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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의 ‘셰에라자드’

성령충만땅에천국 2021. 4. 3. 18:19

포로수용소의 ‘셰에라자드’

등록 :2021-04-02 04:59수정 :2021-04-02 10:54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유제프 차프스키 지음, 류재화 옮김/밤의책(2021)

 

단박에 읽어버릴 만큼 얇은 책의 표지를 보며 여러 단상이 떠올랐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라는 제목에서 어떤 존엄을 향한 열망을 읽어냈다. 부제에 눈길이 갔다.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 생뚱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누가 포로수용소에서 프루스트를 강의한단 말인가. 분명히 그 난해하다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주제로 강의했을 텐데, 이게 가능한가 싶었다.

 

그러다 서문을 채 몇 줄 읽지 않고 책에 매료되고 말았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일군의 폴란드 장교가 1939년 10월부터 1940년 봄까지 스타로벨스크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소련도 덩달아 쳐들어왔고, 이때 소련군에 잡힌 폴란드 장교가 수용되었던 것. 포로 처지에서 보자면 히틀러든 스탈린이든 별 차이가 없었을 성싶다. 두 체제는 함께 대량학살이라는 전쟁범죄를 저질렀잖은가. 그 공포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폴란드 장교들은 지혜를 발휘했다. 각자의 전공을 살려 품앗이 강의를 하기로 한 것. 몇 사람이 먼저 나서서 군사학, 역사학, 문학을 강의했다. 그들은 이야기의 힘을 빌려 영혼을 좀먹는 쇠약과 불안을 이겨낸 셰에라자드의 후예였다.

 

폴란드 장교들은 그랴조베츠수용소로 이송되었다. 폐허가 된 수도원 건물에 차려진 수용소였다. 장교들은 강의를 계속하게 해달라고 탄원했다. 여러 차례 거부당하다 겨우 허락을 받았다. 강의록을 작성해 사전검열을 받아야 하고, 장소는 식당으로 제한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독서광인 한 박사는 책의 역사를 강의했고, 저널리스트는 영국의 역사와 여러 민족의 이주역사를 맡았다. 공대 교수는 건축사를, 등산광인 중위는 남아메리카를 주제로 강의했다. 화가인 지은이는 프루스트 강의를 맡았다.

 

퍼뜩,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는 지적이며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수용소에서 육체적인 고통이야 크게 겪었겠지만, 내면의 자아는 비교적 적게 손상되었으리라고 말했다. 끔찍한 현실에서 빠져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줄 알아서다. 지은이는 이 수업이 “영영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느끼던 우리에게 다시금 세상 사는 기쁨을 안겨 주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니, 이 강의록은 “살아나올 수 있게 도와준 프랑스 예술에 바치는” 공물인 셈이다.

 

편집자에 따르면 지은이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참고해 강의할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가히 놀라운 기억력과 이해력”으로 작품을 정확히 인용했다고 밝혀놓았다. 강의록을 읽어보면 지은이는 어느 연구자 못지않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깊이 있게 해설한다. 다시 퍼뜩, 떠오른 책이 있었다.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 그는 나치정권를 피해 터키로 망명했다. 참고도서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미메시스>를 집필했는데, 비평사에 남을 명저가 되었다. 자료더미에 빠져 길을 잃는 대신 더 많은 시간을 쓰기에 집중해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을 써낸 덕이다.

 

책을 덮고 나서 삶의 방공호로 대피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이 온다면, 나는 과연 셰에라자드가 될 수 있을까 가늠해보았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그건 가능할 게야, 라는 생각에 마냥 행복했다.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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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이권우의 인문산책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89310.html#csidxe7f42c05f892465804b5da6c7737a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