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박 권사와 고난 설명서 - 소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9. 7. 07:24

박 권사와 고난 설명서 - 소설

은혜 추천 0 조회 39 20.08.17 11:03 댓글 0

현재페이지 URL복사 http://cafe.daum.net/seungjaeoh/J74U/104?svc=cafeapiURL복사

 

게시글 본문내용

 

박 권사와 고난 설명서

 

 

산돌교회의 박 권사는 아침 산책을 하다가 도로를 주행하는 차를 열심히 좇고 있는 작은 요크셔테리어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승용차와 단거리 경주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용기는 가상하다. 그래 그 차를 붙잡아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듯 문명의 이기와 씨름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어림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꼬마 개는 이내 기권을 하고 달려가는 차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자기가 그렇게 숨차게 달려갔는지 반성이라도 하는 듯이.

그 꼬마 개가 바로 박 권사 자신의 모습하고 같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무척 바쁘게 정신없이 뛰어 왔다. 그런데 지금은 훌쩍 나이가 들어서 팔십이 가까워졌다. 차가 달리니 개가 따라 달린 것처럼 자기도 옆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달리니 달린 것뿐이었다. 박 권사가 평생 가지고 있던 직업은 전업주부였다. 남편 시중과 애들 시중을 들며 살았다. 젊어서는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셋방을 전전하며 이사하는데 바빴고 사 남매를 낳아서 기르는데 정신이 없었고, 옷을 해 입히고, 월동준비를 하고, 나중에는 시장을 누비며 용돈을 아꼈다. 가계부 대신 항목별로 봉투를 만들어 한 달 예산액을 넣어놓고 봉투가 비면 그 항목 지출은 끝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녀들 학비를 댈 길이 없었다. 애들이 크자 교회 일에 열중하게 되었다. 자기가 열중하려 해서가 아니라 교회가 그녀를 그냥 두지 않았다. 성가대도 하고 주일학교 학생도 가르치고 새벽기도도 나가고 철야기도도 하고. 나이가 들자 어른이 맡아야 한다고 중보기도회 회장, 교회 여전도회 회장, 전국 여전도 연합회 임원 등을 두루 거쳤다. 하나님의 은혜로 남편도 건강하고 자녀들도 다 복을 받았으니 주의 일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아서 그 푯대를 향해 달려온 것도 아니었다. 공부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자기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깨닫지도 못하고 지상명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산 것이었다. 알고 산 것이 아니고 살다 보니 이곳까지 온 것이다. 권사로서 잘못된 삶을 산 것일까? 그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산적도 없었으며, 내 고집을 세우고 하나님께 떼를 써서 제 뜻을 이루며 살아온 것도 아니었다. 박 권사는 모르긴 해도 그렇게 욕하지 않고 욕먹지 않고 하나님이 싫어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대로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20년이 넘게 살고 있던 아파트를 떠나 지금 이사 온 곳은 완만한 산등성 위에 세워진 실버타운 같은 아파트다. 호화로운 아파트라는 뜻이 아니고 도시에서 멀리 떠나 노인들이 살기 좋을 만한 아파트라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니던 산돌교회에서 멀어졌다. 늙을수록 교회 가까이 와서 새벽기도, 철야기도, 중보기도, 환자 심방, 기도원 방문 등을 해야 한다는데 교회를 멀리 떠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이 행정중심도시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앞으로 아파트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이사했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박 권사는 이 새롭게 된 도시가 더는 발전하는 것을 싫어한다. 나이 들어 무슨 돈 욕심이 생겨 집 장사를 할 생각이 났겠는가? 다만 요란하고 빠르고 귀가 아픈 소음들 속에서 행여 경쟁에 질세라 눈에 불을 켜고 사는 모습을 피해 온 것이다. 사람의 손이 덜 닿은 산과 들을 바라보며 여생을 하나님과 함께 살고 싶었다. 지금, 마치 요크셔테리어가 달려가는 차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과거의 자기는 세상일을 위해 너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세상일에 분주했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

