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시대변화 잘 알아야 좋은 판사 되죠…대충 하면 잠이 오겠어요?”[존댓말 판결문 쓰는 이인석 판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19. 07:42

“시대변화 잘 알아야 좋은 판사 되죠…대충 하면 잠이 오겠어요?”

등록 :2020-06-20 15:05수정 :2020-06-22 09:41

 

[토요판] 김종철의 여기
존댓말 판결문 쓰는 이인석 판사

존댓말 판결문은 왜?
“나라의 주인인 국민에게
쉬운 판결문과 경어 사용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

좋은 판사란?
“인간 권리가 향상되는 방향으로
시대 따른 법률해석 해주는 사람”
“‘판사가 천직’이라고 안주 않고
이 자리가 내게 맞나 늘 고민해야”

 

“판결문을 받아 보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니, 주인에게 보내는 판결문에 존댓말을 쓰는 게 자연스럽죠.” 이인석 대전고법 판사가 지난 10일 오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대전고법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늘 해오던 익숙한 관행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을 낯설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때로는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주변 사람들과 부딪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단지 먼저 나아가 실천하는 일이라면 크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남이야 뭐라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을 향해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걸어가는 강한 의지만 있으면 되니까. 대개의 선각자들은 이런 유형이다. 그러나 나 홀로 가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과 함께 변화해나가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세심한 정성이 필요하다.존댓말 판결문에 관한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는 시대 요구를 잘 읽는 똑똑한 판사를 상상했다. 새로운 길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딘 것만 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인석(51·호칭 생략) 대전 고등법원 판사와의 만남은 이른바 진정성이라고도 부르는 성품이나 사람의 인격이 우리가 추구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인터뷰는 지난 10일 오후 대전고법 이인석의 사무실에서 했다.―존댓말로 판결문을 쓰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주변 반응은 어때요?“법원 바깥의 분들은 진작에 했어야 하는 일이고 방향이 맞는 것 같다며 굉장히 좋아하시는데 판사님들은 조심스러워하세요. 판결문의 특징이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닌데 기존 관행을 갑자기 바꾸는 게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시는 분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저한테 전화나 문자메시지, 카톡 같은 것을 보내서 자신들도 하고 싶고, 법원의 결정이나 명령문부터 실천하겠다고 말씀하신 판사님들도 있어요.”―판결문의 문투는 이래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죠?“위법을 하면 안 되니까 저도 다른 판사님들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헌법과 법률, 규칙, 명령 등을 찾아봤는데 판결문을 평어체로 써야 한다는 규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존댓말로 썼는데 그 판결문이 대법원에 여러차례 올라갔는데도 잘못됐다는 얘기를 아직 한번도 안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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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쉬운 판결문 공부하면서 결심

 

우리나라 판결문에 존댓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13년이다.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김환수 부장판사는 1977년 긴급조치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렸다는 이유로 징역을 살았던 피해자(성종대)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을 사과드리고 재심 판결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는 한 문장을 존댓말로 썼다. 이인석은 지난해 1월부터 판결문의 주문을 존댓말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어 최근에는 판결문의 주문과 이유 전체를 모두 존댓말로 작성했다.

이인석 대전고법 판사가 쓴 존댓말 판결문의 하나.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존댓말 판결문을 쓰기 전에 다른 분들과도 상의하셨죠?“

