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은 배반하지 않는다.
창 3;17-19.
훈련받을 때 땀을 많이 흘리면 전쟁할 때 피를 흘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땀은 배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6일 동안 창조하시면서 가장 마지막 날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는 두 가지 나무가 있었습니다.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였습니다. 선악과 나무는 그 열매를 먹으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선을 알게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될가봐 선악과만은 먹지 말도록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하와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3;16-17)
그러나 뱀이 하와에게 다가와서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와는 아담에게도 먹게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꼬임에 넘어가서 따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따먹고 벌거벗었음을 알고 부끄러워 무화과 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나무 뒤에 숨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찾아오셔서 물으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아담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께서 되물으셨습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네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은 하와 핑계를 댔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은 하와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하와가 대답하였습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는 책임을 뱀에게 전가시켰습니다.
상황을 파악하신 하나님의 선고가 이루어 졌습니다. 뱀 그리고 하와 그리고 아담을 나란히 세워놓으시고 차례로 죄에 대한 보응을 주셨습니다. 죄 순서가 보응 순서였습니다.
1. 뱀을 향한 보응
하필이면 수많은 동물가운데 뱀이 사람에게 접근하여 사람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였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뱀의 성격을 살펴 보십시다.
(1) 가장 지혜로운 동물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1)
간교라는 원어는 <아룸>인 데 아룸은 지혜롭다는 말입니다. 가장 영리한 동물이었습니다.
(2) 창조시에 뱀은 배로 다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실 때에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 지니라>(14)라고 하신 것을 보아 저주받기 전에는 배로 다니지 않았습니다. 다리가 달려서 걸어 다녔었다고 미드라쉬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걸어다녔는 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배로 다니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3) 사람과 가장 친하였습니다.
사람을 타락케 할 때에 마귀는 뱀을 사용하였습니다. 사람이 뱀의 말이라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신임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변명은 들으신 하나님께서 뱀에게는 변명의 기회를 주시지 않고 그대로 보응을 선포하셨습니다. 왜 그랬을 가요? 악인일 수록 말만 번지르한 것을 하나님은 잘 아셨습니다. 악할 수록 말만 많습니다. 만일 뱀에게 ‘너 왜 선악과를 하와와 아담에게 따먹게 하였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뱀은 이렇게 말할 것이 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그들에게 주었지 나에게 주셨습니까? 내가 아무리 따먹으라고 하여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을 들어야지 왜 내 말을 듣습니까?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전적으로 그들 책임이지 내 책임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스스로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뱀과 이런 말로 토론하고 싶어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변명만 들으시고 뱀에게는 말할 틈도 주시지 않고 바로 징계하셨습니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 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굼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4-15)
하나님께서 이렇게 선고하자 말자부터 뱀은 걸어다니다가 기어다니게 되었고 그 후부터 사람들이 뱀만 보면 죽이려고 달려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뱀은 사람만 보면 물어 뜯으려고 하는 동물중에 가장 원수 동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전설인 미드라쉬를 보니까 하나님의 이런 선고가 내려지자 말자 천사들이 내려와서 뱀의 손과 발을 난도질하여 버렸다고 합니다. 뱀의 아픔을 참지 못 하는 비명소리는 지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들릴 정도로 컸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2. 하와를 향한 보응
죄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릅니다.
뱀을 징계하신 하나님은 다음 차례로 하와에게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하와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하와가 대답하였습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렇게 책임을 뱀에게 전가시켰습니다. 하나님은 하와에게 이렇게 보응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 하리니 네가 수고하여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5)
하와는 자기도 죄를 짓고 남도 죄로 이끌어간 죄입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순간 눈이 밝아졌습니다. 선악과의 징조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도 사실로 나타날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자기는 죽게 될 운명에 처한 것을 즉각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면 자기 남편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옳았습니다.
“여보! 내가 뱀의 유혹을 받아서 당신이 나에게 말해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어요. 눈이 밝아져 선악을 보게 되었고 부끄러움도 느끼고 있어요. 당신만은 절대로 저 뱀에게 속지 말아야 해요.”
그러나 하와는 이렇게 생각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 저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는 저 뱀의 말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따라 죽는다. 저 아담이 다른 여자와 사는 꼴을 볼 수가 없다. 죽어도 같이 죽자. 빨리 먹이자.”
