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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자락에서의 '셈'! (눅 16:1-9)
참 세월이 빠릅니다. 엊그제 2011년 신년예배를 드린 것 같은데 벌써 여기까지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다음 주는 성탄절이므로 사실 오늘이 송년 주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해, 그것이 샛길이든 굽은 길이든, 큰길이든 이제 우리는 한해의 끝자락에 섰습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하더니 새삼스럽게 시간의 존재가 무섭도록 실감이 납니다. '실러'(Schiller)라는 사람이 시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시간의 걸음을 세어보는 방법은 세 가지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재라고 하는 시간은 쏜 화살처럼 빨리 지나갑니다. 그리스 올림포스 신전에는 '크로노스'의 신상이 있는데 그 모습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몸통에, 발에는 날개가 달려있고, 오른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들려있고, 이마에는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늘어져 있고, 뒤통수는 빈대머리'랍니다. 이 크로노스의 신상은 인간이 이해하고 있는 시간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발에 날개가 달려있다는 것은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오른 손에 날카로운 칼이 들려있다는 것은 시간은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마에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늘어져 있다는 것은, 시간은 앞에서 미리 대비하면 잡아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에 비해 뒤통수가 빈대머리라는 것은 시간은 지나가면 뒤에서는 결코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는 의미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발에 날개가 달린 크로노스를 좇을 수 없는 것처럼 정말 시간은 빨리 지납니다. 우리는 정말 빠른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 손에 날카로운 칼을 든 크로노스 앞에 모두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모두 이 시간 앞에 정말 무력한 존재임을 깊이 깨닫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덧없음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풍운아였던 모세도 이런 고백을 했지 않습니까? 시90: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크로노스의 뒷머리처럼 날아가 버린 올해는 붙잡을 수가 없지만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새해의 곱슬곱슬한 앞머리는 우리가 잡을 수가 있습니다. 다가오는 신년새해에는 보다 알찬 삶과 신앙 안에서 보다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새해를 맞이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제목 소개!▶
본문은 소위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기 위해 말씀하신 그런 비유입니다. 비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청지기 한 사람을 고용하여 그에게 자기 회계 사무를 맡겼습니다. 그러니까 개인 경리인 셈입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이 청지기가 정직하지 못하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그가 주인의 재산을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의 귀에까지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를 불러다 놓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자네가 내 재산을 허비한다는 말이 들리는데 어떻게 된 건가? 그 동안의 회계 장부를 보고자 하니 장부를 정리해서 내게로 가져오게! 만일 소문의 진상이 사실이면 자네는 더 이상 이곳에서 일할 수 없을 것이니 그리 알게!.' 주인에게서 이와 같은 최후 통촉을 받은 이 청지기가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 이걸 어쩌나, 나는 이제 곧 여기서 꼼짝없이 쫓겨나게 생겼구나! 이곳에서 일을 그만두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구나!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창피하고. 아! 큰일이네, 어떻게 하지!' 그러다가 번개처럼 스쳐 가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다! 그러면 내가 여기서 일을 그만두고 쫓겨나도 나를 돌보아줄 친구들이 많아질 것이니 당장에 굶어 죽는 일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 하나 불렀습니다. 첫 번째 사람에게 '당신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을 졌느냐?' 그 사람이 '기름 백 말을 빚졌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이 청지기가 말하기를 '여기 당신이 도장을 찍은 차용증서가 있다. 이 증서는 찢어 버리고 다시 차용증서를 쓰는데 기름 오십 말만 빌린 것으로 쓰자' 하고는 장부에 기름 백 말이라고 쓴 것을 두 줄을 그어 지우고서는 오십 말이라고 썼습니다. 또 다음 사람에게도 '당신은 얼마나 빚을 졌느냐?'고 물으니 그 사람은 '밀 백 섬을 빚졌다'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이번에도 '여기 당신의 차용증서를 찢어버리고 밀 팔십 섬을 빌린 것으로 다시 쓰자'고 하면서 장부에 팔십 섬이라고 고쳤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장부를 조작한 것입니다. 자기가 쫓겨난 다음에 그들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빚진 사람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가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주었고, 그런 그가 그 일로 인하여 주인에게서 쫓겨났다고 하면 그에게서 호의를 입은 자들이 그를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도와줄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주인이 이런 사실을 알고서는 놀랍게도 '그 청지기에게 참 지혜롭게 처신했다'고 칭찬했다는 것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할/ 그런데 이 비유의 말씀은 정상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청지기가 제멋대로 탕감해 준 것을 어떻게 지혜로운 처사라고 칭찬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그를 '옳지 않은 자'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를 지혜롭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즉 그의 모든 행동이 분명히 옳지 않았지만, 지혜로운 부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윤리에 거짓말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부정한 것을 칭찬하니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이 비유를 보면서 내용보다는 이 비유의 초점에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같이 문서를 위조한 불의한 청지기를 본 받아라'는 것이 이 비유의 초점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마10:16절에 보면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슬기로워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뱀은 사탄을 의미합니다. 