이사를 오기 전에 박 권사는 건강검진을 하였다. 국민 연금공단에서 시행하는 것인데 두 번 이상 무시해 버리면 아예 다음부터는 건강 보험 혜택이 없다는 말도 있어서 검진을 받아보자고 날짜를 정했다. 몇 가지 의례적인 검사를 끝낸 뒤 가정의학과 교수에게 최종 상담을 받으러 갔는데 그는 매우 사람이 좋아 보였다. 몇 가지 질문 뒤 가까이 와서 남편 목과 자기 목을 뒤에서 만져 보았는데 자기 목의 갑상선 주변에 혹이 만져진다고 말하며 흔히 있는 일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가면서 예약을 하고 초음파사진을 찍어 보라는 것이었다. 박 권사는 무슨 초음파사진이냐고 예약 접수를 무시했다. 초음파사진은 보험도 적용이 안 되고 비싸다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종합병원이란 이상한 곳이다. 꼭 진찰하면 눈이 나쁜 것 같으니 상담을 해보아라, 위 사진을 찍어 보는 것이 좋겠다는 등 공연한 것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예약하라고 하는데 그때마다 돈이 들고 또 실제 가보면 피를 뽑고 검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 등 법석을 떨지만, 끝에는 대단치 않다고 약국 처방을 써 주고 마는 것이었다. 이젠 그런 꼬임에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며칠 지나자 박 권사가 동네 병원에 골다공증약을 처방해 받으러 갈 때 남편은 박 권사더러 초음파사진을 찍어 보라고 했다. 께름칙했던 터라 그 말에 넘어가 마을 병원이 값이 좀 싸다는 이유로 사진을 찍은 것이 잘못이었다. 사진을 찍고 나자 줄줄이 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결과는 갑상선 주변에 3개의 혹이 있는데 하나는 크기가 1.9cm 정도이며 깨끗하지 않고 지저분해서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종합병원에서 상담을 받아보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녀는 아예 이런 결과를 무시해 버릴 생각이었다. 그녀 주변에도 갑상선 근처에 혹이 대여섯 개 있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생활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갑상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갑자기 열이 나기도 하고 노곤하고 무력증에 빠지기도 한다는데 자기는 그런 증상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늙으면 자연 아프게 마련인데 공연히 사진을 찍어서 오히려 심란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혹 암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교회의 중보기도 팀이 나이 든 안수 권사, 방언 권사들을 모시고 여 전도사의 차를 타고 들이닥쳤다. 이 안수 권사는 자기도 젊었을 때 갑상선 문제로 항상 목이 쉬어 있었는데 30년도 전에 그녀는 미국에 자녀를 방문하러 갔다가 부흥목사의 안수를 받고 씻은 듯이 그 증상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 유명한 부흥목사의 안수 받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강사 목사가 자는 집 문 앞에 앉아 꼬박 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강사가 나올 때 안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권사도 갑상선 주변에 있는 종양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비록 암이라 할지라도 믿고 안수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그런 혹 하나쯤 씻은 듯이 없애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안수 권사는 박 권사를 베개를 베고 눕게 한 뒤 환부에 손을 대고 목이 아프도록 누르고 안수하며 큰 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팀원들이 모두 통성으로 기도하고 또 방언으로도 기도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뒤 박 권사는 자기의 종양은 없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자기는 중보기도 회장까지 지냈지만, 자기중심적인 사사로운 기도까지 하나님이 들어주시리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있는 암이 없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처럼 부흥사 침소에서 밤을 새우며 기적을 사모하는 열심마저 없는 사람에게는 이런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외국에 있는 아들과 전화하는 가운데 갑상선 이야기를 하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수술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의 잘 아는 내분비내과 의사를 소개까지 하였다. 박 권사는 자기 몸에 칼을 대는 것을 몸서리 칠만치 싫어하였다. 그래서 암 중에서 가장 느린 거북이 암이 갑상선 암이라는데 자기는 이미 늙을 만치 늙었으니 암과 함께 살겠다고 말하면서 어떤 할머니는 노환으로 돌아가신 뒤에야 갑상선 암이 있었다는 것을 안 일도 있었다고 말하며 의사 상담을 거부했다. 그런데 모든 것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며칠 있자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들 친구 되는 의사라면서 면담시간을 예약해 놓았기 때문에 접수하고 자기를 만나러 오라는 것이었다. 마을 병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분비내과의 과장은 갑상선 초음파사진을 보더니 나타난 혹이 악성인 것 같지만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미세침흡입 세포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혹에다 가느다란 주삿바늘을 찔러 넣어 세포를 꺼내어 조사해 보는 것이라고 했다. 혹에서 조직을 떼 내어 조사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출혈도 있고 더 아플 뿐 아니라 세포검사로도 충분히 양성과 악성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박 권사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수술 안 하고 약물로 치료하는 방법은 없느냐고 물었다.

