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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칼럼] 집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보는 시간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9. 06:28

[조은 칼럼] 집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보는 시간

등록 :2020-10-08 17:34수정 :2020-10-09 02:42

 

한 집은 강남에 살다가 서촌으로 이사 와 모처럼 행복을 주는 집에 살고 있는데 집 주변이 심하게 망가지도록 놓아두는 것은 사는 집에 대한 예의가 아니어서, 또 한 집은 이런 공사를 벌이는 건축주가 도시재생에 밝은 건축학과 교수로서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위원으로 일하던 시기에 본인이 소유한 두 채의 가옥이 소재한 지번이 3층 건축이 가능한 지역으로 변경된 사실을 납득할 수 없어 싸움을 시작했다.

 

코로나 스트레스를 안고 ‘집콕’한 추석 연휴에 칼럼 제목을 뽑아놓고 장고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도 별로 생각하지 않는 세태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아서다. 그냥 밀고 나가기로 한 것은 이웃 동네에 ‘집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다. 이들은 서촌 한옥 보존지구의 20평 남짓한 한옥에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잘 가꾼 집’ 명찰까지 달았던 이웃 한옥 네 채가 헐리고 그 자리에 지하 1층에 지상 3층의 건축허가증이 나붙은 공사판 천막과 마주치면서 행정당국에 민원을 내는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허물어버린 한옥들은 두 명의 소유주가 나란히 두 채씩 소유하고 있었는데 서울시 리모델링 지원까지 받아 예쁘게 단장한 모델 한옥이었다. 지원금을 받을 때 내건 최소 조건 5년을 채우자마자 3층 빌딩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주변의 네 집은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민원 내기를 시작했다. 한 집은 강남에 살다가 서촌으로 이사 와 모처럼 행복을 주는 집에 살고 있는데 집 주변이 심하게 망가지도록 놓아두는 것은 사는 집에 대한 예의가 아니어서, 또 한 집은 이런 공사를 벌이는 건축주가 도시재생에 밝은 건축학과 교수로서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위원으로 일하던 시기에 본인이 소유한 두 채의 가옥이 소재한 지번이 3층 건축이 가능한 지역으로 변경된 사실을 납득할 수 없어 싸움을 시작했다. 또 다른 한 집은 공사가 진행되면서 인접한 집의 벽에 균열이 나기 시작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단지 보상금을 더 탐하는 수작 정도로 취급당한 낭패감을 참을 수 없었고 다른 한 집은 세입자지만 한옥 권장지구에 사는 재미와 행복을 만끽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이웃의 폐해를 아랑곳하지 않는 건축주의 ‘몰상식의 상식’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이들과 연대하고 싶어진 것은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끝까지 함께 가보겠다는 의지를 들으면서다.이들은 종로구청과 서울시를 상대로 공사 중지 민원을 수차례 내고 있지만 돌아온 답은 한옥 보존지구가 한옥 지정지구와 한옥 권장지구로 세분화되고 한옥 권장지구는 다시 권장 1, 2지구로 세분화됨에 따른 규정에 의거해 건축허가에 하자가 없음을 알리는 ‘친절한’ 여러 행정 용어가 가득한 문서들이다. 공사 현장이 지난 폭우에 무너졌고 공사 진행과 함께 바로 옆 한옥의 벽과 보도블록에 균열이 생겨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하의 땅파기는 계속되었고 옹기종기 처마를 맞대며 인왕산과 백악산을 서로의 작은 창에 비켜주며 지켜온 좁은 골목의 평화로운 집들을 초라하게 뭉개면서 3층짜리 빌딩은 올라가는 중이다. 한옥 권장지구에서 6m 이상 도로에 인접하지 않으면 2층 이상을 올릴 수 없는 규정이 어느 순간 4m 인접 도로로 고쳐져 합법적 건축허가증을 받았음을 민원을 내면서 알게 되었고 한옥 권장지구에서 건축허가가 나오는 토지 면적은 60평 이하로 묶여 있지만 20평 내외를 두 채씩 가진 이웃 두 집이 담합해 각자의 필지를 붙이면 90평 가까운 필지의 건축 도면에 위용을 자랑하는 쌍둥이 건물을 올리는 일은 별 제재 없이 해낼 수 있다는 지식도 얻었다. 문제가 있다고 취재 나왔던 언론들은 규정 위반은 아니라는 행정당국의 정당화 논리에 설득당했는지 아니면 큰 사건에 밀린 너무 작은 사건이었던지 뉴스가 되지 못했다. 번듯한 새 건물을 올리면 동네 땅값이 올라간다는 기대에 슬그머니 무임승차하고 싶은 때가 없지 않지만 도시재생 전문성이 서촌 한옥 권장지역의 건축허가 규정을 변경해가는 데 작동하는 방식과 법적 하자 없음으로 부끄러움 없음까지 보증받은 듯한 식자들의 양식에 맞서서 생각 있는 시민들과 연대하고 이를 확장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이들은 ‘작은’ 현장을 통해 이런 일들이 우리 사회의 도시재생이나 지역개발 현장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 사회에서 공간의 공공성이 땅의 이윤 극대화에 압사당하는 축소판을 경험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우리는 집의 가치가 집의 가격과 등치되는 담론 속에 묻혀 산다. 주택이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사고파는 부동산’ 곧 소유와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된 것은 한국 사회 보편적인 상식이 되었다. 지난 몇 달 동안에 몇 억씩 오른 ‘환상적’ 부동산 가격 폭등이 극사실적 숫자로 뉴스 지면을 채우는 한편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상을 사는 사람의 힘겨운 생존기나 공동화장실을 쓰는 고시원 같은 단칸방 거주자가 혹 코로나 확진자의 접촉자가 되어 외출도 못 하고 화장실도 못 가는 사태가 생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주거 빈곤층이 엄존한다는 현실은 쉽게 가려진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은 다른 주거 계층의 삶을 공간적으로 확연하게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는 미래의 집이 꼭 자동화된 보안 시스템이나 “스마트”한 홈 오피스 꾸미기에 매달려 마감될 수는 없다. 집이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투자의 공간이며 장소라는 자본주의적인 마인드를 얼마나 소거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관건인 듯하다. 기능성과 상품성 그리고 효율성 극대화라는 근대의 가치보다는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공공성 담보가 더 중요한 덕목이라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 티브이 인기 프로에 ‘먹방’만큼 ‘집방’ 프로가 많은데 흥미롭게도 대체로 예능으로 소비된다. 내가 관심 있게 보는 집 관련 프로는 교육방송(EBS)의 <건축탐구 집>이다. 재산 가치와는 무관한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 탓인지 아니면 예능프로가 아니어서 그런지 시청률은 높지 않다. 집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거나 자문하는 경우가 많아 그들이 터득한 삶의 언어를 받아써볼 때도 있다. 어느 숲속 나뭇가지에 3평짜리 자기만의 집을 지은 생활인 이야기나 도심의 골목 끝 5평 면적 자투리땅에 4층을 올린 신혼집을 다시 찾아보기도 하고 집을 지을 때 부부가 각자의 공간을 따로 마련하는 사례가 적잖은 것, 또는 젊은 여성들이나 나이 든 여성들이 “겁 없이” 혼자 산골에 들어가서 사는 그런 사소한 의외성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코로나19 팬데믹이 공간의 공공성과 관계의 윤리성을 새롭게 상상하는 바이러스도 함께 퍼뜨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집에 대한 예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회복하는 하나의 길이 될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자연스러운’ 욕망을 관철시키는 시장 프레임에 갇힌 집과 공간에 대한 자본주의적 근대 기획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지.

조은ㅣ사회학자·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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