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길렀기에? (삼하 6;1-11)
어린이 주일입니다. 박 정희 대통령은 아들 지만이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 마약 복용을 하다가 또 체포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훌륭하였는 데 아들 하나는 인생을 늘 마약으로 체포, 구금 그리고 석방의 반복으로 폐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길렀기에?> 반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지방에 한 교회가 있습니다. 교인이 10명도 안 됩니다. 지하실 교회입니다. 목회만 생각하면 아픔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이번에 최연소 판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길렀기에?>
오늘 본문으로 들어 갑니다. 오벧에돔은 아들을 62명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모두 다 능력이 있어서 직무를 잘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62명 아들을 낳았으면 그 중에 한 명쯤은 백치 아다다가 나올 수도 있고, 62명이면 옥에도 티가 있다고 삐뚜로 나간 아들이 한 두 명 정도 있을 만 한데 한결같이 다 능력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손자들 중에는 민족을 움직이는 용사도 나왔습니다.
<문지기의 반차가 이러하니라 고라 족속 아삽의 자손 중에 고레의 아들 므셀레먀와 므셀레먀의 아들들 맏아들 스가랴와 둘째 여디야엘과 세째 스바댜와 네째 야드니엘과 다섯째 엘람과 여섯째 여호하난과 일곱째 엘여호에내며 오벧에돔의 아들들 맏아들 스마야와 둘 째 여호사밧과 세째 요아와 네째 사갈과 다섯째 느다넬과 여섯째 암미엘과 일곱째 잇사갈과 여덟째 브울래대니 이는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며 그 아들 스마야도 두어 아 들을 낳았으니 저희의 족속을 다스리는 자요 큰 용사라. 스마야의 아들들은 오드니와 르바엘과 오벳과 엘사밧이며 엘사밧의 형제 엘리후와 스마갸 갸는 능력이 있는 자니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저희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 이명이며>(대상26;1-8)
<어떻게 길렀기에?> <어떻게 길렀기에?> 자녀를 잘 기르는 비결을 오벧에돔을 통하여 찾아 보려고 합니다. 오벧에돔이 자녀들을 한결같이 그렇게 잘 기른 비결을 본문에서 찾아 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아무리 드려다 보아도 자녀를 어떻게 길렀다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습니다. 다만 오벧에돔이 어떻게 살았는 지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비결입니다. 어떻게 길렀지는 몰라도 부모가 어떻게 살았는 지는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벧에돔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1. 십자가를 맡길 수 있는 그 사람.
오늘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애급에서 나와 하나님의 집 성막을 지었습니다. 성막의 중심은 지성소고 지성소의 중심은 법궤였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행진할 때마다 법궤를 맨 앞에 세우고 따라 갔습니다. 40년 동안 늘 그랬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 온 후 성막은 실로에 세워졌습니다. 블레셋과 전쟁이 치열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늘 블레셋에 졌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법궤를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이 이기게 하여 주실 것같았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가지고 나가서 전쟁하였지만 법궤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은 법궤 때문에 오히려 많은 피해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하나님의 법궤를 보관하기란 부담스러워서 법궤를 도로 이스라엘로 보내고 말았습니다. 7개월 만에 일이었습니다. 법궤는 기럇여아림 아비나답 집에 보관되었습니다.
사울왕은 믿음이 없던 왕이라 법궤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울 뒤를 이어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성전을 짓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래서 3만명을 동원시켜서 법궤를 운반하게 하였습니다 수레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법궤를 실었습니다. 아효가 수레를 끌었습니다. 웃사가 수레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 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곤의 타작마당에 왔을 때 수레를 끌던 소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뒤에 있던 웃사는 법궤가 떨어질가 두려워 법궤를 손으로 잡았습니다. 순간 웃사는 죽고 말았습니다.하나님의 법궤는 손을 댈 수 없는 신비한 성물이었습니다. 법궤를 기쁨으로 나
르던 3만명은 슬픔에 쌓여 장례식을 웃사 장례식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오려던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갖다 맡겼습니다.
여기서부터 오벧에돔 집에 축복이 시작되었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오벧에돔의 집에 맡기자는 다윗이 생각하였을 때가 그 집에 축복의 시작이란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9-10)
하나님께서 어려우실 때 생각나는 그 사람, 교회가 어려울 때 생각나는 그 사람, 나라가 어지러울 때 생각나는 그 사람, 그 때가 축복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어느 부모가 아들을 잘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 아들은 자기와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고 자랑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친구를 시험하여 보기로 하였습니다. 밤중에 죽은 돼지 한 마리를 가마니로 둘둘 말아서 가지고 아들 친구를 아들과 함께 찾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말하게 하였습니다. "친구아I 내가 실수하여 사람을 하나 죽였어. 도와 줘! 같이 파묻고 싶어"
그러나 그 친구는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공범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아버지는 아버지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친구가 말했습니다. "친구야! 어쩌다가 그렇게 실수하였니? 할 수 없지. 의리를 저버릴 수 없지. 같이 가자" 아들은 아버지 친구를 보면서 자기 친구를 비교하여 보았습니다. 어려움을 같이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정말 친구입니다.
2. 부모의 기대대로 사는 그 사람.
오벧에돔의 부모는 그 아들을 낳고 오벧에돔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름에는 이름을 붙이는 이의 기대가 들어 있습니다. 오벧이라는 말은 <섬기는 자>라는 뜻입니다.
