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범민족 통일 추진위’ 꾸리고 개성에 ‘평화·통일대학’ 세우자”[박한식의 평화에 미치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2. 24. 17:32

“‘범민족 통일 추진위’ 꾸리고 개성에 ‘평화·통일대학’ 세우자”

등록 :2020-12-08 22:57수정 :2020-12-08 23:22

 

박한식의 평화에 미치다
‘6·15 선언’ 가장 대표적 통일 합의
정권 바뀌자 다시 군사적 긴장 고조
남 진보보수·북 정권·재외동포까지
‘추진위’에서 모두 공유할 통일관부터

‘한 민족·두 국가·세 정부’ 모델 제안
제3정부는 낮은 단계의 연방정부 형태
‘분단사 자산’ DMZ 통일 영토로 삼아

제3정부 도안·설계할 ‘통일대학’ 시급
1636년 청교도 ‘하버드대학’ 설립처럼
‘분단문화 해체·통일문화 창출’ 중요

건강·예술·정치·인문·환경대학 등
5개 단과대 제안…‘세계 평화 기지’로

길을 찾아서-45회 한민족 통일 실천방안-마지막회

박한식 교수는 분단 75년 동안 남북한의 정치적 변동 때마다 통일정책이 뒤집히는 ‘관성’을 지적하며, 한민족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통일관을 도출해낼 기구로 ‘범민족 통일 추진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다. 실제로 ‘6·15 남북공동선언’ 20돌을 맞은 올해 남과 북, 그리고 재외동포는 제각각 다른 행보를 보였다. 남쪽에서는 6월15일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 앞에 2000년 6월15일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동선언’을 발표하던 순간의 사진을 새긴 대형 펼침막을 걸어 20돌을 기념했다. 사진 연합뉴스

 

통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북 간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늘 제자리걸음인 현재의 한반도 상황과 요원한 남북통일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때로 좌절감마저 들게 한다. 지금까지 남북한이 함께 마련한 가장 대표적인 통일의 길은 ‘6·15 공동선언’이었다. 6·15 선언에서는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결의했다.‘6·15 선언’의 정신에 따라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에서는 남북 간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는 성과가 있었으나,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 교류는 막히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또다시 최고조로 치달았다. 이런 역사적 패턴을 염두에 둘 때,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 간의 관계가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남한에 이른바 ‘보수정권’이 다시 들어서게 된다면, 다시 경색 국면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요컨대 ‘6·15 선언’은 남한의 보수진영과 공유되지 못하는 명백한 한계를 보여주었고, 이런 역사적 패턴이 되풀이되면 한반도의 통일은 무한히 지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21대 국회와 협력해 ‘4·27 판문점 선언’의 비준을 추진하려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통일 전의 동·서독 관계와 남북한 관계는 역사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측면 등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독일식 ‘흡수통일’이 한민족의 통일 모델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전 연재에서 이미 지적했다. 무엇보다 통일정책을 살펴보면, 서독과 남한이 보여주는 차이점이 분명하다. 서독에서는 진보적 사회민주당에 속했던 빌리 브란트가 1970년대 초반부터 시행하기 시작했던 ‘동방정책’(Ostpolitik)이 보수적 기독교민주당이 집권한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시행되었다.서독의 진보-보수 양당은 서로 다른 정치적 신념에도 독일 통일에 대한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동방정책을 20년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른바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은 통일에 대한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지 못할뿐더러, 그들의 통일관은 극심하게 상충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보수정권이 집권했을 때, 진보정권의 산물인 ‘6·15 선언’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이유도 의지도 없었던 것이다.

6·15 남북 공동선언 20돌 바로 다음날인 지난 6월16일 북한은 ‘6·15 선언’의 상징적인 산물인 개성공단의 장기 폐쇄에 항의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하고 17일 폭파 장면 동영상을 공개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제공

민주평통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회의는 ‘6·15’ 20돌을 맞아 지난 5월13일(독일 현지시각) 온라인 화상으로 운영회의를 열어 남북 당국에 ‘6·15 선언’의 이행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로 결의했다. 사진 재외동포신문 제공

 

