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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하작가의 인물산수화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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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하작가의 인물산수화

박영택 교수

경기대학교 미술학부 / 미술평론가

이 그림은 풀장에서 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경하라고 하는 젊은 작가의 그림인데 제가 얼마전에 모 공모전에서 심사할때 보았던 작품입니다.
저는 미술평론을 하기때문에 많은 전시를 보기도 하고 작가들의 작업실을 다니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런저런 심사를 많이 하게 됩니다. 심사를 하면서 좋은 점은 제가 미쳐 보지 못했던 많은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일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혹은 아직 전시를 하지 않아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우선적으로 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작가들 중에 좋은 작가를 선점해서 미술계에 소개하고 세상에 선을 보이고 그들이 작가로서 살아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 또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심시하면서 이 작가의 작품을 아주 흥미롭게 봤습니다.
이 작품의 하단에는 수영복 차림의 남자가 상반신을 드러내고 앉아 있습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수면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 낮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이 남자의 그림자입니다.
반면 상단에 차지하고 있는 화면은 시커먼 물살이 아주 거칠고 뒤척이듯이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위에 보이는 수면은 목탄으로 그려진 것이고 아래 하단은 유화로 그려진 그림입니다.
주어진 한 화면을 양분해서 하나는 목탄으로 다른 하나는 유화로 그려졌기 때문에 다소 다른 재료가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감성, 감각들이 부딪혀서 묘한 긴장감을 만들고 있는 것도 이 그림의 특징입니다.

흔히 말해 풀장풍경이겠죠?
그런데 마치 이 그림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 그림이 흡사 조선시대때 인물산수화 그 중에서도 이른바 관수도라는 것들을 연상시킨다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조선시대때, 동양의 인물산수화의 상당수는 그 인물들이 자연속에 은거하고 있거나 소유하고 있거나 가만히 좌정하고 있거나 휴식하고 있는 장면인데 그들이 대게 무엇을 하고 있으냐면 물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을 우리는 관폭도라고 합니다. 흘러가는 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림을 관수도라고 합니다. 또는 흐르는 물을 발을 담그고 있는 그림을 탁족도라고 합니다. 혹은 망망대해 같은 물에 배를 띄우고 망연자실 앉아있거나 낚시대를 드리우거나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따지면 동양의 대부분의 인물산수화는 물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왜 동양인들은 물을 그렸고 그냥 물만 그린것이 아니라 그 물을 바라보고 있는 인간을 함께 그렸을까요? 바로 물이야말로 우주자연의 순환하는 이치를 보여주는 핵심적 매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동양인들은 물이야말로 우주만물의 가장 근원적인 것이고 그것들이 생생부식하는 자연에 이치를 고스란히 함축하고 있다고 여겼기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물을 바라보고 이해한다는 것은 우주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다는 뜻입니다. 생각해보면 물은 끝없이 순환하고 있겠죠? 자연의 이치는 속성이라던가 진실들을 담고 있겠죠.

따라서 인물들이 물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는 것은 그냥 물 자체를 풍경적 소재로 감상하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이 내포하고 있는 진리를 깨닫고 있거나 궁구하고 있다는 제스츄어입니다. 그것이 인물산수화입니다. 그런데 이 이경하의 그림은 전통적인 인물산수화하고는 너무나도 다른 재료나 방법론에 기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장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출렁거리는 물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스냅사진처럼 그려보이면서 우리는 묘하게 전통적인 인물산수화의 관수도가 오버랩되고 있다는 기이한 만남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바로 이런것이 전통이 현대에 와서 새롭게 환생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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