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아침햇발] 30년 전 동독은 ‘흡수통일’됐을까? / 권혁철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7. 03:25

[아침햇발] 30년 전 동독은 ‘흡수통일’됐을까? / 권혁철

등록 :2020-10-06 16:07수정 :2020-10-07 02:42

 

화가인 카니 알라비는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장벽에서 4m가량 떨어진 아틀리에에서 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을 생생하게 봤고, 당시 베를린 사람들의 기대, 고통, 미래에 대한 걱정 등을 베를린장벽에 그렸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다음해 10월 독일은 통일됐다.

 

지난 10월3일은 독일 통일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중요한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밝힐 때 독일을 무대로 활용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2000년 3월9일), 이명박 대통령의 ‘김정일 위원장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초청’ 베를린 제안(2011년 5월9일),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2014년 3월28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베를린 선언(2017년 7월6일) 등이 있었다. 대통령들이 통일 관련 메시지를 던질 때,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룬 독일만큼 상징적인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포츠담에서 열린 30주년 기념식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동독 체제를 종식한 평화혁명가들을 위한 새 기념비 건립을 제안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이 기념비가 “동독 시민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자유를 얻었다는 것을 각인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독 시민이 통일의 주체였다는 이야기다. 그의 제안은 독일 통일에 대한 한국 사회의 통념과는 꽤 거리가 있다. 많은 사람이 통일의 주체를 서독으로 보고,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했다고 말한다.

 

정말 동독은 흡수통일됐을까? 지금까지 나온 국내외 독일 통일 관련 논의와 연구를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의견이 있다.

 

첫째,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인 10월3일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했다는 주장이다. 국내에선 다수설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독일식 통일을 본보기 삼아 북한 붕괴를 전제로 흡수통일을 준비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통일세 신설”(이명박)이나 “통일은 대박”(박근혜) 같은 이야기를 대통령이 하자, 흡수통일 비용·효과에 대한 연구가 쏟아졌다.

 

둘째, 독일 통일을 흡수로 규정하는 것은 오해이고 동독 주민에 대한 모독이란 주장이다. 동독 시민이 무혈혁명으로 동독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자발적 선택으로 평화통일을 이룬 것이다. 무혈 평화혁명은 1989년 5월 동독의 라이프치히 부정선거 항의 시위에서 시작했다. 애초 2000명이 참여한 라이프치히 시위는 그해 가을과 겨울 동독 곳곳에서 여행의 자유, 민주화, 독일 통일을 요구하는 수십만명 규모의 시위로 커졌다. 1990년 3월 동독 국회의원 선거에서 ‘빠른 통일’을 공약으로 내건 정당이 압승을 거뒀고, 그해 10월 독일은 통일을 이뤘다. 독일 통일 과정을 뜯어보면, 동독은 흡수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통일의 주역이었다. 동독 시민이 통일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했다. 2015년 독일 통일 25주년 기념사에서 당시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는 “통일은 평화혁명에서 생겨났다. 동독인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강력한 민중운동을 통해 억압자들에게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한 바 있다. 독일에서는 ‘흡수통일’이란 말 자체가 없고, 독일에서 통일을 설명할 때 ‘가입’이나 ‘결합’ 등의 개념을 쓴다고 한다. 실제 독일 통일은 동독 5개주가 서독 연방에 가입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셋째, ‘합의형 흡수통일’로 보는 주장이다. 동서독이 민주적이고 대등한 협상을 통해 이룬 평화통일이었지만, 통일 이후 통합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서독 기준에 맞춰 동서독 통합이 이뤄지면서 사실상 흡수통일이 됐다.

 

전문가마다 독일이 흡수통일됐는지 여부는 의견이 갈린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독일 통일은 동독 주민 스스로 선택한 결과물이란 점이다. 남북통일을 하려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데메지에르 동독 마지막 총리는 “한반도 통일은 북한 주민이 스스로 원할 때 완전하게 이룰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도 독일처럼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어 통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서독에 견줘 통일 준비가 부족하고, 시간이 갈수록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의도 식어가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남한이 정상이고 북한이 비정상이니 통일을 하려면 북한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지금 상태에서 남북통일이 된다면 독일보다 더한 갈등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통일을 체제 통합 같은 정치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통합 차원에서도 봐야 한다. 남북 주민이 공존할 수 있게 고용·복지 등 사회경제 시스템을 먼저 갖추는, 현실적이고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권혁철 ㅣ 논설위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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