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박원순 사태’ 속 남인순의 눈물이 말하는 것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7. 30. 05:16

‘박원순 사태’ 속 남인순의 눈물이 말하는 것들

등록 :2020-07-29 16:40수정 :2020-07-29 16:43

 

정치BAR_이지혜의 지혜로운 국회생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폭력 의혹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지 18일만인 지난 27일,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공개사과를 했습니다. 남 최고위원은 박홍근, 기동민 의원 등을 비롯해 민주당 내 대표적인 ‘박원순의 동지’입니다. 동시에 그는 평생을 여성 운동에 투신해 온 여성계의 대모 ‘남윤인순’이기도 합니다. 남 최고위원이 ‘박원순계’ ‘여성운동가’ ‘민주당 지도부’라는 복합적인 위치에 서있는 만큼 오랜 침묵을 깨고 나온 남 최고위원의 사과를 바라보는 주변 시선도 무척이나 복합적입니다.

 

_______

18일간의 침묵

 

남 최고위원에게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은 여성운동가로 이번 사태에 어떤 역할을 했냐는 겁니다. 남 최고위원이 여성 운동 경력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진출했고 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는 만큼 피해자의 아픔을 대변할 책임이 있다는 의견입니다. 당 안팎에서 피해자를 향해 쏟아내던 2차 가해를 가만히 보고만 있던 남 최고위원에게 민주당의 젊은 보좌진들은 섭섭함을 드러냅니다. 아쉬움을 넘어 날선 비판도 나옵니다. “다른 사람들 모두 피해자에게 손가락질해도 민주당에서 그를 보호해야 할 마지막 보루여야 하는 사람이 남인순 아니냐” “박 시장이 민주당 소속이고 당 지도부와 인연이 깊다는 이유로 피해자 중심주의에 서지 못할 때 남 최고위원은 아무말 없이 무력한 모습이었다” “국회에는 그냥 여성 정치인이 필요한 게 아니라 용감한 여성 정치인이 필요하다” 사실 남 최고위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출신인 정춘숙 의원,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진선미 의원 등도 이런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렵습니다. 여성계 출신 정치인이 비례대표를 넘어 지역구에 안착하려면 당과 지역구 주민 눈치를 많이 보게 되는 것이 현실이기는 합니다. ‘남성 중심적 정치판에서 여성 의원이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지 않냐’고 ‘윗세대’는 해명하지만, 젊은 세대의 생각은 많이 다릅니다.

 

_______

남인순 뒤에 숨은 남성들

 

남 최고위원을 비롯해 여성 의원들의 잘못만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목소리도 꽤 큽니다. 그동안 민주당 지도부는 젠더 관련 이슈를 모두 남 최고위원에게 떠맡겨왔습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남인순을 비롯해 여성계 출신 의원들을 죽 세워놓고 젠더 이슈는 다 ‘커버’하는 척 해왔던 측면이 있다”며 “책임을 물을 거라면 당 전체에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근 ‘피해호소인’ 호칭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도 한 남성 지도부 의원은 “남 최고위원이 ‘피해호소인’으로 정리하자고 해서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미처 생각을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는 남 최고위원의 전문성을 신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결국 남성 의원들에게 이 문제가 자기 일이 아닌 ‘남인순이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젠더 이슈가 여성 의원들만의 책임으로 좁혀져 왔을 당내 분위기가 짐작됩니다. 오히려, 남 최고위원이 박 전 시장과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점이 고려됐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박 전 시장과의 오랜 인연 때문에 개인적으로 받았을 큰 충격을 감안한다면, 남 최고위원이 젠더 이슈 전문가이지만 오히려 이번 사안에선 ‘제척’ 됐어야 했다는 얘기입니다.

 

_______

“혼자 힘으론 안된다”

 

지난 27일 남 최고위원은 사과와 함께 ‘당 대표 몫 최고위원 2명’을 여성으로 지명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여성 최고위원이 아무 역할도 못한 상황에 힘 빠지는 해결책”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하지만 여성운동에 몸담아온 한 민주당 관계자는 “여성 최고위원을 늘려달라는 요구는 어쩌면 그동안 혼자서 고군분투했던 남인순의 ‘마지막 절규’인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이날 남 최고위원은 “여성 최고위원으로서 지도부였으나 당 어젠다에서 젠더 이슈를 우선 순위로 이끌어가는 데 많은 장애와 어려움이 있어왔다”고 털어놨습니다. 젠더폭력 상담신고센터 설치 규정을 만들고도 전담 인력을 보장받지 못했던 일화나 지난 지방선거에서 성폭력 가해자(가해 지목인)를 공천 배제하고도 이들이 피해자를 무고로 고소하는 것을 막지 못했던 일도 공개했고요. 당 지도부로서 남 최고위원이 직면했을 한계는 비단 한두 가지 사례로 요약되지 않을 겁니다.남 최고위원의 사과와 호소는 제아무리 여성운동의 대모여도 혼자 힘으로 당 지도부의 성인지 감수성을 끌어올리기는 역부족이었다는 솔직한 고백입니다. 이제는 여성 정치인의 ‘상징성’만 이용하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습니다. 진정한 성 평등을 불러오기 위한 정치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는 남인순이 아닌 민주당이 답해야 할 것입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연재이지혜의 지혜로운 국회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