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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소통왕’ 루스벨트와 문 대통령의 꿈 / 손원제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8. 28. 03:39

[유레카] ‘소통왕’ 루스벨트와 문 대통령의 꿈 / 손원제

등록 :2020-08-26 16:25수정 :2020-08-27 02:40

 

‘998’.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2년(1933~45) 대통령 재임기간 연 기자회견 횟수다. 주 1.6회꼴.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질문도 자유로웠다. 그 이전 후버, 쿨리지, 하딩 대통령 때는 미리 질문지를 내야 했다. 1933년 3월8일 오전 10시10분, 루스벨트의 첫 기자회견에는 기자 125명이 집무실에 모였다. 회견이 끝나고, 기자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70’.

 

루스벨트 취임연설 뒤 백악관으로 밀려드는 편지를 관리하던 직원 숫자다. 전임자 후버 땐 한명이었다. 첫주에만 45만통이 쏟아진 비결은 라디오 연설이었다. 그는 라디오라는 당대의 ‘뉴미디어’를 정치에 본격 활용했다. 취임 8일 만인 1933년 3월12일 밤 10시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신개념의 라디오 담화 첫회를 내보냈다. ‘노변정담’(fireside chat)이라 불린 이 담화 첫회 청취자는 6000만명을 넘었다. 국민에게 직접 이야기를 건네는 ‘노변정담’은 재임 중 모두 30회 이뤄졌다. 연 2~3회꼴. 더 늘리라는 주변 조언에, 그는 “한번 준비에 4~5일 초과근무를 해야 한다”며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답했다. 실제 그는 발음, 억양, 속도, 단어 등을 바꿔가며 엄청나게 방송 연습을 했다.

 

기자회견, 노변정담 등 아낌없는 소통 노력은 큰 성과로 돌아왔다. 당시 영향력이 가장 큰 매체이던 신문 시장을 과점하던 언론재벌 다수는 루스벨트를 싫어했다. 그들은 ‘뉴딜’이 ‘개인주의’, ‘작은 정부’ 같은 ‘미국식 삶의 방식’을 파괴한다고 봤다. 루스벨트가 신문 85%가 적대적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일선 기자들은 우호적이었다. 기자 60%는 뉴딜을, 90%는 루스벨트를 지지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노변정담 등 라디오 활용에선 동시대 최고이자 최악의 선전술을 구사한 히틀러와 맞먹는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열정적인 소통은 ‘뉴딜’을 시대의 의제로 끌어올리며 미국 정치의 주류를 바꾼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주류 교체를 화두로 띄웠다. 4·15 총선 뒤엔 ‘한국판 뉴딜’이란 승부수를 펼쳐보였다. 하지만 루스벨트 만큼의 비상한 소통 시도가 없다는 건 아쉽다. 꿈을 현실로 만들려면, 방법론의 실천도 치열해야 한다.

 

손원제 논설위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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