악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뱀같이 지혜로워라'고 하신 것은, 비록 뱀이 악한 것일지라도 정말 우리가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지혜가 뱀에게 있다면, 그 뱀에게서도 배워야 한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오늘 비유의 말씀도 바로 그런 차원에서 그에게서 나타나는 지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가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우리 주님께서 칭찬하신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즉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기름을 준비하고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미래를 준비하라는 교훈이 본 비유 속에 깊이 깔려있습니다. /아멘!/
①본문의 나오는 청지기는 어떤 사람인가?(1) 여기 '청지기'란 뜻은 '주인의 집과 재산을 관리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물론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청지기는 주인의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그 종들에게 일을 시키고, 감독하는 종입니다. 이 청지기는 위임받은 주인의 소유를 자기 소유처럼 관리합니다. 종이지만 주인의 권위를 가지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그런 종입니다. 이를테면 창세기에 나오는 보디발 집의 '요셉'과 같은 사람입니다. 애굽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은 바로 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 집에서 성실하게 일을 잘함으로 주인의 신뢰를 받아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자기의 아내를 제외한, 가사 전반을 다 맡겼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요셉 때문에 보디발 집의 모든 일들이 다 잘되었습니다. 요셉은 그 가정에서 청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밑거름이 되어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도 나라를 아주 잘 다스리는 탁월한 지도력을 그가 발휘했습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입니다.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다가, 세상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다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날, 요셉처럼 하나님께 칭찬 받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그런데 본문의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허비한 불의한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여기서 '허비'란 '제 것이 아닌 것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⑴청지기가 항상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청지기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돈과 재물과 시간과 재능과 능력과 심지어 목숨까지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하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우리는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 두 가지 보고를 반드시 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어떻게 쓰다가 왔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어떻게 쓰다 왔는지를 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⑵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청지기 의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 특히 성도들은 재물을 비롯해서 건강, 자식, 명예와 권세 그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일시 맡겨주신 것임을 철저히 알아야 합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이 거두어 갈 수도 있고, 더 많이 맡겨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많이 가졌다고 교만 할 것도 없고, 거두어 가신다고 낙심하거나 불평할 것도 없습니다. 청지기 의식만 가지고 살면 어떤 굴곡이 있어도 마음에 평안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욥이 그 많던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도적 맞고 불타버리고 다 없어졌고, 열 남매 자식들이 대풍에 집이 무너지면서 다 죽어 버렸는데도 그가 욥1:21-22절에서 고백하기를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청지기요 그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철저히 인식해야 합니다. ?믿/ ⑶청지기는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주인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주인은 따로 있는데 청지기가 그 재물이 자기 것인 양 제멋대로 사용하고 허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재물, 자식, 건강이 모두 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인데 제 뜻대로 쓰고 허비하면 거두어 가시는 날이 옵니다. 본문에서 이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허비하다가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하고 사표 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⑷청지기는 마지막 날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재물 뿐 아니라 권세도 영광도 다 버리고 떠날 날이 옵니다. 눅12장에 보면 한 부자가 원체 부자인데 다가 농사가 잘되어 쌓을 곳이 없어서 창고를 더 크게 짓고, 잔뜩 쌓아놓고 큰소리치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고 떵떵거리며 좋아하는 모습을 주님이 보시고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그 날 밤에 그 생명을 불러 갔습니다. 그 많던 재물은 엉뚱한 사람이 다 갖다 썼을 것입니다. 그 부자가 하나님을 위하여 선한 물질의 청지기로 살았다면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겠습니까? 재산은 많았지만 그에게는 물질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행한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이렇게 살아서는 안니 됩니다. /아멘!