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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히 11:23-29)
히11장을 '믿음 장'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최고의 믿음의 사람 16명을 엄선하여 본 믿음장안에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은 나무로 말하면 거목이고, 별로 말하면 거성입니다. 그 중에 모세에게만 7절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별 중에 별입니다. 거인 중에 거인입니다. 거목 중에 거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도 가장 존경하고 있는 인물 중에 하나가 모세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모세는 우리들의 신앙의 모델입니다. 우리도 모세의 믿음에 도전할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믿/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모세의 믿음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할/
▶먼저 모세의 생애가 독특합니다. ⑴그의 탄생이 독특합니다. 남자들이 태어나면 모조리 죽여야 할 때 그가 태어나 죽지 않고 살아남은 유일한 남자였습니다. (2)그의 일생이 독특합니다. 120년을 살았는데 칼로 두부를 자른 것처럼 정확하게 세 토막으로 살았습니다. 40년은 궁중에서, 40년은 미디안에서, 40년은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3)그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독특합니다. 보통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성령의 경험을 통하여 만났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시떨기 앞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는 모세 한 사람뿐입니다. (4)그의 죽음이 독특합니다. 눈이 쇠하지 않고 기력이 청청할 때 죽었습니다(신34:7). (5)시체가 독특했습니다. 모세의 시체를 천사장 미가엘과 마귀가 서로 가지고 가겠다고 싸웠습니다(유9). /할/ ▶그렇다면 모세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본문에서 그의 믿음의 특징이 여섯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거절하고(24), 바라보고(26), 떠나고(27), 참았으며(27), 정하고(28), 건넜으며(29)' /할/ 차례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할/
①거절하고(24) 믿음은 거절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경 최고의 믿음의 소유자 모세의 믿음은 '거절하고'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모세가 장성했습니다. 행7:23에 보면 그때 모세의 나이가 사십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함은 애굽의 왕자입니다. 그는 한 몸에 세상의 부귀, 영화, 권세를 다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함으로써 일순간 세상 적인 부귀, 영화, 권세를 다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4절의 첫 단어는 '믿음으로'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거절했습니다. 역사에 의하면 그때 바로의 공주는 무남독녀였습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공주는 시녀들을 데리고서 나일강으로 목욕을 하러 갔습니다. 그 당시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을 신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생산의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없는 사람은 나일강에 가서 목욕을 하면 아이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때 바로의 공주는 갈대 상자에 들어 있는 모세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니 바로의 공주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 아이야말로 하늘이 내게 내려 준 아이로구나. 내가 이 아이를 내 아들로 삼아서 훌륭한 인물로 키워야지.' 그래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입적이 되었습니다. 뒤에 모세는 애굽의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애굽의 왕자로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모든 면에 있어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행7:22절을 보면 이러한 기록이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할/ 모세가 그때 받은 교육은 나중에 그가 모세 오경, 곧 다섯 권의 성경을 기록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또 역사적인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애굽과 에디오피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모세는 애굽의 왕 바로를 대신해서 애굽군의 총사령관으로 출전을 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그때 익혔던 통솔력은 나중에 모세가 출애굽의 영웅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멘!/ 아무튼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얼마든지 부귀와 영화와 권세를 다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바로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함'으로 일순간에 그 모든 부귀, 영화, 권세를 다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할/ 여러분, 모세의 이런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그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모세는 그의 어린 시절을 어머니의 품에서 자랐습니다. 바로의 공주가 나일강에서 모세를 발견했을 때입니다. 그때 멀찌감치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바로의 공주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 요게벳을 모세를 위한 유모로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어려서부터 그의 부모님 품에서 신앙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어린 모세에게 힘써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심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허락하셨던 약속들을 어린 모세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 주었습니다. 모세는 어린 시절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그의 부모에게 받았던 신앙적인 교육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마음속 깊숙이 뿌리내리게 된 것입니다. /할/ 여러분! 모세는 어릴 때 불과 얼마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에 그의 부모를 통해서 신앙에 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뒤에 모세는 오랫동안 애굽의 궁에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일평생의 삶을 지배하며 주관했던 교육이 무엇이었습니까? 애굽의 궁에서 받았던 세상 적인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았던 신앙적인 교육이었습니다. /할/ 어릴 때 가정에서 신앙 교육을 바로 시키면 그 아이는 하나님이 평생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그래서 구세군 창설자인 윌리암 부스는 '우리는 마귀가 손을 쓰기에 앞서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먼저 하나님을 가르쳐야 한다. 