그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서둘러 먹게 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이런 하와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보응을 하셨습니다.
(1) 잉태의 고통
본래 해산은 기쁨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는 아이를 낳는 것이 아픔이 없었고 새 생명이 태어나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와의 범죄 후 모든 여자들은 아픔과 고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이 가져야 하는 해산의 고통은 정말 목숨을 건 아픔이 되었습니다.
(2) 남편에 종속
선악과 사건 전에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는 대등한 관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아담의 진정한 동반자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하와를 만드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몸이다.”
아담으로부터 하와를 창조한 것은 처음부터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실 때에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남자의 머리뼈로 여자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만일 머리뼈로 만들면 여자는 머리를 들고 다니게 될 것이다.
나는 남자의 눈으로도 여자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만일 눈으로 여자를 만들면 여자는 음탕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나는 남자의 귀로 여자를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귀로 여자를 만들면 여자는 남의 말이나 엿듣는 여자가 될 것이다.
나는 남자의 목으로 여자를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목으로 여자를 만들면 거만하여 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의 입으로도 여자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만일 입으로 여자를 만들면 고자질이나 하는 여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의 심장으로도 여자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만일 심장으로 여자를 만들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여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의 손으로도 여자를 만들이 않을 것이다. 만일 남자의 손으로 여자를 만들면 남의 일에 간섭이나 하고 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의 발로도 여자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남자의 발로 여자를 만들게 되면 이리저리 쏘다니기나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겠다. 갈비뼈는 모두와 연결되어 있고 연합할 줄 아는 정숙한 부분이다. 혼자 잘난 척 하지 않는 부분이다. 모든 갈비뼈는 잘 연결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숙한 뼈다. 여자는 정숙하여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만드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숙하라! 정숙하여라!”
하나님은 정말 정성을 다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정숙을 생명을 알게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치 않는 요소들이 여자들에게 침투하였습니다.
이 모두는 마귀장난이었습니다.
하와도 하나님이 원치 아니 하시는 죄를 지음으로 보응을 받았습니다. 그 후 모든 여자들은 한 명도 예외없이 잉태할 때 고통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3. 아담을 향한 보응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하와 핑계를 댔습니다. 이런 아담을 보시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렇게 징계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 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 즉 네가 얼굴에 땅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얻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17-19)
미드라쉬는 아담은 모두 10가지 보응을 받았다고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1. 하늘의 옷을 벗기시고 무화과 나무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2. 수고하여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좋은 음식을 먹다가 그리 좋지 않은 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4. 자손들은 이리저리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5. 육체는 땀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6. 이제부터는 선이 지배하지 못 하고 악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7. 죽은 육체는 벌레의 밥이 되었습니다.
8. 동물들을 지배하다가 동물들의 지배를 받게 되고 때로는 동물들이 사람들을 죽일 때도 있었습니다.
9. 사람의 일생은 고통과 수고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10. 땅에서 행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계산하도록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직히 인정하고 회개하기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모두 핑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 바로 땀입니다.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보십시다
<너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그리고 1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이 흘러야 먹으리니”(창 1;18)
수고하여야 먹으리니
땀이 흘러야 먹으리니
이 두 말씀은 같은 말씀입니다. 땀과 수고는 같은 단어입니다. 땀은 배반하지 않습니다. 수고는 배반하지 않습니다. 땀을 흘리면 반드시 보상이 있습니다. 수고하면 반드시 보상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수고
성경에서 눈에 띄으니 수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선 베드로를 보십시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평생 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헐몬산 눈이 녹아 사막을 통과한 물이기에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반드시 낮에 잡아야 합니다. 반드시 얕은 곳에서 잡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 날도 밤에 고기잡이를 나갔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 날따라 단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새벽이 되었습니다.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밤임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습니다. 베드로의 끈기가 돋보이는 밤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아침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할 수 없이 그물을 씻으며 고기 잡이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밤이다. 오늘은 공친 날이다. 돌아가서 푹 자고 저녁에 다시 나오리라." 그 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본 베드로에게 배를 빌려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배를 빌려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배에 올라 서서 사람들에게 말씀 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귀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피곤한 몸으로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고 그물을 깊은 곳에 내렸습니다. 얼마나 고기가 많이 잡혔는 지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두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밤이었지만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아침까지 끈기있게 수고하였다고 베드로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수고의 댓가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중에 한 분이 되었습니다.
