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창세기·사도행전강해설교

[스크랩] (제5강) 오순절! 성령 강림! (행 2:1-1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25. 12:17

《제5강》        오순절! 성령 강림! (행 2:1-13)

 

  우리가 배운 행1장을 보면, 주께서 세 가지의 큰 약속을 하셨습니다. ⑴5절: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⑵그 성령의 세례를 받으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⑶재림의 약속인데, 11절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래도 오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이제 2장을 보면 두 가지의 약속이 이루어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고 하신 그대로 제자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 말씀 그대로 '증인'이 되었습니다. /할/
  그들은 땅 끝까지 가진 않았지만 세계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2장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보통 '신약 교회의 탄생'으로 학자들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목소개!▶

 

  ▶1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여기서 성령 강림의 배경을 세 가지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⑴"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성령 강림의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⑵"저희가 다같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⑶"한 곳에 모였더니" 성령 강림의 장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강조 점은 사람이나 장소에 있지 않고 때에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성령이 우연히 이 날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에 따라서 이 날, 곧 오순절에 반드시 오시도록 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예언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어구적 예언'과 '상징적 예언'입니다. 어구적 예언은 앞으로 되어질 일을 그대로 말씀한 것입니다.
  사7: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선지자의 이 '어구적 예언'은 마1:22-23절에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으로 말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상징적 예언'은 앞으로 되어 질 일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 방에 발랐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의 장자를 치실 때, 그 피를 보시면 그 집은 그냥 넘어가셨습니다. 이 때를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유월절 어린양은 누구를 상징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고전5:7절 '하'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뿐만 아니라 세례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한 이 어린양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양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징적 예언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이미 이르매'의 원 뜻은 '가득 채우다. 시간이 거의 다가왔다'는 뜻으로 본문에서는 '오순절 날이 거의 가까워졌다'는 말씀입니다.
  ▶절기에 대하여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출23:14절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이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은 1년에 세 차례에 걸쳐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키는데 신16장을 보면 그 절기를 지키는 상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①유월절입니다.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 받은 날을 기념하는 이스라엘의 '해방절'입니다. 이때는 7일 동안 무교병(소다 없이 아무 간도 없는 그런 빵) 곧 고난의 떡을 떼며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을 평생 동안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절기입니다.
  ②맥추절입니다. 유월절이 지난 다음 7주, 즉 49일 다음 날에 지키는 절기인데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본문에서 말하는 '오순절'이라고도 하며 첫 열매를 거둔다하여 '초실절'(출34:22)이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이기도 합니다.
  유월절은 속박의 땅에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한 날이라면 오순절은 약속의 땅을 소유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의 축제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③수장절입니다. 이는 일 년 동안 거둔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고 가을에 들판에다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일주일동안 생활하며 지키는 절기로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나그네로 초막생활을 하며 만나를 먹던 날을 기억하며 이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 절기를 우리는 '추수감사절'로 예배를 드립니다.
  ▶'오순절'을 다시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오순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지 50일째 되는 날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음으로서 온전히 조직된 광야교회로 출발할 수 있었고, 또 오순절에 성령을 주심으로 신약교회가 탄생한 날입니다.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오순절 날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건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첫 열매를 바치는 날이었으나 신약시대에서는 부활의 첫 열매인 예수님 자신을 교회에 선물로 주신 날입니다. 성령은 주님의 영이십니다. /할/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여기 '저희'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을 위시하여, 행1:15절에 기록된 일백 이십 명의 성도들 모두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 같이'는 당시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될 때에 진정한 교회의 연합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기도하는 처소에는 마음이 하나가 되는 연합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쟁하는 마음이 있는 곳에는 결코 성령의 역사가 임하지 않습니다. /믿/
  여기 '한 곳'은 '집 또는 성전'을 의미하는데, 전통적인 견해를 보면 '마가의 다락방'을 의미합니다.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한마음, 한뜻을 가지고 성령의 세례를 달라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왜 그들이 성령의 세례를 사모했습니까?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전도하고 선교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이 마음과 이 뜻을 가지고 성령의 세례를 구해야 합니다. /아멘!/ ▶2-3절은 드디어 성령 강림의 모습이 증거 되고 있습니다.

