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주리니 하나를 지키라! (창 17:23-27)
우리 선교지 파나이 섬에 가면 특별한 행사가 일년에 한번 벌어지고 있습니다. 해마다 고난 주일이 되면 한 사람을 징말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시켜서 살립니다. 그리고 그의 일생에 평생 먹고 살게 보장하여 줍니다.
그래서 지원자들이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5가지 엄청난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꼭 한 가지만 요구하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75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갈데아 우르를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같이 번성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25년이 지나도록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별로 나타나지 않으셨던 것같습니다. 창세기 17장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1부 1절로 8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5가지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제2부 9절부터 22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할례를 요구하십니다.
제3부 23절에서 27절에서 아브라함은 할례를 거행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브람의 구십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1)
하나님은 보통 후광(쉐키나)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너무나 황홀함을 느끼며 땅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제부터 아브라함에게 주실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1. 번성의 축복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2)
2. 열국의 아비가 되는 축복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4) 그래서 열국의 아비라는 뜻의 아브라함이라고 이름을 바꾸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까지 아브라함은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 나라를 주며 왕이 나오는 축복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6)
4. 후손에게도 축복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7)
5. 땅의 축복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9)
이렇게 5가지 축복을 약속하시면서 하나님은 꼭 한 가지를 요구하셨습니다. 그 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10-14)
할례란 히브리어로 <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물>이라는 말은 <주위를 둥글게 베어내다>라는 뜻입니다. 남성의 성기 귀두 표피를 둘러 싸고 있는 피부를 둥글게 베어낸다는 의미에서 할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왜 하나님은 할례를 하라고 하셨을 가요? 여기에 대하여 학자들마다 의견들이 많습니다.
1. 구별설
카리쉬(Kalisch)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을 주변 국가들로부터 구별시키려고 하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2. 성결설
칼빈(Calvin)은 죄로부터 구별하려고 하시는 성결의 의미가 있다고 성결론을 주장하였습니다.
3. 탈출설
어거스틴(Augustine)은 아담으로부터 흘러 오는 죄를 벗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탈출설을 주장하였습니다.
4. 결단설
이전의 삶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새 피조물로 거듭난 삶을 살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결단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축복을 약속하여 주시면서 할례 하나를 요구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할례믿음>을 요구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할례 믿음이란 어떤 믿음일까요?
1. 피 믿음
할례를 하려면 피를 흘리게 됩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습니다(히9;22)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피흘리고 죽으셨기에 이제는 할례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는 피가 필요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십자가의 피를 믿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짐승 피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번 이스라엘 가서 한 달 지낼 때 대속죄일이 있었습니다. 랍비가 회당앞에 서있습니다. 그 옆에는 추럭에 닭들이 수 백마리 실려져 있습니다. 가족별로 랍비에게 와서 헌금통에 헌금을 합니다. 그러면 한 마리를 꺼내 듭니다. 온 가족이 죄를 전가시키는 안수를 합니다. 랍비는 닭을 가족 머리위에서 돌립니다. 그리고 목을 자릅니다. 피가 흐릅니다. 그 피를 땅에 뿌리고 옆에 있는 통에 넣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 가족의 일년 동안에 지은 죄가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예식을 해마다 거행합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할례는 피믿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라고 매튜 헨리는 말하고 있습니다.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는 피입니다. 석가모니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려고 피를 흘리고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예수님의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석가모니의 죽음을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잔치집에 갔다가 돼지고기 잘 못 먹고 체하여 죽었습니다. 그 것이 자랑일 수 없습니다. 그의 무덤속에는 그의 사리가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습니다.
피는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고난이요 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원하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일본 하네다 공항 근처에 조그마한 일본 교회가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를 앞두고 도로 계획이 변경되었습닏니다. 그 교회가 헐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보상이 나왔습니다. 교회 재산이 생각지도 않게 엄청난 재산으로 불어 났습니다. 교회에서 임원회가 열렸습니다. 그 돈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주제였습니다. 어느 장로님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헐렸으니 교회부터 지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된 기회에 교회를 잘 지읍이다. 멋진 교회 건물을 지으십시다"
이 때 집사님 한 분이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거저 받은 돈 가지고 교회당을 지으면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이 돈은 거저 받았으니 자선기관에 줍시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우리가 땀흘린 정성으로 지어야 됩니다. 우리가 희생된 돈으로 교회를 지어야 합니다"
그 때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공짜로 받은 돈은 모두 불우이웃을 위하여 나누어 주고 모두 피와 땀을 흘려 헌금하여 교회를 지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교회입니까? 모두가 하나님을 멋지게 기쁘게 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믿음을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피의 믿음입니다.
2. 변치 않는 믿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13-14)
할례믿음은 영원한 믿음입니다. 그렇기에 변치 말아야 합니다. 몸에 표시한 것이기에 죽기까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몸에 문신을 하거나 몸을 베어 상처를 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문신을 하거나 몸에 이상한 표시를 하는 것들은 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19;28)
살을 베면 안 됩니다. 문신도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할례를 하면서 몸을 베어내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몸에 표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몸에 사귀어 놓고 영원히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할례믿음입니다. 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19세기 독일의 단막극"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돈 불>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부요한 가정에 계모로 들어간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모가 얼마나 착했든지 전실의 자녀들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 가정에는 행복의 꽃이 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뜨자마자 그 화목한 가정은 전쟁터로 바꾸어졌습니다. 재산 상속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계모는 '내 몫을 챙겨야 되겠다' 고 말했습니다. 큰 아들은 내가 장남이 재산을 자기가 상속받아야 원칙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웃음은 사라지고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시신을 건너방에 두고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한 자녀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싸우지? 어제까지는 화목하게 살았잖아. 화목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지 무엇 때문에 이러지? 돈 때문에 그래? 그러면 돈을 버려야지"
그때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래 돈을 다 버리자 그리고 우리 화목하게 살자"
그들은 금고에 있던 돈을 다 꺼내서 불을 질렀습니다. 그러니까 딸이 불을 쬐면서 '아, 돈불이 따뜻하다.' 하고 말했습니다. 불을 쬐면서 서로 얼굴을 보니까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습니다.
