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곽선희목사/달란트 비유! (마 25:14-3O)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5. 18. 14:00

곽선희목사/달란트 비유! (마 25:14-3O)

 

본 달란트 비유 역시 천국은 이와 같다는 것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제는
천국이며, 특별히 천국을 위하여 일하는 문제를 주제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또한 이 세상을 살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하는
우리는 이 종말적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 것인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내용이 충성이라면 이 충성은 어느 임금이나 상관에게 바
치는 충성이 아니며 사랑하는 남편에게 바치는 그러한 충성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로지 천
국을 위하여 바치는 충성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주제라
는 그 사실을 놓치게 되면 전혀 그 내용을 모르는 것이 되고 맙니다. 특별히 이 본문은 돈,
분배, 노력, 결과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으므로 여러 방면에서 쓰여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
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말씀의 내용이 회사원이나 종업원의 충성을 강요하여 사업 실
적이나 효과를 올리고자하는 데 쓰여질 성격의 이야기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천국이요, 그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오늘, 현재,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비유하시면서 어떤 사람과 그의 종들과의 관계로
설명하십니다. 이처럼 주인과 종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앞에서들 거론한 대로 당시의 생활
풍속에서는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이 평범한 소재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상당히 긴 본문 중
에서 그 요점 몇 가지만 간추려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본문의 시작인 14절 말씀에 보면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 종을 불러 자기의 소유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종들로 말하면 본
래부터 소유는 없었고 가질 수도 없는 신분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맡김으로 이제는 주인의
소유를 맡고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주인으로부터 맡은 바를 가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청지기적 삶을 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건강도
맡은 것입니다. 나의 생명도 임시로 맡은 잠간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거두
시면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자녀도 맡은 것일 뿐 나의 것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재산, 나의 재능, 나의 명예, 나의 지식, 나의 직장. 이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의 견해
에서 볼 때에 종으로서 맡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맡은 자들은 맡은 바 그 모든 것들을 통하여 천국을 섬겨야함을 생각할 것입니
다. 우리는 때때로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
각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노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누가 염려함으로 작은 키를 한 치인들 늘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머
리카락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시간 문제에 대해서는 속수무책, 완
전 노 터치(no touch)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하잘
것없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단지 주인이 종들에게 맡겼으니 종의 입장에서는 어느 기간
동안 맡았다는 확고한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청지기직에 대한 감사
가 있어야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되는 달란트를 일반적인 의미보다 좀 더 신학적인 입장에서 말씀드
린다면 곧 은사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들에게는 천국을 위하여 쓰여져야할
은혜의 선물이 많습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령의 역사요 말씀의 역사이며,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지혜와 기회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특별히 달란트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달란트(talent)라는 말을 영어의 의미에서 보면 두 가지
의 뜻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재주라는 의미인데, 특별히 선천적 재능이나 특별한 재능을 말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타난 대로 금, 은 화폐의 단위가 되고 때로는 중량의 단위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여기에 나타난 달란트는 돈의 단위 중에서도 가장 높은 금화의 단위
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쓰여져야 할 신령한 은사, 신령한 선물이
이미 주어졌고 지금도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충성을 다해야 된다는 말
씀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본문의 내용은 불공평 안에 전개되는 공평성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공평의 길인가 하는 것은 꼭 같이 나눈다는 의미와는 다른 적절함의 문제입니
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시험을 치루었다고 할 때에 다들 수고했으니 똑같이 100점을 준다
면 그것이 공평한 것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답을 잘 쓴 학생에게는 100
점을, 그리고 각자 한 대로 50, 30점, 0점, 이렇게 주어지는 것이 마땅하고 공평한 것입니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무조건 같아지기를 바라며 그래야 공평한 것으로 압니다만 그것은 공산
당식 공평이지 참다운 공평은 아닙니다. 진정한 공평이란 그 능력에 따라, 재능이 많은 자에
게는 더 주고 재능이 적은 자에게는 적게 주는 공평입니다. 이러한 공평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기록하기를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
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였습니다. 문제의 초점은 "각각
그 재능대로" 하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주어진 재능에 따라서 달란트가 주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점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른과 아이의 할 일이 다르고
남자의 할 일과 여자의 역할이 다르듯 주어진 재능이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음악을 잘 하는가하면 어떤 이는 과학 분야에 혹은 인문, 사회, 스포츠 등 그
무엇인가에 대한 재능을 각각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속에 "각각 그 재능대로"란 이 표현은
양적이기도 하고 질적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아주 다양하고 다원적인 은사를 생각하게됩니
다. 본문 말씀에는 간단한 한 마디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미 주어진 경험들과 능력의 한계와
수준을 알고 그 재능대로 각각 다르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공평 안에 공평성
입니다.
