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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노무현을 기억하는 한 가지 방법 / 조형근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6. 1. 05:42

[세상읽기] 노무현을 기억하는 한 가지 방법 / 조형근

 

등록 :2020-05-31 16:11수정 :2020-06-01 02:37

조형근 ㅣ 사회학자

 

두 번째 콩밥 후 고향 집에서 무위도식하던 무렵, 주변에 끼친 폐가 너무 커서 부끄럽게 숨만 쉬며 지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묻는다. “취직할래?” “예?”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 사람 찾는다 카네. 누가 줄 놓는단다. 니 같으면 딱이라고.” 호적에 빨간 줄 가면 취직이 어렵던 시절이다. 게다가 두 줄. 의원 사무실이니 그게 외려 경력이었나 보다. 나는 스스로 너무 치욕스러워 무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깜냥도 못 됐고. 마음만 고맙게 받았다.그 우리 동네 의원이 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의 첫 임기 때였다. 물론 그는 이 일을 몰랐을 것이다. 가끔 상상한다. 그 제안에 응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하다. 2001년 어느 날의 술자리도 기억난다. 여당의 재집권이 회의적이던 시절이었다. “노무현이라면 될 텐데 후보 되기가 어렵겠다”는 내 말에 정치부 기자인 선배가 “노무현?” 하면서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주류’의 시각이었을 것이다.그에 대해서라면 수천만명이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으리라. 내게는 2002년 12월18일이 그렇다. 혼자서 종일 그의 영상을 수십번 돌려봤다. “오늘 밤이 지나면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납니다”로 시작해서 “이회창, 권영길 후보님 수고하셨습니다. 국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기호 2번 노무현입니다”로 끝나는 마지막 광고였다. 자꾸 눈물이 났다. 나는 그의 지지자가 아니었고, 내 지지 후보의 삶도 무척 훌륭했다. 그래도 그의 말과 삶에 가슴이 더 울렸다. 그런 이들이 많았다.그의 시대 전반과 후반은 초현실적으로 아득하게 대조적이다. 그의 당이 총선에 승리하고, 그도 탄핵소추를 넘어 당당하게 귀환한 2004년 봄에서 여름 무렵. 기대와 다짐이 절정이었다. 그의 첫 정치 행위는 김혁규 의원에 대한 총리 지명 시도였다. 한나라당 출신에 성공한 경영자형 정치인이라 논란이 커졌다. 이어서 그는 여당의 총선 핵심 공약인 공공주택 분양원가 공개가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를 밝혔다.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공약이었다.(3년 후 대법원이 공공주택은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고 김근태 의원이 서민의 삶과 직결된 공약을 함부로 바꿀 수 없으니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고 반발했다. 감히 대통령에게 대든다며 지지자들이 분노했다. 여당은 공약 대신 대통령의 뜻에 따랐다. 당도, 지지자도 분열됐다. 1기 내각의 개혁의 상징이던 이창동, 강금실 두 장관이 직업정치인과 검찰 관료로 교체됐다.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의 선거법 위반 체포동의안은 여당 의원 40여명의 가세로 부결됐다. 정치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자 개혁의 동력도 사그라들었다. 결정적 시기가 저물었다.그의 시대 후반부는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법, 언론관계법 등의 개혁정책들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 의료산업선진화특별위원회 설치와 원격의료 시범사업 같은 우회전 정책들이 뒤섞였다. 전자는 대개 좌초했고, 후자는 비교적 순항했다. 시위, 파업에 대한 강경 진압도 두드러졌다. 대통령이 책임감이 생겼다며 조중동이 칭찬했다.새삼스레 그를 비판하려는 뜻은 아니다. 지금이 여당의 총선 압승 직후라는 점에서 자연스레 그때가 떠올랐다. 복기하며 교훈 삼을 일이다. 과반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지지층이 확장된 만큼 정권 안에 서로 다른 지향들의 차이가 커진 탓이다. 그의 선택들이 그저 개인의 결정이었을까? 지지층, 집권층 내 다양한 세력들의 소망과 지향의 벡터가 교차한 결과였으리라. 큰 승리의 대가였다.지금은 어떨까? 역대 최대의 총선 승리에 코로나 시국까지 겹쳤다. 이제는 누적된 불평등 교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부터 이참에 온갖 규제 다 풀자는 입장까지, 폭넓게 확장된 지배블록 내부의 지향들이 몹시 울퉁불퉁하다. 2004년을 복기하건대 이 몇 달이 큰 방향 결정에 무척 중요할 것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의 기억으로 무슨 방향이든 무조건 끝까지 지지하겠다는 다짐들 많은 줄 잘 안다. 존중할 만한 신념이다. 지난 시기 돌이키며 지금이야말로 방향의 결정에 적극 참여해서 스스로 동력이 되겠다는 다짐들도 있겠다. 나는 이쪽에 마음이 간다. 어느 쪽이든 서로 적이 되면 어렵다며 글을 맺는다. 좋은 뜻이라고 해도 그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담은 글쓰기는 할 짓이 못 된다는 걸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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