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정복이 최고의 정복
막 1;35-39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정복한 것입니다.”
중국의 노자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지만, 자기를 아는 자는 명철한 자다.”
“남을 이기는 자는 강한 자이지만 자기를 이기는 자는 더 강한 자다.”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자기를 정복하는 자가 가장 큰 것을 정복한 것입니다. 자기 정복자의 가장 모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자기를 정복하신 본보기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정복하셨습니까?
1. 새벽 정복자
예수님은 새벽 정복자입니다. 새벽을 자면서 흘려 보내신 분이 아니라 새벽을 정복하시며 기도하신 분이십니다. 하루의 시작인 새벽을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35)
빌리 그래햄 목사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 갔더니 기계소리가 새벽을 깨우고, 스위스에 갔더니 새 소리가 새벽을 깨우고, 한국에 왔더니 기도소리가 새벽을 깨우더라.”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사실 세계에서 새벽기도 출석율이 제일 많은 교회는 한국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새벽을 이긴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 인물 중에서 새벽기도에 충실하였던 이가 있습니다. 평민도 아닌 왕이었습니다.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하였습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8)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108;2)
참된 기독교인들은 새벽을 성실하게 지켰던 이들이었습니다.
중국을 복음화시키는 데 앞장 섰던 허드슨 테일러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지 않고는 중국의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
역사상 큰 일을 한 사람들은 다 새벽을 정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열심히 일한 부지런한 사람들이 큰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옛날 시골에서는 공동우물을 사용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그 우물에서 새벽에 제일 먼저 물을 길어다가 밥을 짓고 마시면 질병은 물러가고 그 가정에 행복이 깃든다고 말해 왔습니다. 이 첫 번 긷는 물을 <봉한 우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서 새벽기도를 제일 먼저 한 이는 아브라함입니다(창19;27) 야곱도 새벽제단을 쌓았습니다(창28;18) 모세도 새벽기도를 하였습니다(출24;4) 한나도 새벽기도하다가 사무엘을 잉태하게 된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삼상1;19) 욥도 새벽에 기도하였습니다(욥1;5)
파레이드 법칙이 있습니다. 20%가 80%를 지배하는 법칙입니다. 새벽시간 20% 4시간 가량을 잘 사용한 이들이 큰 일을 하였습니다.
워싱톤에게 신문기자들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워싱톤은 생각할 틈도 없이 말했습니다.
“내가 엄청난 일들을 다 처리하는 비결은 매일 4시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일어나 기도하고 일하면 남이 일어나기 전에 벌써 많은 일을 해놓게 됩니다.”
밀톤은 <실락원>을 쓸 때 매일 4시에 일어나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에 집필하였습니다.
나도 목회 25년을 새벽 4시반 경에 일어나서는 새벽기도후 잔 적이 없습니다. 기도후 집에 가서 운동, 식사, 신문 큰 글씨만 읽기를 30분 정도에 마치고 7시반에 출근하였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며 책을 썼습니다. 지금까지 84권의 책을 출판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을 정복한 사람이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기적들은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은 새벽이었습니다(출14;24) 만나가 내린 것도 새벽이었습니다(출16;13)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린 것도 새벽이었습니다(수6;15)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도, 부활하신 시간도 모두 새벽이었습니다(눅24;1)
다윗은 시편 119편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 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147-148)
새벽을 정복한 사람은 인생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몇 년전 미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가정을 정부가 선정하여 발표하였습니다. 미국무성 조사였습니다. 놀랍게도 한국인 가정이 선정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고 광림, 전 혜성 부부 가정입니다. 두 분 다 박사입니다. 고 박사는 서울 대학교 최연소 교수가 된 분입니다. 박사 학위를 5개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 전 박사는 예일 대학교 사회학 교수였습니다. 6 남매를 두었는 데 모두 예일대, 옥스퍼드대, 하버드대를 졸업하였습니다. 미국인들조차 혀를 내두르며 연구 대상이 된 가정입니다. 그 비결을 신문기자들이 몰려가서 물었습니다.
관심을 끄는 대답이 하나 있었습니다. <새벽 식탁>이었습니다. 고 박사는 롱아일랜드 대학에 강의하러 가려고 매일 3시 52분 기자를 탔습니다. 각자 밤 늦게 귀가합니다. 가족이 만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합의하였습니다.
새벽 3시에 모두 식탁으로 모여 아침식사를 하고 가족 기도회를 하였습니다. 매일 그랬습니다.