 

  ▶2-3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본문 2-3절은 성령 강림의 징표를 두 가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바람'으로, 3절에서는 '불'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람과 불은 둘 다 하나님의 임재를 분명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 때, 하나님이 징표로 사용하시는 현상입니다.
  ▶행전을 보면 성령강림의 사건이 4번이나 나옵니다. ①오늘 본문의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사건이고, ②8장에서 '빌립'집사를 통하여 사마리아 땅에 임하는 모습이 나오고, ③10장에서 로마인들에게, ④19장에서 헬라인에게 임했습니다.
  주의 성령은 헬라인과 같이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임하였고,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무식한 이에게도 임했습니다. 또 문명이 있는 로마인에게도 임하였고, 문명이 없는 국민에게도 임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임하였고, 율법을 전혀 모르는 로마인에게도 똑같이 성령은 부어졌습니다.
  행전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부어준 기사가 여러 번 나옵니다. (2:4/ 4:3/ 8:17/ 9:17/ 18:26/ 16:6 참조)
  어떤 사람은 기도하다가 받았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들으면서 받았고, 또 어떤 사람은 안수를 받을 때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형태나 받는 자의 방법은 똑같지 않습니다.


  ▶2-3절을 보면 성령 강림의 몇 가지 형태가 나옵니다.
  ①홀연히 임하십니다. 별안간 갑자기 주십니다. 주의 성령은 계단적으로 임하지 않고 갑자기 임합니다. 말3: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어떤 자에게 임하는가? 기도하고 준비된 마음 위에 성령은 홀연히 임합니다. '홀연히' 이 단어가 중요합니다. 주의 재림도 홀연히 임하십니다. 계22: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주의 은혜도 '홀연히' 임하십니다. 능력도, 축복도, 응답도 홀연히 임하십니다.
  ②급하게 임하십니다. 이 표현은 갑작스럽게, 빠른 속도감을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 일을 시작하게 되면 신속하고 민첩하게 일하십니다.
  우리는 매사에 계획을 신중하고 철두철미하게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그 계획이 완성되면 가장 신속한 행동으로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③강하게 임하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강하게, 아무도 저항할 수 없도록 능력 있게 나타납니다. 성령의 역사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아무도 폭풍과 소나기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초자연적으로 강하게 나타납니다.
  ④바람처럼 임하십니다. 헬라어도, 히브리어도 모두 '바람과 성령'을 똑같은 단어로 사용했습니다. 성경은 성령을 바람에 비유한 부분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람의 신비와 성령의 신비성이 같기 때문입니다.
  즉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불어 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또 그 방향도 임의대로 붑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역사도 신비하게 나타납니다.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성령의 뜻대로 역사 합니다. 이런 유사성 때문에 성령은 바람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⑤가득하게 임하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이란 가득하게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득하게 채워지는 것이 '성령 충만, 예수 충만'입니다. 그런데 어느 때 채워집니까? "저희 앉은 온 집에"라고 했습니다. 여기 '앉아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고, '집은 성전'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말씀을 들을 때, 기도할 때, 가득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믿/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3시, 6시, 9시>입니다. 3시는 우리시계로 9시를 가리키며, 6시는 12시, 9시는 오후 3시를 가리킵니다.
  ⑥불같이 임하십니다. 3절의 불의 모양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출3:2)하며, 또 정결케 하며, 거룩케 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상징한 것입니다(겔1:3/말3:2-3).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갈라졌다'는 말입니다. 어떤 한 사람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라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 모두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불은 죄를 태웁니다. 불은 정화시킵니다. 불은 정열을 상징합니다. 또 불은 어두움을 밝힙니다. 불같은 성령을 받으면 죄를 태우고, 심령이 깨끗해져서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주의 빛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바람 같은, 불같은 성령이 어디서 옵니까?
  2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임하십니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거룩하고 성결한 곳으로부터 성령이 오셨다는 뜻입니다. 물론 성령이 그 전에도 세상에 계셨습니다. 시51:11절에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또 마16:16절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을 고백한 것도 성령으로 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은 어떤 성령이십니까?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요14: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혜사란 '돕기 위해 부름 받은 자'로 '대언자, 변호사'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오신 성령은 보혜사의 직분을 가지고 오신 성령이십니다. 오순절 전에 역사하시던 성령과 보혜사 성령은 같은 성령이지만 직분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형님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 형이 국회의원이라는 직분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동일한 형님이지만 그 직분을 받은 다음에는 하는 일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과 못 박히신 후에 성령이 일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4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들이 2-3절에서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은 다릅니다. 우리는 '성령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됩니다. '성령 세례'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순간에 일회적으로 단 한번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이와는 다릅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엡5: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술에 취해버리면 술로 충만해집니다. 그러면 술이 그 사람의 생각도, 말도, 행동도 다 지배를 해버리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성령이 우리의 삶을 사로잡습니다. 그리해서 성령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고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성령의 충만함'이란 성령께서 나를 완전히 장악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얌전한 사람도 술에 취하면 못하는 말이 없습니다. 또 힘도 세어집니다. 술기운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자신을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우리가 계속 받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3절의 '혀같이 갈라졌다'는 말은 성령이 모든 것을 갈라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갈라놓습니다. 영의 것과, 육의 것을,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를 갈라놓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신앙의 덕목이 나옵니다.
