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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장산곶매 같았던 백기완의 민주·통일 한평생

성령충만땅에천국 2021. 2. 16. 11:19

[사설] 장산곶매 같았던 백기완의 민주·통일 한평생

등록 :2021-02-15 18:01수정 :2021-02-16 02:47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89. 이날 오전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황해도 장산곶 마을에 깃든 매 한마리. 약한 동물들 괴롭히지 않고, 한해 딱 두번 자기 둥지 부수고 대륙으로 사냥 나가던 장수매. 어느 날 대륙에서 거대한 독수리가 쳐들어와 마을을 쑥밭으로 만들자 장산곶매 날아올라 피투성이 되도록 싸웠다. 독수리를 물리치고 낙락장송 위에 앉은 장산곶매. 이번엔 큰 구렁이가 매를 노리고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소리치며 기진맥진한 매를 깨우려 했다.

 

백기완 선생의 삶에는 동시대를 거친 누구나 마찬가지로 우리 현대사가 응축돼 있다. 황해도가 고향인 선생은 해방 뒤 서울로 내려왔다가 남북이 갈리는 바람에 이산의 아픔을 겪었다. 식민통치와 전쟁으로 얼룩진 유소년기에는 마땅한 학교 교육도 받지 못했다. 선생의 삶이 남달랐던 것은 척박한 상황에서도 먼저 깨어나 앞서서 나갔기 때문이다. 이십대인 1950년대부터 야학운동, 도시빈민운동, 농민운동을 벌였고 4·19혁명과 한-일 협정 반대운동,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타도에 앞장섰다. 현대사를 옥죄었던 식민통치의 잔재와 분단, 독재, 산업화의 그늘에 맞서 몸을 던져 싸우는 게 선생의 운명 같은 날갯짓이었다.‘장산곶매 이야기’와 ‘임을 위한 행진곡’ 등 글로 남긴 이야기만큼이나 수많은 거리에서 비분과 신명 서린 연설로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 선생은 민중의 이야기꾼이었다. 그 사자후는 노년에도 사그라들 줄 몰랐다. 이라크 파병, 용산 참사, 한진중 희망버스,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박근혜 탄핵 등 민중의 아픔과 희망이 분출하는 현장마다 백발성성한 선생의 모습은 나부끼는 깃발 같았다. 숱한 투옥과 고문으로 몸에 새겨진 상처보다 가슴속 뜻이 더 선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병상에서 마지막 남긴 글귀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응원하는 것이었다.몸이 부서져라 살았지만 선생의 꿈을 이루기엔 여든아홉해의 생은 짧았던 것일까. 그토록 염원하던 통일을 눈에 담지 못했고, ‘너도나도 일하면서 모두가 함께 잘살되 올바로 사는 노나메기 세상’도 성취보다는 지향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선생의 미완의 삶을 따르고자 함은 명예나 이름을 탐하지 않고 낮은 곳에 몸 던진 그의 함성 같은 한평생이 사람에게 귀한 까닭이다.깨어난 장산곶매는 발과 부리로 구렁이를 쪼아 물리쳤다. 마을 사람들의 함성 속에 장산곶매는 동트는 하늘로 훨훨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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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백기완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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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983060.html#csidx74e4d07b37aab79a7f60701d3de9e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