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눈물은 아름다워라. (시 6;1-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5. 16. 10:57

눈물은 아름다워라.

 

                                                                                                시 6;1-6

 

 

  내가 잘 알고 있는 장로님이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박사 코스는 박살 코스입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마치려면 돈이 박살납니다.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건강이 박살납니다. 건강이 망쳐질 정도로 공부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 박살납니다. 논문이 지도 교수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자존심상하는 말을 많이 들어야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박사 학위를 마쳤습니다.그렇게 공부를 마친 아들이 귀국을 며칠 앞두고 슈퍼 들렀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사가지고 나오는 데 흑인 총을 들이 대며 말했습니다.

“자동차 키를 내 놓아라.”

그는 키를 주는 척하면서 잽싸게 몸을 날려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습니다. 순간이 흑인은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리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총에 맞은 그는 쓰러졌습니다.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끝내 죽고 말았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는 그의 시신을 붙들고 통곡을 하였습니다.

“이 놈아! 주지! 이 놈아! 주지!”

오랜 후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그 아들 한번만 얼굴 보고 싶어요.”

내 옆에 있던 이가 물었습니다.

“어머니! 아들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요? 유치원 다니며 재롱 떨던 모습을 보고 싶어요? 아니면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뛰어 놀던 시절의 모습을 보고 싶으세요? 아니면 중고등학교 시잘의 싱싱한 아들 모습을 보고 싶어요? 아니면 늠늠한 대학생의 모습이나 입대하여 대한 민국 군인의 늠늠한 모습을 보고 싶어요?”

어머니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아들이 내 앞에서 울면서 어머니 잘못 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 울던 모습이 보고 싶어요.”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눈물은 아름답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드리고 싶습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TV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를 보게 되었습니다. 오리 부부와 오리 새끼 넷을 낳았습니다. 오리 여섯이 냇가에서 오순도순 살고 있었습니다. 야생 고양이가 새끼에게 덤빌 때 엄마 오리가 반항다가 물려 죽었습니다. 남편 오리가 네 새끼 오리와 함께 그 곳을 떠나지 않고 3달을 살고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아내 오리 시체를 치울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 오리가 시체위에 앉아 있다가 돌다가 하면서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굶어 죽을 것같아서 동네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아내 시체위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곤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오리 아내 시체를 장례지내 주기로 하고 흰 종이에 몇 달 된 시신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남편 오리가 그 옆에서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습니다. 울고 있는 오리를 보며 동네 사람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우는 이유는 다 달랐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죽은 남편을 생각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어떤 아내는 저런 남편의 사랑을 받아 보았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울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동물들 사랑에 감동된다고 하면서 울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렇게 금실이 좋은 부부는 처음 보았다면서 감탄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웃는 것은 즐거운 감정일 때만입니다. 그러나 눈물은 슬퍼도 눈물, 기뻐도 눈물, 억울해도 눈물, 아파도 눈물, 좋아도 눈물, 안 좋아도 눈물 모든 경우에 눈물입니다.

눈물은 아름답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리고 성령님도 우셨습니다.

 

영적으로 깊은 분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강 목사님! 기도하는 데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났어. 그런데 하나님이 울고 계셨어. 하나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었어. 왜 우시느냐고 물었더니 한국 교회 상황이 안타깝다고 하셨어.”

 

하나님은 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누가복음 19;41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전을 정켤케 하시기 전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오시면서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예루살렘에 돌 하나에 돌 하나 놓이지 아니하고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시고, 예수님도 우셨는 데 성령님도 우시는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눈물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시는 눈물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보여야 할 눈물이 있습니다.

 

1. 회개의 눈물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회개의 눈물을 아름답게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흘려야 하는 눈물은 회개의 눈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이나 다같이 죄를 지으며 삽니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하여 아픔을 가지고 자주 회개합니다. 그러나 예수믿지 않는 이들은 죄에 대하여 아픔을 느끼지 않습니다.

죄에 대하여 민감할수록 좋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당시 왕이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데려다가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자 침상이 눈물에 뜰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이는 다윗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6)

 

회개의 눈물은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좋은 눈물입니다. 엄청난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회개하는 다윗을 보시고 한번도 꾸짖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철저한 회개의 눈물을 하나님은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회개의 눈물이 또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회개의 눈물입니다. 이사야 38장 이야기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제 정치할 만 하니까 죽을 병에 걸려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돈벌어 호강할만하니까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나를 소금장사하여 길러 놓으시고 효도받으실 만하니까 돌아 가셨습니다. 히스기야는 불치병속에서 낯을 벽에 대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구하노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이런 히스기야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15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예정을 바꾸시고 15년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기뻐하십니다.

