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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세상] 좋은 국회의 조건 / 서복경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5. 22. 06:27

[공감세상] 좋은 국회의 조건 / 서복경

등록 :2020-05-20 17:46수정 :2020-05-21 11:38

 

서복경 ㅣ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며칠 뒤면 민주화 이후 9번째 국회가 문을 연다. 모두가 21대 국회는 20대 국회보다 더 낫기를 바란다. 그런데 300명의 국회의원에게 ‘무조건 열심히 하라’고 한다고 해서 더 나은 국회가 될까? ‘멀쩡한 사람이 국회만 들어가면 이상해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조직의 속성을 날카롭게 간파한다. 우리 주변에도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데 제대로 안 돌아가는 조직이 있다. 들여다보면 그 조직의 규칙이나 문화가 잘못 설계된 경우가 많다. 개인의 능력이 조직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 아니라 위해가 되는 쪽으로 발휘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유권자들이 고민을 거듭해 뽑아놓은 우리 동네 1등 정치인들이다. 이들이 ‘이상해지지’ 않고 전체가 국회에 성과를 내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들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국회의원은 기간제 계약직 공직자다. 기간제 노동자들에게 계약의 갱신이 중요하듯이 우리의 대표자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들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4년 뒤 재선을 목표로 의정활동에 임한다. 혹자는 국회의원이 재선에 욕심을 갖지 않고 ‘딱 4년만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어 국회의원직에 미련이 없는 사람보다는 4년 뒤 재선이 절실한 국회의원이 많을수록 좋다. 재선이 절실할수록, 4년 뒤 다시 선택받기 위해 지금 이 순간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게 뭔지 하나라도 더 살피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선이 절실한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4년 뒤 선거권자의 선택을 받기 전에 ‘먼저’ 정당의 공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소속 정당의 공천 규칙을 염두에 두면서 4년 뒤 그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지금 의정활동의 우선순위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공천 규칙이 잘못되어 있거나, 있다고 해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정당의 당헌, 당규가 어떻게 되어 있든 지도부가 공천을 좌우한다면, 국회의원은 다음 선거를 지휘할 지도부가 누가 될 것인지를 가장 우선시하며 4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여론을 살피고 의정활동에 노력해야 할 시간에, 당내 유력인사들과 친분을 쌓고 자기랑 친한 유력인사가 다음번 당 지도부가 될 수 있도록 당내 정치에 에너지를 쏟으며 4년을 보낸다. 이런 정당이 많으면, 특히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들이 이런 정당이면 좋은 국회가 되기 어렵다.

 

또 정당의 공천 규칙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면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 우선순위는 왜곡된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의 큰 정당들은 법안 발의 건수를 공천 평가에 포함했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들은 당선되자마자 ‘더 많은 법안’을 내려고 최선을 다한다. 법안 발의 건수가 많다고 꼭 공천되는 건 아니지만, 평균 이하면 탈락 가능성은 커진다. ‘평균’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니 무조건 ‘더 많은 법안’을 내는 건 일종의 보험과 같다. 이런 국회의원들로 가득 찬 국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수가 거듭될수록 ‘평균’은 계속 높아진다. 국회에 접수되는 법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평균’을 채우기 위한 허수 법안의 비중도 늘어난다. 하나의 법안으로 내면 될 것을 2개, 3개로 쪼갠다. 당론이라면서 같은 당 의원 5명, 6명이 중복해서 법안을 낸다. 법안을 심사하는 위원회는 시급하고 중대한 사안을 다루어야 할 시간을 허수 법안들을 퉁치고 엮어 정리하느라 보낸다. 이러는 사이 국민들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사안들은 자꾸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개인의 합리성이 조직의 비합리적 결과로 나타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 현재 국회의 모습이다.

 

21대 국회를 앞둔 원내 정당들에 바란다. ‘법안 발의 건수를 다음 공천 평가에 반영하지 않겠다, 지금 있는 규칙으로 4년 뒤 총선을 치르겠다, 누가 지도부가 되든 꼭 지키겠다’고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공표부터 하시라. 그래야 국회의원의 능력이 국민을 대표하는 데 온전히 발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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