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23년 향판에 보안법 위반 1호 판사, 실형 선고했던 대법관 뒤 잇는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8. 11. 03:02

23년 향판에 보안법 위반 1호 판사, 실형 선고했던 대법관 뒤 잇는다

등록 :2020-08-10 20:26수정 :2020-08-11 02:44

 

대법관 후보에 이흥구 판사 제청

85년 서울대민추위 ‘깃발사건’ 연루
1심서 징역 3년, 항소심 집행유예
당시 1심 판사가 퇴임하는 권순일

보도연맹 사건 첫 재심 결정 등
진보색 확연…‘우리법연구회’ 활동
30년 법관 대부분 지역에서 생활
법조 “대법원장 신망…예견된 파격”

 

이흥구 대법관 후보자. 대법원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김명수 대법원장이 권순일 대법관의 후임으로 이흥구 부산고법 부장판사를 임명제청한 것은 법원 안에서도 파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후보자가 1985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구속돼 유죄를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국가보안법 위반 1호 판사’이기 때문이다.

 

■ ‘보안법 위반’ 첫 사시 합격, 첫 판사 이 후보자는 서울대 공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5년 10월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에 연루됐다. 당시 정세 분석과 학생운동의 노선을 정리한 유인물이 학원가에 배포됐고 이 유인물의 이름을 따 일명 ‘깃발 사건’으로 불린다. 서울대 법대 학생회 사회부장이었던 이 후보자 등 26명이 경찰에 구속됐다. 구속 직후엔 학교에서 제적됐고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1987년 6·29선언에 따른 특별사면으로 그해 2학기에 복학한 그는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보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운동권 학생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건 처음이었다. 2005년 경찰청 과거사위원회는 ‘깃발 사건’이 “관련자들을 좌경용공분자로 몰아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자 국가안전기획부·검찰·보안사령부가 수사 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가 ‘용공 이적단체’라는 누명을 벗은 것이다. 구속된 이 후보자에게 보안법 위반죄를 인정해 실형을 선고한 1심 판사가 곧 퇴임할 권순일 대법관이다. 두 사람의 묘한 인연도 화제다.

 

■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 1993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로 임용된 이 후보자는 1995년 서울지법으로 발령받았고 김일성 전기 판매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해 안기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1997년부터 부산 지역 법관으로 내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다. 창원지법 마산지원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군사재판을 거쳐 목숨을 잃은 보도연맹 사건 유족들이 청구한 재심을 받아들였다. 보도연맹 관련 사건 첫 재심이었다.이 후보자는 우리법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냈던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몸담기도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는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다. 조 전 장관은 자신의 책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에서 이 후보자를 놓고 “법대 동기로 잘 어울렸고 정의감이 남달리 투철했다”고 평가했다. 재경 법원의 한 판사는 “온화한 성품으로 지역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성실하게 일해오신 법관이라고 들었다. 김 대법원장이 가장 믿을 수 있는 분을 제청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이 후보자는 김 대법원장이 제청한 8번째 대법관 후보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는 오랜 사법개혁 과제이지만 김 대법원장은 민변 회장 출신 재야 변호사(김선수)와 기수를 낮춘 개혁적 소장판사(김상환)를 제외하고는 기존의 관행대로 이른바 ‘정통법관’을 대법관으로 제청해왔다. 대법관 임명을 위해서는 국회 인준이 필요했기에 김 대법원장으로서는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던 셈인데,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을 확보하면서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 국회 동의에 대한 부담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보안법 위반 1호 판사’라는 상징성 탓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색깔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이 후보자와 근무한 인연이 있는 한 고위법관은 “정치적인 관점에서의 진영논리가 아니라, 소수자 보호나 인권 보장을 위한 감수성을 갖추고 지역 법관으로서 길을 걸어온 점이 평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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