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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본소득 도입 핵심은 증세다 / 김현동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6. 18. 05:39

[시론] 기본소득 도입 핵심은 증세다 / 김현동

등록 :2020-06-17 17:17수정 :2020-06-18 02:41

 

김현동 ㅣ 배재대 교수(조세법)

 

기본소득제의 몸값이 이렇게 치솟을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주식으로 치자면 지나친 급등을 잠시 진정시킬 서킷브레이커가 걸릴 정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본소득제는 고려할 가치도 없는 일부 진보 진영의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치부되었다. 코로나19로 시행된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작은 불씨가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인해 거센 불길로 바뀌어 정치권 전체로 번지고 있다. 대권을 노리는 잠룡들까지 나서 한마디씩 거들 정도로 차기 대선 의제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정치권 분위기는 대체로 도입을 긍정하는 편이나, 각론에서는 입장이 갈린다.기본소득제의 원래 외견은 매우 단순하다. 모든 사람에게 돈을 똑같이 나눠주자는 것이다.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나뉜다. 복지정책으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경제정책의 하나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전자는 모든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점에서 보편적 복지라는 것이고, 후자는 가처분소득을 늘려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딱 부러지게 어느 쪽이라 말할 수는 없고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진 것으로 봐야 한다.당연한 말이지만 기본소득제 시행에는 돈이 든다. 가령 모든 국민에게 매달 3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매달 대략 15조, 1년에 180조원이 필요하다. 올해 정부 본예산(512조원)에서 보건·복지·고용부문에 쓸 돈이 딱 그만큼이었다. 보건·복지·고용부문은 기초생활보장, 취약계층 지원, 국민연금, 보훈, 주택구입 및 전세자금 융자, 아동·보육, 노인, 보건의료, 건강보험 사업 등을 총망라한다. 여기서부터 온갖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한다.현재 예산규모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기본소득제 운용에 투입될 재원 180조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기존 지출에서 그만큼을 줄여야 한다. 어디를 손봐야 할까? 당장 기존 복지체계의 대대적인 개편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취약계층에게 지급될 돈이 개편 전보다 줄어들 수도 있다. 30만원 없이도 먹고사는 데 아무런 문제 없는 사람에게까지 나눠주려다 보니 정작 돈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는 종전보다 적게 지급되는 결과를 낳는다. 보편적 지급에서 선별적 지급(복지)을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선별적 지급이라는 형식을 띤 기본소득제는 기존 복지체계와 본질은 같다.결국 모든 사람에게 돈을 똑같이 나눠주는 기본소득제는 필연적으로 기존 복지체계의 개편과 더불어 증세를 수반한다. 증세로 늘어나는 재원 규모에 따라 지급될 금액도 달라진다. 일각에서 증세 없이도 기본소득제를 시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조세감면 축소 등을 드는데 말장난이다. 납세자 입장에서 변경된 세제로 낼 세금이 종전보다 늘어나면 모두 증세다. 금액도 충분하지 않다. 올해 국세감면액은 52조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는 원래 당연히 내야 할 세금인데 혜택을 준 것으로 보기 어려운 항목들도 부지기수 포함되어 있다. 한편, 기본소득이 경기 활성화를 가져와 종국적으로 세수를 증가시켜 필요재원도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될지, 세수증가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복지체계의 개편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사업이 지나치게 많고 자격요건도 다양하고 복잡해서 생긴 복지 사각지대나 부정수급 등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증세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모든 국민이 매의 눈으로 쳐다보는, 국가와 국민, 국민 간 갈등의 끝판왕이다. 설사 복지체계 개편안이 마련되더라도 결국 돈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기본소득제 시행을 위해서는 이렇듯 넘어야 할 거대한 두 장애물이 있다. 정치인끼리 둘러앉아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그런 사안이 아니다. 전 국민의 합의가 필요하다. 여론의 관심을 끌기 위한 얄팍한 정치 술수가 아니라면 지금부터 구체적인 도입방안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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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본소득 논의 본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