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1강)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 1:1-17)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6:25

(제1강)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 1:1-17)

 

  불교의 본산인 인도에 젊은 목사 한 분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는 그곳에서 생활하던 중에 불교의 스님 한 사람을 알게 되어 가까이 지내면서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고 종교적으로 토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이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던 중 선교사가 개미굴을 건드려 본의 아니게 많은 개미를 밟아 죽였습니다. 이를 본 스님이 깜짝 놀라며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듯이 소리칩니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쩌나! 어쩌다가 이렇게 많은 생명을 죽였소! 참으로 답답하네요! 이 가운데는 우리 조상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스님은 불교의 사상인 윤회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선교사는 '어떻게 하죠, 모르고 저지른 실수인데 어떻게 해야 죽은 개미들한테 사과를 할 수 있을까요?' 스님은 한참을 말없이 개미굴만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당신이 죽은 다음에 개미가 되는 겁니다. 개미가 되어서 그들에게 사과하십시오.'
  그 때 목사님이 '맞는 말이군요. 제가 개미가 되어야 개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 그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무지해서 죄에 빠져 허덕이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직접 이야기하셔서 죄를 깨우쳐 주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고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한 달에 두 번 정도 마태복음을 강해하면서 예수님의 생애와 그 사상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는다는 것이 복입니다. 모든 축복은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예수님을 아는 것이요, 예수를 믿는 것이요, 예수를 전하는 것이요, 예수를 높이는 것이요,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것'입니다. /믿/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복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이레네우스'는 '땅에 동서남북이 있듯이 복음서로 넷으로 되어야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신비요, 탐구의 대상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그 누구도 예수님을 다 알고 깨달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를 만난 사람마다 삶의 변화와 인격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를 가져왔고, 그분의 놀라운 능력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에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나가 버린 역사의 인물이 결코 아닙니다. 히브리기자는 히13: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믿는 자의 마음속에 살아서 말씀하시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주시며 우리 인생의 참 목적과 소망이 되시는 분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만난 사람마다 새로운 생명을 체험하고 부활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믿/
  신약 성경 중에서 특별히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한마디로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한 책을 복음서라고 하는데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사복음서라고 합니다. 특히 사복음서 중에도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는 '요한' 복음을 구분하여 '공관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이 세 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비교적 같은 관점으로 보고 기록합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세 복음서에는 똑같은 사건의 기록들의 많이 나옵니다. 가령 오병이어의 기적을 다룬 '마14, 막6, 눅9장에서 보면 동일한 내용은 거의 똑같은 낱말로 기록해 놓았음은 발견'합니다. 또 중풍병자를 고치는 기사로 '마9, 막2, 눅5'이 너무나 비슷해서 공관이라고 부릅니다.
  ▶먼저 마태복음은 기록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마태입니다. 마태는 유대인이며 그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막2:14절에 보면 그가 사도가 되기 전에는 레위라고 불렀습니다.
  마태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은사(선물)'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아버지는 '알패오'입니다. 그는 그 당시 헤롯왕 '안티 바'가 집권할 때 세리로 근무했습니다. 그가 가버나움 부근의 세관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따라나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님과 동행하며 직접 예수님께 배웠으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목격했고, 그 다음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쓰다가 오순절 날에 성령의 불 세례를 받고 초대교회에 주역으로 일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주님이 죽은 뒤 12년 동안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유대인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가 말년에 에티오피아에 내려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곳에서 순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마태는 대단히 겸손한 사람이요 진실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직업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무서 직원들은 백성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직업입니다. 더욱이 그 당시의 세리라 하면 동족들에게 세금을 거둬 로마 헤롯에게 바치는 직업이었기에 유대인들에게 죄인 취급을 받았고, 매국노와 같이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으며 천대받았던 직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그 사실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또 그가 열두 제자들을 소개할 때 자기의 이름을 제일 나중에 소개한 것은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자기를 들어내지 않고 '나 같은 죄인을 열두 사도 가운데 들게 하심이 너무 너무 감사'하는 그런 마음자세를 가지고 묵묵히 일하는 일꾼이었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자세가 바로 이러해야 만 된 줄 믿습니다. /아멘!/

 