 

전라도 어느 장로님 고백입니다.

복잡한 가정 생활로 인하여 교회를 떠나 10여년을 방황하였습니다. 어느 날 술집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 술집에서 무당을 데려다가 굿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무당이 굿을 하다 말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나요? 내 영이 그 사람 때문에 통하지 않고 있으니 그 사람은 나가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장로님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떠난 지 10여년이 지났는 데 예수님의 영이 내게서 떠나지 않았구나! 주여! 다시 주께로 돌아가겠습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무당의 말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새로운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회개의 눈물을 기뻐하십니다.

 

다른 이야기입니다.

미국에 젠킨스 박사님에게 어느 날 죠지아 주에 있는 큰 술집 주인이며 도박장 주인이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그는 돈이 억수로 많은 부자인 데 생활은 불행하였습니다. 박사님은 불행한 삶을 청산하기 위하여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하여 주었습니다. 성경도 읽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후 몇 달이 지났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아침 박사님이 지시하신 대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빛이 제 영혼에 가득 비쳐왔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제 마음을 바치고 그 분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 집 앞을 지나면서 보니까 비싼 고급 가구를 모두 실어 내가는 것이었습니다.

“왜 고급 가구를 실어 내가십니까?”

이렇게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술을 팔아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번 돈이 생각날 때마다 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을 팔아서 산 물건을 모두 처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물건을 사용하면 집안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안 식구들이나 자녀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깨끗하게 번 돈만 사용하겠습니다.”

그의 회개의 눈물을 하나님은 받으시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의 눈물을 기뻐하십니다.

 

2. 사랑의 눈물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눈물도 아름답게 보십니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더욱이 사랑의 눈물은 더욱 아름다운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눈물을 흘린 여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초대를 받아 그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 오셔서 식사를 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바리새인 집으로 와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눅7;38)

눈물을 흘리며 향유를 붓는 여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선지자라면서 죄인도 모른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을 사랑하셨습니다. 분명히 향유로 발을 적셨는 데 예수님은 눈물로 발을 적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 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눅 7;44)

 

눈물과 향유가 섞이어 예수님의 발을 씻는 모습을 예수님은 아름답게 보셨습니다.

바울의 교회를 사랑하는 눈물도 아름다운 눈물이었습니다. 특별히 사랑으로 훈계할 때에 눈물은 아름다운 눈물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훈계할 때 눈물로 훈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31)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 3:18)

 

사랑하기에 눈물을 흘리면서 훈계하는 눈물은 정말 아름다운 눈물입니다.

 

콜로넬 클라크(Colonel Clark)는 시카코에 살고 있는 전도자입니다. 그는 눈물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깡패, 술주정꾼, 쓰리꾼 그리고 수많은 범죄자들을 모아 놓고 설교할 때 언제나 눈물을 흘렸습니다. 말은 잘 못 하였는 데 눈물만 많이 흘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설교하기만 하면 500명 내지 600명의 죄수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여 달라고 간청할 정도로 강대상에 서면 눈물이 흘렀습니다.

 

훈계할 때 훈계하는 이가 도리어 사랑의 눈물을 흘린다면 100마디의 말보다 더 능력있고 감화가 있는 훈계가 될 것입니다.

사해사본이 발견된 이스라엘 지역은 유대교 분파였던 엣세네 분파들의 기거지였음이 밝혀졌습니다. 그 사해문서 가운데 <교단 계율 제요>(敎團 戒律 提要)란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속에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1. 교단의 계율을 범하면 신분 격하, 감식, 일시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추방당한다.

2. 예배중에 졸면 30일을 근신하여야 한다.

3. 단원을 중상하면 1년을 추방한다.

이런 엄격한 법을 정하여 놓고 생명을 걸고 같이 생활하는 공동체 일원을 훈계하며 다스렸습니다. 한 명 한 명을 다스릴 때마다 눈물로 다스렸다고 합니다. 사랑과 공의가 엄격하게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사랑하기에 공의롭고 공의롭기에 사랑스러운 두 가지 토끼를 다 쫓던 곳이었습니다. 훈계하며 사랑으로 흘리는 눈물은 아름다운 눈물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훈계할 때 눈물로 훈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사랑하면서 흘리는 눈물은 아름다운 눈물입니다.

