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세상읽기] 상상하고 실천하자, 인간 본성 그 너머를 / 이병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22. 18:30

원형교차로(회전교차로)

 

[세상읽기] 상상하고 실천하자, 인간 본성 그 너머를 / 이병곤

등록 :2020-10-21 17:06수정 :2020-10-22 11:35

 

이병곤 ㅣ 제천간디학교 교장

 

레넌은 그의 자작곡 ‘이매진’에서 노래한다.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보길, 그건 어렵지 않지. 나라를 위해 죽거나 죽이는 일도 없어.’ 얼핏 사랑 노래 느낌을 주는 음악이나 가사 전체를 새겨보면 이 곡만큼 ‘속삭이는 칼날’을 숨긴 노랫말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간 본성은 선한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청소년기에 전혀 다른 나를 만났다. 내 행동은 사회가 바람직하다는 기준 안팎을 넘나들며 삐걱댔다. 죄책감과 부정적 자아 인식이 뒤따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과 지식을 쌓아가면서 인간 본성을 선악으로 명확하게 나눌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인간은 경쟁이나 협동이라는 한가지 속성만 타고나지도 않았다. 홉스의 성악설은 물론, 인간의 공격성과 경쟁 본성을 용인하는 데즈먼드 모리스의 학설까지 모두 지나치다. 반대로 인간의 사회적 연대와 상호부조 행동을 자연법칙으로까지 바라본 크로폿킨의 견해를 그대로 따르고 싶지도 않다.

 

사람의 본성을 규정할 때 여러 사상가들은 자연의 특성을 참조한다. 자연을 보라, 적자가 생존하지 않는가. 아니다. 자연의 다른 면을 보라, 상호부조는 인류 이전 모든 동물의 본능이자 자연법칙 아니었는가. 이러한 밑그림 위에 갖가지 사례, 법칙을 담는다. 수백쪽에 이르는 이론서를 지어 사람들 앞에 내놓는다. 설득되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런 면에서 모든 이론은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이다. 한 나무에 달린 열매 가운데 가장 번듯하고 손쉬운 것만 따서 광주리에 모으는 행위 같으니까.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면 인간 본성 이론의 허술함이 드러난다. 성장 과정을 이제 막 통과하고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루소가 적확하게 표현한 대로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의 모습 그대로다. 인간의 양면을 모두 품어 안지 않으면 교육자로서의 자리를 잃는다.

 

3년 전 어느 날 새벽 1시쯤이었다. 밀린 원고 쓰느라 머물던 교장실. 느닷없이 문이 스르륵 열렸다. 고2 남학생 ㄱ이 꾸벅 인사를 했다. “곤쌤, 저희들 밤에 배가 고파서 식당에 밥 좀 먹으러 내려왔습니다. 규칙 위반인 거 알지만 간장에 밥 비벼 먹고 깨끗이 치운 뒤 빨리 기숙사 복귀할게요.” 녀석의 눈이 내 눈과 10초 동안 부딪혔다. ‘아, 저 도저한 습관성 배고픔을 어찌할 것인가.’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난, 네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지금 내 눈에 보이지도 않아.” ㄱ은 순수한가, 영악한가, 또는 지나치게 솔직한가, 그것도 아니면 눈치 없는 아이인가? 나는 인정 많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교장인가, 원칙 없는 동시에 불공정하고, 부정직하며, 분별력 없고, 학생 안전에 불감증인 불량 교육자인가?

 

교육실천이 회전교차로 같은 방식으로 깔끔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때때로 일어난다. 운전자가 원형교차로를 안전하게 통과하기 위해서는 아주 간단한 두가지 규칙만 지키면 된다. (1)회전하고 있는 차량이 우선이다. (2)교차로 진입 차는 왼쪽을 살피며 회전하는 차가 없을 때 들어선다. 회전교차로를 공중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면 어떻게 차들이 서로 안 부딪치고 신호등 없는 교차로를 지나는지 예술적이기까지 하다. 간단한 원칙 지키기와 멋진 결과물. 회전교차로에는 체리 피킹이 없다. 그렇다. 왜 인간의 시선으로 자연을 해석하려 드는가? 자연은 자연일 뿐이다. 아이들을 왜 규칙으로 옭아매고, 인간 본성에 꿰어 맞춰 가르치려 드는가?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선 이후 국가가 만든 학교교육이 나타났다. 단순미와 기능미, 소박함이 매력이었던 ‘교육에서의 회전교차로’를 짓뭉개고 들어섰던 것이다. 근대 국가는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경쟁과 적자생존 원리에 바탕을 두어 해석했다. 그 사명에 충직한 교육기관을 만들다 보니 학교는 규율권력이 작동하는 비인격적 효율 체제로 변모한 것이다.

 

‘학교가 없다고 생각해보길. 그건 어렵지 않지. 두려움이 사라지고, 배움은 돌아올 거야.’ 존 레넌이 살아 있다면 이 가사를 ‘이매진’ 4절로 사용해주길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내가 몽상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몽상가가 아니다. 언젠가 그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대안교육 현장을 지키고 있는 현실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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