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수학자·사형수·통일운동가’ 분단 없는 세상으로 떠나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7. 9. 06:06

‘수학자·사형수·통일운동가’ 분단 없는 세상으로 떠나다

등록 :2020-07-08 19:07수정 :2020-07-09 02:43

 

안재구 전 경북대 교수 노환 별세
1980년 ‘남민전 주도’ 사형 선고에
전세계 수학자 수백명 서명해 ‘구명’
94년 ‘구국전위 사건’ 아들과 옥고
2017년 국보법 위반혐의 또 ‘고초’

 

2013년 11월 서강대에서 열린 팔순기념 회고록 <끝나지 않은 길>(1·2권) 출간기념회 때 안재구(오른쪽) 선생이 둘째 아들 영민(왼쪽)씨와 무대에 올라 인삿말을 하고 있다. 사진 <민족21> 제공

 

‘남민전 사형수’ 통일운동가이자 수학자인 안재구 선생이 8일 오전 4시30분께 경기 군포의 한 요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7.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조부(안병희) 영향으로 1947년 밀양중 1학년 때 노동절 시위에 참가했다가 제적됐고, 남로당 밀양군당 농민위원회 연락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52년 경북대 사대 수학교육과에 입학한 고인은 1970년에 모교 수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고인은 1960~70년대 미분기하학과 응용해석학 분야에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일부는 미국의 수학 학술지()에 실릴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은사 박정기 전 경북대 총장(1915∼2000)의 뒤를 이어 <경북수학저널>을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고인은 1976년에 ‘국가관 미확립’과 ‘학생운동 지지’ 등을 이유로 경북대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경북대 제자인 여정남(1944∼75)이 1975년 4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법살인을 당한 것을 계기로 그는 76년 2월 무장혁명을 목표로 한 지하조직이었던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결성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1979년 10월에 체포돼 이듬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해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 참석한 수학자 수백명이 연대 서명서를 한국 정부에 보낸 덕분에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88년 가석방됐다. ‘남민전 사건’ 주범으로 꼽혀 함께 사형을 받았던 친구 이재문(전 <대구일보> 기자)은 81년 옥중 병사했고, 신향식은 82년 사형을 당했다.

1980년 ‘남민전 사건’ 공판정에 출두한 안재구 선생. 사진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고인은 1994년 6월 ‘김일성 주석 조문 파동’에 이은 공안정국 때 이른바 ‘구국전위 사건’으로 경북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차남 안영민(전 <민족21> 사장)씨와 함께 또다시 구속돼 ‘부자 양심수’로 기록되기도 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1999년 8·15 특사로 풀려났다. 지난 2013년 그는 통일연대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등의 동향을 수집해 대북보고문을 정리했다는 등의 혐의로 기소당해 2017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 유죄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됐던 아들 영민씨는 “아버지가 북한에 남쪽 단체 동향을 보고할 이유가 없었다”며 무리한 수사였다고 비판했다. 고인은 딸 소영(역사저술가)씨와 주고 받은 옥중편지를 묶은 서간집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1989), 아들 영민씨와 함께 쓴 책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2003)를 내기도 했다. <쉽고 재미있는 수학세계>(1992),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1997), <수학문화사>(2000)에 이어 2013년 회고록 <끝나지 않은 길>을 펴내기도 했다.남편에 이어 아들의 옥바라지를 하며 민가협 공동의장으로 활동했던 부인 장수향씨는 2009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아들 안세민·영민씨와 딸 소정·소영씨, 손자 인산(프로야구 NC다이노스 선수)씨 등이 있다. 빈소인 서울대병원에서 9일 오후 7시30분 추도식을 하고, 발인은 10일 오전 7시 예정이다. (02)2072-2091.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