글쎄, 그런 혹을 갑상선 결절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95%가 양성이어서 그것이 커지지 않은 이상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악성이면 수술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약물치료나 방사선 치료로도 잘 낫는다고 하던데요.”

그것도 세포검사를 해본 뒤에 결정합시다.”

이렇게 되면 세포검사까지는 어쩔 수 없는 순서인 것 같았다. 이 종합병원은 검사 예약환자가 너무 많아 빨리하기 위해서 외부에서 검사해 오라고 검사의뢰서를 써 주었다.

소개한 병원에 갔더니 접수창구에서 <검사의뢰서>를 보더니 비용이 좀 드는데 알고 있느냐고 위협하듯이 말했다. 유방 전문 클리닉이었는데 젊은 여인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갑상선 암은 유방으로 잘 전이 되어서 이 병원에서도 세포검사는 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차례가 되자 의사는 다시 한번 갑상선 초음파사진을 찍으며 모니터로 그 혹의 크기를 재서 혹 하나하나를 보여주었다. 그런 뒤 미세침으로 세포를 흡입하여 검사하겠다고 보호자는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내가 언제 내 미래를 알고 내 뜻대로 살았나?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라고 박 권사는 체념하듯 일이 진행되는 대로 자신을 맡기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자 종합병원에서 검사결과를 가지고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박 권사는 왜들 그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고 짜증을 냈다. 비록 암으로 결정이 되더라도 자기는 봄에 날씨가 따뜻해지면 받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정말 악성이라면 빨리 제거해 버려야지 무엇 때문에 그걸 보물처럼 갖고 있으려는 거요?”

그렇게 두고 있으면 자연히 혹이 없어질지도 모르잖아요?”

그것이 더 커지거나 다른 곳으로 전이되어 수술하기 어려운 부위에 자리 잡고 앉을지 누가 알겠소?”

어떤 사람은 병원에서 포기한 암 환자인데 기도만 해서 완전히 없어진 경우가 있대요.”

그래도 지금까지의 모든 순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인도해 주신 것 같지 않소?”

결국, 박 권사는 사형 선고라도 받는 심정으로 내분비내과로 결과물을 가지고 갔다. 그 의사는 진단의뢰서의 내용을 읽더니 단번에 수술해야 하겠다고 말했다. 세포검사는 95% 정확하다는 것이었다.

공연히 암도 아닌 것을 칼을 잘 못 대서 더 악화시킬 수 있잖아요?”

그러나 악성 결절은 그냥 두면 다른 곳으로 전이될 수도 있으며 그것이 아주 많이 커지면 수술도 어려울 뿐 아니라 주위조직을 압박하여 음식물 삼키기가 어렵거나 호흡곤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악성 결절이 아닐 확률이 5%는 되지 않아요. 수술해서 아닐 때는 어떻게 해요?”