  ▶마1장은 신구약 성경을 연결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장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록함으로서 구원의 역사를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구약에 예언되어 오던 것이 그 예언대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을 때 성도들이 가장 부담을 느끼며 피곤하게 읽는 성경이 바로 본문입니다. 왜 그런지 아시죠? 누가 누구로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만 나오니까 지루하기도 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문을 읽다가 '그 때는 산아제한도 없었나!' 하고 불평도 하고 '세계의 베스트셀러라는 이 성경 서두에 왜 이런 재미없는 말만 쓰여 있느냐?'고 불평하다가 '햐! 여기에 수면제가 강하게 들어 있구나!'하고 성경을 덮어 버리고 하품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낳고, 낳고 이 말씀만 전하다가 기적은 이룬 교회가 많습니다.
  인천에서 새벽기도에 최고로 많이 모이는 나겸일 목사님의 '주안 장로교회'가 있습니다. 하루는 결혼하고 짧게는 2년 길게는 5-10년이 지나도 임신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모아보니 무려 35명이나 되더랍니다. 별도로 세워놓은 나 목사님이 오늘 본문을 읽고 나서 '하나님! 성경은 낳고, 낳고 하는데 왜 못납니까? 이 말씀 믿사오니 낳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됐겠습니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임신을 했다고 합니다. 나 목사님이 목회자 세미나에 오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 '낳고, 낳고' 이 말씀을 무심히 보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구약에서 족보를 이야기할 때는 '죽고, 죽고'로 표현합니다. 여러분! 몇 살 살다가 죽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새로 태어나는 것이 복음입니다. /할/
  여러분의 나이가 50입니까? 60입니까? 지금 태어나십시오! 혹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영접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영접하십시오! 그리하면 생명이 잉태됩니다. 이것을 가리켜 '영원한 출산'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11:25-26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예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아멘!/

 

  ▶1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여기 세계라는 말은 '대략, 계보, 사적, 후예, 약전, 내력, 족보'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사건은 언약에 근거한 사건임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태가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하려 했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가 바로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 즉 왕이라는 사실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1장과 2장의 주제이기도 하며 마태복음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요18:37절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자, 예수님은 이 질문에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마태는 먼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합니다. 삼하7:12절 이하에서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아 곧 왕이 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또 16절을 보면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다윗의 자손에게서 왕이 태어난다는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바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오시리라고 예언해 놓은 메시아'이기 때문입니다. 롬1:3절에서 바울도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난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딤후2:8절에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분'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마태는 또한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했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로 부르시고 택하셔서 그로 하여금 새로운 순례의 길을 가게 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가리켜 흔히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 바로 이 아브라함부터입니다. 아브라함이 무슨 선한 일을 했습니까? 아브라함이 실제로 무슨 믿음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느 날 아브라함을 불러서 '믿음의 사람으로 그를 만들어 가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어서 교회에 나온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 밖에 있었고, 약속의 자손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어떤 사람을 통하여 전도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 믿겠다고 그렇게 발버둥치면서도 어쩐지 이상하게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 앞에 끌려오지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문은 본래 불교나 유교의 가문일지 모릅니다. 우리 큰집은 지금도 원불교에 빠져 있습니다. 도무지 복음이 들어갈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있던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찾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아멘!/ 불러 주신 것이 축복입니다. 이 사실이 깨달아 지면 이 사람은 은혜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믿/
  ▶다시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계약을 하신 것입니다. 창12: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복의 근원'이 되심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여러분의 가문에도 여러분들의 자손들의 세계에도 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이제 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이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아멘!/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을 다스리시면 그 가정은 천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사업을 붙잡으시면 그 사업은 일어납니다. /할/ 여러분, 믿음대로 되어 집니다.  