이 세상 구조가 하도 다양해서 불공평한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속에 이러한 공평성이 있습
니다. 다 사도가 아니요, 다 목사도 아니며, 다 교사도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것은 이
모두는 각각 하나같이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이며 특별히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신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재능의 한계가 있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있
는데 무조건 아무 것이나 주어진다고 능사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
서는 각각을 위해 친히 판단하신 재능에 맞게 달란트를 주셨으니, 이 얼마나 중요하며 참으
로 공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일단 하나님의 공평성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너무도 적절하게 주
셨으니 감사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뒤에 가
서 다시 공부하겠습니다만, 이 사람의 불평하는 저의가 바로 이 공평성을 인정하지 못하겠
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한 달란트 받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를 않고, 왜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면서 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느냐가 못마땅한 것입니다. 자기의 처지를
소중하게 생각지 못하고 남의 처지를 질투하며 사는 사람은 일생 동안 불평하며 한 맺힌 인
생을 살다가 끝을 내는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처럼 공평성을 바르게 이해하고 받아
들인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입장에서라도 일단 이 공평성을 받
아들임으로써 충성된 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시인하지 않고서는 충성의 시작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시인
하는 겸손! 그것이 있고야 충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없이 충성한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과 겨루는 것이 됩니다. 불평과 원망 속에, 그야말로 투쟁이 되고마는 것입니
다. 그것은 충성일 수가 없습니다.
이제 본문에 계시된 말씀은 충성된 자에게는 더 주신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마지막 부분
에 가서 보면 있는 자에게는 더 주어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없는 그 중에 하나 있는 것
까지 빼앗아서 있는 자에게 주게됩니다. 지나치게 박절한 것 같지만 대단히 오묘하지 않습
니까? 가만히 보면 세상일에 있어서도 가진 자가 더 가지게되고 못 가진 자는 그 보잘것없
이 적게 있던 것마저도 빼앗기는 것을 보게됩니다. 이는 충성이 없고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
다.
따라서 가진 바 자기의 것을 소중히 여길 줄 모릅니다. 그래서는 이미 가졌던 것까지도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가진 자가 더 가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마저 빼앗기
는 불공평의 횡포가 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알고 보면 그 불공평 속에 하나님의 정확하신
공평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본문의 처음과 마지막 상황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가 이미 열이 되었는데 한 달란트 가진 것을 빼앗아 그 열 달란트 가진 자에
게 더 주라는 것입니다. 아무려면 세상에 이러한 불공평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는 인
간적으로나 수리로 따져 말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이요, 여기에 하나님의 진실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이
것이 곧 우리가 수락하여야 할 하나님의 공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이제 충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오랜 시간의 공백을 두고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그 맡겼던 바를 계산하면서 "착하고 충
성된 종"이라는 칭찬의 말을 합니다. 이 칭찬의 말을 듣게된 종들은 주인으로부터 돈을 받
자마자 그 시로 가지고 나가서 열심히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다시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
고자 하는 의도는 얼마를 남겼느냐는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충성을 이야기하는 것입
니다. 소위 말하는 성장율 100퍼센트에 이르게 한 그 진실된 충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
다. 이러한 충성에 대하여 성경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
니"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것에 대한 충성이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많은 것으로 맡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이며, 한편으로는 인간 성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진
실하면 더 주십니다. 그러나 거짓되면 빼앗습니다. 교만하면 낮추시고 충성되면 높여 주십니
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이요, 현재적 심판입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므로 그 다음 한
계단, 한 계단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충성되지 못하면 있는 것까지 빼앗기
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
분을 맡기셨다고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없으면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물질이 없으면
