 우리는 자주 냉정하며 때론 적대적인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이렇듯 사람들 사이의 친밀한 접촉이 긴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적당한 거리 역시 인간관계에 필수적이라 하겠다. 심리학자와 인류학자 등 전문가들은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가 안전감을 높이고 개체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숨겨진 차원>이라는 책에서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넷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밀접한 거리(intimate distance), 개인적(personal) 거리, 사회적(social) 거리, 공적(public) 거리가 그것. 밀접한 거리란 50㎝ 미만으로 연인이나 가까운 친구 사이의 거리이고, 개인적 거리는 우호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120㎝ 이내의 거리이며, 사회적 거리란 회의처럼 육성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3m 남짓까지를, 공적 거리는 마이크를 사용해야 하는 연설에 적합한 거리로 대체로 3~4m 이상을 가리킨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고자 시행되고 있는 물리적 거리두기는 홀이 말하는 사회적 거리에 해당한다.이런 거리두기가 반드시 코로나19의 유행 같은 비상시에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배타적 영역을 중시하는 동물 세계에서 특히 그러하지만 인간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의 거리는 필요하다. 얼마 전 번역 출간된 <공간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도 지은이 발터 슈미트는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원치 않는 물리적 접촉이나 공격, 현재진행형인 위협이나 미래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라며 “인간은 다른 개체와의 거리가 충분히 유지될 때 안전감을 느끼며, 이는 동물 세계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적대적이거나 잠재적 위협 대상으로부터만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적당한 거리는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매개이자 촉진제이기도 한 것이어서,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는 거리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시인과 소설가는 쓴다.“불러도 서로 들리지 않는 멀찍한 거리에서 우리는 만난다. 가끔은 팽팽해지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하는 그 거리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가 타인이며 또한 이렇게 모두가 타인이 아니다.”(윤대녕, ‘신라의 푸른 길’ 중에서)“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손 뻗으면 닿을 듯, 그러나/ 닿지는 않고, 눈에 삼삼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그리움 만조로 출렁거리는,/ 간조 뒤에 오는 상봉의 길 개화처럼 열리는,”(이재무, ‘제부도’ 부분)윤대녕의 단편에서 팽팽해지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하는 거리의 탄력은 연인 사이를 비롯한 인간관계에 도움을 주는 긴장 요인으로 파악된다. 이재무의 시에서도 가까운 듯하면서 멀고 먼가 하면 생각보다 가까운 두 섬 사이의 거리는 사랑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 참조할 만한 모범으로 제시된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속으로 쳐들어온 것은 인간이 먼저 자연과의 거리를 침범해서 바이러스의 생존 근거를 빼앗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유력하다.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못지않게 자연에 대한 거리 역시 지켜야 함을 이번 팬데믹 사태는 알게 한다. 인간을 향해서든 자연을 향해서든, 거리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새길 일이다.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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