마귀가 우리 자녀들에게 죄악을 심어 주기에 앞서서 우리가 먼저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심을 심어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할/ 또 무엇을 버렸습니까? 25절에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는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입니다. 전자는 고난의 길입니다. 후자는 낙을 누리는 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했습니까? 그는 믿음으로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길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더불어서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를 향해서 나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멘!/ 반면에 낙을 누리는 길은 어떠합니까? 그것은 잠시 누리는 죄악의 낙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길의 종말은 파멸입니다. 독버섯을 아시지요? 눈으로 보기에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사람을 죽이는 독이 있습니다. 죄악이 그렇습니다. 쾌락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낙이라는 말 앞에는 언제나 '잠시'라는 말이 단서로 붙습니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린 후에는 오랜 기간의 고통과 파멸이 대가로 따라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브리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고자 했습니다. ▶하루는 어떤 스승이 자기의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공동 묘지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큰 무덤이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그 무덤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메아리와 아지랑이를 알고 가노라' 스승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얘들아, 이 묘비명의 뜻이 무엇이겠느냐?' 제자들은 아무도 대답을 못했습니다. 스승은 일깨워 주었습니다. '메아리는 권세를 뜻하는 말이고, 아지랑이는 부귀와 영화를 뜻하는 말이다. 이 무덤에 묻힌 사람은 살아 생전에 이 세상을 온통 쥐었다 놓았다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스승은 또다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생각에 메아리와 아지랑이, 곧 권세와 부귀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한 제자가 손을 들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생각에 허망일 것 같습니다. 둘 다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부귀와 영화와 권세는 다 그렇습니다. 잠시 누리는 죄악의 낙에 불과합니다. 만일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으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더라면 그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물론 잠시 잠깐 부귀와 영화와 권세는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애굽의 왕 바로가 되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애굽 사람들로부터 신으로 숭배를 받았을 것입니다. 죽고 난 후에는 피라미드에 묻혔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의 육신은 미라가 되어서 애굽의 박물관에 보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짐을 당해서 지금도 지옥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믿음으로 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택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모세는 거절한 것이 많았습니다. (1)왕이 될 명예를 거절했습니다. (2)자기를 죽음에서 살려주고 길러준 공주를 거절했습니다. ⑶부귀영화를 거절했습니다. (4)그는 행복도 거절했습니다. ⑸죄와 쾌락을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이것까지도 거절했습니다. /할/ 그러면 내가 버릴 것은 무엇인가요? 이제부터 믿음 성장을 위하여 내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판단해서 버릴 것은 버릴 수 있는 신앙 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②바라보고!(26) 믿음은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기 전에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몹시도 핍박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대제사장의 공문을 손에 받아 쥐었습니다. 그리고 다멕섹에 있는 성도들을 붙들어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가 다멕섹에 거의 가까이 이르렀을 때입니다. 홀연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예수님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애굽의 박물관에 가면, 피라미드 속에서 발굴된 보화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피라미드 하나에 들어 있는 금의 무게만 수 천톤에 이른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훨씬 더 크고 값진 재물로 여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할/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실 상이 언제나 크고 후하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있는 어느 선박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물건을 잔뜩 실은 선박이 그 날 오후에 도착했습니다. 사장은 회사의 모든 직원을 다 불러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이 일요일인 것은 알지만, 선박이 이제 당도했으니까 내일은 모두 출근해서 선박에 실려 있는 짐들을 함께 내려 주었으면 좋겠소' 그러자 한 청년이 난색을 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장님, 저는 일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내일은 주일입니다. 저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내일은 출근할 수가 없습니다.' 사장이 그 말을 듣고서 몹시도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구먼. 회사를 그만 두어야 되겠네' 어쩔 수 없이 그 청년은 주일을 성수하기 위해서 그 선박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서 부지런히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일자리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선박 회사 사장에게 그의 절친한 친구로부터 이러한 연락이 왔습니다. '여보게, 이번에 새로운 은행을 열게 되었는데,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좀 추천을 해 주게' 그때 선박 회사 사장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뜻밖에도 자기가 해고했던 그 청년을 친구에게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그 청년은 자기의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서 자기의 믿음과 신념을 바꾸는 사람이 아닐세. 