아니면 더 좋지요. 암 조직이 남아 있을 염려가 없어서 갑상선을 제거하고 호르몬만 제대로 공급하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잘 아는 외과 의사에게 부탁해 놓을 테니 예약하고 가시겠습니까?”

그는 대단찮은 일 처리하듯 말했다. 병원에 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음 환자는 기다리고 있고 .’ ‘아니요.’를 빨리해야 할 처지였다. 예약해 놓고 상담은 다음으로 미룰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치 뒷사람에게 밀려 앞으로 나가는 기분으로 그녀는 과장실을 빠져나왔다.

외과 의사 진료를 예약하고 상담을 받은 것은 일주일쯤 뒤의 일이었다. 외과 과장은 사진과 차트를 보더니 곧 수술 날짜를 잡자고 말했다.

선생님 저는 전에 심근 경색으로 수술을 받은 일이 있는데 수술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래요? 언제 일입니까? 오 년쯤 되셨군요.”

하고 두터운 차트를 뒤적이더니 말했다. 박 권사는 모든 검사와 수술을 이 종합병원에서 했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책자가 두꺼운 것이었다.

그럼 가시기 전 몇 가지 검사를 더 하고 가십시오.”

하고 검사물 체취, 심전도, 폐 기능 검사, 외과 의사 면담 예약 등 몇 가지를 기록해서 주며 우선 접수하고 다 검사를 마치고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접수창구에 갔더니 남편의 월 퇴직 연금 7%는 되는 금액을 덜컥 검사료로 부과하는 것이었다. 박 권사는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필경 쓸데없는 검살 텐데 또 해야 하는 것이 속상했다.

검사를 하고 돌아왔더니 교회의 여전도회 회원들이 심방 와 있었다. 벌써 교회에 박 권사가 수술한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났다. 아니 소문이 조금만 새나가도 중보기도 팀이 놓칠 리가 없었다. 예부터 이 중보기도 팀은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기쁨이어서 뭐 기도할 일이 없을까 하고 찾는 것이 그들의 낙이었다. 방언을 받으면 누구 기도해 줄 사람은 없나 하고 기도할 일을 찾고 싶어진다는 것이었다. 박 권사는 사실 중보기도 팀과는 적성이 잘 맞지 않았다. 먼저 중보기도라는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해를 가져오게 하는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하며 이는 유일하신 중보자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인데 왜 평신도인 자기들이 나서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가 되려고 하는지 너무 당돌해 보였다. 목사님이 부흥회를 나가면 모두 중보기도를 하지고 소리높이 기도를 하는데 목사님과 하나님 사이에 자기가 들어가야 할 자리가 있는가? 이 기도회를 합심 기도회라고 고치자고 말했으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명칭이 무슨 상관인가? ‘중복기도회라는 이름으로 남을 위해 기도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암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하나님,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제게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하고 박 권사는 따로 기도하였다.

아무것도 아직 결정된 상태가 아닙니다. 저를 위해 너무 시간 내시지 말고 교회 건축할 일도 있는데 그를 위해 적극적으로 기도해 주십시오.”

그렇게 타이르고 그들을 돌려보냈는데 마음은 심란하였다.

*

외과 의사 면담시간에 갔더니 차트를 훑어보고 정확한 수술 날짜를 정해 주었다. 전날 오후에 와서 입원하고, 다음날 바로 수술을 하자는 것이었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다는데 잘 깨어날 수 있을 것인지, 갑상선을 다 떼 내고도 무사히 살 수 있는 것인지 막상 날을 잡고 보니 가슴이 너무 떨렸다.

