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하나님의 사람은 초라한 발상을 하지 않는다. (요 6;1-1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 3. 09:27

하나님의 사람은 초라한 발상을 하지 않는다.

 

                                                                                                요 6;1-13.

 


이 말은 내가 영감받은 말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에서 선풍적으로 일하고 있는 라인하르트 본케 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교회는 40명 모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도 집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1만명 들어가는 경기장을 예약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웃었습니다. 그 때 그가 소리쳐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발상을 하지 않는다.”

 

결과는 운동장이 그득 찼습니다. 오히려 넘쳤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20년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한번에 100만명이 회심하리라.”

이 말씀은 20년 후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곳곳을 다니면서 대형 집회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곳곳마다 수 십만내지 최대 160만명이 모여 그의 복음의 멧세지를 들으며 회개하고 주님에게로 돌아오는 역사가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 아프리카 그린밸리에서 집회할 때 대형 텐트를 쳤습니다.

그런데 심한 태풍과 먹구름이 동시에 무섭게 몰려 왔습니다. 대형 텐트를 한꺼번에 날릴 수 있는 무서운 위력을 가진 태풍이었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가서 꾸짖었습니다.

“네가 만일 이 텐트를 무너뜨리면 나의 하나님께서 이보다 세 배나 큰 텐트를 세우실 것을 믿는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태풍과 먹구름은 물러가라!”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몰려 오던 구름이 칼로 자르듯이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텐트를 가운데 두고 피하였다가 다시 모였다가 사라졌습니다. 이를 본 이들이 어디를 가나 환영하여 주었습니다.

 

라인하르트 본케 목사님이 물신숭배로 이름난 부르키나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에 있는 사하라 사막 근처에 도착하였습니다. 대통령이 두 번 궁으로 초청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6번 집회를 하였습니다. 모두 연인원 80만명이 모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아프리카인들이 물밀듯이 교회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라고스에서는 한번 집회에 160만명이 모였습니다. 6일간 집회 연인원이 600만명이 모였습니다. 그는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발상을 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지금 영적 온도는 몇 도인 가요? 당신 영적 온도는 스케이트를 탈 정도로 얼어 있지 않은 가요? 온도없는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는 가요? 불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습니다.

당신의 기도는 공포탄인 가요? 아니면 사탄의 심장을 맞아 쓰러뜨리는 능력있는 총탄인 가요?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만 뜨뜻하게 데우고 사라지지 않는 가요? 소파에 편히 앉아 컬러 TV나 보라고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전도하여야 합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의 무기를 사용하여야 합니다. 최악의 실수는 하나님의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악의 때가 최선의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발상을 하지 않는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유월절이었습니다. 유월절은 모이는 절기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절기에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벳세다에 계셨습니다. 남자만 5천명이 모였습니다. 남녀 모두를 합하면 2만명은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밤이 되어 오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건의하였습니다.

 

“주님! 이 곳은 빈들이요 남도 저물어 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옵소서”(막 6;35-36)

 

예수님이 이 말을 듣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빌립이 말했습니다.

“200 데나리온도 부족하겠습니다.”

이 때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예수님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 6;9)

 

그러나 예수님은 그 것을 받아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게 하였습니다. 모두 배부르게 먹고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초라한 말

초라한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세 가지 초라한 말을 하였습니다.

 

“이 곳은 빈 들입니다.”

“지금은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200 데나리온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안드레가 말했습니다.

“여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으니 이 것으로 어떻게 하여 보시지요.” 안드레는 기적을 기대하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여자 사업가 중에 오스틴이 있습니다. 여자 속옷을 팔아서 백만장자가 된 사람입니다. 미국에는 몸집이 큰 사람이 참 많습니다. 나는 승용차에도 들어가지 않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속옷을 스몰, 미디엄, 라지, 엑스라지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사람이 있습니다. 챙피하다고 엑스라지는 안 팔리는 것입니다. 제일 큰 옷을 챙피하여 달라는 말을 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오스틴은 늘 말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 오스틴은 가장 큰 팬티나 속옷을 퀸스 싸이즈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왕 싸이즈라는 것입니다. 여왕은 몸집이 큰 사람으로 인상되게 하였습니다. 몸집이 큰 여자들이 자기들이 여왕 싸이즈인 줄 알고 불티나게 사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초라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곁에는 늘 지혜를 제공하는 늙은 장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왕은 고마운 마음에 물었습니다.

“평생 나를 위하여 일하여 주었는 데 떠나게 되니 서운한 데 소원 한 가지을 들어주지.”

그 장수가 말했습니다.

“폐하! 점령하신 나라 가운데 한 나라를 제게 주십시오.” 주변에 있던 대신들이 소스라츠게 놀랐습니다.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무례한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한 나라를 가져라. 그대는 내가 한 나라라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대에게 나라를 하나 준다. 가져라.”


하나님은 못 할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발상을 하지 않습니다. 초라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초라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크게 말할 줄 압니다. 크게 생각할 줄 압니다. 크게 구할 줄 압니다.

 

안드레형

안드레는 하나님의 종다운 생각과 하나님의 종다운 말과 하나님의 종다운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 6;9)


안드레의 말속에서 우리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기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다른 제자들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였습니다.

 

“주님! 이 곳은 빈들이요 남도 저물어 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옵소서”(막 6;35-36)

 

제자들은 이 곳은 기적의 장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기적의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촌이나 마을로 가게 하여 먹을 것을 구하여 먹든가 사먹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가 문제 해결의 자리가 아니라 저기가 문제 해결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의 문제해결자리는 바로 “여기”입니다.