오늘날 돈 불을 쬐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돈 때문에 냉랭해지고, 원수되고, 돈 잃어버리고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얼굴에 화기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돈 때문에 의리가 상하고 옛 사랑을 버린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돌 불을 피워야 할 친구, 돈 불을 피워야 할 가정, 돈불을 피워야 할 친구가 얼마나 많습니까? 돈 때문에 인간관계가 변하고, 믿음이 변질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무엇으로도 변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할례로 몸에 상처를 새기고 영원히 변치 말아야 할 것이 할례 믿음입니다.
3. 연합 믿음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10-13)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에서 돈 주고 사온 종들까지 집안에 있는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여자에게까지 할례를 받으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기에 남자가 할례를 받으면 여자는 자동적으로 남자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이기에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난 사람들, 돈주고 사온 종들까지 다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할례로 하나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두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십자가의 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할례를 받지 아니 하여도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되었다고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2;11-14)
할례 믿음은 연합 믿음을 의미합니다.
4. 은밀한 믿음
할례는 은밀한 곳에 표시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보여 줄 수 없습니다. 자기와 하나님만 아는 비밀입니다.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떠벌릴 필요가 없습니다.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누가 보여 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사이만 진실하고 되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누가 무엇이라 하든지 하나님앞에서 진실되이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1968년 북한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자녀들이 모두 월남하고 혼자 남은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반동분자로 찍히게 되었습니다. 사상이 불순하다고 체포되어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으로 전전긍긍하면서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역이었습니다. 차라리 죽였으면 좋겠는 데 죽이지 않고 고생만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수용소를 옮겨갈 때마다 이상하게도 소중히 들고 다니는 방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본 감시원이 그 방석을 찢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서 두 가지가 나왔습니다. 하나는 성경책이고 하나는 태극기였습니다. 은밀하게 간직하며 자기 신앙을 기르던 두 가지였습니다.
격노한 정치 간부는 군중을 모아 놓고 불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성경책과 태극기를 불에 던지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때 그 노인은 조용히 그리고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간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성경과 태극기를 저 불속에 던져라"
그러나 그 노인은 역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항하였습니다. 당당하였습니다. 마침내 이 노인은 인민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과 태극기를 품에 안고 외쳤습니다.
"하나님! 이 조국에 평화를..."
그는 은밀하게 감추어 가지고 신앙생활하던 성경과 태극기를 품에 안고 목이 잘렸습니다. 붉은 피가 하늘로 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장렬하게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싱싱한 믿음을 은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남이 볼 수 없고, 남에게 보일 수도 없는 할례입니다. 누가 보자고 할 수도 없는 할례입니다. 할례 믿음은 자기만이 간직한 은밀한 믿음입니다.
5. 예배 믿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12)
갓난 아이를 할례할 수 없습니다. 고통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중에 장성하여 하라고 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8일 정도면 그 정도의 고통은 이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8일만에 할례를 거행하면 최소 안식일 한번은 지나게 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예배를 한번은 참석한 후에 할례를 거행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8일만에 할례를 행하셨습니다.
<할례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함이더라>(눅2;21-24)
그래서 이스라엘 회당에 가면 할례탕이 지금도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8일째 데리고 오면 할례탕에 세 번 넣었다 뺀 후에 할례를 거행합니다.
영국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주일 예배시간에 기도를 맡은 장로님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아 봤더니 영국 왕실의 초청을 받고 오찬에 간 것입니다. 그 다음 날 목사님께서 조용히 물었습니다.
"장로님! 무슨 일로 주일예배를 빠졌습니까?"
"어제 영국 여왕께서 저를 초청하셔서 거기에 갔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당당하였습니다. 장로님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개인적으로 여왕의 초청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여왕의 초청을 받았다.' 그 때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장로님! 우리 주님께서 초청하신 오찬에 오셔야 되겠습니까? 여왕이 초청하신 오찬에 가셔야 되겠습니까?" 장로님은 말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당신의 거룩한 몸을 성전으로 이루어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왕의 초청을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가셨습니까? 장로님은 거룩한 예배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셨으므로 지금부터 3 년동안 근신하십시요. 이제 장로님은 기도할 자격이 없습니다. 장로님은 예배시간에 조용히 앉아서 회개하면서 은혜를 받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장로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저는 늘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한번 빠지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고 여겼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 장로님은 3 년동안 말없이 교회에서 근신했습니다. 3년이 지나고 근신을 회복하고 그에게 기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배를 중요시여기는 믿음이 할례 믿음입니다. 그래서 8일 만에 할례를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날도 우리에게 할례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할례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 피 믿음
2. 변치 않는 믿음
3. 연합 믿음
4. 은밀한 믿음
5. 예배 믿음
'송수천 목사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송수천목사님 가나안교회 집회사진 영상입니다. (0) | 2011.11.11 |
---|---|
[스크랩] 르호봇이 좋아도 브엘세바로! (창 26:23-25) (0) | 2011.11.07 |
[스크랩] 예수님의 옷깃에 손을 댄 여인! (막 5:25-34) (0) | 2011.11.07 |
[스크랩]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보라 (레10:1-11) (0) | 2011.11.02 |
[스크랩] 야베스 축복의 원리! (대상 4:9-10) (0) | 2011.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