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 목사 성경칼럼 (Facebook)

욥기 34:1-20 “다툼이 허망한 까닭”

성령충만땅에천국 2021. 12. 15. 16:53

욥기 34:1-20 “다툼이 허망한 까닭”

34:14-15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1. 하나님을 믿건 믿지 않건 누구나 죽습니다. 모든 육체가 다 죽습니다. 죽고 나면 매장을 하건 화장을 하건 시신으로 처리할 따름입니다.

2. 동일한 죽음을 놓고 상반된 해석을 합니다. 살아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죽음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은 두 가지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생명은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4.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들도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면 결코 평안하지 않습니다. 죽음이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두려움 앞에 서게 됩니다.

5. 신앙은 생명의 주인이 뜻을 정하고 생명을 허용할 수도 있고 거두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겸손합니다.

6. 신앙이 바르다는 것, 신앙이 깊다는 것, 신앙이 성숙하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따라서 겸손과 불가분입니다. 교만하다면 병이 든 까닭입니다.

7. 겸손은 상대가 누구이건 무시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상대가 누구이건 나보다 낫게 여깁니다. 나를 항상 낮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8. 하나님이 영과 목숨을 거두어가시면 흙이요 먼지에 불과한데 어떻게 교만하겠습니까? 그런 인간들끼리 서로 뭘 다투고 뭘 나무라겠습니까?

9. 따라서 좀처럼 논쟁하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비판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다툼은 극도로 조심합니다. 늘 자신을 돌아보고 말씀에 비춰봅니다.

10. 엘리후는 논쟁을 보다 못해 논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모두를 비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습니다.

11. 물론 논지의 대부분은 옳습니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후의 변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12. 하나님을 변호할 목적으로 다툼을 일으킨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십자가로 죄인들 다툼을 끝내십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변호하느라 사람을 비난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은 그 사람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