그러니 자네가 믿고서 은행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네' 그래서 그 청년은 그 은행에 발탁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전보다도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보상을 해 주십니다. /아멘!/ 모세는 하나님이 상주실 것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거절했습니다.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포기하는 삶이 하나님이 바라는 삶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오늘을 위하여 내일을 포기합니다. 순간을 위하여 영원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영원을 위하여 순간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세상을 위하여 이 세상을 거절하고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할/ 바울도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8;18)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 날 에 하나님이 상 주심을 바라보며 이생의 자랑과 부귀영화를 거절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멘!/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친구 한 사람이 그 사무실에 가서 책상 정리를 하다가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나는 굵고 짧게 살리라' 여러분, 좋은 것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어느 여자가 결혼하고 10년이 되어도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이때나 저 때나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자 조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아이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 정말 아이를 갖고 싶으냐?' '네' '그러면 아이 옷을 사서 걸어 놓고 보면서 아이를 달라고 내게 기도하거라' 이런 응답을 받고 그 여자는 시장에 나가 옷을 사서 걸어 놓고 그 옷을 보면서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 옷을 입힐 수 있게 아이를 주옵소서' 정말 그 여자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딸을 낳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 왕 주시려면 아들을 주시지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 옷 사놓은 것 가 보아라' 가서 보니 딸 옷이었습니다. 바라보는 대로 됩니다. /믿거나 말거나/ 폴 마이어는 말하기를 '내가 목표를 세우면 목표는 나를 끌어 준다'고 했습니다. /할/
③떠나라(27) 믿음은 떠나는 것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습니다. 믿음은 떠나야 할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애굽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물론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멸망일 뿐입니다. /할/ ▶하루는 물오리들이 떼를 지어서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마리의 마음에 꾀가 생겼습니다. 배도 고프고 날개도 아팠습니다. 그래서 다른 동료들 몰래 슬그머니 농가의 지붕 위에 살짝 내려앉았습니다. 그 농가의 마당에는 때마침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집오리들이 농부가 주는 모이를 맛있게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물오리가 가만히 살펴보니까 집오리들은 날지를 않습니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아야 할 필요가 없어 보였습니다. 물오리는 집오리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지붕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집오리들 틈 속에 섞였습니다. 마치 자기도 집오리인 것처럼 행세를 하면서 몇 개월 동안 같이 어울려 살았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물오리 마음속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이제는 내 갈 길로 가야지.' 물오리는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날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몸이 비대해져 있었고, 몇 개월 동안 날개 운동을 하지 않아서 날개에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뛰어오르다가 다시금 땅바닥으로 곤두박질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농부는 그 물오리를 잡아다가 맛있게 요리를 해 먹어 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할/ 세상의 낙이 그렇습니다. 잠시 애굽에서 누리는 죄악의 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저 잠시 잠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결말은 언제나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1977년 미국의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유산이 자그마치 2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을 해도 2조 4천억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입니다. 그는 '방송, 영화, 항공, 여행, 관광, 카지노' 등 50여 개의 기업들을 운영했습니다. 또 그는 할리우드의 유명한 여배우들과 이런저런 염문을 많이 뿌렸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돈과 명예, 여자 속에 파묻혀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 10년 간, 그는 심한 결벽증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는 외부와 차단된 유리벽 안에서 고독하게 갇혀서 살았습니다. 그는 병이 악화되어 자가용 비행기로 병원으로 가던 중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죽어가면서 울부짖었던 말이 있습니다. 'Nothing! Nothing!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조객의 수는 불과 10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을 집례할 목사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인근에 있는 목사님을 보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례식에서 목사님은 그저 짤막하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워드 휴즈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그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세상의 낙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잠시 잠깐입니다. /할/ 여러분! 우리가 떠나야 할 애굽은 무엇입니까? 떠나야 할 것을 떠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포기해야 할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을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그 말씀에 순종해서 자기의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내가 하던 일 마저 다 정리해 놓고 난 뒤에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 그 즉시 그물과 배를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모세는 애굽 왕 바로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했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담대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길 때 무서움과 두려운 감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그 무서운 감정을 얼마든지 극복해 낼 수가 있습니다. /아멘!/ 막9: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