그때 법원장 직무대리를 하시던 수석부장님 등 몇분에게는 진지하게 말씀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좋다, 나는 좀 더 지켜보겠다, 이 판사가 먼저 시작해보라’고 흔쾌히 동의를 해주셨어요. 그래서 힘을 많이 얻었죠. 반대하는 분도 있었는데 하나하나 얘기하다 보면 결국은 괜찮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반대하는 이유 중에는 판결문을 존댓말로 쓰면 권위랄까 위신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가장 많았을 것 같아요.“네. 권위 문제가 가장 많이 나오는 반대 논거 중 하나인데요. 그러나 일례를 들면 판결문을 한문으로 쓰고 중간에 조사 같은 것만 한글로 쓰던 시절이 있었어요. 1960년대 초반까지 그렇게 하다가 조진만 대법원장(1961~68년 재직)이 한글로 바꿨는데 그때 대한변협에서 판결문의 권위가 떨어진다면서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 한글로 쓰는 게 권위가 떨어진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잖아요. 법원의 권위 역시 판결문을 반말이나 평어체로 한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죠. 오히려 판결문에 나온 논증이 치밀하면서도 설득력이 있고 국민들이 그 내용에 동의해서 따르면, 그것이 시민들의 생활 규범이 되고 그럼으로써 권위를 획득하는 것 아니겠어요?” ―언제부터 존댓말 판결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존댓말 판결을 써야지라고 생각한 건 2008년쯤이에요. 당시 법원에서 판결문 쉽게 쓰기 운동이랄까 그런 움직임이 많이 있을 때였는데 저는 서울남부지방법원 공보판사로 근무하고 있었어요. 법률 용어에 너무 익숙해서인지 쉬운 판결문이 어떤 건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든 생각이 이건 판사들 머리에서는 한계가 있겠구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겠다 싶어서 수십건의 판결문을 무작위로 뽑아서 국립국어원에 보냈죠. 국립국어원에서 고쳐준 판결문을 동료들과 검토하면서 법률적 의미에 문제가 없는 한 받아들였어요. 그때 판결문 쉽게 쓰기를 왜 하는가에 생각이 이르렀어요. 그건 국민들이 읽으니까 쉽게 쓰는 것이고, 이는 결국 국민 존중과 연결돼 있더라고요. 여러번 읽어도 뜻이 안 와닿는 글을 써서 국민들에게 보낸다는 건 국민을 존중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서 행사하고 있는 공무원인 판사들이 할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죠. 그렇다면 판결문을 쉽게 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존댓말까지 하면 화룡점정 같은 게 아닐까, 나라의 주인한테 판결문을 보내드리는데 존댓말로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당시는 제가 10년차 정도의 판사였기 때문에 막 시작하기가 좀 그래서 그때부터 조금씩 생각을 가다듬어왔던 거죠.”―어떻게 보면 거사를 기다려오신 거군요?(웃음)“3년 전 대전에 올 때 조금 그 생각을 하면서 내려왔어요.(웃음) 서울고등법원에서 하는 건 금방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돼서 오히려 내실을 다지는 데 문제가 있을 거라고 봤죠.

 

튀는 행동이라고? “흑인도 시민이라는 첫 판결도 관행과 다르단 이유로 비난받아 건전한 변화과정을 폄훼 말아야”신뢰받는 법원은? “‘좋은 재판’ 국민에게 제공하고 내부 반대 의견을 환영해야” “평상시 판사의 생각을 밝히고 재판하는 게 민주주의에 더 부합”

대전고법 이인석 판사는 지난 10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 판사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인간의 권리가 더 향상되고 더 살기 좋아지는 방향으로 가도록 법률 해석이나 그런 것에서 하나하나 노력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좋은 판사란 시대의 변화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라고 말했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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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법관 탄핵 여부는 국회 몫”

 

