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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생산 그 자체가 전염병이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7. 25. 07:40

“자본주의적 생산 그 자체가 전염병이다”

등록 :2020-07-24 05:01수정 :2020-07-24 21:21

 

진화생물학자 롭 월러스의 감염병과 거대 농축산업 연결고리 분석
사람·동물·생태계·사회경제학 맥락까지 살피는 ‘구조적 원헬스’ 제안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거대 농축산업과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지정학

롭 월러스 지음, 구정은·이지선 옮김/너머북스·2만4000원

 

“질병을 넘어서는 시각을 가져야 질병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팬데믹 전문가인 진화생물학자 롭 월러스의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은 감염병 방역과 예방을 넘어서 이제는 더욱 근본적이고 통합적인 산업과 환경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2016년 미국에서 나온 이 책의 원제는 <거대 농장이 거대 독감을 낳는다>(Big Farms Make Big Flu)로, 한국어판에는 지난 3월 미국의 진보적 사회평론지 <먼슬리 리뷰>에 실린 코로나19 관련 기고 글도 수록했다. 여기서 그는 야생 조류의 이동이나 야생동물 거래보다 글로벌화된 경제 자체가 팬데믹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지은이는 조류독감 등 감염병 확산을 촉진한 주범으로 거대 농축산업 ‘애그리비즈니스’(Agribusiness, 농업과 비즈니스의 합성어)의 문제를 파헤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세계 경제체제의 비판서로 분류할 수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나온 책이지만 현재 팬데믹 상황까지 비판적으로 보도록 돕는다.

 

거대 농축산기업이 파괴한 생태계

 

커다란 농장을 짓기 위해 울창한 숲을 베고 야생 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하는 것 자체부터가 위험천만한 일이다. 벌목으로 삼림 생태계에 가로막혀 있던 병원균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개발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낮아지면서 새로운 질병의 발생 조건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유전적 재조합이 일어나 면역력이 약해진 개체들은 병원균에 쉽게 감염되고 농장의 노동자들은 위험에 빠진다. 한 지역의 농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거대 농축산기업이 만든 유통망을 따라 전 세계로 감염병이 퍼지게 된다. 고병원성 인플루엔자의 기원을 살피며, 지은이는 인플루엔자의 독성과 다양성이 ‘축산혁명’에서 비롯됐다는 가설을 세우고 탐구한다. 인간은 철새가 바이러스를 실어나르며 대륙 간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고 탓하지만 사실은 그것만이 원인도 아니었다. 미국 바이러스학자 일라리아 카푸아와 데니스 알렉산더의 분석을 보면, 야생 조류들에서는 인체 감염 위험이 높은 고병원성 인플루엔자가 나타난 사례가 없었고 대신 다양한 저병원성 인플루엔자의 유형이 나타났다. 이것이 산업적으로 사육된 가금류에게 옮겨졌을 때만 질병을 일으키는 병독성이 커진 것이다. 산업형 단종생산으로 거의 같은 유전형질의 가축이 많아지면서 ‘면역 방화벽’이 사라진 것도 큰 문제다. 게다가 일정 무게에 다다르면 도축을 하는 까닭에 병에 취약한 어린 개체들이 지속적으로 병원균의 먹잇감이 된다. 인플루엔자는 점점 더 어린 동물을 감염시켜 건강한 면역을 가진 숙주 개체군에 대항하도록 성장한다. 이 책이 밝힌 팬데믹의 중요한 고리 가운데 하나가 거대 농축산기업과 정부 고위층의 커넥션이다. “인플루엔자의 병리학은 식품산업의 정치경제학과 엮여 있는 것”이라며 지은이는 미국 축산업체 스미스필드와 필그림스프라이드, 곡물회사 카길 등 초국적 기업의 문제를 거론한다. 2009년 세계를 공황 상태에 빠뜨린 H1N1 바이러스의 감염 여부를 추적하고 나선 멕시코 정부는 스미스필드의 베라크루스 농장에서 회사쪽이 고른 돼지 30마리의 검체만 조사하면서 기업에 면죄부를 안겼다. “미국의 경우 (돼지와 가금류의 바이러스를 규명할) 탁상공론 이상의 시스템을 찾아볼 수 없다.” 그밖에도 대규모 농업이나 축산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생물다양성의 붕괴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지역에 조류의 다양성이 적으면 인수공통 전염병인 웨스트나일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조류들이 맹위를 떨친다. 소형 포유류의 종 다양성이 줄면 한타바이러스의 유행이 늘고 결국 인간의 감염도 증가한다. 생물다양성의 부족으로 생태회복력이 떨어지면 여러 생명체의 면역력도 떨어진다. 지은이는 여러 종들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분리된 채 서식할 때에는 생태적으로 덜 연결되어 있지만 연결성이 높아지면 다양성과 감염증을 이어주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게 된다고 말한다. “자연을 상품으로 바꾸고 질병에 대한 생태학적 회복력을 떨어뜨리고 가축과 병원균이 세계를 이동하게 만드는 것은 자본에 의한 생산주기다. (…) 자본주의적 생산은 그 안에 전염병을 품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전염병이다.”

2006년 3월 이스라엘의 한 마을에서 칠면조의 사체를 처리하는 방역단들.너머북스 제공

 

원헬스에서 구조적 원헬스로

 

생물다양성이 높은 곳에서는 바이러스 침공을 막아주는 프로바이오틱스라는 미생물이 풍부하다. 키싱 연구팀의 2009년 미생물 연구 보고서를 보면, 미생물군의 다양성이 높은 환경에서 자란 새끼돼지들은 훨씬 건강했다. 무균질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란 새끼돼지들보다 병원성 미생물의 장내 침입에 저항성이 컸던 것이다. 결국, 토양 오염을 막고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소규모 생태적 농업의 활성화만이 지구 생명체의 면역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된다는 얘기다. 현대 세계를 위협하는 팬데믹을 이해하려면 사회 구조의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사람, 동물, 생태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원헬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경제학 맥락까지 살펴보는 ‘구조적 원헬스’ 개념을 꺼내는 까닭이다. “병원균이 새로운 숙주를 찾아내는 것은 야생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경제적 모델과 관련 있”고, “이전에 감염시키지 못했던 종에게로 병원균이 점프하거나 내성을 진화시킨 병원균이 출현하는 것은 집중 사육이나 가축 항생제 투여 관행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마침내 도착하는 결론은 ‘식량 생산의 근본적 변화’다. 지난 초봄 독일의 반자본주의 월간지 <마르크스21>과 한 인터뷰에서 월러스는 “농업을 (자본에) 얽매이지 않게 하고 공공 부문을 강화하면 환경 파괴와 통제 불가능한 전염병을 방지할 수 있다”며 “경작지 수준과 지역 수준 모두에서 생물종 다양성을 늘리고 전략적으로 야생 상태를 재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그는 “식량 공급체계를 사회화해야 한다”며 “환경과 농민을 보호할 생태적 농법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코로나 19,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 책갈피, 2020) 단순히 백신 개발로 팬데믹을 잠재우는 일시적 방법이 아닌 생활양식의 근간을 바꾸는 장기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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