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시 121:1-8)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2. 26. 17:07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시 121:1-8)

 

  아주 오래 전에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은 감동을 심어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종로 3가 낙원동에 있는 실버극장에서 다시 본 일이 있습니다.
  그 영화 속에서 가장 긴장감을 자극시켰던 장면은 '배런 폰 트랩'이라는 한 오스트리아 해군장교가 세계 제2차 대전 초 히틀러 제국으로부터 군 입대 소집통지서를 받자 자신의 조국을 탈출하여 스위스로 도망치는 그런 장면입니다.
  특히 '폰 트랩'이 그의 새 아내인 '마리아'와 자녀들과 함께 아내가 결혼 전에 몸담고 있었던 수녀원으로 몸을 숨겼을 때였습니다. 독일 헌병들이 그 곳으로 몰려와서 그들의 은신처를 샅샅이 수색할 때, 즉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던 매우 절망적인 그 순간에 마리아가 애절하게 읊은 기도문의 한 부분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첫 절 말씀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 것인가?'라는 기도였습니다. 아마도 이 마리아의 머리 속에는 수녀원 뒤를 막고 서 있는 산들이나 아니면 독일, 스위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국경선들이 맞물리는 알프스산맥의 그 높고 낮은 푸른 언덕을 가족들과 손을 잡고 흥에 취하여 요들 송을 부르며 자유의 품에 안겨 한껏 춤을 추는 자신의 평화스러운 모습이 자리잡고 있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눈을 들어 산들을 쳐다보면서 '내가 산들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 것인가?'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러한 확신에 찬 부르짖음에 뒤이어 '폰 트랩'씨는 기적처럼 수녀원 뒷문으로 빠져 나와 그의 가족을 이끌고 국경선을 넘어서 스위스의 알프스산맥 어느 푸른 언덕 위에 도달하게 됩니다.
  마침내 마리아는 그가 그토록 마음 속에 그렸었던 그 언덕과 그 푸른 산등성이를 타고 치마를 나풀대며 내리 달리고 아이들도 춤을 추며 자유의 노래를 목청껏 소리내어 부를 때, 저 알프스산맥의 온 산야는 아름다운 '사운드 오브 뮤직'의 선율로 삽시간에 가득 매워지는 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할/ ◀제목 소개!▶

 

  ①본문의 배경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을 마치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한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쓴 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갑니다. BC 598년에 1차로, 587년에 2차로, 582년에 3차로 잡혀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70여 년 동안 그들은 피눈물나는 포로생활을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BC 538년에 해방령이 떨어져 모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아갈 때 고국으로 귀환할 것이라는 희망은 전무했습니다. 미래가 암담하고 캄캄했습니다. 그래서 포로 중 일부는 바벨론에서 현지인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정착하여 바벨론 우상을 섬기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가지고 온 보따리를 풀지 않고 언젠가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미정착자로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고달팠습니다. 고난의 외로운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시137편을 보면 '우리가 바벨론의 어느 강변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여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던 그들에게 어느 날 해방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기쁨으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꿈만 같은 일입니다. 시126편을 보면 '그때 우리는 꿈꾸는 같았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70여년 만에 그리던 고국으로 귀환하여 오는 동안 저 멀리 시온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그 감회가 얼마나 강렬했겠습니까? 저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호남고속도로만 들어와도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그리고 고향에 가까이 가서 고향의 뒷동산이 눈에 들어오면 또 감정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70여년 만에 고국에 돌아오는 길에 멀리 예루살렘 성이 보이고 그 성을 둘러싸고 있는 시온산이 보일 때 백성들은 감격했을 것입니다.
  시온산은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고 장차 메시야가 도래할 산이며 메시야가 재림하실 산이기도 합니다. 이 산을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오늘 그 산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흥분했을 것입니다. 떨렸을 것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눈물로 그 산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 때의 감회를 무슨 말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시온산이나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어느 재미교포는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에 이민을 갔습니다. 지금 나이가 칠순을 넘겼으니 그 정도면 이제는 미국사람이 다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해가 갈수록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더 진해진다고 합니다. 정원에 심겨진 나무도 자동차도 보기도 싫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년 한차례씩 고국에 돌아와 공기를 마시고 가야 비로소 1년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내 나라는 좋든 싫든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 마음의 고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가정이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저녁이면 누구든지 다 집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태어난 고향도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명절 때가 되면 한사코 고향에 가려고 애를 쓰고 죽어서도 고향에 묻히고 싶어합니다.
