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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람_칼럼 읽는 남자] 나의 불륜을 기억할게요 / 임인택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22. 18:36

[칼람_칼럼 읽는 남자] 나의 불륜을 기억할게요 / 임인택

등록 :2020-10-21 17:08수정 :2020-10-22 02:38

 

임인택 ㅣ 여론팀장

 

“내로남불”이 사자성어인 양 언론에 사용된 건 2015년부터다.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가 미국 출장 중 평일 오후 골프 친 일이 알려지자 “미국은 금요일 오후부터가 주말”이라고 말해 화를 키웠다. <제이티비시>(JTBC)는 “학교는 공부하러 가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라며 무상급식을 반대한 홍 지사의 말을 따 “출장은 일하러 가는 거지 골프 치러 가나요” 하며 “내로남불” 네 글자를 박았다. 비교적 신조어이나, 이젠 그 말을 던지는 사람이나 그 말을 맞는 사람이나 혈압 차이는 없을 법한 상투어가 돼버렸다.사실 “내로남불”이 원문, 즉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으로 미디어에 오르내린 때는 1980년대였다. 1984년 정신과 의사의 <조선일보> 칼럼은 “로맨스는 내가 하는 것, 스캔들은 남이 하는 것”이란 분류에 “남자가 저지르면 로맨스, 여자가 저지르면 스캔들, 안 들키면 로맨스, 들키면 스캔들”이란 세태까지 더했다. 이중적이고 차별적이고 위선적인 인식과 태도를 전두환의 정의사회구현 시대부터 두루 비튼 언술인 셈이다.이를 ‘정치 문법’으로 꽂은 이가 박희태(82) 전 한나라당 대표다. 1996년 6월 야당이 신한국당의 의원 영입 행위를 비판하자 “자기가 부동산을 사면 투자요 남이 사면 투기이며 자기 여자관계는 로맨스고 남의 여자관계는 스캔들이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고 맞받아친 게 화제가 된 이래 “로맨스”와 “스캔들”은 모국어처럼 정치인과 언론에 의해 활용된다.박희태는 검찰 출신 초선으로, 대개 언론 출신이 맡던 관례도 깨가며 민정당의 대변인(1988년)이 되었을 만큼 화술이 좋다고 평가됐는데 당연히 그 말에 저격된 이도 적지 않았을 거다. 그가 대변인으로서 첫 조준 비판한 이가 한 ‘버럭’ 한다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다. ‘내로남불’을 정치언어로 창제한 달변가는 정작 골프 캐디를 성추행한 뒤의 “딸 같아서”라는 해명(2014년)으로 더 기억이 된다. 그 시절 그는 서울시경 국감장에서 경찰한테 성추행당한 여대생들의 사례를 세세히 거론한 초선 여성 의원에게 ‘언어 품위’나 “듣기 곤혹스럽다”고 따진 동료 의원과 국감장을 나가버린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1996년 10월 이맘때 일이고, 당시 초선 의원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다.지난 한달 <한겨레> 칼럼 곳곳에서 그 ‘내로남불’이 톺아졌다. 조어된 이래 이처럼 깊은 분석이 어디 있었을까 싶은데 한편 저 식상한 낱말이 거듭 현상으로서 활황이란 사실을 투영하기에 반가울 수만은 없었다.‘정치 부족화’된 시민의 일견 태도를 “알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알 수 있음에도 알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는 박권일 칼럼은 “사태의 다양한 측면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볼수록 대상과의 동일시에서 오는 쾌락은 급격히 줄어”들기에 “효능감을 극대화하”고자 “철저한 무지도 치열한 앎도 아닌, 선택적 무지”를 취한다고 말한다. “내로남불”의 인식론은 이 경로의 수단이자 결과로 읽힌다.로맨스와 불륜은 오직 ‘편’과 ‘거리’로 식별되기에 철저히 위계적인 결과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내로남불은 “언어를 정지시”키는 “틀린 비유”이자 “무의미한 말”이라고 선을 긋는다. 때로 ‘객관이 강자의 주관’인 것처럼, 로와 불은 (더군다나 둘 다 ‘사랑’이므로) 객관적 실체로 판별되기 어렵다. 해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백서’식의 사고는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상대방을 이기려는 의지”라는 정희진의 이해는 “싸우다 보면 내로남불의 실체는 내불남불임이 드러나는데 … 내로남로로 결론짓는다. 비김으로써 위장하는 것이다. 이러니 내로남불이나 내불남불이나 내로남로나 별 차이가 없고 결국은 올(all)불이 된다”는 작가 김훈의 이해로 상술된다.박희태의 일화로 보듯, 정치언어 내로남불은 보수 기득권이 민주 세력에게 던진 올가미(프레임)로 출발했다. 주로, 강고한 보수여당이 소수야당의 공세를 지그시 누르고 퉁기려던 수사가, 지난해부턴 같은 개혁진영 안에서 중심부를 휘감는 언어로 자리잡은 모양새다.21일 민주당을 탈당한 정치인 금태섭도 “우리 편에 한없이 관대하고 상대방에게는 가혹한 ‘내로남불’”의 행태를 한 이유로 들었다. 맥락과 진실을 모두 파악하긴 어렵다.오직 실체가 있다면,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정권 3년여 동안 개혁은 완성된 게 하나 없는데 개혁세력은 빠르게 분열 중이란 점이다. 나와의 거리로 진실을 재고 규격화하는 시대라면 내로남불이 죄의식도 덜어주는 알뜰한 언어습관이긴 할 것이다.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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