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석권하면서 이제는 글쓰고 창작하는 일에 일대 변화가 와야 한다는 기대를 품은 글을 썼던 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학가나 예술인들, 이제는 남의 예술 모방이나 남의 문화모방에서 벗어나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우리 것인 문화에 마음을 기울이라는 염원이 담긴 글이었습니다. ‘기생충’이 바로 그런 영화여서 그만한 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서 쓴 글이었습니다.
200년 전의 다산은 이미 그런 생각으로 글을 쓰고 창작을 했다는 증거까지 예시하기도 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다산의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는 내용을 소개하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걸핏하면 중국의 고사(故事)를 인용하는데 이것 또한 볼품없는 짓이다. 마땅히『삼국사기』『고려사』『국조보감』『동국여지승람』『징비록』『연려실기술』과 기타 우리나라의 다른 글 속에서 그 사실을 뽑아내고 그 지방을 고찰하여 시에 인용한 뒤라야 세상에서 명성을 얻을 수 있고, 후세에 전해질 작품을 지을 수 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고 말해, 우리 시, 우리 문학을 창작하라는 뜻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시로 그런 작품을 자세하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유득공(柳得恭:1749-1807)이 지은『십육국회고시』는 중국 사람들도 책으로 간행해서 읽었으니 이것을 보면 그 사실을 증험할 수 있다.”(같은 책)라고 말하여, 그렇게 콧대 높던 중국인들이 조선인의 시집을 간행하여 즐겨 읽었다는 내용입니다. 미국만의 아카데미상으로 유명한 상을 한국의 토종작품에 작품상까지 주는 사실과 어쩌면 그렇게도 흡사할 수 있을까요. 200년 전의 다산의 지혜에 우리는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육국회고시』는 초판의 명칭인데, 뒤에는 『이십일도회고시』로 바뀐 시집입니다. 유득공은 정조 때 4검서관의 한 사람이자 당대의 문학가로 『발해고』라는 저서로도 유명한데, 7언절구 43수로 단군의 왕검성에서 고려의 송도에 이르기까지 21개 왕도를 주제로 읊은 작품이어서 21도회고시라고 부릅니다. 이 작품은 유득공의 참신한 역사의식이 강렬한 시의식으로 변용되면서 형상화한 것으로 내 것과 나를 찾으려고 하는 주제의식을 노래한 시라 여겨집니다. 우리의 옛날 도읍지를 찾아서 회고시를 지은 것은 주체적인 기상을 드높여 민족적 자각을 해야 할 시기에 숭명주의에 매몰된 당시의 문학풍토를 비판한 점을 높이 샀던 사람이 다산이었습니다.
봉준호감독보다 200년 전에 유득공 같은 탁월한 조선의 문학가가 있었고, 또 그의 진면목을 통째로 알아준 다산 같은 뛰어난 문학가가 있었지만,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내것 우리 것은 훌륭하게 여기지 않는 악습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요즘 코로나19로 ‘K방역’이라는 세계적인 방역체계로 한국의 모든 위상이 한껏 높아진 오늘, 이제는 남의 학문, 예술, 문화의 모방에서 벗어나 우리의 풍속, 우리의 민속, 우리의 역사, 우리 민족정신도 결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유득공, 정약용, 봉준호 등의 위대한 우리 얼 주창자들에게 무한한 찬사를 보내면서 자기 비하, 외세의존, 식민문화의 비굴성에서 벗어나는 미래를 열어갑시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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