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서울 말고] 오죽 사람이 ‘기러웠으면’ / 박주희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8. 3. 03:44

[서울 말고] 오죽 사람이 ‘기러웠으면’ / 박주희

등록 :2020-08-02 18:00수정 :2020-08-03 02:38

 

박주희 ㅣ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장학금 100만원, 해외 어학연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덤! 이주해 오는 가족에게는 살 집을 공짜로 빌려드립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농사지을 논과 밭, 농기계까지 공짜로 빌려드립니다. 농사를 지어본 적 없다구요? 걱정 마세요. 농사기술도 가르쳐드립니다.”

 

최근 언론에 소개된 경남 남해의 한 마을이 내놓은 ‘귀농 가구, 학생 유치 공약’이다. 180명 남짓 주민들 가운데 65살 이상이 절반을 넘고, 20대는 딱 한 명, 열 살 아래는 아예 없다. 마을의 집 열 채 가운데 한 채꼴로 빈집이다. 인근 초등학교는 지난해 31명이던 전교생이 올해 22명으로 줄었다. 마을도 학교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지역 전체가 팔을 걷어붙였다. 남해군과 교육청이 빈집 24채를 고쳐서 공짜로 빌려주기로 했다. 농협은 논과 밭, 농기계 무료 임대권을 준다. 지역 특산물인 마늘과 시금치 키우는 법도 가르쳐주겠단다. 큰 선물 보따리를 준비해두고 우리 마을로 이사 오라고 두 팔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오죽 사람이 ‘기러웠으면’ 이렇게까지 할까.(경상도에선 ‘그립다’, ‘부족하다’는 뜻으로 ‘기럽다’를 쓴다.) 이런 현실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날마다 기록을 갈아치우는 서울 집값과 극명한 대비를 이뤄 더 딱하다.“지방분권과 국가 균형발전 실현을 위한 행정수도 이전은 시대적 과제” “행정수도 이전은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의 시금석” “고르게 잘사는 나라의 가치를 실현할 때”….며칠 사이 여권에서 앞다퉈 내놓은 말들을 곱씹다 보니 진심으로 궁금하다.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 이처럼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를 왜 여태껏 미뤄두고 있었는지. 느닷없는 추진에 야당으로부터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가리려는 국면전환용, 여론무마용 꼼수라고 비판받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수도 이전이든 완성이든 이 논의를 환영한다. 일부의 주장처럼 스물세번째 부동산 대책이라도 좋다. 대선 전략으로 꺼내든 카드라도 괜찮다. 어떤 정치적 셈법에서 시작됐든, 행정수도 이전은 국토의 고른 발전으로 가는 디딤돌로 여겨져 불씨를 살려낸 것만으로도 우선 반갑다.‘구석구석 고르게 잘살아야 한다’는 당위를 부정하는 이들은 이번에도 딴지를 걸고 나선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먼저 서울시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단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공약으로 내고 시민들의 판단을 받으라고 어깃장을 놓는다.여론은 행정수도 이전에 힘을 싣는다. 최근 발표된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한 응답자가 절반을 넘거나 절반 가까이 나온다. “행정수도 이전은 수도권 집값 안정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데는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부동산 문제를 떠나 국토의 고른 발전이라는 더 큰 명분에 공감하는 흐름으로 읽힌다.정부와 여당에 비판적인 대구·경북 사람들도 “그래, 제대로 좀 해보라”며 은근히 기대를 드러낸다. 지역 언론도 정부·여당을 향한 펜 끝을 덜 벼리고 지켜보는 중이다. 대구시장은 “꼼수가 묘수가 될 수 있다”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을 대구로 옮겨와 사법수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권역별 발전 방향을 놓고 저마다 상상력을 발휘한 아이디어가 잇따른다. 모처럼 긍정적으로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중이다.집값은 반드시 잡는다는 말을 믿고 기다린 시민들은 ‘부동산 바보’가 됐다. 그래도 고르게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믿고 또 지지한다. 어렵게 품은 희망을 다시 바보로 만들 수 없다. 진정성을 확인시키려면 이미 예정된 일부터 속도감 있게 해나가면 된다. 당장 사람이 ‘기러운’ 지역에서는 그 첫걸음으로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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