“여기”에서 “지금” 문제해결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여기서 문제해결을 당장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기에서

이 말씀을 읽은 컴퓨터앞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4차원의 영성>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회교도에게 복음을 전도하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았는 데 뇌성마비 환자였습니다. 회교도들이 비웃었습니다.

“당신이 전하는 하나님은 아들에게 뇌성마비를 주는 분인가요?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으라고요?”

목사님은 십자가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들이 비웃고 있습니다. 아들을 고쳐주시옵소서!”

매일 기도하였지만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한 달, 두 달, 세 달 조금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에 이렇게 다짐하였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리라.” 넉달이 지난 어느날 아침이었습니다. 기도하러 아들 방에 들어갔습니다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이 일어나서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렷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 사건을 계기로 목사님은 못할 것이 없는 하나님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여기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지금 일어납니다.

 

한 아이가 있어.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본문을 가만히 보면서 성령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병이어를 들고 있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오병이어를 예수님에게 드려서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예수님에게 드렸다는 말은 없습니다. 짐작하건대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빼앗을 수가 없어서 그 어린아이를 일단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온 지도 모릅니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무엇인가 해보려고 발버둥치는 안드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앞에서 이렇게 말했을 지도 모릅니다.

“얘야! 그 도시락 뺏는 것 아니다. 잠간만 빌려 줘! 곧 돌려 줄게. 예수님이 기도하고 도로 줄테니 안심해라.”

안드레는 가능성이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해보려고 하는 자세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발상을 하지 않습니다. 기적을 구상합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보리떡은 떡중에 제일 하급의 떡입니다. 물고기는 고기중에 제일 하급의 물고기입니다.

우리나라도 떡의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나는 찹살 모치를 좋아 합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찹살 모치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찹살 모치를 보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납니다. 그러나 가끔 어머니는 개떡도 해주셨습니다. 배고플 때입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을 때입니다. 들에 나가서 쑥을 많이 캐서 밀가루는 조금 넣고 짓이긴 개떡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보리떡은 예수님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떡이었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를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고기라고 말할 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되어진 사건이 오병이어 사건입니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아 해변으로 나옵니다.

잡은 고기를 쏟아 놓고 집으로 가지고 갈 만한 고기는 그릇에 담습니다. 그리고 못 먹을 피라미같은 고기, 송사리같은 고기는 해변가에 버렸습니다. 가지고 간 고기는 원어도 다가라고 합니다. 못 먹을 같아서 버린 고기는 이크수스라고 합니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온 고기는 이크수스입니다. 그러니까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가난한 집 어린아이가 예수님 말씀을 들으러 간다고 어머니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해변가를 다니며 어부들이 버린 고기를 주워 왔을 것입니다. 그것도 두 마리뿐입니다. 그리고 보리떡 5개를 싸주었습니다.

그것이 5000명을 배부르게 만든 기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작은 것을 작게 보지 아니한 안드레였습니다. 아무리 조그만 것이라도 주님손에 들려지면 기적이 있을 것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이까?”

안드레의 말입니다.

사람은 많습니다. 5천명입니다. 도시락은 일인분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되겠삽나이까?”라고 할 때 그 속에는 기적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기적은 기대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결론은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라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누가복음 9장 14절을 보면 제자들은 무리를 50명씩 앉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5천명이 지금 모두 일어서 있었습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배는 고프니까 이제 막 가려고 하던 중이었습니다. 50명씩 앉게 하였으니 100 팀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있는 기적은 언제나 절박한 상황에서 일어났습니다. 막판에 일어났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도 애급 군대가 쫓아오는 긴박한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도 포도주가 다 떨어졌을 때 일어났습니다. 떨어지기 전에 보충적으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도 죽기 직전에 살아난 것이 아니라 죽고 나서 살아 났습니다.

절박한 마지막 순간이 기적의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유 관순이 독립운동을 하루 때였습니다.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가다가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얘들아! 기차 소리가 어떻게 들리니?”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칙칙푹푹이라고 들리지.”

그 때 유 관순이 말했습니다.

“내 귀에는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린다.”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들고 있는 어린이를 보았을 때 이렇게 들렸을 것입니다.

“저 것을 예수님 손에 얹으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이 영감입니다.

 

결론은 17절입니다.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12 바구니에 거두니라.”

풍요의 언어도 끝났습니다.

기적의 사건으로 종결지었습니다.


“다”

“배불렀다.”

“남았다.”


주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기적이 있습니다. 기적은 항상 초라하지 않은 생각, 초라하지 않은 말, 초라하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는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발상을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유난히 힘이 센 개미가 있었습니다. 다른 개미들은 몇 마리가 달려 들어야 쌀 한 톨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개미는 힘이 세어서 혼자 두 톨을 거뜬히 들었습니다. 개미 사이에서는 힘 좋기로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이 개미는 기고만장하였습니다. 개미사이에서는 천하 무적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개미는 자기 힘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시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쌀 두 톨을 한꺼번에 들어 멀리 던졌습니다. 누구하나 보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하여도 자기에게 관심을 기우려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개미는 조금 후 철없는 어린 아이 발에 밟혀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야 합니다.

돈많다고, 건강 좋다고, 권력있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한번 크게 외치고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초라한 발상을 하지 않는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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