  성전도 마음의 고향입니다. 영적인 고향입니다. 그래서 살아가다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몸이 아플 때마다 성전을 찾아가게 됩니다. 어느 중풍병자는 수년 동안 자리에 누워 살아가다가 한숨을 쉬며 '단 한번만이라도 내 발로 걸어서 성전에 찾아가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했습니다. 성전이 곧 마음과 영혼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시인은 생각했습니다. 70여 년 동안 포로생활 하면서도 무사히 지내다가 오늘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돌아오게 되었는가 하면 순전히 100%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백하기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온다'고 고백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며 찬송한 시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세워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이 시가 불려졌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짐승의 공격이나, 강도의 습격이나, 질병이나, 위험과 어려움으로부터 지켜주시고 도와주시고 보호하여 주실 것을 바라며 이 찬송을 불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며, 현재 가고 있는 목적지까지 무사히 함께 해 주실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함께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마치 나그네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가는 것처럼 우리는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그 길이 험하고, 짐승이나 강도의 공격이 있고, 온갖 어려움과 위험이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는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고 도움을 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②본문에서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묻고 또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묻고는 대답하기를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로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문자답하는 시인의 참 뜻은 무엇인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고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라고 물었으나 나의 도움은 산으로부터는 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부터 왔도다'라는 의미입니다. /할/
  이 말의 의미를 좀 더 쉽게 푼다면 '내가 산을 향하여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라고 물었으나 산들이 대답하기를 '산은 산일 뿐'이라고 하고, 물들은 '물은 물일뿐'이라고 하였을 뿐, 나의 도움은 '오직 천지를 지으신 분, 산과 물을 지으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을 알았다는 고백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여러분, 산(山)을 쳐다보고 그 산으로부터 그 무슨 나의 도움과 나의 구원을 기대하여서는 안됩니다. 오직 그 산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도움과 나의 구원을 기대하여야 합니다. 산은 산일 뿐, 산을 하나님이라고 신앙하여서는 안됩니다. 물은 물일 뿐, 물을 하나님이라고 신앙해서는 안됩니다.
  하늘은 하늘일 뿐, 하늘을 하나님이라고 신앙하여서는 안됩니다. 땅은 땅일 뿐, 비록 그 땅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여도 땅을 하나님이라고 신앙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산도 지으시고 물도 만드시고 그리고 하늘도 땅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 자신을 지으신 그 하나님 여호와로부터만 구원이 온다는 것을 믿고 그 분만을 믿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멘!/
  시인은 단호히 말합니다. '나의 도움은, 나의 구원은' 산으로부터 오지 않고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만 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또 산은 세상의 '높은 권력자'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을 바라본다는 것은 세상의 권력자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병들었을 때 의사를 바라보고, 돈이 필요할 때 부자를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진짜 도움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가운데 사람의 도움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참 모습입니다. /믿/아멘!/

 

  ⑴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옵니다(1-2).