<새벽 3시 식탁>이 가정을 건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새벽을 정복한 사람이 세계를 정복하였습니다.
2. 본능 정복자
본능을 정복할 줄 아는 것이 자기 정복자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욕망이 있습니다.
식욕, 잠욕, 성욕, 소유욕 그리고 명예욕을 사람의 5 대 욕망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본능을 이기지 못 하면 동물과 같은 삶이 됩니다.
예수님은 본능 정복의 모델이십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본능을 다 억제하시고 정복하신 증거들이 있습니다.
(1)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셨습니다. 잠을 거절하셨습니다.
(2)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셨다는 말씀은 모든 주위 환경을 이기려는 의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시지 않겠다고 하시는 의도입니다.
(3) 명예를 거절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37)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그들을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38)
(4) 휴식을 거절하셨습니다.
본문 39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39)
온 갈릴리 마을 다니시면서 전도하시고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본능을 다 거절하시고 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능을 거절하기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고문 중에 이기기 어려운 고문은 성고문이라고 합니다. 몇 달을 감옥에 가둔 후에 아름다운 여성으로 유혹하는 것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이 고문을 제일 견디기 힘들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목사나 신부들에게 하나님을 믿지 못 하게 할 때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몰래 카메라를 장치하여 아름다운 여성으로 유혹하게 하고 사진을 찍어 두면 꼼짝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문중에 두 번째로 이기기 힘든 고문이 잠고문입니다. 몇 일밤을 자지 못 하게 들들 볶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잠에 취하여 솔직히 모든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잠을 이기기란 배고픔을 이기기보다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어려운 것이 굶기는 고문입니다. 며칠은 참을 수 있지만 여러 날 굶고 참기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본능을 이용한 고문은 넘기 어려운 고문입니다. 본능을 이기는 것은 자기 정복의 지름길입니다. 소유욕을 이긴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표류하고 있는 두 사람의 유대인이 구명보트에 몸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망망한 바다뿐이었습니다. 한 유대인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오! 하나님!
저를 이 망망한 바다에서 구해주시면 저의 재산의 반을 바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였지만 아무런 희망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풍랑이 더 심하여졌습니다. 점점 배도 고파왔습니다. 점점 절망만이 덮어 오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기도하였습니다.
“오! 하나님!
한번만 살려주십시옵소서. 이번에 생명을 주시면 산의 3분의 2를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살 길은 망막하였습니다. 구원의 손길은 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은 다시 간절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오! 하나님!
제발 저의 이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제 목숨을 구해주신다면 제 재산 전부를....“
이렇게 기도하는 데 다른 유대인이 소리쳤습니다.
“이봐 거래를 중단해. 저기 섬이 보여!”
그래서 기도를 중단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본능을 이기는 것이 자기 정복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부자가 목이 삐뚜러졌습니다.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부자는 돈많은 것도 병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침을 잘 놓는다는 침쟁이가 찾아 왔습니다.
“내 침 한번이면 목이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부자가 말했습니다.
“목만 제대로 돌아 오게 고쳐 주시면 500만원을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침을 한 방 놓자 목이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목을 고치고 난 부자는 500만원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밑천이 하나도 안 들고 고쳤습니다. 수고도 하지 않고 침 한방 놓고 500만원은 너무 많지 않습니까? 50만원도 비싼 것같습니다.” 침을 놓는 이는 가만히 있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한 방 더 맞으면 완전하게 고쳐질 것입니다. 자! 몸을 돌려 앉으십시오.” 부자는 몸을 돌려 앉았습니다. 다시 침 한방을 놓자 목이 다시 삐뚜루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침쟁이는 가만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하였습니다.
“밑천이 하나도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유유히 일어나 가버렸습니다.
소유욕을 이긴다는 것을 정말로 큰 정복입니다.
3. 마귀 정복자
마귀를 정복하는 것이 자기 정복자입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정복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39)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세 가지 공격을 합니다. 우리 몸은 영혼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영혼육을 다 공격하는 존재입니다.
(1) 마귀는 영속에 들어와 영을 파괴시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속에 마귀가 들어와 성령을 속이게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5: 3)
다윗속에 마귀가 들어가 하나님을 의심하고 인구조사를 하게 하였습니다.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21: 1) 아담과 하와에게 마귀가 와서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습니다(창3: 4-5) 그리고 영을 파괴시키고 말았습니다.
(2) 마귀는 생각속에 들어와 생각을 파괴시킵니다.