땀은 배반하지 않습니다. 수고는 결코 배반하지 않습니다.
야곱의 수고
성경에서 야곱의 수고도 눈에 띄이고 있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수고하였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에게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십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 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14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6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10번이나 바꾸셨으며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 손으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만은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창 31;38-42)
베드로의 수고가 나지를 위한 수고였다면 야곱의 수고는 남을 위한 수고였습니다. 배드로의 땀이 자기를 위한 땀이었다면 야곱의 땀은 다른 사람을 위한 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수고, 이 땀을 갚아 주셨습니다.
땀은 배반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수고
성경에서 바울의 수고도 돋보이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음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중에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도 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 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여러번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4-27)
이렇게 수고한 바울이 자신만만하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로마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그리고 디모데를 향하여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6-8)
땀은 배반하지 않습니다. 수고한 것은 반드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그네 종점>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나그네가 사막을 홀로 걸어 가다가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헤메다가 보니 양식도 물도 다 떨어져서 굶고 있었습니다. 기진맥진하여 사막 한 가운데 앉아 있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다리가 부러진 낙타가 쓰러져있습니다. 이것이 나그네 종점입니다.
미래가 암담합니다.
그러나 반대 이야기가 있습니다. 네로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하나같이 웃고 있었습니다. 네로는 웃으면 죽은 시체를 보며 오히려 공포심을 가졌습니다.
잘 죽으려고 잘 사는 것입니다. 살면서 수고하고 땀을 흘리면 반드시 보상이 있습니다. 땀은 배반하지 않습니다.
미리암의 수고
성경에서 수고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중에 하나가 미리암입니다.
미리암이 어렸을 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바로 왕이 명령을 내렸을 때였습니다. 어머니 요게벳이 모세를 3달 동안 몰래 숨겨서 길렀습니다.
더 이상 기를 수 없었습니다. 탄로날 정도였습니다. 할 수 없이 어머니는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그 때 미리암이 숨어서 모세를 지켰습니다.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때 미리암이 당당하게 나가서 말했습니다.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중에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출 2;7)
미리암에 용감하게 모세를 살렸습니다. 그 모세를 위하여 수고한 댓가를 미리암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미리암이 광야에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얼마나 문둥병에 심하였는 지 문둥병 부스럼으로 눈과 같이 희게 얼굴이 변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민 12;10) 당시 문둥병은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이 때 모세가 하나님께 누나 미리암의 병을 고쳐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암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모세를 살린 수고의 댓가를 받았습니다.
땀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스위스 어느 교회에서 생긴 사건입니다.
늘 교회 종을 치는 페인이라는 사찰이 있었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한결같이 쉬지 않고 땀을 흘리며 정확하게 종을 치곤 하였습니다. 그가 늙어서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바로 주일 저녁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그의 운명을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습니다.
“종칠 시간이네.”
그리고 교회로 나갔습니다. 종을 치다가 죽었습니다. 종치던 자리, 자기가 40년 동안 땀흘리며 수고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온 교인들이 그를 존경하며 그의 장례를 잘 치루었습니다.
땀은 배반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두 사람이 같이 죽었습니다. 같이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갈림길이 나타났습니다. 어느 길이 천국으로 가는 길인지 몰랐습니다. 마침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어느 길이 천국으로 가는 길인가요?”
천사가 말했습니다.
“앞을 보기 전에 당신들이 걸어온 뒷 길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 자기 뒤를 보니 평탄한 길이었습니다. 좋고 즐거운 길이었습니다. 기분좋게 앞을 보았습니다. 쓰레기와 가시로 가득한 길이 자기가 걸어야 할 길이었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가야 할 길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입니다.”
다른 사람이 뒤를 보았습니다. 지나온 과거는 괴로움과 고통 그리고 땀을 흘리며 수고한 흔적이 역역하였습니다. 앞을 보았습니다. 자기가 흘린 땀이 거름이 되어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흘린 눈물위에 예쁜 꽃들이 만발하였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이 길이 당신이 가야할 길입니다. 천국가는 길입니다.”
땀은 배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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