  6일 전쟁으로 불리는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던 '모세 다이안' 장군은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선언을 했습니다. 다이안은 100배나 되는 인구를 가진 아랍연합국과 맞서는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새로운 무기가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장담을 했습니다. 세계의 사람들은 그것이 틀림없이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을 능가하는 신무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세 다이안 장군'은 '우리를 승리하게 할 신 병기는 바로 시편 121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결국 그 전쟁은 단 6일 만에 이스라엘의 대 승리로 끝났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신앙은 고백이 참 중요합니다. /아멘!/
  여기서 또 산은 '고난과 역경일 수도 있고, 낙심과 절망일 수도 있고, 좌절과 패배일 수도 있고, 인생의 문제, 즉 요약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말에도 '절망이다, 갈수록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진정한 성숙은 인생의 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인생은 성숙해 지고 신앙도 뜨겁게 됩니다. /할/
  진정한 감사, 진정한 기쁨, 진정한 행복은, '건강을 잃은 환자만이 건강의 행복을 알고, 가난과 추위 속에 떨어본 사람만이 한 칸 방의 고마움을 알고, 죽음의 선고를 받았던 사람만이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되고 은혜가 되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고난과 역경을 만나면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제로 인생의 산을 만나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많은 신앙 인들이 있습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사람이 역경 중에서는 누구나 도움을 찾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 권세에서 도움을 찾으려고 정치적 빽을 찾아 나섭니다. 얼른 보면 그것이 제일 해결할 수 있는 유일의 방법인 듯 합니다.
  지금은 누구나 해외 여행을 마음만 먹으면 다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때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권을 가지려면 반드시 신원조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신원조회가 떨어져야 여권 수속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신원조회를 담당했던 부서가 그 무서운 '중정'입니다. 중정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신원조회가 나오지 않아 난관에 부딛혀 있을 때, 거기서 한번 전화만 한통화 해 주면 당장에 해결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정치적인 권세를 의지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세처럼 무상한 것도 없습니다. 권좌에 있던 사람들의 물러난 후에 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루아침에 그런 줄은 썩은 동아줄 같이 의지할 것이 못됩니다.
  또 사람들은 힘들 때 때로는 재물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물론 재물의 힘은 놀라운 힘으로 우리 앞에 다가옵니다.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인생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재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인생의 문제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줄 그렇게 착각하고 있습니다.
  ▶한 청년의 얘기를 은유적으로 기록한 글이 있습니다.
  어느 날 사탄이 한 청년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열 개의 병을 보이면서 '이 중 아 흡 개의 병에는 꿀물이 들어 있고, 한 개에만 독약이 들어있는데 열 개중 하나를 마시면 엄청난 돈을 주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청년은 자신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돈 만 있으면 다 해결될 것 같아 드디어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 딱 한번만 하는 거야, 이번 한번이면 평생을 고생 안 해도 될 테니까' 청년은 떨리는 손으로 진땀을 흘리며 한 병을 골라 마셨습니다. 아찔했습니다. 곧 청년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야, 내가 살았구나...'
  사탄은 청년에게 엄청난 돈을 주고 돌아섰습니다. 그러면서 다음에 언제라도 남은 9개중 하나를 마시면 돈을 곱으로 주겠다는 말과 함께 웃으면서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청년은 오랜 방탕생활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돈이 떨어지자 다시 반복하여 사탄을 불러내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고민을 했으나, 나중에는 어느 병을 골라야 할까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느덧 청년은 백발이 되었습니다. 이제 딱 두 병이 남았습니다.
  노인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 중에 하나를 골라야 했습니다. 노인은 마침내 마지막 잔을 마셨습니다. 노인은 끝까지 살아 남았습니다. 노인은 순간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탄은 남은 마지막 잔을 훅 하고 마셔버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독약이란 없었다. 그러나 너는 돈이라는 나의 독약에 이미 죽어가고 있어. 나는 너의 청춘을 망가뜨렸지. 사람으로 태어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모르고 오로지 돈만 아는 최고의 바보로 만들었지. 너는 이제 영원히 죽게 될 거야' 이렇게 말하고 사탄은 유유히 웃으면서 사라져버렸습니다. /할/
  여러분! 이 얼마나 우리로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까? 세상의 모든 의지하는 줄은 끊어질 줄들입니다. 아무리 그것이 튼튼한 것 같지만,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믿음뿐입니다.
  오늘 시인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나의 도움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도움'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에제르'의 '지원하다, 구조하다, 구원하다'는 뜻인데, 어려움이나 위험한 순간에서 구해주거나, 일을 해결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도움의 종류는 적군의 손에서 구해주는 군사적인 도움과 고아나 과부, 질병에 걸리거나 개인적인 곤경에서 구해주는 비군사적인 도움이 있습니다.