가룟 유다속에 마귀가 예수 팔려는 생각을 주사하였습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연고로 죽였느뇨”(요3: 12)
마귀는 사람들에게 15가지 악한 생각을 집어 넣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5: 19-21)
(3) 마귀는 육속에 들어와 육을 파괴시킵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눌린 모든자를 고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며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 38)
욥에게 악창을 준 존재도 마귀입니다.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욥2: 7)
이같이 마귀는 항상 영혼육을 공격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마귀 정복을 하여야 자기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과 그리스도인의 무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속에 나오는 한 토막 이야기입니다. 이 책속에는 필자가 어느 신학대학원 교수에게 보낸 편지 두 통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 편지 내용입니다.
“런던에 있는 어느 사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사탄 숭배자들이 사탄에게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는 바로 런던에 있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사역과 가정을 파탄시킴으로 그들의 강단에 설수 없게 하여달라고 간절히 사탄에게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도를 사탄들은 듣고 런던에서 거물급 목사님 5명을 골라 음란과 결혼생활의 파탄을 이끌어 내서 결국은 목회 사역에서 제거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두 번째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목사님이 디트로이트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데 옆자리에 별로 말이 없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 쯤 비행기가 비행하였을 때 그는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이군요.”
그는 이상하다는 듯이 대답하였습니다.
“아 아닙니다. 잘못 보셨습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사탄숭배자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라고 기도하였습니까?”
“정말 알고 싶습니까?”
“그렇습니다.”
“나의 기도 제목은 뉴잉글랜드에 살고 있는 목사들과 가족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이들이 타락하는 것을 지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숭배하는 사탄에게 그렇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마귀는 계속 우리를 파괴시키려고 시시탐탐 엿보고 있습니다. 마귀를 이기는 것이 자기 정복입니다. 예수님은 이 곳 저 곳 다니시면서 하신 마귀를 쫓는 일을 하셨습니다.
4. 목표 정복자
목표 정복이 자기 정복의 지름길입니다.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오직 그 길을 향하여 가는 것이 자기 정복의 지름길입니다. 자기 목표를 달성하면 자기를 정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오직 하나의 목표가 있습니다. 전도입니다. 영혼구원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시고 전도하러 나가셨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39-40)
바울의 인생 목표는 분명하였습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
쉐아(G.B.Shea) 가수는 이런 노래를 불러서 유명하여졌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 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 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목표가 분명하고 그 목표를 향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를 정복한 사람입니다.
중국고사에 ‘와신상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나타내는 고사로, 이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나라 왕 부차는 부친을 죽인 월나라 왕 구천에게 원수를 같기 위해 장작더미를 쌓아 놓고 그 밑에 온갖 인화물질들을 집어넣어 둔 채 그 위에서 잠을 자며 의지를 불태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군사를 훈련시키며 국력을 길렀습니다. 부차는 결정적인 때가 도래하였을 때 일거에 월나라고 쳐들어가 초토화시키고 원수 구천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한편, 오나라에 포로로 잡혀온 월나라 왕 구천은 부차가 병들었을 때, 원수인 부차의 대변을 씹어 삼키는 연출을 해냄으로써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고국에 돌아온 그는 출입문에 커다란 곰쓸개를 매달아 놓고 그 문을 지날 때마다 쓰디쓴 곰쓸개를 혓바닥에 갖다 대고 쓴맛을 보았습니다. 쓰디쓴 맛을 느낄 때마다 원수의 배설을 삼켰던 일을 상기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모욕을 되 갚아 주리라는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그 결과 BC 494년에 다시 오나라로 쳐들어가 원수 부차를 한 칼에 베어 버릴 수 있었습니다.
장작더미 위에서 잠자던 오나라 왕 부차의 해동, 그리고 곰쓸개를 씹어대던 월나라 왕 구천의 모습은 자기를 정복한 대표적인 이야기입니다. 자기를 이긴 이들입니다.
사막을 걸어 가던 한 나그네가 길을 잃었습니다. 발자국이 보였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그는 발자국만 따라가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도달하리라 믿고 열심히 따라 갔습니다. 나중에 보니 자기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는 여기저기 맴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서야 그는 생각하였습니다.
“사막에서 길을 잃었으면 북극성을 바라 보고 방향을 정하라.”
자기 도취에 빠져서 목표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자기를 이기는 자는 가장 큰 것을 이긴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4가지 자기 정복을 하여야 합니다.
1. 새벽 정복
2. 본능 정복
3. 마귀 정복
4. 목표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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