어차피 늙으면 겉 사람은 낡아지기 마련이다. 내 몸은 옛날 내 몸이 아니다. 충양돌기는 진즉 떼어냈고, 다리도 부러져서 쇠를 박았고, 혈관은 좁아져서 조항수술로 망을 집어넣었다. 이제는 갑상선을 떼어낼 것이다. 내 몸은 낡아지고 그 속에 살아 있는 영혼만 상대적으로 말똥거릴 뿐이다. 자기 영혼이 조금씩 망가진 다른 육체로 이사 다니다가 최후에는 육신을 다 버리고 하늘나라로 갈 때가 올 것이다. 그는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녀는 사는 동안 이사도 많이 다녔다는 생각을 하였다. 결혼해서는 광주에서 부엌을 사이에 둔 두 칸 방에서 시누이와 시동생을 데리고 살았다. 시집을 간다는 것은 큰 변화이다. 부모의 집을 떠나 낯선 집으로 가서 사는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 것처럼 떠난 첫 살림이었다. 거기서 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전주로 떠났다. 만삭인 배를 안고 누가 기다린다고 그곳에 간 것인가? 그러나 그곳에 예수병원이 있었고 남편의 친구가 그 병원의 의사로 있어 삼 남매를 거기서 출산하였다. 이것은 자기가 계획한 앞날이 아니었다. 먼 훗날 그것이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는지 가르쳐 주셨다. 남편이 뒤늦게 만학을 시작하자 어린 애들을 안고 시골 시부모 댁으로 이사를 했다. 남편도 없이 시부모 댁에 가는 것이 얼마나 불안했던가? 그러나 그곳 넓은 뜰과 채소밭과 마을을 돌아 흐르는 개울을 보며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자랐고 시누이와 시어머니의 사랑으로 애들을 잘 길렀었다. 또 미국으로 이사했다. 가보지 못한 미국을 갈 때 얼마나 떨렸던가? 혹 고아가 될세라 갈아타는 곳에 사람을 나오게 하여 길 안내를 받고 혹 아무도 못 만날 경우를 생각해서 길 안내를 부탁하는 영어 쪽지를 손에 쥐고 미국으로 떠났다.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혼자서 잘 가는 미국을 왜 그렇게 떨었는지 모르겠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시던 그곳에서의 7년은 고통스럽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지나고 난 뒤에는 복 받은 삶임을 깨달았다. 사는 장소가 달라졌다고 내 영혼이 달라진 것이 없다. 새로운 거주지로 옮길 때마다 미지의 환경 때문에 불안해했다. 그러나 이런 불안과 고통은 시간이 가면서 자기들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지금 새롭게 느끼는 것은 그녀가 들어가 사는 육체가 조금씩 조금씩 낡고 무력한 육체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건장한 육체로부터 부속품을 다 갈아 끼운 중고차와 같은 육체로 한 단계씩 이사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낡아진 장막 속에 이사하며 사는 것은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어디가 어떻게 망가진 육체 속에 살게 될 것을 알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기 뜻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새 환경을 극복하며 살다 보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는 날이 또 오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박 권사에게는 있었다.

박 권사는 수술을 하루 앞두고 입원실에 들어가기 전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소파의 쿠션과 참대 시트를 다 세탁해서 갈아 끼우고 청소를 하고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채우고 생선국을 끓여 몇 개의 우유 팩에다 넣어 냉동고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남편이 죽으러 가느냐?”고 핀잔을 주는 대도 아랑곳하지 않고 쌀은 어디에 있고 반찬은 어디에 넣어 두었는지 남편에게 일일이 설명했다. 전신마취를 하는데 안 깨어나면 그냥 죽는 것으로 생각했다. 자기 이름으로 된 저금통장 하나 없이 남편을 의지하고 살아왔으니 통장 비밀번호를 가르쳐 줄 것도 없었다.