  ▶한 자매님이 남편의 술 주정으로 가정이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이 자매는 남편을 위해서 특별 기도를 하면서 "주님, 내 남편이 술도 끊고, 잘 못 산 것을 회개하고 돌아와 가정이 평화롭게 해 주옵소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딸아 네 남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 전에 내가 성령 충만을 받고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크게 감동을 받은 이 자매님은 그때부터 신앙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남편이 핍박해도 기도했고, 때려도 사랑했고, 가난해도 족했습니다. 더욱 남편을 존경했습니다. 그러자 아내의 달라진 모습에서 남편이 감동을 받고 변화되어졌고,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간증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있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으로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여기서 말하는 방언이 지금 우리가 흔히 하는 방언과 다릅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말로 설교를 하는데 로마에서 온 사람들은 로마말로 들려지고, 메대에서 온 사람에게 메대 말로 들려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방언과는 달랐습니다. 고전14장에 나오는 방언은 자기 개인 신앙의 영교를 위해 주신 방언이고, 본문의 방언은 하나님이 제자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특별한 방언을 주신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창11:1-9절의 사건을 들어 하나님이 바벨탑의 사건을 통해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을 흩어버리셨습니다. 본문의 제자들이 성령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된 이 사건은 혼잡케 되었던 언어가 다시 회복된 것으로서 새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부활의 복음이 전 우주적으로 확산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⑴제자들이 그곳에서 '몸부림을 친 후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곳은 120명의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앉아서 성령을 받기 위해서 뜬눈으로 밤을 새워가며 기도한 곳입니다. 거기서 몸부림을 쳤고, 해산의 고통을 느끼며, 진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열흘만에 그곳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중요하다는 일들은 모두 그냥 되는 일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온갖 수고가 들어가야 하고, 땀이 들어가야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이 땅에 강림하시고 신약교회가 이 땅에 탄생되기까지에도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10일 동안 120명의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그곳에 성령이 강림하였고, 기적이 일어났고, 은혜를 모두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인 에게는 이 다락방의 경험이 중요합니다. 신앙 인은 모두 한번쯤 이 다락방에 들어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락방은 어떤 곳입니까? 그곳은 몸부림을 치고 나서 성령을 받은 곳, 그곳이 다락방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마가의 다락방인줄 믿습니다. /아멘!/
  ⑵다락방에서 제자들이 '확신을 얻은 자리'입니다.
  지금 제자들이 얼마나 다급한 상황입니까? 스승은 죽었고, 죽음의 위협은 가해오고, 내일은 불안하고, 그렇다고 문을 박차고 나갈만한 용기는 없고, 그래서 모두 문을 걸어 잠그고 앉아서 고민하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지만 이런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고 용기가 있어서 밖으로 나가서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런데 다락방은 그런 비겁한 제자들에게 기적을 안겨준 곳입니다. 그 날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나서 모두다 '확신 있는 사람'들로 바뀌었습니다. 모두 속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담력이 생기고, 자신감과 확신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다락방을 박차고 나가서 입을 열어 부활을 전하고, 십자가를 전하고, 예수를 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 인들은 모두 이 다락방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가끔씩 우리들로 하여금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을 때가 있습니다. 거기서 고민하게 하시고, 몸부림을 치게 만드시고, 눈물을 흘리게도 만들어 놓으십니다. 다락방은 어떤 곳입니까. 그곳은 확신을 얻는 자리입니다.
  ⑶다락방은 제자들을 '성숙하게 만든 곳'입니다.
  제자들이 다락방을 거치는 동안 아주 성숙해 졌습니다. 생각이 성숙해졌고, 신앙이 성숙해졌고, 무엇보다도 어른스러워 졌습니다. 제자들이 다락방에 들어갈 때는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이었고, 어린 아이 같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다락방을 거치는 동안에 이 제자들이 아주 성숙해 졌습니다. 아주 어른스러워 졌습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내가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헌신을 할 것이냐?' 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다락방을 나오자마자 거리로 뛰쳐나가서 예수를 전하는 전도자들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다락방을 한 번씩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철이 들고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지는 것입니다. /할/
  ⑷또 다락방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은혜 받은 곳'입니다.
  그곳에는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 중에는 성격이 괴팍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믿음이 적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구경 삼아 온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곳에 모인 사람 모두가 성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곳이 은혜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믿/ 은혜가 있는 자리는 신앙이 좀 부족한 사람이 앉아 있어도 쉽게 은혜를 받게 됩니다. 잘 타는 장작불 속에는 마르지 않은 생나무를 집어넣어도 잘 타는 법입니다. 이 말은 신앙이 좋은 사람들만 모인 곳에는 신앙이 좀 부족한 사람이 들어가도 얼마가지 않아서 신앙이 좋아진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뜨거운 사람들과 가까이 하면 쉬지 맞습니다. /믿/