펄벅 여사가 중국을 선교할 때 이상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소가 쟁기를 끌지 않고 아들이 끌고 아버지가 쟁기를 모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상하여 이유를 물었습니다.

“소가 없나요?”

“네.”

“왜 이렇게 쟁기질을 하는 것인가요?”

부자가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 건축을 드릴 때 소를 팔아서 드렸습니다. 소가 없어서 아들이 소대신 쟁기를 끄는 것입니다.”

펄벅은 주님을 사랑하는 그들의 헌신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랑의 눈물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가이드 포스트에 실린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미국 메사스츄에서 생긴 이야기입니다. 칼 테일러와 아내 이디트가 결혼한지 23년 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1960년 남편 테일러가 일본 오끼나와 군용공장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몇 달 파견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많아져서 그 곳에 몇 년 머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편지도 자주 오고 전화도 자주 오더니 어느 날 경악스러운 편지가 왔습니다.

“이제 당신과 이혼하여야 하겠습니다.”

알고보니 하숙하던 집의 식모 19살 된 아이고와 동거하고 있었습니다. 아내 이디트는 이 편지를 받고 처음에는 기절할 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 입장에서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직장에서 일은 고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해서 지쳐있었을 터인데 나는 옆에 없었다. 식모가 정성을 다 하여 보살펴 주었을 것이다. 몇 년을 그렇게 하다 보니 사랑스러워진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래도 몇 년 동안 나를 생각하고 굳굳하게 버티어 준 남편이 오히려 대견스러운 것이 아닌가? 남편은 지금까지 결코 경솔하지 않았다. 이혼까지 생각하였을 때 남편은 얼마나 고민하였고 얼마나 망설였을가?”

역발상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그 여자는 19살입니다. 다 늙은 사람이 19살 여인과 사랑한다면 길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 편지를 받고 원망하지 않는다고 답장을 썼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딸을 낳았습니다. 선물을 보내 주었습니다. 일년 지나 또 두 번째 딸을 낳았습니다. 선물을 사서 또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암으로 죽어간다는 편지가 식모로부터 왔습니다. 죽었습니다. 식모로 두 딸을 공부시키고 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미국에 여인이 두 딸을 보내주면 미국에서 기르겠다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하였지만 식모가 기를 수 없어서 두 딸을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54살 된 이디트는 5살 3살 두 딸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양녀로 입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아이고가 식모 격무에 시달리다 병에 들었습니다. 이디트는 수속을 하여 그를 미국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얼마나 자기 딸 둘을 보고 싶어 할가?” 동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뉴욕 비행장에 그 여자가 도착하는 날 아침 이디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내 남편을 빼앗아갔던 여인이 오늘 공항에 도착합니다. 원수로 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사랑하게 하옵소서.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 있게 하옵소서. 남편이 돌아 온 것처럼 기쁨을 맞을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비행기에서 아이고가 내리는 순간 그가 자기를 보고 미안해 할가봐 먼저 달려가서 끼어 안았습니다. 훔뻑 울었습니다. 같이 살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한 명을 데려 가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극히 사랑할 세 사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진실로 감사합니다.”

사랑의 눈물을 하나님은 아름답게 보십니다.

 

3. 일하는 눈물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일하며 수고하며 흘리는 눈물을 아름답게 보십니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아프고 고달프고 쓰라리지만 멀지 않아 보상을 받을 눈물이 있 습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 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시126;5-6)

 

씨를 뿌릴 때 농부는 눈물이 흐를 정도로 피곤하고 바쁩니다. 그리고 아프고 어렵습니다.그러나 추수할 때에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힘들어도 힘든 줄 모릅니다.

어부들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고기 안 잡히며 두 시간 밤에 고생한 밤은 정말로 피곤한 밤입니다. 그러나 고기가 너무 많아 배 가득 채우며 밤을 새운 밤은 조금도 피곤하지 않은 밤입니다.

보상받을 수 있는 눈물은 좋은 눈물입니다.

 

나는 성막 공부할 때 눈물이 핑그르 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돌며 실제적으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 시간 도는 데 천천히 연구하며 돌면 3시간 정도 걸리는 성입니다. 아랍인들이 많은 지역이 있어서 새벽에 돌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일어나기 전에 빨리 돌려고 추리닝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성벽을 끼고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 예루살렘 성 주변 쟈깅은 그런대로 맛이 있었습니다.