그날 밤 병실에 자리를 잡았는데 얼마 있으니 수술동의서에 사인해야 한다고 보호자는 나오라고 말하였다. 박 권사는 남편을 붙들고 지금이라도 수술을 그만두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아무 증상도 없고 건강검진 때 의사가 만져 보지만 않았어도 안 해도 될 수술이라고 말했다. 혈액검사만으로도 암을 예견할 수 있다는데 자기의 혈액검사는 정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은 듣지도 않고 동의서에 사인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중보기도 팀이 또 찾아 왔다. 병실을 알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병원에서 환자 찾기는 식은 죽 먹기라고 했다.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난 팀원들이었다. 그들은 찾아와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여러 방자를 위해 기도했기 때문에 들은 이야기가 많았다. 수술하고 나면 풍선에 바람 빠진 것처럼 힘이 없고 의욕이 없어지며 밥맛도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하며 그녀를 불안하게도 했고 또 어떤 이는 자기가 아는 대학교수는 다발성 혹이라고 여러 개 있는 혹을 떼 냈는데 일주일 후부터는 강의도 했다고 위로가 되는 말도 했다. 그러나 이제 수술을 결심하고 하나님께 맡겨버린 그녀에게 모든 이야기는 큰 뜻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하시는 일은 자기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며 자기만 감당할 일이었다. 종내에는 이 중보기도 팀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홀로 감당할 일이 생길 것이었다. 한때는 박 권사도 남을 위해 기도한다고 큰 사명감에 우쭐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자기가 병자가 될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중보기도 팀에는 남자가 낄 자리가 없었다. 남자들은 다 직장 일로 바빠서 교회에 늘 모일 수가 없었다. 만일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면 남자들은 다 지옥에 갈 사람들이었다. 반면, 여자 성도들의 가장 보람된 활동이라면 새벽기도, 철야기도, 중보기도, 교회 내의 구역 봉사 등이 돋보이는 활동이었다. 또 그들이 없으면 교회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일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들을 성스럽게 구별할 수 있는 활동이어서 꼭 장려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이 현상을 너무 강조하면 그것이 경건의 훈련 전부인 줄 알고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게 된다. 남자 없이 여자만으로 구성된 하늘나라를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신다. 남자들은 왜 교회에 모이지 못하는가? 직장인은 교회에 모이기가 힘들다. 남성들은 모이지 못해 하나님의 일을 못 한다고 등산모임, 회식 모임, 골프 모임 등을 주선한다. 그러나 일회적으로 모이면 무얼 하는가? 등산 이야기, 먹는 이야기, 정치 이야기들로 꽃피우면 그것으로 되는가? 그런 모임을 만들기보다는 자기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살며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며 주를 닮아가려고 애쓰며 구원해 주신 주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면 그것으로 되지 않겠는가? 박 권사는 자기 남편도 그런 모임은 안 갖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새벽에 성경 보고 기도하고 가정예배 드리고 교회에서 말씀 듣고 성경 묵상하고 신앙 상담하고 교제하고 …… 그러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언제나 남편을 변호하는 편이었다.

중보기도 팀은 이번에는 생긴 암도 말끔히 지워달라는 기도는 포기하고 의사들에게 환자를 맡기기로 했는지 주께서 친히 의사의 손을 빌려 집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후두나 기관, 혈관 등 손상이 없이 깨끗이 수술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수술 중 출혈이 심하지 않게 하시고 지혈이 잘되게 해달라고 할 때는 칼이 갑상선을 잘라내는 모습이 연상되어 두렵고 떨리었다. 또한, 나이가 많으니 마취가 잘 되고 후유증 없이 말짱하게 깨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는 박 권사는 이것이 이생의 끝인가 하고 눈물이 났다. 이들은 갑상선에 대해서도 의사만큼 전문가인 것에 놀랐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는 성경 말씀으로 권고할 때는 마음에 천국의 평안이 와서 담대한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