 

  ▶5 절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그때에" ⑴유월절을 칭할 수도 있고, ⑵성령강림의 때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경건한 유대인" 유대인은 본래 선민으로서 경건하게 살아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의 이 표현은 오순절과 그 규례를 지키기 위해 모인 유대인 중에서 율법을 잘 준수하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천하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다수가 각 국으로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이었습니다. 즉 흩어져 사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오순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온 것입니다. 여기 '우거한다'는 말은 '나그네로 와서 잠깐 있다'는 말인데, 사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잠시 잠깐 나그네로 우거하는 자'들입니다.
  ▶'경건한 유대인'에서 '경건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①도덕심이 있는 예의 바른 사람들입니다. 인간은 서로 바른 관계로 살아야 하는데 그 바른 관계를 이루는 바탕이 바로 도덕성입니다. 이웃 간에 바른 관계가 바로 하나님의 바른 관계를 이어질 수 있습니다.
  ②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지고, 그래서 축복의 삶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③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④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워하고 말씀에 자신의 인생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여기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든 경건한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사도들을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6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이 소리가 나매" 여기 '소리'는 헬라어로 '포네'인데, 보통 '인간의 소리'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성령 받고 방언으로 말하는 소리'를 의미합니다.
  "큰 무리가 모여" 4절의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큰 무리가 몰려 왔음을 뜻합니다. 여기 큰 무리라 함은 많은 수의 군중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약15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 큰 무리 속에 들어갑니다.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약 15개국에서 온 '디아스포라'들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나라의 언어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9-11절까지를 보면 15개국이 나옵니다. <바대인, 매데인, 엘람인, 메소보다미아, 유대, 가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리시아, 밤빌리아, 애굽, 리비아, 로마, 그레데인, 아라비아>
  그들이 제자들의 방언을 듣고 깜짝 놀라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소동이 일어났다는 말은 난리법석을 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7절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여기 '놀라'는, 입을 다물지 못하는 놀라움을 의미합니다. 너무 좋으면 입이 벌어지고, 혀가 날름거립니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흔들합니다. 또 '기이히' 여겼다는 말은, 그 놀라움이 점점 커져서 어떤 사건이 뜻하는 바를 어떻게 설명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표현입니다.
  그들은 방언을 말하는 제자들이 갈릴리 사람인데 다가 또 배우지 못한 자들이면서도 그와 같이 각 국에 살고 있는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심히 놀란 것입니다.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이 질문은 제자들의 출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언어 구사력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로 여겨졌음으로 요1:46절을 보면 나다나엘도 빌립에게 갈릴리에 속한 동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만큼 갈릴리 지역은 빈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술주정뱅이들, 사고뭉치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는 그런 것이 아니지만 옛날 달동네들이 그런 인식을 줍니다.