④참았으며(27) 믿음은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는다'는 말은 헬라어원으로 보면, '죽을 때까지 참는다. 못 참을 것도 참는다. 모두를 참는다.' 이런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할/ 미국의 '찰스 알렌' 목사님은 '지능지수인 IQ가 높은 사람이 승리하지 않고 인내지수인 PQ(patient Quotient)가 높은 사람이 승리한다'고 말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한 것은 인내지수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역사학자들이 있습니다. 항복할 수밖에 없을 때에도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참을 줄 압니다. 그러나 참을 만큼 참다가 못 참으면 팔을 걷으면서 외칩니다. '사람이 좋으면 24시간 좋은 줄 알아?' 그러나 믿음은 참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죽을 때까지 참아야 합니다. /아멘!/ 성경에서 하나님이 크게 쓰신 3대 인물을 들라면 '모세, 바울, 그리고 베드로'입니다. 이 세 사람은 초기에는 성질이 너무나 급하여 참지 못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살인범 아니면 살인 미수범입니다. 우리 주변에 성질이 급하다고 하여도 사람을 죽일 정도로 그렇게 급한 사람은 좀처럼 찾기 힘듭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일 때 같이 돌을 던졌습니다. 공범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말고를 죽이려고 칼로 내리쳤습니다. 말고는 다급하여 피하였습니다. 귀가 잘라졌습니다. 만일 피하지 않았으면 머리가 잘라졌을 지도 모를 것입니다. 살인 미수범입니다. 모세도 사람을 죽여서 모래 속에 파묻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80세에 가시떨기 앞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왜 참아야 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가요? ⑴인내는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오래 참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오래 참아야 합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가 인내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아는 산 위에 배를 만든다는 조소에도 불구하고 120년 간 방주를 산꼭대기 위에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많은 자녀의 복을 준다는 약속을 받고 수십 년을 참고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17살에 국무총리가 되는 꿈을 꾸고도 점점 일이 어려워져 가고 있었지만 참고 나가 13년 만에 드디어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참아야 합니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⑵인내는 예수님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속성도 인내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닮아야 하는 우리도 오래 참아야 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참으면서 나중에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은 '인내의 승리가'입니다. /아멘!/ ⑶인내는 복된 사람이 되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참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5;11) ▶미국이 낳은 유명한 달리기 선수 '칼 루이스'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유명한 달리기 선수가 된 것은 억지로 된 것이었다고 간증했답니다. 그는 교통지옥 때문에 언제나 '모토 사이클'을 타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도둑이 들어와서 그의 발이나 마찬가지인 모토 사이클을 훔쳐 갔습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것마저 며칠 있다가 도둑맞았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다시는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12km를 뛰어 다녔습니다. 출근 퇴근 합하여 하루 24km를 매일 달렸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어느 도둑도 달리기만은 훔쳐 갈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억지로 매일 그렇게 달린 결과 그는 세계 제일의 달리기 선수가 된 것입니다. 참으며 나가는 사람에게는 항상 좋은 결과가 주어집니다. /이멘!/ ⑷인내는 온전한 인격을 이루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인내는 온전한 인격의 필요한 조건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딛2;2) 아고보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인내하면 온전한 삶이 됩니다. 참지 못 하는 삶은 온전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온전하다는 말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참으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온전하다는 말은 예수님은 어떤 것도 참을 수 있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할/ ⑸인내는 복음증거에 절대 필요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참지 못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 하게 됩니다. ⑹참을 줄 아는 이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천국에는 모든 것을 참고 이긴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2) /할/ ⑺인내는 면류관을 받는 조건이 됩니다. 모든 것을 참고 이긴 자에게는 드디어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12) /할/
⑤정하고(28) 믿음은 정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간 종살이 하다가 나왔습니다. 이제 가나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시내 산을 여러 번 오르내리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세 가지를 받았는데 '십계명 두 돌판, 성막 설계도, 율법 613'가지입니다. 깡패의 말을 듣는 사람은 깡패입니다. 미국 사람은 한국에서 살아도 미국 정부 말을 듣습니다. 간첩은 남한에 와 있지만 김정일이 말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여러분! 우리는 애굽에서 나왔지만 애굽을 따르면 안 됩니다. 가나안에 갈 것이지만 가나안 풍습을 따라도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613가지 율법을 정해 주셨습니다. 이 율법을 행동 철학으로 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유대 백성들은 모세가 정해준 율법대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철학이 곧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사느냐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할/ ▶6.25 피난시절에 한 가족이 임진강을 건너려고 하는 데 건널 방법이 없었습니다. 한 아버지가 아내 손을 붙들고 어린 아들을 엎고 수영을 하는데 7살 된 아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이 소꼬리를 꼭 붙잡고 강을 건너라.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 아무리 무서워도 소꼬리만 놓치지 않으면 물에 빠지지 않는다' 그 아들은 죽을힘을 다 해 소꼬리를 붙들었습니다. 소가 수영하는 대로 따라 붙었습니다. 드디어 살았습니다. 그 후 그는 소만 보면 절했답니다. 지금도 소만 보면 생명의 은인 같아서 절을 하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고기를 절대로 먹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특별히 꼬리곰탕은 입에 대지도 않고 살고 있답니다. 소 때문에 행동철학이 생긴 것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정하는 것이 생깁니다. 이것이 행동 철학입니다. /아멘!/