이인석은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98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다. 그 뒤 법원행정처 형사심의관, 서울남부지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등을 거쳐 2018년 2월부터 대전고법 판사로 일하고 있다.―앞서가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평이 튄다는 거잖아요. 판결문을 존댓말로 쓰기 시작할 때 그런 얘기를 듣지는 않았어요?“저는 어떤 일을 할 때 최종 결정을 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분들께 여쭤봐요. 동료들한테 이렇게 하고 싶은데 이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묻고, 반론이나 다른 의견이 들어오면 그것에 대해 연구한 뒤에 다시 ‘이런 것 같다’고 말씀드리는 식이죠. 그렇게 하니까 제가 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와 별개로 ‘튀는 거’라는 의미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제가 예전에 글을 쓴 것도 하나 있기는 한데 사실은 기존에 있는 걸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때 기존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튀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가 있죠. 미국에서 헌법상 시민에 흑인이 들어가는지에 대해 논쟁이 됐을 때 시민에 흑인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게 당시 대법원 판례였지만, 흑인도 시민이라고 판결하는 판사들이 있었는데 그 판사들은 튄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렇지만 그런 판결은 건전한 변화의 과정이지 튀는 일이 아니었잖아요. 그처럼 기존 관행과 다른 행위를 하는 사람을 튀는 부류라고 깎아내버릴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그렇죠.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좋은 의미에서의 튀는 행동이 필요하죠.“사실 건강한 조직은 다양한 의견이 토론되고 거기서 올바른 방향을 찾아내며, 가장 훌륭한 조직은 반대 의견을 많이 내게 해서 그걸 수용할 수 있는 조직이죠. 예컨대 그 조직이 법원이면 법원장이 이야기하는 것과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했다고 튀는 사람으로 몰아서 사람들이 얘기를 못 하게 된다면 그 조직은 굉장히 관료화된 거죠. 반대 의견을 낸 것을 가지고 모난 놈이라고 치부할 게 아니라 오히려 공들여서 반대 의견도 내주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봐주는 게 좋다고 봐요.”이인석은 법원 내 연구모임 중 하나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창립(2011년·초대 회장 김명수) 멤버 중 한명이며, 지난해에는 회장을 맡아 일했다. 인권법연구회는 유엔 국제인권법 매뉴얼인 <국제인권법과 사법―법률가를 위한 인권편람>을 번역 발간하고(2014년), 국내 재판에서 국제인권규범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점검한 <인권판례평석>을 펴내는(2017년) 등 인권법 분야의 발전에 공헌해왔다. 이인석은 <인권판례평석>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인권법연구회는 특히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의 개선, 즉 제왕적인 대법원장의 권한 축소와 사법행정의 민주화를 추구했다. 이를 위해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7년 초 연세대 법학연구원과 공동학술대회를 추진하자, 양승태 대법원이 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압박하고 뒷조사한 사실이 드러나 사법농단 사건으로 확대됐다. 법원행정처가 공동학술대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국제인권법연구회 일부 회원들을 뒤에서 “움직이려 했다”는 증언이 사법농단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나오기도 했다. ―사법농단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훗날 역사가 판단을 하겠지만, 사법행정권의 비정상적인 비대화가 문제를 일으켰고 그 부분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봐요. 법원은 항상 재판이 우선이어야 하고 판사들이 재판을 잘하고 좋은 재판을 하는 것이 법원의 존재 이유이며, 사법행정은 좋은 재판을 지원하는 기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법행정이 너무 비대화되면 오히려 거꾸로 사법행정이 앞장서고 재판은 따라가는 구조가 되죠. 그러면 그건 판사나 국민들에게 다 불행한 일이 되는 거라고 봐요.”―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판사들에 대해서는 수사나 재판과 별개로 헌법에 따라 탄핵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요.“재판과 징계, 탄핵 이런 것이 다 법이 정하고 있는 제도니까, 국회에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탄핵을 추진한다면 거기서 검토해서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떤 이유로 탄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제가 꼼꼼히 못 봐서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 개인적인 생각을 가질 틈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약간 지켜보자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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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깨려면 남성의 집안일 늘려야”

 

이인석은 1969년 서울 강서구 공항동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부친의 2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당시에는 개발이 덜 된 변두리 지역이어서 인근 논밭은 이인석의 놀이터였다. 연날리기와 스케이트 타기 등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무척 좋아했지만, 고교(공항고) 입학 때 대표로 선서를 했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1987년 정치 민주화 직후인 1988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해 군은 면제됐다.―대학 생활은 어땠어요?“정치적 민주화가 됐다고 하지만 지금에 비해서는 훨씬 못 미치는 정도였고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때죠. 당시 대학의 분위기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여전히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죠. 저도 법대 동아리 등에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선배 후배와 토론도 하고 시대의 고민을 함께 하는 정도였어요. 학생운동 하던 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냈는데 제가 특별하게 나서서 뭘 한다든가 그런 거는 없었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는 관심 분야가 많아서 이것저것 책도 보고 하느라고 사법시험 볼 생각을 못 하다가 대학 졸업 후에 할 것도 마땅치 않고 해서 시험공부를 시작했어요.”지금도 이인석은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차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다. 페이스북 계정도 2010년부터 갖고 있다. 2017년 12월 <법률신문> 칼럼에서는 “여성이 직장 내에서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서는 직장에서의 평등과 동등한 대우만으로는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동시에 남성이 가정에서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도맡아야 한다”고도 썼다.―집에서는 가사 분담을 많이 하세요?“제 처도 직장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안일은 딱 반으로 하는 게 원칙이죠. 그런데 기계적으로 분담하기보다는 잘하는 쪽으로 특화해서 합니다. 저는 걸레질과 청소, 정리 등을 잘하는데 그런 것을 주로 하죠. 아이가 자랄 때 육아휴직제도를 알았더라면 그것을 신청했을 텐데 아쉬워요.(웃음)”―시대 변화에 앞서가고, 사고가 개방적인 것 같아요.“개방적이고 앞서간다기보다 그냥 간신히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정도가 아닌가 싶어요. 언론만 봐도 지금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민간우주선 시대 도래 등 엄청나게 세상이 변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시대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재판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리 시대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생각하고, 지금 이 판결이 우리 시대를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판결인지 아닌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물론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에서 재판하지만 그래도 인간 판사가 판단하는 영역이 있잖아요.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 판사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인간의 권리가 더 향상되고 더 살기 좋아지는 방향으로 가도록 법률 해석이나 그런 것에서 하나하나 노력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좋은 판사란 시대의 변화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그건 시류에 영합하는 판사와는 좀 다른 개념이라고 봅니다.”―여러 분야의 책을 많이 읽나 봐요.“전에는 책 보는 게 취미여서 많이 봤는데 요새는 유튜브 이런 걸 더 많이 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쪽에 최신 자료가 더 많거든요.”―판사들은 페이스북을 잘 안 하지 않나요?“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기억이 정확하게 안 나는데, 사회의 일반인들이 페이스북을 다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던 거 같아요. 미국 같은 경우 대법관들이 토크쇼에 나와서 생방송으로 토론도 하고 이러지 않습니까. 저는 법관이 조용히 숨어 있어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판결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미국처럼 나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어떤 이유로 이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국민 앞에서 말을 하고 재판하는 것이 오히려 더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조금씩 페이스북을 하는데 사실 칼럼 쓴 것 등을 주로 올려놓을 뿐 시간이 없어서 활발하게 하지는 못해요.”