  이런 도움은 세상 적인 방법과 인간의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주어야 된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도움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낙심한 신자 한 분이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교회당에 혼자 앉아서 자신의 무력하고 초라한 모습을 생각하면서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이 사람은 완전히 지쳐 있습니다. 그때 교회 안을 빙빙 돌고 있는 참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참새가 어떻게 하다가 교회 안으로 들어온 모양입니다. 창문이 모두 닫혀 있어서 밖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이 참새가 한참 동안을 날며 헤매고 다니다가 지쳐서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본 신자가 말합니다. '너도 내 신세와 똑같구나' 두 신세가 똑같습니다. 둘은 모두 지쳐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교회 꼭대기에 창문이 조금 열려 있습니다. 그 창문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그들이 앉아 있는 곳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 참새는 한참 동안 그 꼭대기를 쳐다보더니 날아가 그 구멍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이 사람이 그 모습을 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길은 저 높은 곳에 있구나. 그런데 왜 나는 그 동안 저 밑에서만 방법을 찾으려 했던가?' 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길은 저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길은 저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고백하기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고 했습니다. /할/

 

  ⑵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3-4).
  ▶한 그리스도인이 꿈을 꾸었습니다. 바닷가의 모래 위에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 사람의 발자국으로 나란히 이어져 있었는데 하나는 그리스도인인 자신의 것이었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을 보니 발자국이 한 사람의 것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는 그 사람이 매우 힘들고 어려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도움을 바라던 그런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제가 가장 어려울 때 주님을 간절히 찾았는데 그때 예수님은 어디 가시고 제 발자국만 남아 있는 겁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때, 네가 어려웠던 때에 찍힌 발자국은 네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이다. 그때에 내가 너를 업고 갔던 거란다.' /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늘 지키신다는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고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어려운 때만이 아니라 평탄할 때에도 언제나 보호하시는 섭리를 계속하십니다. /믿/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순간마다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은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실족'은 히브리어 '모트'로 '비틀거리다, 흔들거리다, 미끄러지다'는 뜻인데, 매우 불안정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발을 잘못 디디거나 행동을 잘못하여 재앙이나 혼란에 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광야 길을 가다보면 구덩이가 있기도 하고, 낭떠러지가 있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는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사나운 짐승의 공격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자는, 구덩이나 위험한 곳에 미끄러져서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실족하지 않습니다.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실족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또한 시험과 유혹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할/
  시40:2절에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우리로 견고하게하여 넘어지거나 실패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우리는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순종하며, 진리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 머뭇머뭇해서는 안 된다. 곁길을 조심하고, 게으른 걸음을 경계하며, 똑바른 걸음으로 나아가라'고 했습니다. 시27:5절에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할/
  ▶어느 날 영국 궁성 앞에 요란스러운 교통정리가 있었습니다. 하얀 장갑을 낀 교통순경이 오는 차량을 전부 스톱시켰습니다. 통행인도 전부 스톱이 되었습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사람들도 발을 내려놓고 어떤 행렬이 지나가는가를 기다렸습니다.
  틀림없이 영국 여왕의 행렬일 것이라며 여왕을 구경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이윽고 그 행렬이 지나가는데 어미 오리가 열 마리의 새끼 오리를 데리고 아장아장 천천히 지나갔습니다.