물질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충성 하나만은 내가 가지고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준비
해야 하는 기본 재산이요,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마지막 카드(card)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
며, 어떤 상황에 이르든 진실된 충성이 반드시 있은 후에야 그 다음의 것이 주어진다는 것
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덧붙여주시는 축복이 있는데, 그것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한다는 것입
니다. 이는 요즈음 말로 보너스(bonus)인 것입니다. 적은 일에 충성을 했기 때문에 많은 것
을 맡기시고, 그리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참으로 오묘한 진리가
담겨진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충성된 종들을 둔 주인은 즐겁게 지낼 수가 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우리가 주인을 기쁘게 해드림으로 그로 인해 주인이 즐거워할 때, 우리는 그 기
쁨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는 이 놀라운 축복은 충성된 자만이 누
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문제입니다. 이 사람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인에게 와서 이야기를 하게됩니다. 그는 모자라고 남은 것도 없이 본전만 가
지고 와서 자기의 견해를 늘어놓습니다. 이 때에 주인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부릅니
다. 여기에서 게으르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 말입니다. 그러나 악하다는 말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본전 잘라먹는 사람도 많은데 그래도 이 사람은 본전을 가져왔으니 게
을렀을 뿐 악할 것까지야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주인은 악하다고 말합니
다. 그렇다면 그의 본색이 무엇이며 어떠하기에, 왜 악한 종이냐는 것입니다. 이는 그 중심
에 완악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주인에 대한 믿음 대신에 불신과 반항이 있었습니
다. 그는 주인을 향하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굳다"는
것으로 직역된 '스크레로스' 라는 헬라 말은 다른 여러 가지 뜻으로 번역될 수가 있습니다.
굳은 상태 외에 완악한, 혹독한, 엄한, 잔인한, 고집센 등의 많은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종은 주인을 완악하고 고집이 센 잔인한 수전노 같은 사람으로 생각한 것입
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그 책임을 돌립니다. 주인이 너무 혹독하고 돈만 안다고 생각되어 일
할 마음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일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끝까지 일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에 장사를 하여 이를 남기면 주인이 빼앗아갈 것이니 별 볼일 없겠고, 그러다가 실패하는
날에는 일생 동안 그 보상을 해야할 것이니 아예 감추어두었다가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낫
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잘못된 고약한 마음입니까? 바로 이 마음이 주인 보시기에 악한 것입니다. 그
런가하면 또 하나 "두려워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의 판단에서, 자기 마음대로 주인을 무
서워했습니다. 이는 곧 불신앙의 소치일 뿐만 아니라 주인을 폭군으로 만든 것입니다. 주인
의 깊은 뜻과 맡겨준 신뢰와 사랑에는 무감각한 채, 자신의 비뚤어진 마음의 눈이 주인을
비정한 수전노와 폭군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래서는 하는 말이
십일조 안 드렸더니 사업이 망했고, 주일에 교회가지 않고 다른 데 갔더니 감기 걸렸다는
등 별별 소리가 다 나오는데 이들 모두가 하나님을 폭군으로 만들어놓고 벌을 내리실까봐
그 앞에서 떨고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벌이나 내리시고 벼락이나 치시는 분이라면
지금까지 산 것은 자기가 잘해서 살았다는 것이란 말입니까? 벌을 내리시고 벼락을 치신다
면 벌써 치셨고, 이미 내 인생은 끝나고 없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은혜로 살았고 마지막 순
간까지 은혜로 살 것입니다.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잠언 22 : 13에 보면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변명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주로 안되
는 방향으로만 생각합니다.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되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율법과 은혜를 두고는 율법쪽으로 생각하고, 사랑보다는 진노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항상 결
과에 의해서 평가받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일에 결과가 좋지 못하
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부정적인 염려가 그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 한 달란트 받은 종도 만일의 경우 손해를 보게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이 점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일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진실한 마음은 최선을 다하다
가 손해보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최선을 다하다가 그 한
달란트를 모두 없애고 주인 앞에 섰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주인을 향하여 "주인이여, 죄
송합니다. 원체 미련한 저를 바로 보시고 한 달란트를 주셨는데 장사를 한다는 것이 그것도
감당 못하고 모두를 잃고 말았으니 이 죄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저 죽을죄를 지었습
니다"하면서 몸둘 바를 몰라했다면 어쩌면 지혜롭고 너그러운 그 주인은 새로운 기회를 부
여했을는지도 모릅니다.