한국의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한반도 통일정책을 안정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진보·보수, 북한 정권, 그리고 재외동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통일관을 정립해야만 한다. 현재 재외동포는 약 800만명에 이르지만, 통일 논의에서는 대체로 배제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외동포가 축적한 풍부한 경험은 민족의 자산이 아닐 수 없으며, 그들 역시 통일의 주역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민족 모두가 공유하는 통일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남한의 진보·보수 대표자, 북한의 대표자 그리고 재외동포 대표자가 모두 참여하는 ‘범민족 통일 추진위원회’(가칭) 구성이 시급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범민족 통일 추진위원회’는 남북한의 정치적 변동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한민족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통일관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범민족 통일 추진위원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하고 발전시키기를 희망하는 의제로 ‘한 민족, 두 국가, 그리고 세 정부’(One nation, Two states, and three governments) 통일 모델과 ‘평화·통일대학 설립’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박한식 교수는 지난 40여년 동안 미국과 남북한을 오가면서 정립한 자신만의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을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미국 애틀랜타한인회에서 연 강연회 모습이다. 사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애틀란타협의회 제공

 

이는 통일은 절체절명의 민족 과제라는 사명을 가지고 남과 북 두 국가의 현존 체제가 상호존중 아래 존속하면서, 제3의 정부, 즉 통일정부를 구성하고 수립하자는 방안이다. 남과 북이 각자 자기모순(남은 빈부격차와 불평등한 분배, 북은 가난과 국제적 고립)을 성실하게 극복하면서, 제3정부는 남과 북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동질성을 진작시켜 합을 만드는 통일 이상촌을 건설하는 구실을 하는 새로운 실험 형태의 정부가 되는 것이다. 제3정부는 외교와 국방 같은 강력한 권한을 소유하지는 않지만 남북연락사무소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독자적인 영토를 가지고 입법·사법·행정의 기능과 권한을 행사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정부 형태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나는 또한 전쟁의 상흔이자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가 오히려 한민족 통일 역사에 있어 값진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3정부는 비무장지대를 고유 영토로 관장하면서 이산가족, 재외동포, 그리고 누구든지 와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공민권을 부여함으로써 주체적인 ‘독자 정부’, 다시 말해 통일을 실험하고 실천할 수 있는 통일정부의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정부가 설계하고 건설하는 통일 이상촌은 남과 북의 이질성을 물리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을 통해 극복해 인권이 보장되고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며 친환경적인 주거환경에서 쾌적하고 윤택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한민족 공동체가 될 것이다.지금 비무장지대는 정전협정상 유엔사 군사통제 아래 있는 게 현실이지만, 남과 북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제3정부 수립을 합의한다면 남북한이 비무장지대에서 유엔사의 철수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도 마련되는 것이다. 물론 비무장지대에 남북한이 합의하여 제3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라는 지레짐작으로 시도조차 않고 포기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제3정부 수립에 관한 논의는 많은 노력과 지혜 그리고 철저한 공부가 필수적인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이상적인 제3정부의 모습을 제시하고 도안, 설계하는 일이 시급한 통일 과제라고 생각하면서 그 일을 위해서 우선 평화·통일대학 설립이 필요하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박한식 교수는 ‘범민족 통일 추진위’ 주도의 통일방안 연구기구인 ‘평화·통일대학’을 개성에 설립하자고 제안한다. 사진은 2004년 6월30일 개성공단 시범단지 준공식 장면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평화·통일대학이 비무장지대에 설립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미군이 관장하는 유엔사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사안이기 때문에 우선은 남북한 합의만으로도 가능한 개성에 설립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개성은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우리 민족에게는 의미 있는 지역이다. 개성공단은 경제 분야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남과 북이 합의하여 실질적으로 15년 이상 통일의 과정을 실험한 경험이 있고, 통일 고려의 수도였으며, 현재도 성균관이 존재하는 교육도시로서 개성 평화·통일대학이 들어서기에는 최적의 입지이다. 개성 평화·통일대학은 한민족 통일국가에 부응하는 정치 체제와 통일문화를 창출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개성 평화·통일대학이라는 생소한 기구를 제안하는 까닭은 분단 70년의 역사에 대한 이론적 반성 때문이다. 주지하듯, 지난 75년은 남북 간의 격렬한 갈등과 대립의 역사였고 남북갈등과 남남갈등은 그 역사 속에서 축적된 분단문화의 파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그리고 현재의 문재인 정부까지 대북 화해정책이 남한 내부의 남남갈등을 반복적으로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단의 역사에서 축적된 분단문화가 강력한 ‘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이처럼 강고한 분단문화가 건재한 상태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 정부가 각고의 노력 끝에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정치적 합의에 도달한다손 치더라도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대단히 희박하다. 남북 사이에 추진되는 통일정책과 통일제도가 한반도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정책과 제도를 안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통일문화가 먼저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만 한다고 판단된다.개성 평화·통일대학은 분단문화를 철학적으로 해체하고,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통일문화를 창출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이렇게 마련된 통일문화를 한반도에 확산시키고 정착시키는 임무를 선구적으로 수행함으로써, 한민족의 통일정책과 통일제도가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더 나아가 개성 평화·통일대학에서 창출된 통일문화를 전쟁 상태에 처한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세계 평화를 선도하는 구실도 수행할 것이라고 믿는다.개성 평화·통일대학 설립을 제안하면서, 나는 영국의 퓨리턴(청교도)이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와 약 16년에 걸쳐 최소한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자마자(1636년) 미국 최초의 대학인 하버드대학을 설립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당시 퓨리턴은 하버드대학을 설립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가호로 뉴잉글랜드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우리의 거처를 마련했고, 우리의 생필품을 준비했고, 하느님에게 예배드릴 수 있는 편리한 공간을 마련했고, 시민정부까지 설립했습니다. 우리가 그다음으로 열망하고 기대한 것 중 하나는 배움을 증진시키고, 그것을 영속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 현재 활동하시는 우리의 목사님들께서 돌아가셨을 때, 우리 교회에 무지몽매한 목사님들만 남게 되는 상황을 매우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박한식 교수는 ‘개성 평화·통일대학’의 본보기로 163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청교도들이 세운 최초의 교육기관인 하버드대학을 제시한다. 하버드대학의 투어 프로그램은 입구인 존슨 게이트에서 설립 이념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사진 위키피디아