/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 재물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의 장례식에서 보니, 관 위에 의사 면허증, 박사 학위증, 감사장, 표창장을 즐비하게 진열해 놓은 것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생사화복을 주관 하시는 하나님을 먼저 잘 섬겨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재물과 생명과 권세를 영원히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재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재물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설명한 것은 재물뿐입니다. 마6:2절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재물에 많이 가 있기 때문에 재물이 하나님께 가 있는 사람은 그 마음도 하나님께 가 있고, 재물이 하늘나라에 가 있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도 하나님께 가 있는 법입니다. 10년, 20년 교회에 다녀도 하늘에 보화를 쌓을 줄 모르는 사람은 몸뚱이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지 그 마음은 하나님과 먼 사람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물론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네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느냐에 따라서 상급이 달라집니다. /믿/
②청지기는 하나님 앞에 셈을 할 때가 분명히 옵니다(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생각지도 못하던 때 청지기를 불러 갑작스럽게 평가를 하겠다고 주인이 통보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맡은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맡은 기간이 있습니다. 그 일을 그 기간 동안에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하고 싶은 기간 동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맡은 기간이 끝나게 되면 반드시 평가가 있습니다.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네 보던 일을 셈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일년을 돌아보고 셈해야 합니다. /할/ ▶젊고 유능하고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가 있었습니다.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그는 늘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으세요. 조기 진단만이 부인병을 면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내가 몸이 좋지 않아서 진찰을 해보니 결과는 부인병이었습니다. 병이 깊어서 수술을 받고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제는 그의 아내가 10년 동안 한 번도 검진을 받은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6개월마다 진찰을 받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면서 이런 일이 자기 집에 찾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중간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의 중병이 들고 있는데 그것을 모른 채 병을 키웁니다.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큰일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렇게 한 해를 마감하는 이런 때, 우리 신앙의 중간평가를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년 한해 내 자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고, 내년도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⑴우리의 삶을 평가할 때 누가 어떤 기준에 의해 평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에 의한 평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즉 다른 사람에게 비친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울을 들여다 볼 때 나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얼굴에 때가 묻고 흙탕물이 묻었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을 통해 비춰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눈은 정확하지는 못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제한이 있고 편견이 있기 때문에 나를 보는 눈도 편견을 가지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고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오판할 수가 있습니다. 지난 천년의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수많은 오판으로 가득 차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나를 그릇 판단해도 자기 자신은 자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눈은 잘못되어도 내가, 나를 보는 눈은 훨씬 정확합니다. 자기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판단은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판단할 수 없는 우리 삶의 내면 깊숙이 까지 바라보게 하고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을 똑바로 응시하게 합니다. 우리는 나의 행동이 진실한지? 거짓된지? 나의 생각과 말이 얼마나 성실한지? 얼마나 위선적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양심을 주셔서 스스로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양심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양심도 이기심과 죄로 마비될 때 자기 자신을 바로 바라보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도 정확하지 않고 나 자신의 평가도 정확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평가는 정확무오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님 밖에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아멘!/ 그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하십니다. /믿/ ⑵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수가 없습니다(히9:27). 전1:4절에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세상과 인간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는 세대가 있습니다. 즉 끝나는 시간입니다. 주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을 기준으로 하루의 시간을 정해 주셨습니다. 