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성팀장의 책거리] 역사의 증인, 시민의 여행
등록 :2020-05-15 06:00수정 :2020-05-15 10:02
5·18 40돌을 맞아 나온 여러권의 책을 봅니다.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와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중심에 놓은 역사기행입니다. 좋은 문장에 깊은 생각을 담은 책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경건해집니다.
< 호텔리어의 오월 노래>는 광주관광호텔에서 본 5·18을 담았습니다. 도청 앞 광장과 금남로가 한눈에 들어오는 호텔에서 일한 홍성표씨는 그곳에서 열흘 동안 겪은 일을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그가 일지와 메모를 제공하고 안길정씨가 기획·집필한 이 책은 발포 명령이 없었다는 발뺌과 부인을 되풀이한 <전두환 회고록>(2017)의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홍성표씨는 5월27일 전일빌딩을 향한 헬기 사격의 유일한 목격자인데, 높은 호텔 건물에 숨었기에 군중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었죠. 그밖에도 그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1박2일 광주 체류와 행적까지 복원하고 있습니다. 철통같은 경호와 권력자의 술판, 정점에 선 차지철 경호실장의 거침없는 행동까지 손에 잡힐 듯 생동감이 넘칩니다. 40년 동안 수없이 머릿속으로 복기했을 그날의 기억들일 테니까요. 은퇴한 그는 작년부터 해설사로 일하며 외지인들에게 광주·전남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수전 손택은 인류학자를 “현장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만, ‘시민’ 역시 마찬가지로 역사의 증인이 됩니다. 32년 전 오늘, 1988년 5월15일 <한겨레>는 기성 언론에서 해직된 기자들과 새로이 역사의 증인이 되려는 사람들까지 힘을 합쳐 첫 신문을 발행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미디어 플랫폼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시민을 실은 ‘시대의 열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습니다. 때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여행, 어떻게 해야 다음 역으로 잘 넘어갈 수 있을까요? 고민 속에도 역사 여행은 계속됩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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