  ▶예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씀 속에는 두 가지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⑴언약의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하셨고, 다윗과도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잘하고 못하고 상관없이 믿음에 있고 없고 상관없이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축복을 해주셨고, 다윗에게는 '너를 통하여 메시아가 태어나고 네 위에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그의 자손을 통하여 신앙의 민족을 형성하기 위한 것인데 그 첫 단계가 신앙의 가정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가정의 형성은 가나안 땅에서 6대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본문의 족보에 나타난 대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베레스, 헤스론까지입니다. 이때 야곱의 12아들(요셉도 포함)의 전 가족 70명이 애굽 고센 땅으로 이주했습니다. 애굽으로 이주시키는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위대한 신앙의 국가로 건설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흉년으로 먹은 것이 없음으로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시고 총리자리까지 보장해 놓으셨다가 그들을 애굽 고센 땅으로 인도해 내셨습니다. 그들은 430년 동안 대 민족을 형성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개인을 선택하여 가정과 민족으로 성장 시켰다가 그 민족 속에서 다시 다윗을 선택하여 그 가정을 통하여 메시아가 탄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한 가지 귀한 사상이 있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온 믿음의 증거입니다. 믿음의 줄기를 타고 메시아가 오신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특별한 언약을 주시고 그 자손에게서 메시아가 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한 언약의 실현이요, 예언의 성취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 이 두 사람은 신앙의 조상이요, 신앙의 모범입니다. 아브라함은 히브리인의 신앙 공동체를 창설한 사람이요, 다윗은 그들의 왕족을 창설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짊어진 사람이요, 다 같이 신앙의 모범이며, 유대인들의 대표자입니다.
  이런 신앙인의 계통에서 신앙의 완성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실 것입니다. 이 족보는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과 다윗의 왕통을 이어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입니다.
  ⑵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죄보다 더 크다는 뜻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훌륭하고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긴 하지만 그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들도 죄인 중에 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됩니다.
  다윗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사랑하는 심복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고 우리야를 전쟁터 맨 앞줄에 보내어 죽게 했습니다. 한 마디로 간음죄에 살인죄와 거짓말까지 저지른 죄인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보다 엄청난 죄를 진 사람입니다.
  또 아브라함은 자기가 살기 위하여 두 번씩이나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아내를 버릴 뻔 한 그런 위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윗과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뜻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이 형편없는 죄인인 인간의 실수를 통해서도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허물보다, 우리의 죄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더 크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사1:18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할/
  목사인 저도 늘 생각합니다. '아! 나는 정말 형편없는 목사구나! 문득 문득 섬뜩한 죄악들이 꿈틀거릴 때마다 절규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지만 완전한 천사 표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넘어지고 실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저와 여러분을 붙잡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교회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성업을 감당하게 한답니다. 넘어지고 실수할 수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호해 주시고 실수하지 않게 하시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걸어가게 성령으로 인도해 주신 답니다. /믿/
  여러분 우리의 죄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덮어 주심이 더 큽니다. 우리의 허물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약해서 넘어질 때 의심이 생길 때 시험을 받을 때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연약함을 알고 부족함을 알고 계시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우리의 삶을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⑶창13:15-16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이 네 자손을 통해 영원히 이르고 네 자손을 통해 무수히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자손'은 단순히 '이삭, 야곱 12지파,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자손'이란 말은 구약성경에서 복수로 되어 있지 않고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갈3:16절에 기가 막힌 해석이 나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할/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 너희 자랑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야니라' 또 마태는 이방인들과 모든 민족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복음은 아브라함의 자손들, 즉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니라. 여기 자손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민족의 구세주이니라. 이 복음이 온 땅에 가득할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다. 바로 그 복음은 너의 복음이다. 너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가득히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란 이 한마디를 통해 마태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 싶었습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마태는 오늘 우리에게도 본문을 통해서 분명히 선언합니다.
  '예수는 바로 당신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는 바로 당신의 구세주이십니다. 당신은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 복 덩어리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바로 당신의 족보입니다. 당신이 구원받았다는 족보를 여기 기록하고 있는 것'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아멘!/