주권자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와 각 나라의 연대도 한정시켜 놓았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주님이 정해 놓은 세월의 한계 속에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믿/ ㈀시간의 한계입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유능한 인물이라도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시간을 자기의 필요에 따라 늘리거나 줄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환난이나 고생의 날들은 피하려 하는 반면, 기쁨이나 즐거움의 날들은 오래도록 붙잡아 놓고 싶어하는 것이 공통된 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고 죽음의 시간이 임박해 오는 것을 느끼게 되면 한사코 이를 피해 가거나 연장시키고자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 가지도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세상의 영화로움이나 청춘의 꿈도 풀의 꽃과 같이 잠시 잠깐 지나가는 것이라고 했고, 모세는 '우리가 날아가는 인생을 산다'고 했습니다. /할/ ㈁능력의 한계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만능인 것처럼 생각하고 무엇이나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폄하하면서 자기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정당한 것이라고 우겨대는 편견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권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행한 일을 두고 선악간 공정하게 판정을 하십니다. 전12:14절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또 전1:8절에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 말씀은 사람의 마음속에 욕심은 끝이 없으나 욕심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평생 동안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차지할 것처럼 욕망을 가지고 날뛰던 사람도 그 욕심을 다 이루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혹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시간의 끝 날에 허망함을 실감하곤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할/ ㈂기회의 한계입니다. 솔로몬은 전3:1절에서 '범사가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는 말로 설명을 했습니다. 사람이나 만물에게 다 날 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뽑을 때가 똑같은 기회로 주어져 있습니다. 이 기회는 역시 흐르는 세월과 함께 짧은 순간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주어진 기회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를 소홀히 여기다가 허비해 버리곤 합니다. 한번 지나간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입니다. 시간의 끝 날이 되어서 에서와 같이 뒤늦게 후회하며 탄식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혜 있는 자가 되어 세월을 아끼라'고 엡5장에서 말씀했습니다. /아멘!/ ▶오는 세대가 있습니다.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솔로몬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온다고 했습니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를 시간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지나간 시간(과거)과 다가오는 시간(미래)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날과 시간의 기준에 따라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고 하셨습니다(창1:5). 회복의 기회가 있다는 약속입니다. 새로운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원한 땅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원한 땅을 바라보고 살아야 바른 청지기 적인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아멘!/ 금년 한해에도 굴곡이 많았던 한해입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참 굴곡이 많은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탈도 많고 일 년 내내 시끄럽고 또 그러면서도 그 위기를 잘 넘기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런 중에도 금년 한해를 은혜 중에 잘 보냈습니다. 우리 모두 건강하게 한해를 잘 보냈고 우리교회는 이곳까지 옮기게 된 것도 다 주님의 은혜로 살아온 한해였습니다. /할/ ⑶우리 조용히 지나온 올 한해의 세월을 한 번 회상해 보세요! 바울은 딤후4:7절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그는 회상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생애요, 바울의 과거요, 바울이 예수를 만난 뒤 한결같이 달려온 신앙과 삶의 여정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주님과 더불어, 하나님과 함께, 여기까지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 속에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오늘 우리가 한번 짚고 넘어갈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갈 길로 갔으며, 무엇보다 믿음을 지키며 달려왔습니까? 사실 여기까지 온 것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축복이며,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변함 없이, 신실하게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할/ ⑷이제 새롭게 앞을 바라보고 내일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주의 도움과 함께 달려온 생애를 회상한 바울은 이젠 앞을 바라보면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딤후4:8절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여기서 그는 자기를 위하여 예비된 의의 면류관, 하늘의 상급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도 받을 것이고, 또 믿음의 길을 잘 달리는 모든 자들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멘!/ ⑸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에게 맡겨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뒤를 돌아보며 감사하고, 앞을 내다보며 꿈과 소망을 품어야 하겠지만, 이제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모든 일에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바로 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마21:28절 이하에 두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들에게 '얘 오늘 포도 원에 가서 일하라'고 명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오늘' 당장 가서 포도 원에 가서 일하라고 주님은 명하십니다. 