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탕자집 그래도 좋은 집 (눅 15:11-3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2. 18. 14:20

탕자집 그래도 좋은 집 (눅 15:11-32)
 
 
  탕자의 비유! 오늘 본문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에게 줄 유산을 미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재산을 다 가지고 나가 허랑방탕하였습니다. 창기와 같이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돈이 다 떨어졌는 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흉년이 들어 인심이 사나워졌습니다.

  남의 돼지를 기르면서 돼지죽을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쥐엄열매를 따먹으면서 살았습니다. 고생고생하다가 그는 중얼거렸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탕자는 회개하며 아버지에게로 돌아가 아들이라 부르지 말고 품군이라 불러 달라고 하여야지 하는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오는 것을 아버지가 먼저 보았습니다.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새 신을 신켰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라면서 동네 사람들을 데려다 잔치를 하였습니다.

  탕자 형이 밭에서 일하고 돌아와 보니 온통 집안이 뒤집어져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동생이 그렇게 돌아 온 것이었습니다.

  형은 아버지에게 불평하였습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형을 설득하였습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탕자의 가정 문제가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90% 가정이 아픔이 있다는 것입니다. 10% 정도의 가정이 별 문제없이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 보니 그리고 자꾸만 들여다 보니 탕자의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문제가 있었지만 극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전설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길가에 개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죽은 개가 썩어가면서 구더기들이 우글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더럽다. 저 구더기를 봐라"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은 왜 더러운 구더기만 보느냐? 저 죽은 개 이빨을 보아라. 얼마나 옥과 같이 희니?"

  예수님은 늘 좋은 점을 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안목을 가지고 탕자의 가정의 좋은 점을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탕자의 가정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1. 아픔이 있는 가정

  탕자의 가정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들이 집을 나가고, 아들 하나 밖에 남지 않았고, 나중에 아들이 돌아 와 잔치를 하는 데 어머니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난 것같습니다.

  어쩌면 탕자는 어머니가 없어서 더 타락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그러니까 아내가 없는 가정은 아픈 가정입니다. 탕자의 가정의 가정은 이런 아픔이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최고 유명했던 수상은 역시 처칠입니다. 그가 영국에서 대인기를 얻고 있을 때 한 신문사에서 처칠수상 유치원 교사부터 대학교 스승에 이르기까지 그를 가르쳤던 선생님들 명단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선생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 지 물어 왔습니다. 처칠은 그 때 신문사에 답장을 보냈습니다. "귀사가 조사한 내 스승 명단에 한 명이 빠졌습니다. 나의 어머니입니다. 나는 나의 어머니로부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가정에서 어머니는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탕자 가정은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잘 해야 합니다. 탕자가정은 어머니가 없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2. 갈등이 있는 가정

  이 집의 자녀는 아들 둘이었습니다. 그런데 둘밖에 없는 아들이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동생이 몇 년만에 돌아 왔으면 형이 좋아 하여야 하는 데 못 마땅히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고 비난하였습니다. 형제 사이가 안 좋은 가정이었습니다.

 

  3. 가출이 있는 가정

  탕자의 가정은 그야말로 탕자가 있는 가정입니다. 두 아들 중 한 명이 삐뚜루 나가고 있었습니다. 럭비공과 자녀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속썩이지 않고 잘 자라주는 것만도 큰 효도입니다.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12)

  재산을 나누어 달라는 말 한 마디에 두 말 하지 않고 아버지가 나누어 준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아들이었던 것같습니다. 누구도 못 말리는 아들이었음이 들어 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형이 한 마디 설득도 없었습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불량배 아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습관은 재산은 두 아들이면 형에게 3분의 2,동생에게 3분의 1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막대한 재산을 말 한 마디에 나누어 준 것을 보면 안 나누어 주면 살인이라도 일어날 분위기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같이 탕자의 가정은 아픔이 있고, 갈등이 있고, 탕자가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탕자의 가정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좋은 가정이 되었습니다. 구더기만 보지 말고 하얀 이빨을 보자는 말입니다.

   1. 기다림이 있는 가정

  탕자의 가정은 기다림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집을 나간 아들을 아버지는 매일 기다렸음을 본문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20)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보았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눈만 뜨면 아들이 오나 살피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집안식구를 늘 기다리는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결코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탕자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다리십시요. 남편이 잘못 되었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다리십시요. 아내가 잘못 되었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다리십시오. 안 되는 것이 있어도 기다리십시오. 어려운 것이 있어도 기다리십시오. 가망성이 없는 것이 있어도 기다리십시오. 힘든 것이 있어도 기다리십시오. 기다림이 있는 가정이 좋은 가정입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녀가 6남매였습니다. 어느 날 한 자녀가 죽었습니다. 너무나 슬퍼하고 실망하여 있는 남편에게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할 자녀가 아직도 5명이 있네요" 루스벨트의 소아마비 다리 병이 더욱 심하여져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습니다. 다리를 절던 이가 완전 다리 병신이 되었습니다. 그 때 루스벨트가 물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은 나를 사랑하오?" 아내가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당신의 다리를 사랑하였나요?" 집안의 문제가 생기고 아픔이 있어도 기다림이 있는 가정-이것이 탕자의 가정이었습니다. 불행중 다행이고 아픔중 소망스러운 가정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다려야 합니다.

  2. 돌아옴이 있는 가정

  탕자의 가정은 돌아옴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잘못 된 가정이었으나 종국에는 원위치로 회복이 된 가정이었습니다. 떠나는 아픔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기쁨이 있었던 가정이었습니다. 상처난 아픔만 있는 가정이 아니라 회복되는 잔치가 있었던 가정이었습니다. 시작보다 결론이 중요합니다.

