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반문재인’ 앞장섰던 박지원, 문재인 정부에 중용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7. 4. 07:09

‘반문재인’ 앞장섰던 박지원, 문재인 정부에 중용

등록 :2020-07-03 21:18수정 :2020-07-04 00:16

 

한때 ‘호남 홀대론’ ‘친문패권주의’ 불 지폈지만
‘햇볕론’ 계승 의지, 풍부한 대북 경험 평가받아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박 “충성을 다할 것”

 

3일 신임 국정원장 후보자에 지명된 박지원 전 민생당 국회의원이 여의도의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3일 청와대의 외교·안보 인선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국정원장 인사였다. 한때 문재인 대통령을 매일 아침 공개적으로 비난해 ‘문모닝’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야박하게 굴었던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이 중용된 것은 모두의 허를 찌르는 일이었다. 문 대통령과 박 후보자 간 ‘구원’의 역사는 참여정부 때인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의 몰표를 받아 집권했지만 김대중 정권 시절 벌어진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을 수용했고, 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 후보자는 검찰수사에 휘말려 옥살이를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2·8 전당대회에서 최고점을 찍었다. ‘대세론’을 앞세운 문 대통령과 ‘당권-대권 분리론’을 주장하는 박 후보자가 대표직을 놓고 격돌했다. 막말과 네거티브 공세가 난무한 가운데, 박 후보자는 ‘참여정부 호남 홀대론’ ‘친문 패권주의’를 내세워 문 대통령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3.5%포인트 아슬아슬한 차이로 문 대통령이 승리했지만 이미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이후였다.

 

이때 문 대통령에게 각인된 ‘호남 트라우마’는 좀처럼 털어내기 어려운 상처였다. 박 후보자가 불 지핀 ‘호남 홀대론’은 반문(재인)정서를 타고 일파만파 번지며 새정치민주연합을 분열시켰다. 박 후보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만든 국민의당에 입당해 2016년 총선에서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총선 직전 광주를 찾아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며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으나 호남은 총 28석 중 25석을 국민의당에 몰아주며 좌절감을 안겼다.

 

2017년 대선 당시 국민의당 원내대표였던 박 후보자는 오전 공개회의 때마다 문재인 때리기에 앞장섰으나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우호적 태도로 급선회했다. 취임 첫날인 2017년 5월10일 국회를 찾은 문 대통령에게 “오늘은 굿모닝입니다”라며 ‘10년만의 정권교체’를 축하한 일화는 유명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론’을 계승한 그는 험난한 남북관계의 격랑 속에서도 한반도 평화와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잃지 않은 문 대통령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국정원장 내정 소식이 알려진 이날 박 후보자는 문 대통령에게 ‘충성’을 약속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역사와 대한민국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님을 위해 애국심을 가지고 충성을 다 하겠다”며 “앞으로 내 입에서는 정치의 ‘정’(政)자도 올리지도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며 국정원 개혁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오랜 악연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박 후보자를 기용한 것은 험악해진 남북관계 돌파를 위한 강한 의지와 절박함의 표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 후보자는 20년 전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튿날인 지난달 17일 청와대로 외교·안보 원로들을 불러 조언을 들은 자리에도 박 후보자를 초대한 바 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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