사랑 많으신 예수님이시라면 다시 한 달란트를 주시면서 돈은 잃었어도 경험과 지혜는 얻
었으니 한 번 더 해보라고 말씀하실 것같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성공이란 내 노력에 의한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는 것에
속하는 다른 요소들이 크게 작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성공이란 별로 자신
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은 돈은 잃었으나 지혜는 얻었습니다. 겸손도 얻었고 진실도 배웠습니
다. 실패하는 아픔 속에서 사람을 보는 눈도 가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야 일할 수 있
는 사람이요, 지금이야말로 돈을 맡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결과만 염려했지 출발과 과정으로서의 충성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과정으로서
의 최선을 다한 성공! 이 성공도 자랑스러운 훌륭한 성공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이 악한 종의 또 다른 잘못은 자기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한 달란
트를 받았으면 적어도 한 달란트를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은 평가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한 달란트의 능력도 이 시간에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실 때에는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한 가지 능력은 주었습니다. 나에게도 한 가지
재주는 주어져있습니다. 그 재주를 사용하여야 합니다. 땅에 묻어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
다. 더욱이 조심할 것은 받은 바가 없다고 말하지 말 것입니다. 나를 내신 하나님께서 지금
까지 아무 것도 주시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까? 연륜과 경험, 건강, 젊음, 지혜, 지식, 물질
등 얼마나 받은 것이 많습니까? 함부로 나는 받은 것이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주인에 대한 불손이요 모욕이며, 왜곡입니다. 분
명히 한 달란트는 받았습니다. 이제 그 받은 한 달란트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필요 없는 것, 있으나마나한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는 것입니다.
시간도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좋은 재능과 지혜도 묻어두었습니다. 세월이 가고 나의 모습
은 변하는데 그대로 묻어두었다가 어디에 쓰겠다는 말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본
전만 가지고는 못 가는 것이 천국입니다. 한 달란트이든 반 달란트이든 그 양의 많고 적음
에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재능, 이것을 소중히 여기고 이것을 가지
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이익을 남기는 여부의 문제를 떠나 일하
는 자체를 통하여 악한 종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일관된 내용인 충성을 정리해보면 첫째는 하나님의 공평을 인정하는 것입니
다. 그리고 둘째는 내게 주신 은사를 알고 소중히 여기며, 그것으로 일하여 이익을 남겨야합
니다. 다음 세 번째는 끝까지 믿음으로 하여야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이제 주인에게 바쳐
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충성이요, 맡은 자의 태도입니다. 이미 인정하고 주신 것을 땅에
묻어도 안되며 떼어먹어서도 안됩니다. 있는 그대로를 주님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충성할 때입니다. 시시하다고 생각되는 일이지만 충성해보세요. 그러면
큰 일을 맡게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가능성을 극대화시켜 나갑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가능한 것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안하고, 하나님께서 또
다른 무엇을 주시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일생 동안 "주세요" 만을 반복하다가
인생을 끝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혹시라도 땅에 묻힌 것이 없나를 살피
며 이미 주신 은사를 더욱 개발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큰 일, 더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
러면 반드시 더 큰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따로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작
은 일에 충성하면 더 큰 것을 주신다는 것이 주님의 방법이요 약속입니다. 한 달란트, 작은
것, 보잘것없다고 생각되는 거기에 충성을 다해보십시오. 그러노라면 주님께서는 계속하여
더 큰 능력과 더 큰 은혜를 주시며 더 큰 일을 맡겨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여 주인과 더불어 기뻐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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