한 바퀴를 돌고 났을 때 다시 한번 천천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두번째 돌고 났을 때 세 번이면 확실할 것같았습니다. 다시 돌았습니다. 힘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리가 아파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생각이 났습니다. 7바퀴 돌아야 완전하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 잡았습니다. 나는 7 바퀴를 돌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어느 덧 오후가 넘어 해가 지려는 저녁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쌓은 돌, 스룹바벨이 올려놓은 돌, 헤롯왕이 쌓은 벽등이 구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내 앞에 있던 분이 나를 보면서 “코에서 피가 나요”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손을 코에 대는 순간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피를 닦아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는 잔디 밭에 누웠습니다.그리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이런 회의감이 돌았습니다.

“안 그래도 되는 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 때 눈에서 눈물이 흐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 공부한 결과 오늘 날 성막은 강 문호 목사의 대명사처럼 되었습니다.지금 나는 성막 강의할 때마다 이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 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내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오늘의 눈물은 행복한 눈물입니다. 아름다운 눈물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 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심한 통곡을 하셨습니다. 눈물로 간구하셨습니다. 정직히 말해서 <눈물로 간구>하는 기도를 드린 적이 몇 번이나 됩니까?

이미 말씀드린 대로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이 자기의 생을 마감시키려고 하실 때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유복자입니다. 어머니 태에 있을 때에 아버지가 북에서 남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래서 3살 때까지 어머니 혼자 나를 길렀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본 것은 4살 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만날 때까지 내가 얼마나 울었는 지 식사할 때에는 교대로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 별병은 <울보>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버지 보지 못 할 팔지인가 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눈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눈물이 많습니다.

 

마아존 강에 가면 눈이 네 개 달린 물고기가 있습니다. 물속에 눈이 두 개가 있고 물 밖으로 두 개 눈이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물속에 있는 두 눈으로는 물속에 있는 먹이를 찾아 먹고, 물밖에 있는 두 눈으로는 물 밖에 있는 먹이를 찾아 먹습니다. 그런데 밖에 있는 두 눈에는 눈물샘이 없습니다. 눈물이 없으면 눈이 메말라서 얼마 지나면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물속으로 들어가서 눈물 대신에 물로 촉촉이 적셔 주곤 합니다. 눈에 눈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눈물이 많은 사람이 인생을 깊이 살아갑니다. 눈물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사람이 하루 흘릴 수 있는 눈물량은 1입방 cm입니다. 생후 2-3개월후부터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노년에는 눈물샘이 말라 눈물이 적게 흐른다고 합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으로 눈물은 흐르게 됩니다.

눈물은 더러운 것들을 씻는 역할도 합니다. 그러나 눈물은 더러운 감정을 씻어 내는 역할도 합니다. 그래서 많이 우는 이들이 건강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에 지나가다가 울고 싶을 때 들어가서 우는 노래방같은 곳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어떤 의사는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이유를 눈물에 두는 이도 있습니다. 남자들은 밖으로 돌면서 스트레스도 풉니다. 때로는 맛있는 것도 여자보다 잘 먹고 많이 먹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더 오래 사는 것은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눈물이 많다는 것입니다. TV에서 연속극을 보면서도 웁니다. 조금만 슬픈 일을 당하여도 웁니다. 그래서 여자의 무기는 눈물입니다.

 

눈물을 억제하여 생기는 대표적인 병이 암입니다. 똑같은 암병 환자라도 감정 표현을 잘 하는 환자는 암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형무소보다 수도원에서 암발생율이 느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윌터 스미스 박사에 의하면 힘껏 울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눈물을 삼키며 참는 사람보다 감기에 잘 안 걸린다고 합니다. 눈물을 억제한다는 것은 감정표현을 억누르는 것이고 자기를 위장하는 것입니다. 솔직한 고백이 없는 메마른 생활입니다. 전인격적인 성장은 언제나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잘 참고 눈물이 적은 남자들이 여성들보다 더 암에 잘 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 니다. 눈물은 건강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눈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눈물이 있습니다.

 

1. 회개의 눈물

2. 사랑의 눈물

3. 일하는 눈물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눈물입니다.

 

눈물은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말보다 힘이 있습니다. 행동보다 감동이 있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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