  오리들이 지나가게 하기 위해서, 왕의 행렬처럼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차가 스톱을 해야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위험한 것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를 보호하지 않겠습니까?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어찌하여 우리를 보호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는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아멘!/
  리빙스턴은 자기 생애의 전기를 쓰면서 '천직을 다 할 때까지 죽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간 동안은 아무도 죽일 수가 없습니다. /할/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나그네 인생들은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가려고 하는 목적지가 있어야 합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목적지가 분명히 정해져야 합니다.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가 있어야 합니다. 가야 할 길의 모든 과정을 잘 인도해 줄 좋은 안내자를 만나야 합니다.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길을 갈 때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보호해 줄 보호자가 있어야 합니다. 인생길이 험하고, 마음이 지쳐서 살아갈 용기가 없어지고, 병에 걸리고, 사탄의 공격을 받을 때,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고 인도하여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믿/
  ▶전쟁터에서 한참 교전 중일 때, 앞장섰던 한 병사가 적의 총탄에 맞고 쓰러졌습니다.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는 가운데서 부상당한 병사는 살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소대장이 '누구든지 뛰어가서 저 병사를 구해 오라'고 명령했지만, 모두 무서워서 아무도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병사가 시계를 보더니 '소대장님 제가 가겠습니다'하고, 참호에서 뛰쳐나가 부상당한 병사를 업고 달려왔습니다. 교전이 끝나고 소대장이 '자네는 어떻게 담대하게 뛰어나갔는가?' 하고 묻자, 이 병사는 '제가 뛰어나간 그 시간은 바로 제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보호해 주시는데 무엇을 무서워하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기도가 자녀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줍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고, 백성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되 가족이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나라가 민족이 실족하지 않게 해 주십니다. /아멘!/

 

  ⑶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은 네 우편에서 그늘로 지켜주십니다(5-6).
  ▶평양 어떤 공장 지하교회 성도들이 기도회를 갖고 있을 때입니다. 이들에게는 성경이나 찬송가가 없으므로 종이쪽지에 성경 구절을 적어서 돌려가며 읽고는 입만 벙긋벙긋 벌리며 찬송을 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날은 노동당 반장이 뒤에 와서 서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소리 없는 찬송을 부르고 있는데 그 반장이 다가와서 '동무들. 무엇하고 있는 거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한 대담한 여공 성도가 '우리는 지금 독보회를 하고 있소. 동무도 같이 앉아서 안 하시려오'라고 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그 반장은 한참 앉아 있다가 '동무들이나 많이 하소'라고 하고는 가버렸습니다.
  그 순간 이들은 그 반장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들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북의 지하교회 성도들은 이토록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린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명을 걸고 드리는 성도들의 예배와 수 천명이 모였으나 마음은 세상에 가 있는 형식적인 예배가 있다면 하나님은 과연 어느 것을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은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할/
  팔레스타인 지역은 '해'와 '달'의 해(害)를 받았습니다. 해는 그 빛이 아주 강하게 내려 비치기 때문에 샘의 근원을 마르게 하고, 사람의 머리에 쬐어서 일사병에 걸리게 합니다. 일사병에 걸리면 열이 나고, 숨이 막혀서 즉사하거나 속히 죽기 때문에 사막의 여행자들은 일사병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또 달빛 아래서 잠을 자다가 해(害)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낮의 열기가 밤에는 극도로 추운 냉기로 변해서 달빛을 받고 잠을 잔 사람은 심한 현기증을 느끼는데, 좀더 심하면 정신이상이나 간질, 열병에 걸리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월사병(月斜病)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낮의 해와 밤의 달을 피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낮이나 밤이나 우리의 그늘이 되어주셔서 이러한 피해를 당하지 않게 지켜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13:21절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하시니'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으로 지켜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앞장서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뒤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멘!/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멋대로 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불기둥과 구름 기둥 아래에 거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움직이면 함께 움직이고, 하나님께서 멈추시면 우리도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시23:4절에서 다윗이 말하기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망의 골짜기, 죽음 가운데에 있다고 할지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중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안전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는 많은 범죄와 사고와 위험이 있습니다. 매일 매스컴에서 전해지는 소식이 그런 것이 아닙니까? 사건과 사고, 위험과 재난이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면 불안 속에서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낮의 해가 상치 아니하고, 밤의 달도 해치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주안에서 승리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⑷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7).
  여기서 '환난'이라는 것은 '재앙, 기근, 질병, 슬픔, 악한 일' 등 인간이 당하는 여러 종류의 고통을 총체적으로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을 살 동안에 우리는 재앙이나, 기근이나, 질병과 가난, 슬픔, 불행한 일들을 당하지 않을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이 모든 환난을 면케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모든 해악과 고통들로부터 보존해 주시고, 피할 길을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시27:5절에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할/ 우리 하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사랑하는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⑸여호와께서 너의 출입(出入)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8).