⑥건넜으며(29) 믿음은 건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의 마지막 믿음의 특징은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목표를 향하여 가다보면 반드시 장애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먼 길을 가다보면 산도 넘어야 하고 강도 건너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어떤 문제가 있어도 반드시 건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극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모세는 개울을 건넌 것이 아닙니다. 강을 건넌 것이 아닙니다. 바다를 건넜습니다. 큰 바다라는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모세는 40살 때만 하여도 문제만 생기면 포기하기 잘 하며 뒤로 도망하던 이였습니다. 그러나 80 살에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어떤 문제가 생겨도 도전하며 건너는 이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는 200만 명을 40년 간이나 광야를 끌고 갈 수 있는 추진력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어떤 문제도 해결하고 하루에도 3,000트럭의 물이 필요한 광야에서 200만 명을 살렸습니다. 믿음이란 건너는 것입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실패가 실패가 아니라 마지막 실패가 정말 실패입니다. 성공이 성공이 아니라 마지막 성공이 참 성공입니다. 웃음이 웃음이 아니라 마지막 웃음이 참 웃음입니다. 실패하였다고 실패자가 된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실패하여 실패자입니다. 성공하였다고 성공자가 된 것이 아니라 마지막 성공하여야 참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은 세우는 법이 아닙니다. 생존해 있는 이의 찬송 곡은 찬송가에 넣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을 배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간평가하면 안 됩니다. 종합평가, 최종 평가를 해야 합니다. 처음에 잘 하다가 나중에 배반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못 하다가 나중에 잘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끝까지 잘 건너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서 천국까지 가야 합니다. /믿/아멘!/ ▶오래 전에 국민일보 '겨자씨'의 글입니다. 어느 분이 바다에서 배를 타고 관광을 하다가 진주 목걸이를 바다에 빠뜨렸습니다. 너무나 비싼 것이었습니다. 그는 항구로 돌아오자 바가지를 가지고 바닷물을 퍼내기 시작하였습니다. 3일을 쉬지 않고 펐습니다. 그 때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무엇하십니까?' '보면 모르나? 물을 푼다.' '언제까지 푸실 것입니까?' '바닷물이 다 없어질 때까지 푼다.' 이 말을 들은 거북이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살 곳이 없어지는 데' 이렇게 말하면서 거북이는 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조금 후 거북이는 진주 목걸이를 입에 물고 나타났습니다.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습니다. 건너려고 하면 건널 수 있습니다. /아멘!/ ▶군인은 훈련받은 후에 전쟁터에 나가 싸워야 합니다. 제품은 다 만들어진 후에 판매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주어진 후에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이 땅에 파송할 때 사명을 주셔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명은 이미 주어진 것이고 그 사명은 깨달을 때부터 사명이다' 그래서 카일 힐티는 '사명을 발견한 날은 태어난 날보다 중요한 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명을 발견하는 것인가? ⑴소원으로 사명은 소원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쩐 지 그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 일을 하고 싶은 소원이 마음속에 불일 듯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그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입니다. 바울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마음속에 무엇을 하고 싶은 소원이 막 일어나면 그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입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과 소원을 통하여 사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⑵하나님은 특별한 신비체험으로 사명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러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여러 명이 같이 갔는데 다른 사람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는데 바울만 혼자서 신비체험을 했습니다. 그 때 바울은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같이 바울은 신비체험을 통하여 사명을 받았습니다. 요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제비를 뽑았습니다. 요나가 뽑혔습니다. 바다로 던져졌습니다. 고래가 삼켰습니다. 3일 3야를 고래 뱃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았습니다. 고래는 무엇을 먹든지 4시간 정도면 다 소화시키는 소화력을 가진 동물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죽지 않는 신비체험을 했습니다. 그 안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니느웨를 복음화시키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아멘!/
▶하나님이 사명을 주실 때 이런 것도 주십니다. ⑴사명을 주실 때 꿈부터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시지 않고 꿈을 쓰시는 분이십니다. 그 꿈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 꿈이 바로 하나님의 소원이요, 그 꿈을 받은 사람이 바로 사명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쓰실 때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꿈을 보여주셨습니다. ⑵사명을 주실 때 사람을 주십니다. 모세에게 아론을 붙여주셨습니다. 바울에게 디모데를 붙여 주셨습니다. /할/ ⑶사명을 주실 때 능력을 주십니다. 모세에게 능력 주신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사명자들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아멘!/ ⑷사명을 주실 때 동행의 복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사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할/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아멘!/ (2011년 9월 18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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