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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의료정책 갈등, 어디로 가야 하나 / 신진욱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9. 17. 05:06

[세상읽기] 의료정책 갈등, 어디로 가야 하나 / 신진욱

등록 :2020-09-15 18:05수정 :2020-09-16 13:39

 

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을 골자로 하는 정부 의료정책에 반발하여 의사들이 진료 거부에 돌입하고 정부가 강경 대응을 하면서 많은 국민이 코로나 위기 중에 불안의 시간을 보냈다. 일단 파국은 면했지만 이번 사태의 진정한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불분명하다. 사회학에서 갈등은 더 높은 통합에 기여하기도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회적 토론과 합의 형성이 필요하다.이번 갈등의 표층엔 여러 대립 지점이 있다. 의사들은 정부 정책의 내용과 추진 방식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 했고, 정부여당과 다수 국민 여론은 진료 거부라는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 했다. 양쪽 모두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이 갈등은 공공의료를 확대하려는 힘과 민간의료를 방어하려는 힘의 충돌인가? 아니면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각기 다른 대안의 충돌인가?

 

이 점에 대해 정부도, 의사도 분명하지 않다. 보건의료노조와 여러 진보적 의료인 단체는 이번 정부 정책안이 코로나 위기에 대응할 수 있을 만큼 공공의료를 확충하기에 크게 미흡하다고 비판해왔을 뿐 아니라, 그조차도 의사협회와 원점에서 재논의한다고 합의한 것에 반발했다. 간호협회는 의사단체만 포함시킨 의-정 협의체 틀을 강력 비판하고 국민적 논의기구 설립을 주장했다. 정부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한편 의사들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몹시 불투명하다. 의사단체들은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이 문제의 발단이라고 비난했고, 대화를 통해 공공의료 발전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의사협회가 ‘전교 1등 의사냐, 무능한 공공의사냐?’라는 홍보물로 여론의 지탄을 받은 데서 보듯이, 많은 의사단체가 의료는 공공재가 아니라거나 심지어 공공의료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는 주장을 도처에서 전개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질문해야 한다. 향후 논의 과정에서 정부와 여야 정당, 의사·보건의료 단체들은 다수 국민이 원하는 것처럼 공공의료 확대와 의료의 공공성 강화라는 목표에 대한 합의에서 출발할 것인가? 방법론의 차이가 있더라도 말이다.

 

이 근본적 질문이 진실로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의료, 교육, 보육, 주택 등 모든 면에서 공공의 재원으로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연대의 공간이 극히 작은 데 반해, 각자 번 만큼 누리는 사적 영역이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분명해졌다. 한국은 강력한 방역행정과 시민의식으로 세계 최고의 감염 억제를 해내고 있지만, 공공의료가 기관, 병상, 인력 등 모든 면에서 취약하기 때문에 감염이 확산되면 감당하기 힘들다.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병원의 비중은 2018년 통계로 고작 5.7%다. 다른 부문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국공립 어린이집은 전체의 11.5%,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7.5%에 불과하다.

 

이렇게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각자도생의 원리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공공의 영역을 조금이나마 확대하려는 시도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낙인찍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더구나 그런 사고방식은 우리가 제한적이나마 이미 많은 공공재를 누리며 살고 있음을 보지 못하는 자가당착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길과 공원, 대중교통, 물과 전기가 모두 공공의 것이다. 초·중등 교육을 우리는 무상으로 받았고, 의대 교육에도 정부지원금이 들어간다. 우리는 또 노인연금, 아동수당 등 각종 지원을 받는다. 이것들은 진보, 보수 정권의 합작품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건강보험, 아동보육, 노인장기요양제를 정립했듯이 박정희, 박근혜 정부도 도로를 깔고 노인연금을 도입했다. 이런 것이 모두 공공재고 공공 영역이다.

 

이 모든 것은 국가가 국민에게 베푼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라는 그릇에 돈을 모아 공동의 이익을 위해 쓴 것이다. 이렇게 국가와 사회 간에 큰돈이 돌아야 거시적 합리성이 작동한다. 공공 영역과 사적 영역이 선순환하며 균형을 이뤄야 양쪽 모두 성장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문제는 공공성의 과잉이 아니라 극심한 결핍이다. 다행히 한국 사회는 이 불균형을 시정하는 쪽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20세기 한국이 세계사에 유례없이 성공적인 산업화를 이뤘듯이, 21세기 한국은 좀 더 공동체적인 사회로의 변화를 통해 국가적 위기를 이겨낸 모범을 세계에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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