에돔은 땅 이름입니다. 오벧에돔은 에돔의 섬기는 자라는 뜻입니다. 부모는 아들을 낳고 섬기는 자가 되었으면 하고 이름을 그렇게 붙였습니다. 아들을 향한 바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법궤를 섬기려는 자가 없을 때 오벧에돔은 혼자서 법궤를 자기 집에서 섬겼습니다. 석 달만에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축복이 자손만대에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벧에돔의 자녀 62명은 아버지 오벧에돔이 할아버지 기대대로 살아가는 것을 몸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도 아버지 기대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기대를 가지고 길러야 합니다. 깊은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면 자녀들은 긍정적인 부담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영국 부스 여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 하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르는 것은 세계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나는 언제나 사탄보다 한 발 앞서서 내 아들을 인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먼저 이 땅에 세우신 것은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제일 먼저 파괴시킨 것도 사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사탄이 침범하지 못 하도록 지켜야 합니다.
어느 학교에서 학생들의 자료를 모두 컴퓨터에 넣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5명이 앞으로 큰 사람이 될 것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정말 5명이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원인 분석이 되었습니다. 컴퓨터가 그렇게 분석하여 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컴퓨터가 그렇게 분석하고 나니까 온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부모들이 기대를 걸고 길러야 합니다. 오벧에돔은 부모가 섬기는 자가 되라고 관심을 가지고 길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큰 축복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어느 학교에서 모범적으로 공부 잘 하는 학생 10명을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늘 아침 등교길에 부모님께서 저를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어요. 그리고 어젯밤 침대에 누워 자려고 하는 데 어머님이 오시더니 저를 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어요>
10명의 공통점이었습니다. 사랑하여 주면 자신감에 차서 공부를 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90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의 식물학 교수 윌리암 클락크(William Clark) 교수가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고 북해도에 있는 삿보르 제국 대학에 교환 교수로 부임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윌리암 클락크는 성경 책을 여러 권 배에 실고 있었습니다. 식물학을 가르치면서 성경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문무성에서 나온 장학관이 성경책을 가르치면서 무엇을 할 것이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가리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장학관은 성경을 가르칠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윌리암 클락크도 그러면 나는 그 학교에 교환 교수로 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할 수 없이 장학관은 허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필수가 아니라 선택과목으로 성경을 가르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8개월 간 클락크 교수는 성경을 가르치고 본국의 소환을 받아서 돌아 갔습니다.
그 때 교문을 나서면서 한 마디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청년들이여! 대망을 품으십시오> 그 후 클락크 교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이 그 유명한 우찌무라 간조입니다. 한 사람을 잘 기르니까 나라가 바뀌었습니다. 관심있는 교육은 자녀를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그 교수가 기대감을 가지고 길렀던 결과였습니다.
3. 변치 않는 그 사람.
오벧에돔이 법궤를 잘 섬겼더니 하나님께서 3개월만에 큰 복을 주셨습니다. 오벧에돔은 축복의 비결을 찾은 것입니다. 다윗이 마음을 회복하고 다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그 때 오벧에돔은 자녀들을 모두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손 대대에 법궤가 있는 성전을 지키는 문지기 반차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궁중에서 천 날 사는 것보다 주의 성전에 문지기로 하루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오벧에돔은 변치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번 동지 영원한 동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오벧에돔이 3개월 법궤를 잘 모셨다고 하나님이 그런 축복을 주신 것만은 아닙니다. 평생 모실 마음을 하나님은 이미 보셨습니다. 변치 않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너무나 진실하게 그리고 충성스럽게 그리고 변함없이 한결같이 사는 자매 한 분이 있었습니다. 말도 없이 자기 할 일에 언제나 충성하는 모습에 모든 교인들은 그를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그렇게 말없이 충성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자매는 처음으로 입을 열어 사연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예.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 저희 집은 도저히 나를 기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광주리에 담아서 근처에서 가정 부잣집 대문앞에 나를 버렸습니다. 부잣집에서 나를 보지 못 하고 지나 가던 사람 하나가 나를 데려다가 길렀습니다.
그 때 나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술고래였습니다. 알콜중독자였습니다. 집안이 술로 기우러 버렸습니다. 내가 14살되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창녀굴에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또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더욱 더 심한 알콜 중독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나도 뭇 남자들에게 시달리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사창가를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생명을 걸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착하고 좋은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오랫만에 맛보는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걸어가는 데 길가에 있는 교회로부터 찬송가 소리가 들렸습니다.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워 정처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이제 내게 오셔서 쉬떠나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예수 에수 내 주여 섭섭하여 울때에 눈물 씻어 주시고 나를 위로 하소서 예수 예수 내 주여 이제 내게 오셔서 쉬떠나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나는 나도 모르게 교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들어섰을 때 3절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나도 같이 따라 불렀습니다. '다니다가 쉴 때에 쓸쓸한 곳 만나도 홀로 있게 마시고 주여 보호하소서 예수 예수 내 주여 이제 내게 오셔서 쉬떠나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어느 덧 내 몸은 교회 뒷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설교를 들었습니다.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내게 예수님만이 내 죄를 사하여 주실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만이 나의 위로가 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내 무거운 짐을 덜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증오와 미움이 이글거리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참으로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내 마음에 다시 모셨습니다. 평화가 깃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신 후로 내 마음은 늘 기쁘고 안정되고 축복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말없이 충성하기로 하였습니다. 변함없이 충성스럽게 예수님과 교회를 섬기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벧에돔은 자녀를 어떻게 길렀다는 말씀은 본문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자세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말하는 것을 듣지 않고 봅니다.
1. 십자가를 맡길 수 있는 그 사람. 2. 부모의 기대대로 사는 그 사람. 3. 변치 않는 그 사람.
미국의 어느 교육자는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정원의 식물들을 가꾸는 관심 이상으로 자녀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은 잡초가 우거진 장글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벧에돔처럼 자녀를 길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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