긴박성이 엿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맏아들은 간다고 하더니 결론은 안 갔고, 둘째 아들은 안 간다고 하더니 결론은 가서 일했습니다. 맏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맏아들은 알고 있으나 행함은 없는 사람입니다. 다 알고 있는 데 행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맏아들은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편리하게 대답하여 놓고 후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맏아들은 장소에 따라서 마음이 변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순종하고 싶어서 '예' 하였으나 아버지를 떠나서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거절하여 버렸습니다. 자극을 받을 때에는 결심을 하지만 조금 지나면 변해버리는 사람입니다. 환란을 당할 때에는 기도하고 열심히 하나님께 매달리다가도 환란이 지나고 나면 마음이 변해버리는 사람입니다. 맏아들은 처음은 좋았으나 나중은 나쁜 사람입니다. 처음에 사귈 때에는 싹싹하고 좋은 것 같은 데 점점 지나면서 안 좋아지는 사람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열정적이고 조왔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식어지는 사람입니다. /할/ 둘째 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둘째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싫소이다' 해 놓고 나중에 보니 포도 원에서 일한 아들입니다. 둘째 아들은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는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는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잠이 안 왔을 것입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포도원으로 갔습니다. 둘째 아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는 못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조금만 께름칙한 것이 있으면 못 견디는 성격이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깨달은 것은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실제적으로 깨닫자 말자 포도원으로 갔습니다. 둘째 아들은 세월이 가면서 점점 좋아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가나 혼인잔치의 포도주처럼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결론이 좋은 사람입니다. /할/
③본문에서 평가를 할 때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옳은 지를 점검하라' /할/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평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우리가 일년을 평가 할 때 우선 우리가 옳은지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면 본문의 이 청지기는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요? 한마디로 그 주인의 소유를 낭비했다는 것입니다. 1절에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한 마디로 말하면 주인이 맡긴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점검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맡겨주신 일들이 있습니다. 이 일들을 성실히 감당하지 않아서 그 소중한 시간, 돈, 재능, 기회 등이 낭비되는 일이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옳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을 낭비하는 것 이것이 옳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시간, 재물, 건강, 기회들을 낭비하지 않았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할/
④예수님이 이 청지기에게 왜 지혜롭다고 했을까요?(8) 여기에 나오는 지혜는 원래 '현명하다. 지혜롭다'는 의미보다 '재치 있다, 약삭빠르다'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는 훨씬 약삭빠르고, 재치 있고, 타산 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종은 '어차피 쫓겨나야 할 신세인데 쫓겨 날 경우 막노동은 힘들겠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고'(3)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다가 절반으로 탕감하여주고 내가 이 다음 어려운 일을 당하면 나를 도와 달라고 한 것입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요, 배신행위이지만, 종의 입장에서 보면 살아가기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행위는 불법이고, 도덕과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비록 그가 한 일은 불의한 일이지만, '미래에 대하여 준비를 한 그 행위가 지혜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교훈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재림신앙에 눈을 떠야 합니다. /아멘!/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⑴주어진 사명에 허비한 것은 언젠가 그 책임을 묻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맡기신 것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것은 주인의 재물을 허비한 청지기처럼 무서운 징계를 받아 마땅합니다. ⑵이 청지기이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 때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사울 왕과 다윗 왕은 공통점이 많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는데 사울 왕은 자신의 잘못을 변명으로 일관하였고, 다윗 왕은 자기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삼하 12장에서도 나단이 말하기를 '왕이 죄를 고백하였으므로 왕은 죽지 아니하리이다' 살인자는 당연히 죽어야 됨에도 죄를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너는 죽지 않는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어떤 모임에서 보면 분명 저 사람이 잘못했고, 잘못했다는 사과 한 마디만 하면 모든 문제가 깨끗이 처리되겠는데 그 한 마디를 안 함으로 전체의 분위기를 흐려놓거나 사과를 하더라도 아주 구질구질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과를 하려거든 깨끗이 하세요! 어떤 사람들은 사과하러 갔다가 다시 한바탕 싸우고 오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사과는 해놓고, 또 사실은 뭐 그 어쩌고, 저 찌고 하다가 다시 싸움이 됩니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잘못한 것을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잘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과하는 시간에는 사과 하나로 끝나야합니다. /할/ ⑶이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가 무엇일까요? 