이인석 대전고법 판사는 집회와 시위를 막기 위한 이른바 알박기 집회 신고에 제동을 거는 등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하는 내용의 판례를 그동안 많이 만들었다. 이 판사가 지난 10일 오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대전고법 건물 앞에서 2017년 출간에 참여한 <인권판례평석> 책을 들고 서 있다. 대전/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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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박기 집회 금지 등 인권 신장 판례 다수

 

이인석은 인권 신장에 관한 판례 등을 많이 만들었다. 집회 참여자가 저지른 불법행위 책임을 집회 주최자가 어디까지 부담하는지에 대한 서울고법의 판결(2011나16525, 2011나16532 병합)이 대표적이다. 그동안은 “수인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하여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민법(제760조) 규정에 따라 집회 주최자에게도 공동 책임을 물어왔지만, 이인석은 유엔 자유권규약을 근거로 ‘집회 및 시위 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참가자들과 연대하거나 그들을 적극적으로 격려하는 행동을 명시적으로 하는 경우에 한하여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진다’며 집회 주최자의 책임을 한정적으로 해석했다. 건물 앞 집회를 막기 위해 건물 관리인 등이 먼저 집회 신고를 장기간 내는 이른바 ‘알박기 집회’를 금지한 재판(2011구합16834)에도 그의 고심이 녹아 있다. 항공기 조종사가 수염을 기르는 것을 금지한 항공사 취업규칙에 대해서도 개인의 기본권 침해라는 판결(2017두38560)을 내린 바 있다.―앞으로 판사로서의 계획은요?“재판 열심히 하는 거죠. 훌륭한 재판을 받는 국민은 진짜 행복한 국민이거든요. 미국 건국 초기에 건국의 아버지들이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호소해서 올바른 절차에 따라 존중을 받으면서 좋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국민이 가장 행복한 국민이라고요. 그런 생각을 받아서 미국에서는 강력하고 독립되고 존경받는 법원이 탄생한 것이죠. 우리 판사들이 미국 법관의 지위가 높은 것을 굉장히 부러워하는데 그런 지위를 국민들에게 부여받으려면 그만큼 국민을 존중하고 좋은 재판 진행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에서 볼 때 존댓말 판결문은 방향이 맞다는 확신을 저는 가지고 있어요.”‘좋은 재판’을 고민하는 그에게 정치인 등 다른 직업을 혹시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가를 차마 직접 물을 수는 없었다. 판사 일을 마친 뒤에 다른 일을 할 계획은 없는지 에둘러 물어봤다.“대학 때 훌륭한 법조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감명 깊게 들은 강의가 있어요. ‘자기는 평생 판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면서 ‘이것만이 내 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판사는 오히려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오히려 내가 이걸 판단하는 게 과연 맞는가, 내가 이 지위를 계속 가지고 있는 게 맞는가를 늘 고민하는 사람이 재판 당사자들의 고민과 아픔을 진정으로 알고 올바른 판결을 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세월이 갈수록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죽을 때까지 판사를 하겠다는 말씀은 안 드립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상황에 따라 못 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대신 판사를 하고 있는 순간은 진짜로 최선을 다해야죠. 재판을 받는 분의 인생이 걸려 있고, 또 재판에서 나오는 규범이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데 이걸 대충 하면 잠이 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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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홍혜원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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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토요판] 김종철의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