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스스로 목숨 끊는 일 막아야 [박석무]

성령충만땅에천국 2022. 1. 1. 05:07
제 1191 회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스스로 목숨 끊는 일 막아야
   신문이나 방송의 뉴스를 보기가 두렵습니다. 누군가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생명이란 것이 어떤 것이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스스로 목숨 끊는 일이 그렇게 자주 일어나고 있으니 두렵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려 통계에 의하면 OECD 가입 국가 중 자살율이 제일 높은 나라가 한국이라니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며칠 전에 또 세상을 요란하게 하는 자살 사건이 일어나 시끄러웠습니다. 이제는 ‘자살’이라는 단어도 잘 쓰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기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天下莫難乎死 : <烈婦論>)”라고 말하여 죽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데도 죽는 사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다산은 한탄하였습니다. 도대체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인가요. 계로(季路)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감히 묻건데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공자가 답합니다.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 (曰未知生 焉知死 : <論語> 先進편)”라는 <논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일이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알 수도 없는 죽음을 택하는 일이 왜 자꾸 일어나고 있을까요.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는 말처럼 인간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도 없지만, 죽음을 자신이 선택하는 일도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그래서 다산은 말합니다. “대저 온 세상의 일 가운데 제일 흉측한 일은 스스로 제 목숨을 끊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은 없다. (夫天下之事之凶 未有甚於殺其身者也 : <烈婦論>)”라고 말하여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일이 바로 스스로 제 목숨을 끊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흉측하기 짝이 없는 일을 세상에서 누구라면 모두가 알만한 인물들이 자살을 택하고 있는 점에 의아한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래에 유독 고관대작을 지냈거나 그런 직책에 있는 사람조차 자살하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으니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병으로 사고로 죽어가는 사람도 안타까운 일인데, 멀쩡한 인물들이 자살하고 있으니 그냥 보고만 있을 일인가요.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 없는데’ 오죽해야 죽음을 택했을까라고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 생각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수사과정에서 생명을 버리는 경우가 많아 수사와 재판의 문제점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죽었다고 아들이 따라서 죽고, 남편이 죽었다고 아내가 따라서 죽는 일은 효도도 아니요 열(烈)도 아니라고 다산은 밝혔습니다. 생명은 하늘에서 받은 것으로 하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으로 결정하는 일은 가장 흉측하다고 했으니, 하늘을 거역하는 일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죄를 지어 탄로나면 양심에 부끄러움을 면하지 못함은 당연하지만, ‘개과천선(改過遷善)’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요. 잘못을 저질렀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 뉘우치고 반성하여 착한 일로 옮겨간다면, 얼마나 훌륭한 삶이 되는가요. 문제는 억울해서 죽는 경우입니다. 죄가 없는데도 죄를 주려고 강요하는 수사가 있다면, 이것은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이거야말로 국가가 해결할 문제입니다. 법과 제도가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삶도 모르면서 죽음을 어떻게 안다고 죽음을 택해서야 되겠는가요. 자살방지 국민운동이라도 벌려 생명 아끼는 일에 모두가 동참하면 어떨까요. 출산율도 낮은데, 자살자만 늘어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요.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