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이 좋아도 브엘세바로! (창 26:23-25)
여러분은 지금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불만족입니까? 만족한 곳이든지 안 만족하든지 한 차원 생활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하룻밤에 100만원 하는 호텔방에서 자 본적이 있습니다. 박 정희 대통령이 하룻 밤 잤던 방입니다. 그러나 그 곳과 느추한 우리 집 중 어느 곳에서 살겠느냐고 물으면 말할 것도 없이 내 집을 선택할 것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이 노래를 지은 하워드의 심정이 이해가 갔습니다.
미국이 아무리 좋아도 한국에서 살 것입니다. 아무리 빵이 맛있어도 밥과 김치를 먹고 살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삭이 그렇습니다.
이삭이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 그 중에서도 브엘쉐바였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가뭄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레셋 땅 그랄도 피난을 갔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불레셋 사람들에게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데 하나님이 100배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나그네가 거부가 되는 것을 불레셋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었습니다. 농사만 잘 되는 줄 알았더니 목축도 잘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깜짝 놀랄 역사가 일어 납니다. 양과 소가 많아지니 물과 풀이 엄청나게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불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우물을 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삭은 다시 우물을 찾았습니다.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지었습니다. <강탈당하다>라는 뜻입니다. 이삭은 할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러나 불레셋 사람들은 또 빼앗았습니다. 이삭은 그 우물 이름을 싯나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악의적인 도전을 받다>라는 뜻입니다.
이삭은 이들과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그리고 보니 불레셋 사람들이 침범하지 않는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양과 소를 치기에 아주 적당한 곳이었습니다.
이삭은 그 곳 이름으로 르호봇이라고 지었습니다. <넓은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 곳을 떠나 약속의 땅 브엘쉐바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거기가 좋아도 여기로 오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참으로 이상합니다. 이삭이 그렇게 좋은 곳을 찾더니 찾자 말자 고향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좋은 르호봇을 떠났습니다
르호봇은 어떤 곳입니가?
1. 넓은 곳입니다. 르호봇은 넓다는 뜻입니다.
2. 우물이 있는 곳입니다. 넓은 곳인데 우물이 있는 곳이란 금상첨화입니다. 은쟁반에 금사과입니다.
3. 불레셋과 싸움이 끝난 곳입니다. 불레셋과 세 번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피하니까 더 이상이 싸움이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안정된 곳입니다.
4. 물질적으로 부요한 곳입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은 이삭은 떠났습니다. 르호봇을 떠나 브엘쉐바로 떠나야 합니다.
이삭이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간 것입니다.
불레셋에서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을 수가 없었습니다. 불레셋 사람들의 방해가 심하였습니다. 이삭은 불레셋을 떠나 브엘쉐바로 오자 말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이 그 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에서도 우물을 팠더라>(25)
이것을 보면 얼마나 단 쌓기를 사모하고 있었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앙 제일 주의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좋은 르호봇을 떠났습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땅이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그 땅으로 갔습니다. 약속에 없는 땅에서 부요하게 거부로 살기 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개척하며 다시 살기로 다짐하고 떠난 것입니다.
23절에 <거기로부터 올라 갔더니>라는 말씀은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결단하고 올라간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1. 임재의 은총
이삭이 흉년을 피하여 불레셋에 갔다가 좋은 조건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곳을 떠나 약속의 땅,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한 땅으로 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23) 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있어>(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여 주시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축복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축복입니다.
전라도 어느 집에 갔더니 전 두환 대통령이 한번 머믈고 간 집이라고 비석까지 세워져 있었습니다. 미국 어느 식당에 갔더니 김 영삼 대통령이 오셔서 식사 한 자리에 <대통령이 앉았던 자리>라고 적어 놓았고, 선반 위에는 김 대통령이 그 집에 와서 먹었던 그릇 수저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한번 나타나도 그렇게 영원히 기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바울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가시떨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불꽃으로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큰 역사를 일으키고 있는 가얀쟈 목사님 간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목사였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성경시대에서는 앉은 뱅이가 일어나고 중풍병자들이 고침받고 소경이 눈을 떴지요? 그런데 왜 오늘 날은 그런 기적이 안 나타나나요?"
아버지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런 기적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십자가 시대가 되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십자가를 믿고 구원받는 신앙생활만 있으면 된단다"
이 말을 아버지로부터 들은 가얀쟈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는 곰곰히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어제와 오늘 영원토록 동일하다가 하셨는 데......"
그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정말 기적의 시대는 지나 갔나요?"
이 때였습니다. 방안이 갑자기 환하여졌습니다. 그러더니 예수님이 흰 옷을 입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능력이다. 나를 믿는 자는 나보다 더 큰 일도 행하리라"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옷자락을 꼭 잡았습니다. 그 후 그는 기사와 이적과 표적을 일으키는 큰 목사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한번 다녀가면 표적이 남듯이 하나님이 한번 역사하면 그의 생애는 놀라운 생애가 됩니다. 이삭은 르호봇이 좋아도 브엘쉐바로 왔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부터 이삭의 생애는 새로운 생애가 전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편안하게 안주하던 생활을 벗어나 새로운 기적의 세계로 일어나야 합니다.
2. 자손 축복의 은총
브엘세바로 올라 오자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24) 이삭은 자기는 불레셋에서 거부가 되고 자손은 브엘세바에서 축복을 받는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브엘쉐바로 돌아 오자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자손에게도 복을 주셨습니다. 자신은 르호봇에서 복을 받고 자손들은 르호봇을 떠나 브엘쉐바로 왔을 때 복을 받았습니다.
