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양심을 저버리지 못했던 송기숙 교수 [박석무]

성령충만땅에천국 2021. 12. 20. 08:03
제 1190 회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양심을 저버리지 못했던 송기숙 교수
   며칠 전 병석에 계시던 송기숙 교수께서 기세(棄世)하였습니다. 병환이 깊어 문병할 방법도 없어 가끔 소식만 전해 듣다가, 끝내 뵙지도 못한 채 부음을 접하고 말았습니다. 파안대소하던 그 호탕한 모습이라도 마주보고,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고 이별했다면 그래도 덜 서운했을 것인데, 그러지도 못하고 빈소에 찾아가 인자하게 미소짓는 영정을 대하고보니 더욱 슬프고 서러웠습니다. 70년대 초에서 80년대 후반, 유신독재와 전두환의 잔인한 독재와 싸울 때, 우리는 하루라도 만나지 않는 날이 없었고, 만났다 하면 술을 마시지 않던 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가깝고 친했던 선배 민주투사를 보내고 보니 참으로 마음이 허전하고 텅 빈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우리가 열심히 싸우기만 하면 민주주의를 회복하여 살만한 세상이 오리라는 기대와 희망 때문에 두려움과 무서움에 벌벌 떨면서도 독재에 대항하는 투쟁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민주주의가 다시 멀리 후퇴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염려가 깊어지는 때에, 송 교수의 기세는 더욱 불안과 염려를 안게 해줍니다. 혼자 가면 외롭지만, 둘이서, 여럿이 함께 가면 그래도 덜 무섭고 두렵던 것이 그때의 일인데, 함께 했던 분이 안 계시면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다산의 말씀을 통해 송 교수를 추모해 보려고 책을 뒤졌습니다. 다산은 ‘또 다시 두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계(又示二子家誡)’ 라는 글에서 육자정(陸子靜)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주 사이의 일이란 바로 자기 내부의 일이요, 자기 내부의 일은 바로 우주 사이의 일이다.” 라고 인용하고는 “대장부라면 하루라도 이런 생각이 없어서는 안 되니, 우리 인간의 본분을 애초에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라는 교훈을 아들들에게 내렸습니다. 이 말을 다시 음미해 보니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적당히 살다가 가서는 안 되고, 무거운 사명감을 느껴 사명감을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다간 사람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송 교수와 함께 술을 마셔본 사람이면 모두가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투철한 사명감이 있었고 그 사명감을 실천하려는 굳은 의지가 있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유신독재의 무자비한 인권탄압, 전두환 독재의 잔인함을 묵과해서는 절대로 안 되니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 곧 우주 사이의 진리를 자신의 양심에 담아두고, 양심을 속일 수 없다는 그 순진함에서 그는 괴로워하고 고민하면서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수와 교사들의 교권을 박탈해서, 교수와 교사들이 학생데모 방지의 앞잡이로 노예처럼 살아갈 때, 양심을 속일 수 없다는 순진성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떨치고, ‘국민교육헌장’에 정면으로 맞서는 ‘우리의 교육지표’를 선언하여 유신의 심장에 화살을 꽂는 큰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직에서 파면되고 고문 끝에 구속되어 감옥에 갇혔지만, 그는 호연지기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다산은 계속해서 교훈을 내립니다. “무릇 하늘이나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윤택해져 호연지기가 저절로 우러나온다. 만약 포목 몇 자, 동전 몇 닢 정도의 사소한 것에 잠깐이라도 양심을 저버린 일이 있다면, 이것이 기상을 쭈그려들게 하여 정신적으로 위축을 받는 것이다.”

   양심을 저버리지 못했던 송 교수는 78년의 찌든 감옥생활에도 전혀 굽힘이 없이, 80년 5?18 광주항쟁에도 내란죄로 몰려 또 오랜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참으로 정정당당하게 독재와 싸웠습니다. 선배요, 민주투사요, 큰 소설가였던 송 교수님, 그래서 그립습니다!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