  어제보다 내일이 중요합니다. 탕자의 가정은 결국 돌아옴으로 끝났습니다. 회복으로 끝났습니다. 어느 노부부가 아주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본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선생님 부부는 그렇게 늘 행복하십니까?" 그 노인은 웃으면서 대답하였습니다. "수없이 산책을 다녔지요" "무슨 말씀입니까?" "예.우리는 결혼 초에 약속하였지요. 살아가다 한 사람이 화가 나면 다른 사람이 산책을 나가기로 하였지요. 그래서 싸움이란 있을 수 없었고, 산책을 많이 하다보니 몸도 건강, 가정도 건강하게 되었지요" 수없이 집을 나가더라도 결론은 가정으로 돌아옴이 있는 가정, 이것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하워드 페인이라는 사람이 지은 <즐거운 나의 집>(Sweet Home)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나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라는 노래입니다. 본래 그는 가정 무용론자였습니다.가정 없이 정처없이 방황하며 살던 이였습니다. 죽을 때 그는 파리 어느 길목에서 폐병에 들어 죽어가면서 <돌아 갈 곳은 가정밖에 없다>는 노래를 짓고 죽은 것입니다.

  마지막 갈 곳은 집밖에 없습니다.돌아 옴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돌아 온 이가 있는 가정은 회복이 있는 가정을 의미합니다. 저는 가정의 달을 맞이하며 온 성도들의 가정에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픈 가정이 있다면 호세아 가정일 것입니다.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음란한 여자였습니다. 결혼 생활을 하다가 다른 남자와 나가서 같이 살았습니다. 호세아는 용서하고 다시 데려다가 살았습니다. 그리고 전보다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가출하여 다른 남자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이곳 저 곳 다니면서 기여코 고멜을 찾아내어 모든 것을 용서하며 다시 살며 사랑하여주었습니다. 호세아는 고멜과 살면서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첫 아들은 이스르엘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발음이 비슷하지만 의미는 정반대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스르엘은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셨다>라는 의미입니다. 두번째 아들은 로루하마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라는 뜻입니다. 세번째 아들을 로암미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이는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고멜은 범죄하였으나 호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였습니다.

  고멜은 음란하였으나 호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였습니다. 고멜은 다른 남자 품으로 수없이 많이 갔었으나 호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았습니다. 고멜은 돌로 때려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으나 호세아는 죄를 감추어주고 끝까지 살려 주었습니다.

  나중에 고멜은 참 회개를 하고 아주 좋은 아내로 회복되어 좋은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가정 상황이 어떻하든지 회복이 있는 가정이 되면 좋은 가정입니다. 탕자의 집도 처음에는 깨진 집같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둘째 아들은 재산을 가지고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집안이 얼마나 허전하였을 가요?

  그러나 결론은 회복입니다. 결론은 좋은 가정이 되었습니다. 회복하는 데 더 좋은 가정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탕자는 와서 아버지에게 아들이 아니라 품군으로 불러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성숙하여 돌아 왔습니다. 세상을 알았습니다. 돈많은 때 있던 친구들은 돈없어지니 다 떠났습니다. 친구들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창기들과 먹고 마시고 즐겨 봐야 그 때뿐입니다. 다 헛것입니다. 이제 탕자는 나가라고 하여도 안 나갈 것입니다. 성숙하게 되어 회복하였습니다. 좋은 결론입니다.

  3. 순종함이 있는 가정

  탕자의 가정은 순종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고 또 보면 큰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것같지만 어느 정도까지만 불평 불만을 말했지 끝까지 반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큰 아들은 탕자 동생을 위하여 그렇게 성대한 잔치를 하는 것을 보고 노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먹지도 않고 삐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납니다. <그러면 좋아요. 내가 나가겠어요. 저런 놈하고 살 바에야 내가없어지는 것이 좋겠어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젊잖은 충고로 끝났습니다.

  처음에는 노함이 있어도 말 한 마디에 풀어질 수 있는 순종의 가정이 탕자의 가정이었습니다. 두 집이 나란히 살고 있었습니다. 두 가정 다 아들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비슷하였습니다.

  어느 날 두 아버지가 앉아서 아들 자랑을 하다가 서로 자기 아들이 효성스럽고 순종하는 아들이라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두 아버지는 어느 정도인지 시험하여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둘이 똑같은 문제를 내기로 하였습니다. 두 아버지가 한 집에 갔습니다.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소를 끌고 지붕위로 올라 가거라" 아들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런 소리하지 말아요? 소를 끌고 어떻게 지붕위로 올라가요?" 그리고 콧방귀도 뀌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옆집으로 왔습니다. 아버지가 똑같이 말했습니다. "아들아! 소를 끌고 지붕위로 올라 가거라" 그 아들은 아버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를 끌고 집앞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지붕위로 어떻게 올가 갈가를 이리저리 궁리하며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이면 무조건 들으려고 하는 아들을 확인하였습니다. 순종이 있고 서로 이해가 있고 사랑이 있는 가정이 좋은 가정입니다.

  에머리 대학에서 특이한 조사를 하였습니다. 감옥에 있는 불량자 9,000명을 조사하였습니다. 왜 그런 범죄를 하게 되었는가를 조사하였습니다. 기후때문이었다. 친구 때문에 그랬다. 주거 환경때문이다등등 많은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부모의 교육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부모말을 듣지 아니하면 타락의 시작입니다. 그래도 탕자의 가정은 순종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탕자의 가정은 세 가지 문제가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아픔과 갈등과 탕자가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의 가정은 기다림이 있고, 돌아옴이 있고 순종함이 있는 좋은 가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이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탕자의 가정처럼 좋은 가정으로 결론이 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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