  여러분, 어떤 인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인가? 바로 '하나님의 보호 속에 사는 인생'입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할/
  지금 우리 정치권은 4월 총선과 연말에 대 선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국회의원도 잘 뽑아야 하겠지만 대통령을 더 잘 뽑아야 합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대통령선거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대통령을 원하십니까?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만은, 신앙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대통령'일 것입니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깨끗하고, 유능하고, 나라를 화목하게 하는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복잡하게 말하지 말고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백성을 잘 살게 해주는 대통령'입니다. /맞지요?/
  그렇다면 백성을 잘 살게 해주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백성을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최우선적인 임무가 백성보호라는 것은 대통령 선서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취임할 때 이렇게 선서합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이상한 나라로 만들지 않고 올바른 나라의 모습을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백성이 법적으로 보호받게 해주겠다는 뜻입니다. 국가를 보위하겠다는 것도 물론 나라를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힘쓰겠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회복하고 발전시키겠다는 뜻입니다.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백성을 잘 살게 해주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백성을 지켜주고 잘 살게 해줘야 좋은 대통령입니다. /믿/아멘!/
  그러면 가정에 아버지는 어떻습니까? 아버지도 자녀를 보호해주고 잘 살게 해줘야 좋은 아버지입니다. 만일 부부가 이혼하게 되면 자녀의 양육권을 누구에게 줍니까? 여러 가지를 따져보겠지만 최소한 자녀를 잘 보호하고 양육할만한 능력이 없으면 양육권을 주지 않습니다. 이것만 봐도 아버지의 가장 중요한 자격이 자녀를 보호하고 잘 살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그렇게 백성들을 잘 보호하고 지켜준 대통령이 있었습니까? 임기 끝나면 측근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고 심지여 부엉이 바위에서 생을 던진 불행한 일들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완전한 대통령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가정에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은 있지만 능력이 따르지 못해 지키고 보호하는 일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할/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세상의 악을 이겨낼 수도 없고, 내 자신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멘!/
  8절은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 웨슬레는 '가장 최선의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지금 이 시간이 최선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어떤 상황이든 우리에게는 최선의 시간이고 최대의 행복입니다. 현재가 언제나 극적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했던 것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는 이상으로 더 확실하게 우리의 식탁에 같이 앉아 주시고 우리의 침상에 같이 누워 주십니다. 또한 어느 곳을 가든지 함께 동행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보다 더 중대하고 귀한 일은 없습니다. /할/
  2차 대전 때에는 많은 전쟁의 신화들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항구에 영국군 수십만 명이 후퇴를 할 때 그 부근의 독일군들이 집결해 있는 항구에는 대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거기서 얼마 안 되는 부근이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잔잔해서 수십만 명의 영국군이 무사히 후퇴할 수 있었답니다. 훗날 기록을 보면 영국군들은 주일에 모여서 '하나님, 독일군에게서 우리들을 지켜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아멘!/
  수1:9절에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주님은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시17:8절에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사람이 눈동자는 엄청난 신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안과의사들은 우리의 눈동자가 자동으로 조절된다고 말합니다. 가령 사람의 눈에 먼지나 모래와 같은 이 물질이 들어오려고 하면 어느새 눈꺼풀이 감겨 눈동자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런 작용이 가능한 것은 눈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구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사람의 눈에는 자그마치 30만개의 회로가 있고 1억만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그 무엇이라도 눈에 들어오려고 하면 이것을 눈동자가 감지하고 눈꺼풀에게 지시하여 자동으로 감겨 보호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은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출입'은 밖으로 나가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말하는데, 한 사람의 전 생활 영역에서의 모든 삶과 일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출입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과 계획하는 모든 일들을 영원히 지키고 보호하시며 복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면, 가정에 들어와도 화목하고 평안하고 나가서 일하는 직장과 사업장에서도 형통하고 성공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고 축복과 은총을 주십니다.
  신28:3-6절에 보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모든 복이 임하는데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할/
  우리 모두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2012년 2월 26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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