 

  ▶2-15절 성경에서 참조하겠습니다. (같이 읽자!)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보겠다고 생각하고 구약성경을 폈더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이 씌어져 있더랍니다. 그래서 이것은 엄청난 거짓말이다, 구약을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신약을 폈더니 거기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낳고, 낳고' 하기에 덮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나서 마1장의 족보를 읽으니까 얼마나 귀한 족보인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오늘 어떤 사람이 읽으려고 폈다가 낳고, 낳고 때문에 덮어 버렸다는 족보를 한번 공부했습니다.
  이 족보의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상한 여자들이 몇 명 끼어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한국의 여성의 파워가 날로 높아갑니다만 그 당시 문화나 사회 여건으로 볼 때, 여자란 하나의 물건으로 간주했고, 인구의 숫자로도 포함되지도 않았으며, 법률상으로 그 어떤 보호 장치가 없었을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아닌 마리아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나 등장한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규례와 상식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현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 보다도 이 여자들이 어떤 여자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면 더 더욱 놀라게 됩니다.
  먼저 ▶3절에 다말은 창38장을 보면 유다의 며느리요 엘의 아내이었는데 남편이 죽고 시동생인 셀라와의 계대결혼을 허락하지 아니하자 과부가 된 후 자식이 없음을 부끄럽게 여겨 창녀로 변장하고 시아버지를 속여서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 쌍둥이를 낳은 불륜의 여인입니다.
  ▶5절의 라합은 여리고 성의 기생입니다. 기생이지만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보호해준 여인입니다. 또한 ▶5절에 나오는 '룻'은 이방인이요, 모압 여인입니다. 모합 족속의 유래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이 불탈 때, 탈출하여 굴속에서 거처하게 되었을 때, 그의 두 딸이 자기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취한 틈에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큰딸이 낳은 자식이 모압이고, 둘째 딸이 낳은 자식이 암몬이라고 창19:30-38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족속은 유대인이 가장 증오하는 이방족속입니다. 저들은 음란하고 또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족속입니다. 베들레험에 흉년이 들어 나오미가 모압 땅에 가서 살면서 얻은 둘째 며느리 룻이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에 와서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창19/룻4).
  또 ▶6절에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는 다윗과 간음한 여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가문을 귀하게 봅니다. 유대인들도 자기 혈통을 귀하게 여깁니다. 당시 제사장이 되려면 그 족보가 아론의 후손임을 분명해야 했습니다. 유대인의 족보는 산헤드린 공회에 보존됩니다. 유대인들은 아침 기도 시간에 이방인으로 나지 않고 유대인으로 난 것을 감사하리만큼 혈통을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여인들이 끼어있습니다. 그러면 마태는 구약을 상세하게 공부한 능통한 자인데 이 사실을 모르고 기술했을까요? 구약 성경에 훌륭한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왜 이런 여인들을 족보에 옮겼을까요?
  그렇습니다. 모든 족속, 모든 사람, 모든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히 이 족보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 열심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당신의 자녀로 얻고 싶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당시 여인들은 아무런 법률적인 권리가 없었습니다. 인격이라기보다 남자에게 속한 부속품으로 간주되어졌습니다. 더더구나 여기 등장하는 여인들은 마리아를 제외하고 나면 순결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윤리적으로 흠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상한 경력을 가진 여인들이었습니다.
  마태가 이 사실을 모르고 이런 여인들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했을까요? 구약에 빛나는 신앙과 아름다운 성품과 인격을 가졌던 수많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무지해서 무식해서 이 흠이 많은 여인들, 이상한 경력을 가진 여인들을 족보에 끼어 넣었을까요? 아닙니다.
  이 흠 많은 여인들이 없었으면 구원 족보는 단절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이 가문이 예수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성경을 읽을 때에 아브라함의 가문이 얼마나 훌륭한가? 여기에 시선을 집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가문도 우리의 가문과 똑같은 가문이라는 것입니다. 약점 많고 흠 많은 가문이었지만 하나님이 불러주시면 하나님이 선택하시면 복의 근원 가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희망을 선포하는 것이요 세계 모든 열방에게 복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이 족보를 통해 역설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예수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예수 안에서는 선민과 죄인의 장벽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인간의 죄와 허물 약점과 실수가 예수 안에선 모두 허물어지고 용서받는다는 복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아니하십니다. 과거를 모두 십자가 밑에 묻어버리세요. 이미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케 되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하나님 나라 족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마태는 지금 이 사실을 확실히 해 놓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네 명의 여인들은 신분적으로 출생 적으로 약점이 많은 여인들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분명했습니다.
  ▶다말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구원의 씨가 유다 지파를 통해 흘러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아버지 유다가 이 약속을 잊어버리고 있을 때 다말은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자기 몸을 더럽히면서까지 이 약속의 대를 잇기를 원했습니다.
  ▶라합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정탐꾼을 영접한 것은 하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타락한 시대에서 하나님의 구원공동체 교회에 등록하고 교회편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붉은 줄 아래 들어가 구원받았습니다.
  ▶룻은 그의 시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입니다. 이것 포기하라면 죽을 것입니다. 너무나 분명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밧세바는 다윗의 그토록 처절한 회개를 통해 약속의 아들 솔로몬을 얻는 기쁨을 얻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네 여자의 과거에 허물과 실수가 많았던 여자들이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 돌아와 변화 받고 새로워진 여인들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죄악과 허물과 실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고 새로워진다는 복음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⑴족보의 진실성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서전을 쓸 때, 오점을 감추고 자랑만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쓸데없는 일입니다. 인간의 참 모습은 역시 허물과 죄로 가득 찼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와 용서와 씻음을 받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⑵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이 무너졌습니다. ⑶남녀의 차별이 무너졌으며, ⑷선인과 죄인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 기생, 창녀, 이방인할 것 없이 어떠한 죄인이라도 메시아를 통해 구원에 참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⑸인류의 죄가 아무리 깊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유대인도, 이방인도, 죄인도 다 구원받으리라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아멘!/

 

