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전광훈은 어떻게 개신교계 리더로 군림했을까?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9. 2. 01:16

전광훈은 어떻게 개신교계 리더로 군림했을까?

등록 :2020-09-01 04:59수정 :2020-09-01 12:11

 

‘빤스 발언’ “하나님 까불면 죽어”
비기독교적 발언 일삼는데도
지난달까지 한기총 대표회장에

보수교회, 반공·친미·친독재로 급성장
정교일체 꿈꾼 극우 목사들
전광훈을 개신교계 간판으로 키워

총선마다 당명 바꿔가며 ‘기독당’ 도전
DJ 정권 이후 한반도 평화 무드에
태극기·성조기 들고 ‘길거리’ 나서

 

지난 1월4일 오후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었던 전광훈 목사가 서울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광훈 목사는 어떻게 한국 개신교계의 리더로 군림할 수 있었을까. 전 목사가 최근 대표회장직을 사임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지금은 빈껍데기만 남았지만, 지난 40년간 한국 보수 개신교의 대표적 연합기관이었다.

 

전 목사는 2006년 이른바 ‘빤스 발언’을 비롯해 “하나님 까불면 죽어” 등 정상적인 크리스천으로 볼 수 없는 발언을 일삼아왔다. 또 중세 교황청 같은 개신교의 기독청을 준비한 몽상가이자, 2008년부터 네번 치러진 총선 때마다 당명을 바꿔가며 ‘기독당’을 만든 정치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를 한기총 대표로 선출한 것에서 미루어 보수 개신교와 전 목사가 한통속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전 목사는 2008년 ‘기독사랑실천당’을 만들면서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와 김준곤 목사(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 등 선배들이 목회밖에 모르는 나와 장경동 목사에게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창당 동기를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해 전 목사를 개신교계 간판으로 내세운 건 대형교회의 극우 목사들인 셈이다.

 

개신교 교회 선교사와 목사들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교육·자선사업에 앞장섰고, 해방 후에도 민주화·인권·노동·농민·빈민·시민운동의 최전선에서 고난을 자청하며 십자가를 졌다. 그러나 반대쪽엔 개인적 상처를 확대해 사랑의 종교를 증오의 종교로 변질시켜, 민족의 화해를 막으며, 개인적 탐욕과 야망을 위해 교회와 신자들을 동원한 극우 목사들이 자리했다.

2019년11월20일 청와대 분수대 인근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집회에 참석한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전광훈 목사. 한겨레 자료사진

 

목사의 정당 참여는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보수 기독교의 뿌리인 영락교회 설립자 한경직 목사는 1945년 9월 신의주제2교회 목사로서 ‘기독교사회민주당’을 창당한다. 이후 북한에서 목사와 장로들은 공산당에 숙청을 당하거나 교회와 재산을 몰수당하고 월남한다. 공산당을 증오하는 월남 기독교인들은 한국 기독교의 원조 격인 미국과 한국을 개신교 국가로 만들고자 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 등 반공·극우·친미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삼각편대를 형성한다. 1947년 영락교회에서 월남 크리스천들이 주축이 돼 출범한 ‘서북청년단’은 이승만 독재를 떠받치기 위해 반민특위를 해산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암살했으며, 민간인을 빨갱이로 몰아 몰살하는 데 앞장서는 전위부대 구실을 했다. 이에 따라 일제가 남긴 적산가옥을 불하받는 데 개신교회가 최대 수혜자가 됐고, 한국전쟁 뒤 미국 구호물자의 최대 공급 통로가 되는 등의 혜택을 누렸다.

 

반공과 친미, 친독재로 급성장한 보수교회는 박정희 정권의 전위부대도 자처했다.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장은 “1970년대 군대 내 종교시설에 가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쓴 ‘신앙 전력화’와 ‘전군의 신자화’라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었다. 유신정권은 신앙을 전투력으로 삼으려 했고, 교회는 그 욕망에 호응하는 대가로 전군을 신자로 만들려 했으며, 정치권력과 교회권력의 동반 성장을 꾀했다”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군사독재 정권은 반공 정권이었기에 (보수 목사들이) 길거리에 나설 필요가 없었는데, 김대중 정권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 무드가 조성되면서 비로소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길거리 우파’로 나서게 됐다”며 “근본주의 교회의 이런 행동은 1990년대 이후 개신교의 성장이 둔화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함에 따라 외부의 적에 대한 적대와 혐오를 부추겨 내부를 더욱 단결시키는 효과를 얻기 위함이었다”고 분석했다.

 

조용기·김준곤 목사 등 대형교회와 보수 목사들이 한국기독당을 만든 것은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2004년 총선을 앞두고서였다. 대형교회 목사들과 전광훈 목사 등이 만든 정당은 매번 ‘정당 득표율 3% 이상’을 얻는 데 실패해 국회 진출이 좌절됐다. 그러나 2008년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총동원령을 내려 이명박 대통령 탄생을 돕는 등 정치권력의 확대재생산은 계속했다. 지난 8·15 광화문 집회 때도 보수 목사들과 행보를 같이하는 대형교회 장로들이 주축이 된 ‘대한민국 장로연합회’가 인원 동원에 앞장섰다. 즉, 전광훈 목사의 등장은 분단 상황을 유지해 교회 기득권을 지키고 정치권력까지 쥐락펴락해온 대형교회 극우 목사들에서 파생한 셈이다. 황영익 전 교회2.0목회자운동 실행위원은 “반공·반이슬람·반동성애를 3대 혐오전략으로 삼는 이들의 방식은 마치 나치가 반공·반유대·반소수자·게르만주의 광기로 혐오를 자극한 기법과 유사하다”고 짚었다. 전 기독자교수협의회장 이정배 목사는 “극우 목사들과 전 목사의 삐뚤어진 욕망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코로나 정국’을 벗어나면 극우교회에 의한 ‘꼬리 잇기’가 본격화해 전 목사와 다시 한통속이 되리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전 크리스천아카데미 원장 김경재 목사는 “보수교회가 반계몽주의적 성경무오설과 반과학주의, 변질한 자본주의, 냉전시대 반공주의에 속박돼 지구촌 역사 변화에 뒤처진 만큼 1970년 이후 출생자들에겐 전광훈류의 종교사업이 더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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