이번 168기 성막 쎄미나에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성막을 공부하러 왔습니다. 정식 등록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기독교 서적에 가서 25,000원 짜리 내가 쓴 성막 책을 사달라고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놀래서 "이책은 목사님들만 보는 전문 서적인 데 네가 이 책을 사서 무엇 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어코 사달라고 하여서 다 주었더니 집에 돌아 와서 단번에 이 책을 다 읽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성막 쎄미나에 같이 가 달라고 하여서 아버지 어머니가 다 같이 세 식구가 참석하였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그 조그만 학생이 내게 와서 책에 대하여 문의하고 물어 보곤 하였습니다. 알고보니 성경에 천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모르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줄줄 꿰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Kal에서 34년 조정사로 일하였습니다. 자식이 너무나 똑똑하여 번 돈을 모두 성경 공부에 투자하였습니다. 아무리 돈이 좋고 직업이 좋아도 그 직장을 그만 두고 이 아이 공부에 전념하였더니 비범한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포기하고 더 좋은 미래를 불들 수 있는 부모의 결단에 탄복하였습니다. 그 동안 27,902명 성막 공부를 하였는 데 최연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포기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포기할 것을 포기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어떤 사업가가 장미화원을 가꾸는 한 가정을 방문하였습니다.이 가정 주인은 정원으로 사업가를 데리고 가서 백장미,흑장미,노랑장미등 각종 장미를 보여 주었습니다.그러더니 몇 송이만 남겨놓고 모로지 잘라 버렸습니다.깜짝 놀란 사업가가 이유를 물었습니다.주인은 대답하였습니다.
"많이 잘라야 좋은 장미가 핀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업가는 번 돈을 아낌없이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의 대재벌 워너 메이커 이야기입니다. 잘라야 할 것은 잘라야 합니다. 떠나야 할 곳은 떠나야 합니다.
3. 우물의 은총
그 동안 이삭은 우물이 발견되는 곳으로 이사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브엘세바에 와서는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에 신비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삭이 그 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에서도 우물을 팠더라>(25)
우물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간 것이 아니라 이사 간 곳에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물이 없어도 믿음으로 안주하였더니 물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믿음이란 주시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면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갈라진 바다로 빠져 들어간 것이 아니라 갈라질 줄 믿고 지팡이를 내어 미니까 홍해가 갈라져서 건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호랑이는 확실히 동물의 왕입니다. 모든 동물은 호랑이를 무서워 합니다. 동물들은 호랑이와 마주친다든지, 호랑이를 한번보면 숨이 막히고 오금이 저리고 정신이 아찔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동포 사냥가인 강동만씨의 사냥개들은 예외였습니다. 그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의 개들은 호랑이를 보면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기가 섭니다. 자신만만하게 호랑이에게 달려듭니다.
어느 날 그는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습니다. 호랑이와 마주쳤습니다. 먼저 호랑이가 노려보며 으르렁 거렸습니다. 그 소리를 신호탄으로 삼기라도 한 듯, 두 마리의 사냥개는 거침없이 호랑이에게 덤벼 들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호랑이는 겁을 먹고 옆의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본래 호랑이는 나무를 타는 동물이 아닙니다. 하도 다급해진 나머지 호랑이가 나무 위에는 올랐지만 이내 나무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냥개에게 잡혔습니다. 어떻게 개가 호랑이를 나무위로 몰아 붙일수 있었을까요?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사냥개의 뇌리에 새겨진 자아상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개는 평소에 주인에게 철저히 의지하는 훈련을 받아 왔습니다. 과거에 어떤 무서운 맹수가 달려 들어도 주인이 총으로 죽이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호랑이가 앞에 있어도 달려 들기만 하면 주인이 책임진다는 것을 확신히 배워 왔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덤벼 들은 것입니다. 주인에 대한 절대 신뢰가 그런 무서운 힘을 준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던 것입니다. 아무리 키가 큰 골리앗이 덤벼 들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달려 든 것입니다.
이삭은 아무리 넓고 우물이 있고 축복받은 곳이라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떠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와보니 하나님이 그 곳에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삭은 살기에 넓고, 먹을 것이 풍족하고, 건드리는 이가 아무도 없고, 할 일이 많은 르홋봇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브엘쉐바로 왔습니다. 과감하게 좋은 일망정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을 버리고 떠났더니 하나님께서 세 가지 은총을 주셨습니다.
1.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은총
2. 자손이 복을 받는 은총
3. 우물을 주시는 은총
이제 마지막 이야기 하나 학 마치려고 합니다.
나이가라 폭포로 떨어지는 물줄기에 얼음 덩어리 하나가 떠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 위에 새 한 마리가 먹이를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맛있어서 그 새는 자기 발이 얼음에 얼어 붙는 줄도 모르고 맛있는 먹이에 취하여 있었습니다.
이제 그 얼음덩어리는 급류에 휩쓸려 이제 폭포 밑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날 즈음이었습니다. 이제 새는 그만 날라야겠다고 생각하고 날개를 펄럭였습니다. 그러나 그 새는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발이 얼음에 붙어 움직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새는 죽고 말았습니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는 미래를 향하여 날라야 합니다. 우렁차게 움직여야 합니다. 르호봇이 좋아도 블레셋으로 가야 합니다.
'송수천 목사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010.7.23(금)가나안교회 연속집회 송수천목사님 설교 (0) | 2011.11.11 |
---|---|
[스크랩] 송수천목사님 가나안교회 집회사진 영상입니다. (0) | 2011.11.11 |
[스크랩] 많이 주리니 하나를 지키라! (창 17:23-27) (0) | 2011.11.07 |
[스크랩] 예수님의 옷깃에 손을 댄 여인! (막 5:25-34) (0) | 2011.11.07 |
[스크랩]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보라 (레10:1-11) (0) | 2011.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