  ▶16절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오늘 본문에 '낳고, 낳고' 낳았다는 말이 40번쯤 나옵니다. 구약의 족보는 언제나 '죽고, 죽고' 또 죽었다는 족보입니다. 예수 이전엔 인간 모두는 죽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낳고, 낳고' 생명으로 끝이 납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무엇입니까? 낳고 낳는 일입니다. 생명을 낳는 일입니다. 영적인 자녀를 낳는 일입니다.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목적이요, 이것이 복음이 우리 가운데 전해지는 목적이요, 온 세상에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인생들의 마지막 비전이요 마지막 인생의 꿈이요 마지막 삶의 비전이라는 것을 마태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멘!/
  낳고 낳다가 마지막에 누구를 낳는 것으로 끝이 납니까?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할/
  이 한 말씀 속에 마태복음 족보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모순이 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요셉까지 낳고 낳는 얘기를 써 내려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결론도 이 흐름대로 '요셉이 예수를 나으니라' 이렇게 기록되어야 정상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 결론은 참으로 이상하게 끝이 납니다.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시니라' 엄밀하게 얘기하면 아브라함과 다윗 가문 남자들의 족보와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들 족보가 예수그리스도를 낳은 것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마지막에 와서 주어 동사 토씨 하나를 놓쳐버리고 나면 마태복음의 모든 보물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시니라' 지금까지는 주어가 전부 남자들로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자식을 낳았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16절에서 주어가 달라집니다. 태어나는 예수가 주어로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가 낳았다고도 아닙니다. 동사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모두 '낳고, 낳고, 낳고' 나다가 마지막으로 '나시니라'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가 나시니라' 주어가 달라지고 동사가 달라집니다. 여기에 기가 막힌 복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요셉은 예수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여기 나오는 모든 사람은 그 누구도 예수의 조상이 아닙니다. 이 족보는 예수의 출생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을 했기 때문에 이 가문으로 입양이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정확한 기록입니까?
  여기에 성탄절 만민을 위한 복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약속을 타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피를 타고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만민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유대 땅에 태어나셨지만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온 인류의 메시야가 되십니다. /아멘!/
  예수는 아버지가 있어서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계시다면 하나님 한 분 아버지가 계실 뿐입니다. 남자의 이름 없이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시니라' 이 말은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믿/
  마3:9절을 보세요!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혈통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눅19장에 보면 세리장 삭개오가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했을 때 주님께서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는 것은 갈3:29절에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하심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주인으로 즉 구원의 주로 영접하면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믿/
  12월은 성탄의 계절입니다. 거기에 맞추어 마태복음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찬송가 123장의 후렴에 '노엘 노엘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가 생각이 납니다. 예! 맞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왕으로 나신 분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노엘은 성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예수 이전의 인생과 예수 이후의 인생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들의 운명이 나누어집니다. 예수 이전 지옥의 운명과 예수 이후 천국의 백성으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이 나심으로 역사는 두 동강이 나는 것입니다. 예수 이전의 역사(BC)와 예수 이후(AD)의 역사로 역사는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나심으로 온 인류 역사는, 이 지구의 역사는 그분의 역사가 된 것입니다. 'His Story' 예수님의 역사라는 이야기입니다. /할/
  예수가 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우리 가정에 오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오셨습니다. 성탄의 계절입니다. 이 민족 가운데 이 백성 가운데 예수가 나셨습니다.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시니라' /할/

 

  ▶17절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 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 한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이 족보는 14대씩 셋으로 구분됩니다. 14는 신성수인 7의 배수로 신성수이고 3은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①'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이스라엘이 가장 강성했던 시대입니다.
  ②'다윗부터 바벨론에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울 때입니다. 외세침략, 패배, 포로, 멸망의 시대입니다.
  ③'바벨론에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에 개입한 출현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인류의 메시아로써 참된 왕으로서 전 인류의 구원과 참된 소망을 우리에게 보여 준 사건입니다. /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기에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제 이스라엘로서의 하나님의 왕국대신에 새로운 하나님의 왕국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옛 왕국은 지나갔고 새 왕국이 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다윗이라는 왕 대신에 새로운 왕이 통치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다윗은 사라졌고 예수께서 등장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것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국이 왔다는 것을 알려준 사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는 2천년이라는 시간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 갑자기 졸속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위한 역사 뒤에는 하나님의 오랜 계획이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하나님의 오랜 계획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계획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중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는 한 아들을 낳아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고(창13:15/17:7/갈3:16), 다윗에게는 한 아들을 세워 나라를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삼하7:12). 하나님께서는 이런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자신의 계획을 오랜 역사동안 차근차근 이루어 주신 아주 세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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