막상 수술하러 들어가는 시간에는 두려움이 없고 평안했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만 의지하시오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마취가 시작되자 졸음이 오고 무의식 상태가 되었다. 얼마나 되었을까? 눈을 뜨니 그곳이 회복실이라고 했다. 무사히 수술을 견디어 낸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꿈속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간호사가 와서 이동 침대를 밀고 밖으로 나왔다. 남편이 곁에 서서 웃으며 손을 잡았다. 그리고 간호사와 함께 이동 침대를 침실로 옮겼다. 결국, 살아났는가? 병실 침대로 옮겨 누운 뒤 자기가 혼자서 그 어마어마한 수술을 치러 낸 것이 꿈만 같고 이제 딴 세상으로 들어온 이방인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얼마 후 자기 목의 절제 부분에 두툼하게 붙어 있는 붕대와 수술 부분을 통하여 피를 배출해 내는 가느다란 PVC 관을 보면서 자기가 갑상선을 떼어 낸 환자라는 것을 실감했다.

다시 중보기도 팀이 찾아 왔다. 그들은 기도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꼭 응답을 확인하는 사람들이었다. 남편이 수술 경과를 설명했다. 수술은 30분 정도밖에 안 걸리며 회복하는데 두 시간 이상 걸린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박 권사가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전광판을 보고 있는데 환자 이름이 나오고 바로 뒤에 붉은색으로 <수술 중>이리는 글이 떴는데 30분이 아니라 두 시간이 지나도 계속 수술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남편은 수술이 뭔가 원활하게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시간이 지나자 한 사람 두 사람 환자명 뒤에 <회복 중>이라는 글귀가 뜨기 시작했는데 그녀 이름 뒤에는 계속 <수술 중>이라는 글만 떠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 맨 밑 전광판을 보니 환자가 <중환자실>로 옮길 때는 <회복 중>이라는 글이 안뜰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남편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공연히 하기 싫은 사람을 수술하라고 강권한 것이 아닌가 하고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시간 이십 분쯤 될 때 <회복 중>이라는 글이 떴는데 얼마나 기뻤는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고 말했다.

중보기도 팀은 나이 많은 환자를 무사히 수술해서 병실로 보내준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들은 기도하고 응답받는 기쁨으로 할렐루야를 외치며 기뻐하였다. 언제나 기도하면 응답을 확인하는 팀원들이었다. 중보기도 팀을 바라보며 박 권사는 그들이 중보기도 팀이라 하건 합심 기도팀이라 하건 그 해석을 두고 시비를 가리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그들이 기적을 바라든 복 받기를 바라든, 자기중심적이든 말꼬리를 잡고 따지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구하라. 찾으라. 두들기라.”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충성스럽게 살려는 모임을 칭찬해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박 권사는 갑상선을 떼어낸 자기가 딴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남편과 함께 또 여생을 살겠지만 앞으로 살 삶은 새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영은 이제는 달라진 몸으로 이사 와서 사는 삶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육체가 영영 쓸 수 없게 되면 낡아서 쓸모없게 된 육신은 버리고 주님 곁으로 가야 할 것이다. 지금 그 예비 연습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옮겨 다닐 때마다 불안했지만 앞일을 알고 옮긴 적이 있었는가? 내 뜻이 아니지만 필경 하나님의 인도로 새로운 곳으로 옮길 때마다 살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 새삼스럽게 깨닫곤 했었다. 이번에도 자원해서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니었지만 주의 인도로 이곳에 왔으니 또 한 번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삶을 살게 되리라고 믿고 감사하였다. 이 수술은 고난도 아닌 한순간의 두려움이었지만 고난은 이메일로 오고 하나님의 고난 설명서는 배편으로 온다.”라는 말이 있는데 수술이 다 끝난 뒤 박 권사에게 찾아온 고난 설명서는 또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놀랍게도 그것은 갑상선 암을 챙겨 주는 보험료였다. 남편이 학교 재직 중 보험 설계사의 강권에 못 이겨 가입하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갑상선 암을 보장해서 효자 노릇을 한 것이다. 남편의 퇴직 월 연금의 5배는 되어 액수로 고난 설명서가 되어 되돌아 왔다. 그것이 또 걱정하던 교회 건축헌금으로 쓰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