 

  ▶8절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그러니까 베드로가 갈릴리 사투리로 설교를 하는데 15개 국어가 동시에 통역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 당시는 외국어 학원도 없었을 것이고, 또 시간도 없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성령의 방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방언의 종류가 세 가지로 나옵니다.
  ①본문의 경우처럼 배우지 않은 다른 나라말을 성령의 능력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나라말로 말했으나 들은 사람이 각기 자신의 나라말로 들린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②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도 있습니다. 고전14:2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하나님만 알아듣는 방언입니다.
  본문의 제자들이 한 방언은 어떤 학자들은 사도들의 시대로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고전14장의 방언은 지금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십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방언과 성령의 충만함과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방언 못 받았다고 해서 성령 못 받은 것도 아니고, 구원 못 받은 것도 아닙니다.
  ③막16:17절의 '새 방언'이 있습니다, '새 방언'이란 '성경 말씀을 새롭게 깨달아 변화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새로운 말'입니다.

 

  ▶9-11절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경건한 유대인들이 15개국에서 오순절 행사에 참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각계각층의 유대인들이 모인 것입니다. 11절에 '하나님의 큰일'은 '구원의 복된 소식'입니다. 생명 살리는 일이 제일 큰 일입니다. /할/

 

  ▶12절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7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제자들의 방언을 통하여 몇 가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⑴하나님은 모든 언어의 주인이시며 ⑵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의 언어가 있을 뿐이며, ⑶하나의 언어가 바벨탑사건으로 여러 방언으로 흩어졌으나 ⑷하나님께서 이 언어를 마음대로 하실 수 있다는 권능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어찐 일이냐?" 고개를 기우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13절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여기 보면 당시 예루살렘에 온 유대인들은 크게 두 부류였습니다. 하나는 '경건한 유대인'들이고, 또 하나는 '천박한 유대인'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방언을 듣고 조롱하면서 술 주정으로 야유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미쳤다고 조롱할 수도 있습니다.
  ▶'새 술에 취하면' 각종 은사가 나타납니다. 신령한 은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인데, 이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시명을 잘 감당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고전12:8-10절에 보면, "지혜의 말씀 은사, 지식의 말씀 은사, 병 고침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예언의 은사, 영 분별함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등 9가지 은사가 있습니다.
  120 문도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가장 먼저 받은 은사는 '방언의 은사'입니다. 저는 '능력 행함의 은사'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자기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늘로써 내려오는 놀라운 힘(능력)을 말합니다.
  성령론의 대가인 'R. A. Torrey' 박사도 '성령 충만을 받으면 하늘로써 오는 놀라운 능력(힘)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사도들도, 사도바울도, 초대교회 성도들도 성령의 충만 후 위로부터 오는 새로운 능력을 받아 상상할 수 없는 핍박과 위험과 각가지의 시험과 모든 환경을 넉넉히 이길 수 있었으며 죽음까지도 여유 있게 이겼습니다.
  행4:18-19절에 보면 공회원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계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했고, 행5:29절에 보면 공회원들이 사도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협박하였지만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고, 행5:40-41절에 보면 공회원들이 사도들을 잡아다가 채찍으로 때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위협하며 놓았을 때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것을 합당한 것으로 여기면서 날마다 예수님을 예수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행6-7장에 보면 스데반집사는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면서도 용기와 믿음과 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마옵소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또 행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지만 그 곳에서 기도하고 찬송하다가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할/
  우리가 '새 술'에 취해야 합니다. 이 술은 신령한 술입니다. 여러분, 환경을 이기기 원하십니까? 담대하게 믿음으로 생활하고 담대하게 사명(직분)감당하고 이 세상을 정복하기 원하십니까? 또 어떤 유혹과 시험까지라도 이기시길 원하십니까?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고 위로부터 임하는 새로운 능력으로 무장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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