그의 솔직함입니다. 이 청지기는 자기의 잘못을 주인이 추궁하자 한마디 변명 없이 그대로 시인합니다. 자신이 저질은 일에 대하여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이 사람의 지혜입니다. 이 사람은 그 동안 자신의 모든 행적을 주인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변명하려 들지 않고 깨끗이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터이니 한번만 용서해달라는 애원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이 이미 틀린 것을 알았습니다. 눅18:9-14절에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이 두 사람의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바리새인의 기도는 듣지 않으시고, 세리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을 보면 바리새인이 세리보다 훨씬 바르게 살았습니다. 1주일에 두 번식 금식하고, 십일조헌금도 잘하였습니다. 거기에 비하여 세리는 성전에 들어와서 얼굴도 들지 못한 채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바르게 사는 것보다 죄를 짓는 사람을 더 좋아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 시인하고 회개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법정으로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고, 죄가 없다고 하면서 징역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솔직해야 합니다. 잘못한 것을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잘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백 마디의 할 말이 있더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과하는 시간에는 사과 하나로 끝나야 합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도 말하려고 했으면 할 말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할 말이 많건만 더는 말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지혜라고 하셨습니다. /할/ ⑷이 청지기는 한계를 인정한 점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마지막, 곧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언젠가는 주인에게 직분을 빼앗길 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건강도, 지위도, 재물도 다 한계가 있다는 이 평범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금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이 없어지기도 하고, 빼앗기기도 하며,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가진 이것이 항상 내 손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종말을 알고, 조금만 더 연장시켜달라고 간청하지 않고 깨끗하게 받아들입니다. 주님은 이 점을 지혜롭다 하신 것입니다. ⑸그의 기회선용이 지혜입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는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계산해야하는 그 남은 시간에, 남은 권한을 잘 선용했습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그 짧은 남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병원에서 6개월밖에 살수가 없다는 사형 선교를 받게 되자 몸과 마음이 풀어져서 살 용기가 없어지고, 당장에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괴로워하며, 방황하고 있던 어느 날, 한 어린아이 자기 바로 앞에 앉아서 인형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못한 답답한 심정을 이 아이에게 해봅니다. '얘야, 나는 앞으로 6개월밖에 못 산다는 구나' 그랬더니 이 철없는 아이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6개월은 살잖아요' 그때에 이 사람이 정신을 차렸습니다. '맞아! 6개월은 있지' 6개월밖에 못사는 것이 아니라, 6개월은 산다는 말입니다. 정신 차려서 그 6개월 동안, 어느 때보다 더 값진 시간을 보냈습니다. /할/ 여러분!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를 아는 것입니다. 내게 가능한 것이 무엇이냐를 알고 그것을 소중히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어리석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많은 축복의 조건을 가지고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역까지 넘보다가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주인 보디발의 집에서 자기에게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을 알았습니다. 지혜는 허락되지 않은 것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내게 허락된 것을 가지고 최상의 삶을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아멘!/ ⑹마지막으로 준비성입니다. 9절 말씀이 사실상 이 말씀의 결론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이 세상의 재물은 다 불의한 것입니다. 주인이 가지고 있었던 그 재물, 청지기가 관리했던 그 재물을 불의한 재물로 규정을 합니다. 한국은행에 있는 재물은 천국에는 못 가져갑니다. 여러분, 집에 있는 장식품도, 가전제품도 천국에는 못 가져갑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은 영적으로 다 불의한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은 주님 오실 때 불타고 없어지고 썩어질 불의한 재물들입니다. 그런데 그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했습니다. 여기 친구는 좁은 의미에서는 주님을 말합니다. 불의한 재물로 예수님을 섬기라는 말입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이웃을 말합니다. 불의의 재물로 이웃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 청지기가 지금 해고를 당해서 쫓겨날 신세가 되었지만 해고당한 다음에 인심을 얻으려고 빚진 자들에게 선심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후의 삶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사람의 지혜를 칭찬하셨습니다. 어차피 없어질 것을 가지고 당분간이라도 내 손에 있을 때에, 죽기 전에 선한 일을 하라는 그 말입니다. 이 사람은 그것으로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선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돈을 가져서 미래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 선심을 베풀어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그 점이 이 사람의 지혜로움입니다. 내게 주어진 인생의 재산, 지혜, 재능, 물질 가지고 예수님을 사귀어야 합니다. 물질 가지고 주님과 사귀는 일에 아낌없이 투자해야 합니다. /아멘!/ (2011년 12월 18일 대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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