 

지금 이 구절은 하버드대학 정문 옆 벽면에 새겨져 있으며, 퓨리턴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 즉 기독교적 이상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는데,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학을 통해서 기독교적 이상국가에 부응하는 ‘삶의 양식’(Lebensführung, way of life)을 지속적으로 교육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판단했었다. 현재 하버드대학이 미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384년 전에 퓨리턴이 내린 판단은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버드대학의 입구인 존슨 게이트에는 뉴잉글랜드에 최초로 정착한 청교도들이 ‘기독교적 이상 국가 건설’을 내걸고 1636년 대학을 설립했던 이념을 새긴 명판이 붙어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제공

 

우리가 한민족 통일국가라는 전인미답의 세계로 진입하고자 할 때, 개성 평화·통일대학을 통해서 분단문화에서 육성된 남북한의 강고한 분단 지향적 삶의 양식을 철학적으로 해체하고, 통일국가에 부응하는 통일 지향적 삶의 양식을 새롭게 정착시키는 것은 통일국가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새로운 국가 건설만큼이나 어렵고 복잡한 한반도 통일을 모색하는 데에는 하버드대학에 버금가는 교육기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개성 평화·통일대학을 구성하는 5개의 단과대학을 아래와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건강대학은 남에서 발달한 서양의학과 북에서 발달한 고려의학을 창의적으로 아우르는 대학으로, 치료 중심의 서양의학과 예방 중심의 고려의학을 조화시켜, 그 성과를 국제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단과대학은 예술대학이다. 예술의 본질은 이질성의 조화로 정의될 수 있다. 남과 북이 협력해서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열고, 또 그것을 세계로 확산시키는 노력을 꾸준히 경주할 때, 남과 북의 조화로운 통일문화 또한 배양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셋째는, 정치대학이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분배의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남의 자본주의와 북의 사회주의를 창의적으로 조화시킴으로써 분배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이론과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정치대학의 주요 과제다. 넷째, 인문대학은 남과 북의 문화적 통일을 준비하는 대학이다. 물질 중심의 남한 문화와 북한의 이념 중심 문화를 창의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는 이론과 방법을 확립하는 연구를 수행할 대학이다. 또한 세계 평화를 위한 평화이론을 개발하고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토대를 확립하여 인간 존엄에 기반한 다양한 인권 신장을 추구하는 연구도 병행하는 대학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생태 환경대학이다. 무분별한 환경 파괴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다다랐고,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전염병의 창궐로 인류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 인간과 환경이 유기적 상호 공생을 할 수 있는 연구와 지혜가 이 대학의 주요한 연구가 될 것이다. <끝>

 

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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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박한식의 평화에 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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